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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39,823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2 15:03
조회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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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강시당

DUMMY

“ 귀···. 귀신이다! ”

비명을 지른 것은 왕위였다.

치우와 왕방도 갑자기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왕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흐느낌이 들려오는 방향을 찾았다.

낡은 관제묘는 사방에 둘러쳐진 나무 벽들이 썩어서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데다,

일부는 거의 삭아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상태라 딱히 숨을 곳은 없어 보였다.

왕호의 시선이 전면에 거무튀튀하게 금칠도 다 벗겨진 관우 상으로 향하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일 권을 질렀다.

‘쾅!’

굉음을 내며 왕호의 손에 맞은 관우 상은 산산조각으로 나뒹구는데,

그 순간 관우 상 뒤에서 시커먼 물체가 귀신 울음소리를 내며 관 묘 천정으로 뛰쳐 올랐다.

“어딜!”

왕호가 뛰쳐 오르는 검은 물체를 향해 다시 한번 파철권 破鐵拳을 내질렀다.

‘콰콰쾅!’

내공의 힘이 가득한 주먹이 일으키는 권풍에 세 아이는 휩쓸리다시피 사당의 구석으로 나뒹구는데,

정작 일 권을 적중시킨 왕호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히 주먹이 적중했는데, 정작 파공성과는 달리 주먹에 뭔가 닿은 느낌이 없었다.


“ 넌 누구냐? ”

왕호가 날카롭게 소리치는데 허공으로 떠올랐던 검은 뭉치는 마치 허공에 무슨 줄이라도 걸려있는 듯,

너울너울하며 천천히 먼지가 가라앉는 바닥으로 내려선다.

그 모습을 본 왕호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 허공답보 虛空踏步 와 같은 경지···. 오늘 일진은 사납겠구나. ’

나름 경신술에서는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환영답도를 익힌 그였지만 방금과 같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따위 수법은 어림없었다.

그 정도면 이미 일신의 내공이 절정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

설사 일신 내공을 절정으로 수련했다고 해도 그런 수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실제의 결투에서는 그다지 쓸모없는 경공이기도 하고.

그건 일종의 보여주기식 무공에 불과하다.

뭔가 상대방에게 ‘내가 이 정도야’라는 허세를 부리는 무공이라 할까.

하지만, 그 허세도 부릴 정도의 무공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니,

저 시커먼 그림자가 왕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은 이미 증명한 셈이다.

한쪽 구석에 몰려 밀려난 세 아이의 눈에는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그 시커먼 그림자가 영락없이 귀신으로 보였다.

사람의 경지를 넘어선 것으로 보였으니까.


“붕산권이라....제법이야.

나를 이렇게 피하게끔 만든 아이들은 오랜만이군. 킬킬······.”

말소리가 거의 흐느끼는 듯 울리는 것이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내는 괴인.

그제야 아이들은 아까의 흐느낌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 괴인이 웃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소름이 쭉 끼쳤다.


왕호의 전면에 천천히 내려선 괴인은 검은색 장포로 몸을 휘감고 머리에는 검은색의 육합모(六合帽)를 썼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강시처럼 보여서 세 아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런데 정작 그 모습을 본 왕호는 굳어있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 뭐요. 강시당 이 왜 개방의 일에 끼어드는 게요? ”

왕호의 말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 오, 나를 알아보다니? 제법이구나. 붕산권.

노부가 강호를 횡행한 건 한참 오래전 이거 늘 어찌 나를 아느냐? ”

기특하다는 투로 입을 연 괴인의 얼굴은 노부라는 자칭과는 달리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한 피부다.

다만 그 피부가 좀 누리끼리한 게 사람 피부 같지 않다는 게 흠이랄까.

“흥!

강호 밥을 먹으면서 강시당 의 유령부영 幽靈浮靈을 모른다면 안되지.

강시당에서 호곡귀음 號哭鬼音을 내는 자라면 바로 귀곡자 鬼谷子 당묘 어르신 아니오? ”

왕호가 마뜩잖은 얼굴로 침 뱉듯 말을 던지자 누리끼리한 얼굴의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입만 호선 弧線을 그리는 게 더욱 기괴한 당묘가 웃는 듯 보인다.

“호오? 무식하고 과격하기로 강호에 유명한 붕산권의 안목이 대단하구나.

그리 말하니 나도 아까 저 강 씨 꼬맹이가 말한 네 진짜 정체가 궁금해지는걸? 철혈방 따위의 일개 방수가 그런 안목을 지닐 리도 만무하고······.

개방이라 해도 개방의 지방 지파장 따위가 그런 정보를 알 리도 없는데···.

네 정체가 뭐냐? ”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치우의 귓가에 옹알거리는 듯한 조그만 말소리가 들려와서, 치우는 움찔했다.

‘ 놀라지 말고 들어라. 저 강시당 의 괴인은 아무래도 동창의 뒷배인 것 같다. 살고 싶으면 내가 저자를 막는 동안 두 아이와 함께 도망쳐라.

도망쳐서 쓰촨성에 가서 허리춤에 매듭이 세 개 있는 거지를 찾아 지부장을 찾아, 민강 지파장의 전달이라고 전해라. ’

치우는 잠시 놀랐지만 그게 무림인들이 말하는 전음 이라는 것을 깨닫곤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저 광오한 왕호가 저리 말하는 데는 아마도 저 강시당 의 괴인을 당해내기가 버거워서 일 것이다.

그러니 빨리 이 관제묘를 벗어나라는 말인데,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여 궁리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왕호와 당묘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 뭔 개소리! 너는 동창의 개가 분명하구나! 이렇게 끼어든다고 겁먹을 내가 아니다! ”

“ 이놈 봐라? 역모를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네놈이 이리 나오니 네 뒷배가 더 궁금해지는데? ”

왕호의 주먹에서 강맹한 위력의 철혈권이 연타로 이어져 나갔다.

그의 두 발은 환영 답보를 시전하여 흐릿하게 당묘를 가운데 두고 풍차처럼 돌아가니,


비좁은 관제묘는 먼지와 중앙에 피워놓았던 모닥불의 연기가 회오리치며 그야말로 아수라장.

이때 치우는 왕위와 왕호의 손목을 붙들고 재빠르게 그 먼지의 틈새로 달음박질쳤다.

이미 왕호의 거창한 행사가 그들이 도망갈 길을 마련하기 위함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사태를 모르는 당묘는 자신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연타를 날리는 왕호에게 특유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날리며 소리친다.

“ 아까 보지 않았느냐? 네놈의 강권 따위는 내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우리 강시당 의 체공은 상대의 어떤 공격도 흘려버린다는 걸 모르나.

다 해봤느냐? 무식하게 힘만 쓰는 놈이 감히 노부에게 주먹질을···.”

당묘는 뼈만 남은듯한 손을 치켜들더니 두 주먹에 기를 모았다.

갑자기 검은색 장포에서 검은 연기 같은 기운이 당묘의 손에 스멀스멀 깃들며 당묘의 깡마른 주먹이 시커멓게 물들어갔다.

“ 네 놈이 그리 주먹질을 좋아하니 내 오늘 강시당 의 철골수 鐵骨手 를 맛보여주지. 어디 한번 맞받아 보려무나. 킬킬킬······.”

왕호의 태산같이 무거운 주먹이 시커먼 기운을 모은 당묘의 정면으로 쇄도한다.

‘ 땅! ‘

마치 범종을 두드린듯한 커다란 굉음과 함께 왕호의 커다란 몸이 관제묘 밖으로 튕겨 나갔다.

당묘는 흡족한 듯 기괴한 웃음소리를 울리며 그들의 충돌로 인해 사당 안에 널브러진 불붙은 장작들을 왕호가 날아간 방향으로 걷어찼다.

관제묘로부터 서너 걸음은 떨어진 곳에 왕호가 몸을 일으키고 있는데,

입가에 선혈이 주르르 흐른다.

“ 어때? 붕산권. 네놈 이름이 꽤 유명하여 기대했더니 볼품없구나.

하긴, 그래도 태음호 위사장을 한 번에 잡아갈 정도면 제법이긴 하지.

그러나 네놈도 동창 뒤에 강시당 이 있음은 몰랐을 테지? ”

의기양양한 당묘를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왕호가 점점 불이 꺼져가는 사이로 희미하게 웃는 모습이 당묘의 눈에 거슬렸다.

“ 웃어? 네놈의 사지가 다 부서져도 웃을 수 있을까? ”

당묘가 사당 밖으로 발걸음을 썩 옮기자 왕호는 커다랗게 광소를 터뜨린다.

“ 어이, 강시당 늙은이.

내가 왜 웃는지 모르나?

네놈도 나라 밥을 얻어먹다 보니 둔해진 모양이구나.

네놈이 여기까지 행차한 목적이 내 더러운 모가지는 아닐 터. ”

그의 말을 듣던 당묘는 아차 싶었는지 거의 부서진 관제묘를 돌아보았다.

분명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아이 셋이 보이질 않는다.

저 왕호라는 놈이 어울리지 않게 요란한 공격을 했던 것이 결국 아이들을 도망시키기 위한 위장이었나.

누렇게 변화가 없던 당묘의 얼굴색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이 여우 같은 놈! 감히 노부를 속여먹고 놀려? ”

당묘는 화가 치민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어둠이 깔린 사방 숲을 훑어보며 아이들이 도망친 방향을 찾는 듯했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벌레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유독 소리가 덜 나는 방향이 있었다.

그쪽이 아이들이 도주한 방향일 것이다.

당묘는 나가 떨어져 있는 왕호를 놓아둔 채 아이들을 쫓기로 했다.

저 붕산권 이란 놈에게 흥미를 느끼다 보니 정작 이곳에 온 목적을 깜빡한 자책을 하면서.

그때, 뭔가 날카로운 연녹색 빛줄기가 막 땅을 박차려는 당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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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추종 追從 +2 20.05.26 526 5 9쪽
19 어사 20.05.25 528 3 10쪽
18 강시독 20.05.24 512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6 4 10쪽
» 강시당 20.05.22 551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2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4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7 함정 20.05.13 752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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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협의 +1 20.05.12 1,052 13 9쪽
2 +1 20.05.12 1,349 1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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