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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39,829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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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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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강시독

DUMMY

’울컥!‘

갑자기 피를 토하며 왕호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제길···. 노인네의 내공이 엄청나군.

묵철각반의 힘을 빌었어도 내상이 심상치 않구나.

조금만 더 이 자리에 있었다면 영락없이 저승행 일 뻔했다. ”

억지로 버틴 후라 기운이 다 빠졌지만, 왕호는 들끓는 기혈을 다스리기 위해 좌공 坐功을 시작했다.

당묘가 사라진 게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더 버티기 힘든 탓이다.


왕위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 야, 우리 좀 더 멀리 도망쳐야 하는 것 아냐?

왕초가 우리끼리 쓰촨 지부로 가라 했으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치우가 손가락을 왕위의 입술에 갖다 대고 쉿! 소리를 낸다.

왕위가 뭐라 말을 하려 하니 왕방이 인상을 쓰며 왕위의 입술을 손으로 덮었다.

화를 내려던 왕위는 문득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소리에 얼음처럼 굳었다.

어딘가 어둠 속에서 나직한 발걸음 소리와 혼잣말 소리가 들렸다.

” 이놈들이 아이들치곤 꽤 발걸음이 재구나.

왕필이놈 때문에 한 바퀴 둘러오긴 했다만···.

분명 아까 벌레 소리가 잦아든 쪽은 이쪽이 분명한데.

이제는 어디 방향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군.

에잇! 오늘 행사는 헛걸음이 되었나. “

혼자 웅얼거리며 잠시 머뭇대던 발걸음이 사라졌다.

발걸음이 사라지고도 한 시진이 지나서야 아이들은 머리까지 덮고 있던 낙엽 아래에서 살글살금 몸을 일으켰다.


” 야, 너 어떻게 그 강시가 우리를 쫓아올 것을 알았냐? “

왕위가 아직도 두려운지 낙엽 조각들을 살살 털어내며 치우에게 물었다.

그들이 숨어 있던 사이에 어느새 날이 밝아오는지 숲은 희부옇게 안개에 싸여 여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야. “

나름 꼬마들 사이에서 세상일에 제법 안목이 있다 자부하는 왕위는 자존심이 상했다.

왕초가 도망치라고 말을 했고,

그걸 들은 치우가 몰래 왕방과 자신에게 속삭인 후 왕초와 강시 노인이 격돌하는 순간 일어난 혼란을 틈타 재빨리 도망쳤다.

걸음아 날 살려라 내빼는 와중에 치우는 걸음을 갑자기 멈추고 주변의 낙엽을 모아 누워서 숨어 있자고 했었다.

왕위는 내처 도망가자 했지만, 치우와 왕방이 들은 체 만 체 낙엽들을 긁어모아 숨기 시작하자 도리없이 자신도 그 행동을 따랐다.

그러고도 한 시진은 지났고,

이제 도망치자 하던 차에 그 괴인이 자신들이 숨은 장소를 지나간 것이다.

이건 세상 물정을 좀 안다던 자신도 짐작 못 하는 일이었다.

” 잘은 모르지만, 왕초가 붕산권이라는 이름으로 나름대로 유명세가 있는 무림인이라는 건 알았잖아. 그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을 한꺼번에 때려잡는 것도 보았고. “

치우의 말에 왕방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그런 왕초가 내게 전음으로 도망치라고 했어.

그것도 기다리라고도 안 하고 지부로 바로 도망치라고.

그건 돈에 욕심 많은 두목으로서는 나와 같은 ‘봉’을 넘겨버리는 일이지.

그렇다면 왕초는 거기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죽지 않더라도 그 괴노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거지.

그러면 어차피 한 시진 이내에 승부는 났을 거야.

우리가 모르는 숲에서 어둠 속에 제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무림인의 발걸음을 당해낼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 흔적을 금방 찾을 텐데.

우리 처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꼬리를 밟힐 거야.

이미 그 괴노인은 우리가 쓰촨 지부로 간다는 말을 훔쳐 들었고,

그렇다면 우리를 쉽게 못 찾아도 쓰촨 지부로 가서 기다리면 된다 생각했을 거라고.

만약, 왕초가 이겨서 우릴 쫓아온대도 어차피 우리와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대로 도망친다는 건 가장 하수에 속해. “


논리정연한 치우의 말에 왕방은 함박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왕위는 입을 딱 벌린 상태로 할 말을 잊었다.

마치 강호에 닳고 닳은 노강호 같지 않은가.

치우라는 애를 단지 부잣집 철모르는 외아들로만 생각하던 왕위는 새삼 치우를 다시 보았다.

치우는 생각보다 침착하고,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게 어른스러웠다.

자신들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생존법을 선택하는 것.

그건 사실 왕위가 가장 잘한다 생각하던 것인데 이리 치우에게 한 수를 배우니 어째 마음이 좀 찝찝했다.

” 그래서?

그 강시 노인이 지나간 게 거의 한 시진은 지났으니 뭐가 어떻게 된 것으로 생각하냐? “

치우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내 생각엔 그 노인이 별로 다친 기색도 없이 나타난 거로 봐선 아마도 큰 충돌을 하지는 않은 것 같아.

왕초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었으니까.

아가 노인이 ‘돌아왔다’라고 했지?

그건 왕초와 모종의 약속을 해서 오늘 우리를 놓아준다는 뜻과 같을 거야.

그러나 약조를 어기고 몰래 돌아온 것이겠지.

왕초가 아직 안 쫓아온 건 어쩌면 그 노인 모르게 상처를 입은 탓일 거야.

그래야 말이 되지. “


” 제법이구나. 강 씨 도령. “

갑자기 들린 어른의 음성에 세 아이는 움찔 놀랐지만,

이내 그것이 왕호의 목소리임을 깨닫곤 반갑게 몸을 일으켰다.

새벽빛에 분명하게 보이진 않으나 왕호의 얼굴은 파리하게 변했고 입가에는 아직 선혈이 흐른 자국이 보였다.

평소에 복날 개 두들겨 맞듯 얻어맞았던 왕초지만,

그가 자신들을 구하려고 이처럼 다쳤다는 생각에 왕방과 왕위는 어쩐지 가슴이 아렸다.

” 멀리 도망가라곤 했지만,

나 또한 그 노친네가 순진하게 돌아가리라는 생각은 들었었다.

너희들이 도망을 친다고 해봐야 어둠 속 숲에서 강시당의 노괴를 떨칠 거라 생각도 안 했고.

급한 마음에 무작정 도망치라고는 했지만, 노괴에게 발각되지 않으리란 기대도 하지 못했지.

현명했다.

이것이 바로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길이 있다는 것 아니냐.

잘했다. 강치우. 너 꽤 똑똑해. “

영악하고 치밀하긴 해도 강치우도 역시 아직 어린 소년일 뿐.

그동안 험악하게만 대하던 왕호가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칭찬을 하자 왈칵 코끝이 찡해진다.


왕호는 아이들을 찾아오는 것조차 버거웠던지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너희들은 이 주변에 우리 넷이 몸을 숨길만 한 동굴 같은 곳을 찾아봐라.

여기는 토질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동굴들이 제법 많다.

시간이 없으니 이유 묻지 말고 빨리. ”

빠르게 말을 마친 왕호가 울컥하며 선혈을 다시 토해내자,

아이들은 왕호가 많이 다친 것을 알고 재빠르게 주변으로 흩어졌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왕호는 다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의 정수리에서 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한 식경이 지나서 아이들은 헉헉거리며 다시 흩어졌던 장소에 모였다.

왕방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입을 연다.

“ 두목! 여기서부터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작은 계곡이 있는데 그곳에 동굴이 있어요. 입구는 크지 않지만, 안이 제법 넓은 것 같으니 어서 가죠. ”

왕호는 대답도 버거운 듯 고개만 끄덕이더니 일어서서 왕방을 따라 걸었다.

왕위와 치우는 맨 뒤에서 왕호의 걷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공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이미 왕호가 크게 다친 것을 알아챈 것이다.

숲에 난 통로를 벗어나서 숲으로 들어가자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물소리를 따라가니 좁은 협곡 같은 모양의 지형이 나타나고,

나뭇등걸들이 우거진 바위 아래로 왕방이 찾았다는 작은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왕호는 동굴의 입구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 잘 찾았다.

하지만 저곳은 비가 많이 내리면 입구가 잠기는 곳이다.

잘 봐둬라. 저 정도 동굴인데 동물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동굴 입구가 물에 잠기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이다.

다행히 지금이 갈수기라 입구가 나타난 것 같으니 우리에겐 딱 맞는 곳이다.

어서 들어가고, 왕위와 왕방은 흔적 정리를 잘하고 들어와라. ”

흔적 정리.

늘 어딘가에 숨어서 잠드는 일이 많은 거지들에겐 반드시 익혀야 할 기술이었다.

누가 숨어 있는 자신들을 눈치챌 수 없도록 주변의 흔적을 지우는 법.

발자국을 지우고 거꾸로 걸어 들어 오면서 자신들의 발자취에 흙을 뿌리거나 돌과 나뭇가지 낙엽 같은 것들로 흔적을 없애는 법은 그들이 미미하게나마 개방의 뿌리임을 증명했다.


동굴은 왕방의 말대로 제법 넓었다.

깊진 않지만, 석회암의 특성 때문에 동굴 천장 여기저기에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서 환기도 되고 옅은 빛이 스며들었다.

그런 덕분인지 동굴 안 은 습기도 없고 꽤 쾌적했다.

이만한 장소에 동물의 흔적이 없다는 건 왕호의 말대로 자주 물에 입구가 잠기는 탓일 것이다.

그럭저럭 안전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왕호는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이들은 그들 중 유일한 어른인 왕호가 그렇게 무력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자,

안절부절못하며 동굴 입구 여기저기에 쭈그려 앉았다.

한참 동안 운기조식을 하던 왕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왕호가 다시 한번 울컥 피를 토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토한 피는 거무죽죽했다.

“ 난 그 노괴의 강시독에 당한 것 같다. ”

독?

아이들은 어리둥절했다.

“ 강시당은 사체를 운구하고 보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독을 모아 암기로 쓴다.

듣기에 그들의 장법이나 권법에 섞어서 쓴다고도 하더구나.

난 그 노괴에게 중독이 된 것 같다. ”

숨을 씩씩거리는 왕호의 말에 세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치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찌하는 게 좋습니까?

그 독을 해독할 방법은 있나요? ”

“ 내가 알기로는 강시당에서 조제한 해독제 외에는 없다.

어쩌면 쓰촨의 당문이라면 혹 해독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그곳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근육들이 굳어가고 있으니,

내 내공으로 간신히 누르곤 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

세 아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어찌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으니.

다시 왕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강치우. 넌 이제부터 내 말을 들어라.

내 진짜 신분을 네게 알려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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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인 +4 20.05.27 515 6 9쪽
20 추종 追從 +2 20.05.26 526 5 9쪽
19 어사 20.05.25 528 3 10쪽
» 강시독 20.05.24 513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7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1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3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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