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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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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26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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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07

작성
20.05.2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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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관제묘

DUMMY

초 공공은 현 동창의 제독 태감이다.

환관으로 오를 수 있는 두 번째 위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황제의 측근에서 움직이는 태감들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반역자를 색출하고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데는 동창이 최고의 기관이니 초 공공을 보는 대신들이나 황족들은 모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막강한 자리였다.

죄가 있든 없든 없는 죄는 만들면 그만인 법이니까.

그러나 중앙도 아닌 서안의 일개 부자라고 할 수 있는 강룡금장을 역모로 몰아붙이는데 초 공공까지 나섰다는 건 좀 억지스러웠다.


“ 말해봐. 이번에 초 공공이 굳이 쓰촨으로 행차한다는 게 결국 이 사건에 관련된 것 아니냐? ”

왕호가 딱 잘라 단정하듯 말을 하니 태음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건 사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목숨을 구명할 수 있는 정보로 생각했던 것인데,

대놓고 왕호가 그리 물으니 달리 반박을 할 말이 없다.

“ 그건 맞소만···. 초 공공이 어디까지 간여했는지는 난 모르오.

알다시피 초 공공이 관련되었다는 것은 제국이 움직인다는 말과 같소.

그러니 이쯤 해서 나를 놓아주면 없던 일로······.”

태음호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반은 협박에 가까운 그 말을 들은 왕호는 묘한 눈으로 태음호를 바라보았다.

“ 오, 그래?

역시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아까 나에게 뭐라고 했더라?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뭐, 좋은 말이야. ”

혼자 읊조리듯 말을 마친 왕호는 갑자기 태음호의 코를 쥐어뜯었다.

“ 아악! ”

코가 맷돌에 낀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지른 태음호는 자신의 코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 몰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왕호가 몸을 일으켰다.

“ 뭐, 내 나름대로는 도와주는 거라고.

이런 숲속에서 며칠을 굶주리고 물도 못 마시다가 죽는 것보다는 늑대들이 와서 빨리 숨을 끊어주는 게 좋지 않겠어? ‘

왕호는 손을 툭툭 털더니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세 아이에게 소리쳤다.

” 뭐하냐! 산은 밤이 빨리 온다. 어서 가자. 쓰촨으로. “

아이들은 눈앞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기가 질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태음호를 힐끔거리며 왕호의 뒤를 따랐다.

멀리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숲속에 난 통행길을 한참 말없이 걷던 일행은 거의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둘러본 왕호는 숲 한쪽에 서 있는 다 무너져가는 사당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 사당은 관우를 기리는 관제묘였는데, 낡긴 했으나 지붕이 온전히 남아있어서 밤이슬을 피할 만했다.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왕위와 왕방은 재빨리 관제묘 주변에 흩어진 삭정이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았다.

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 강치우는 관제묘 한쪽 구석에서 걸터앉은 왕호에게 다가갔다.

” 두목, 두목의 진짜 정체가 뭐죠? “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정체를 묻는 치우를 왕호는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너 진짜 겁이 없구나.

내가 동창 나부랭이들을 다루는 걸 보고도 내게 감히 정체 같은 것을 묻다니 하하, 너 말이다. 궁금한 게 많은 애는 비명횡사한다는 말 혹시 들은 적 없냐? “

비꼬듯 말을 하는 왕호를 향해 치우는 주먹을 꼭 그러쥐고 다시 말했다.

” 철혈방의 붕산권이라면 나 같은 어린아이도 그 소문을 들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죠.

그런데 대체 왜 이곳까지 와서 변변치 않은 개방의 지파장 노릇을 하느냐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오?

애초 나와 약조했던 개방 지부장과 만남, 그리고 후에 서안으로 돌아가는 문제, 이 모든 게 당신의 진짜 정체에 따라서 다 뒤바뀔 수 있지 않나요? “

바짝 겁을 먹고도 할 말을 다 하는 치우를 보며 왕호는 살짝 감탄했다.

역시 용의 씨는 다른 법인가.

” 야, 강 도령.

그게 뭐 어쨌거나 무슨 상관이야. 넌 네가 만나야 할 사람 만나고,

나는 내가 챙겨야 할 거 챙기면 되는 거 아니냐? “

왕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가 실제 정체가 무엇이건, 그의 속셈이 어떻든 가문의 조상이 남긴 유훈대로 개방에 남겨진 가문과 개방 간의 약조를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치우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심계가 깊은 아이였다.

만약 왕호가 개방에 정체를 숨긴 상태로 잠입하며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라면,

자신이 빌미가 되어 개방의 조직에 어떤 해를 끼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잘은 모르지만, 자신의 선조와 개방파의 조사가 어떤 식으로든 얽혔고,

그것은 가문의 비고에 기록을 남길 정도로 오래되고도 중요한 사연이 있을 터.

그런데 거기서 자신의 잘못으로 개방파에 뭔가 해가 될 인물을 앞세우고 간다는 것이 꺼림칙한 것이다.

” 이봐. 강 도령. 내 충고 하나 할까? “

치우는 왕호의 말에 잠시 빠져있던 생각에서 벗어났다.

” 네가 어린애 답지 않게 생각이 많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야, 뭐가 뭔지도 모를 일에 목을 매달고 궁금증을 던질 때가 아니라, 네 또래 녀석들이 그렇듯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는 게 먼저야.

네 할 일부터 찾아서 하란 말이다. 저 애들이 너를 떠받들 무슨 이유라도 있냐? “

왕호의 말에 치우는 얼굴이 벌게졌다.

딴은 그 말이 맞는다.

왕방이나 왕위가 모닥불 피우기를 준비하는 동안 자신은 왕호에게 이것저것 묻는 모양새라니.

그건 아직도 자신이 허드렛일은 해보지 않았고 할 생각도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품고 있음이 분명했다.

치우는 서둘러 왕방과 왕위처럼 관제묘 주변에 흩어진 삭정이들을 주워 날랐다.

벌써 관제묘 중앙에서는 왕위가 관솔 가지들로 불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왕호. 본 이름은 왕필.

일명 붕산권.

철혈방에 그가 들게 된 것은 과거 철사장을 배울 때 사형이었던 철혈방 방주 모철환 때문이었다.

그들의 사부는 강호에 이름을 떨칠 만큼 유명하진 않았지만,

흑도인들 사이에는 꽤 유명한 해결사였다.

주로 암살과 같은 일을 주로 하던 그의 사부가 시장판에서 소매치기로 활동하던 왕필과 만난 것은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시장판에서도 발 빠르기로 유명했던 왕필.

그가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장년의 남자를 보고, 그의 전낭을 낚아채 도망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묵직한 전낭에 기분이 좋아진 왕필은 재빠르게 복잡한 시장의 골목들을 가로세로 뛰어 도망쳤다.

’쿵!‘

정신없이 희희낙락하며 도망치던 왕필이 부딪친 건 어떤 사내의 가슴이었다.

” 아···. 씨. 뭐야. 눈을 어디다 대고······.“

욕지거리하려던 왕필은 눈이 동그래졌다.

자신이 전낭을 훔쳐 온 그 남자가 떡하니 시장 골목에 버티고 있었던 거다.

왕필은 어마 뜨거라 하며 다시 미친 듯 다른 골목으로 뛰었다.

어째 그 사내가 무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사람을 떨어내려면 아주 빠르게 아주 많은 시간을 뛰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시장에서 소매치기하면서 무림인들의 전낭을 털어본 게 처음은 아니니까.

그렇게 다시 한참을 뛰던 왕필은 아까와 같이 또 길을 막은 사내에게 부딪쳤다.

그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땀 한 방울 흘리지도 않은 상태.

화가 치민 왕필은 또다시 도망쳤고,

그렇게 도망치고 부딪치는 상태가 반나절 이어지자 이제 정말로 지쳐버린 왕필은 거의 포기상태로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렇게 헐떡이는 왕필의 앞에 아까의 남자가 흐릿한 모습을 보이며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왕필은 깜짝 놀랐다.

마치 그림자처럼 뿌옇게 나타나는 사람이라니.

왕필은 넙죽 엎드렸다.

” 아이고···. 대협!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저도 그렇게 빨리 달리고 싶습니다! “


처음 환영답도를 배우게 된 사연을 생각하던 왕호는 빙긋 웃었다.

그때만 해도 참 철도 없고 순진했었다,

그가 모시려던 사부가 얼마나 악명높은 청부업자인지도 몰랐었고,

그로 인해 그의 일생이 얼마나 복잡하게 꼬여 들어갈 줄 그때는 정녕 몰랐다.

하지만 뭐 또 어쩌겠는가.

인생이라는 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어쩌면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관제묘 중앙에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자 이내 어둠이 내려앉았다.

울창하지는 않아도 숲이란 늘 서늘한 법이다.

어둠이 드리워지자 이내 바람과 냉기가 엉성한 관제묘를 들쑤시며 마치 호곡성 같은 소리를 내었다.

왕방과 왕위, 치우는 왕호가 내어준 건량을 한 개씩 들고 조금씩 떼어먹는 중이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랄까.

흉한 일을 본 것이 불과 몇 시 진 전인데, 모처럼 민강이 아닌 다른 곳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건량을 먹자니 아이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왁자지껄하였다.

보통 왕호가 있을 때면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럽던 아이들이지만,

어쩐지 왕호는 민강을 떠난 이후부터는 조금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왕위가 왕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저기 조장님. 제게도 무공을 좀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

뜻밖의 말에 왕방과 치우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왕위와 왕호를 번갈아 보았다.

왕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평소의 음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 왜, 지금껏 아무 말 없더니 이제 새삼스럽게 무공을 배우고 싶으냐?

너 이전에는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

왕호의 말이 의외로 사납지 않자 자신감이 생긴 듯 왕위는 말을 이었다.

” 에이, 그전에는 조장님도 무공을 보인 적이 없었잖아요.

맨날 무공은 알지도 못한다고만 하시고, 늘 개방에서 배운 것도 없다고만 하시고.

하지만 오늘 확실하게 보여주셨잖아요.

동창도 무시 못 하는 붕산권. 제게도 그런 기회를 좀 주세요. “

오랜만에 무공을 발휘한 이후라 그런지 왕호는 어린아이의 추임새에도 제법 흡족했다.

그때였다.

어둠이 가득한 관제묘에 귀신 소리 같은 흐느낌이 울려 퍼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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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강시독 20.05.24 512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6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1 5 9쪽
» 관제묘 20.05.21 583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6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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