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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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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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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07

작성
20.05.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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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습격

DUMMY

’ 강룡금장 ’

서안은 사천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지역이자 몽골과 신강 지역과도 연결되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다.

실크로드가 연결되는 곳이기도 해서 무역업이 번성한 지역으로,

사천보다는 작은 성이지만 상업적인 규모는 사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상업이 발달한 곳에는 당연히 전장들도 번성하게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강룡금장은 꽤 이름이 알려진 전장이었다.

전장이란 은행과 같은 것이라 어느 지역까지 그 전장의 전표가 통용되느냐에 따라 영향력을 인정받게 되는데,

수도인 북경에서도 통용되는 강룡금장의 전표는 꽤 신용도가 높았다.

그런 이유로 멀리 떨어진 사천의 변두리에서 구걸하는 왕방, 왕위 같은 아이들조차 들어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모닥불 건너에 불에 그을린 절반쯤 진물이 흐르는 얼굴의 소년이

강룡금장의 핏줄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처음 치우가 자신의 집이 강룡금장이라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의 말을 듣는 세 명의 거지들은 각각 다른 생각을 했다.

왕방은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위는 ‘ 뻥 치시네!’라는 생각을 했다.왕호는 ‘ 이거 진짜면 무조건 돈이 된다! ’ 라는 생각이었다.


“ 야, 너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고 거짓말은 하지 마.

네가 강룡금장의 핏줄이면 나는 황족이겠다. 히히 ”

왕위는 어쩐지 아니꼬운 말투로 비웃었다.

생각해보면 왕방이 치우를 끌고 온 것이지 자신은 처음부터 반대하는 태도이었으니까.

왕위의 비웃음에 치우의 눈꼬리가 확 치켜 올라갔다.

“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한다는 거지? ”

“ 야, 그 쟁쟁한 강룡전장의 자손이 왜 여기 사천까지 와서 헤매고 있냐?

얼굴에 화상까지 입고 말이야.

너 그리구 여기서 서안까지 거리가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냐?

뻥을 치고 있어. ”

“ 나흘 ”

치우의 입에서 ‘나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세 명의 거지는 다시 각자 한탄의 소리를 냈다.

왕방은 ‘ 왜 거짓말을’이라는 생각을 했다.

왕위는 ‘ 역시 뻥쟁이 였어. ’

왕호는 ‘ 이 새끼가 어른을 놀리네!’라고 생각했다.

왕위가 다시 치우를 향해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린다.

“ 야, 서안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어른 걸음으로 근 이주 이상 걸려. 그런데 네가 나흘 만에 여기에 왔다고? 아이 걸음에 몸 반신에 화상까지 입고서? 야, 이 주 동안 걸어왔으면 너 화상 상처에 딱지가 앉았겠다. ”

왕호는 왕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슬슬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치우는 전혀 표정의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 거짓말 아니야. 내가 걸어왔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천리속달 千里 速達을 타고 온걸. ”

“ 뭐라고? ”

치우의 말에 거지 셋은 일제히 놀람의 부르짖음을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리속달.

천리속달은 성과 성을 잇는 긴급 화물 운반 체계였다.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시간을 단축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인 천리속달은 전국을 연결하는 대형 표국들이 연합하여 만든,

신속하고 신뢰도가 높은 화물 운송 방법이긴 하지만 사람은 태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리속달은 그야말로 밤낮없이,

중간중간의 역참에서 가장 강한 말들을 번갈아 바꿔가며 달리는 무서운 운송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천리속달에 쓰이는 마차는 대부분 몇 달 사용하고 부서지곤 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쉼 없이 며칠을 달리는 구조라서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어도 버텨내기 힘들다.

게다가 마부들도 어느 정도 무공이 있어야만 그 속도와 충격을 버틸 수 있었다.

반나절을 달리면 천리속달 역참에서 마부와 말을 교체한다.

내공이 꽤 강한 무인이라 해도 며칠간을 연속으로,

밤낮없이 최고 속도로 달리는 마차에 타고 있으면 몸에 크게 손상을 입고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마차를 모는 마부 외에 사람은 태우지 않는다.

그게 천리속달의 규칙이었다.

그런데 그 천리속달을 타고 나흘 만에 사천으로 넘어왔다니.

그 말은 치우가 강룡금장의 핏줄이라고 말한 것보다도 더 신뢰성이 떨어지는 말이다.

그래서 세 거지는 치우의 말에 경악하여 저도 모르게 일어섰던 것이다.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는지 긴가민가하던 왕호가 그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험, 험. 그러면, 네가. 정말로 천리속달을 타고 왔단 말이지?

그런데 천리속달이 사람은 운반을 안 할 텐데?

하더라도 엄청난 거금을 들이지 않고서야.”

미심쩍은 눈초리지만 행여라도 치우가 만에 하나 강룡금장의 핏줄이라고 한다면 아까 다리 아래에서 개 패듯 두드려 팬 일이 영 찜찜한 것이다.

치우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 당연히. 천리속달에 정상적으로 사람이 탈 수 없지요.

때마침 사천의 갑부집에 서역에서 들여온 고급침구가 배송될 일이 있었소.

나는 그 이불 짐 속에 몰래 들어가서 숨은 채로 타고 온 거요. ”

그렇다면 뭔가 말이 된다, 고 왕호는 생각했다.

무공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두툼한 솜이 채워져 있는 이불속에 들어가 있었다면 힘이 안 들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마차의 충격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마침 눈치 있게 왕위란 놈이 불쑥 나선다.

“ 야, 거짓부렁 하지 마. 네가 천리속달 속에 들어 있는 이불 짐 속으로 숨어서 마차를 타고 왔다 쳐. 근데 네 말대로 나흘이 걸렸다며? 나흘 동안 꼼짝하지 않고 이불속에서 먹지도 싸지도 않고 올 수 있냐? 사람이?

게다가말야.

내가 잘은 몰라도 천리속달은 황금이나 뭐 하튼 비싸고 귀중한 것만 보내는 걸로 알고 있거든? 그야 비용이 눈 튀어나오게 비싸니까!

그런데 그 천리속달에 고작 이불짐을 보냈다고? 야, 뻥도 정도껏 쳐.”

왕방이 왕위를 흘겨보며 옷자락을 잡아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왕호는 치우라는 꼬마가 뭐라 답을 할지 궁금해하며 흘깃 바라보았다.

“ 천리속달이라고 해도 역참에서 말을 바꾸고 마부를 바꿀 때는 잠시 마차 수리를 해. 행여 바퀴가 상하거나 연결 부위들이 멀쩡한지 점검을 한다고.

난 그때마다 몰래 나와서 볼일을 본 거야. 물 한 모금, 밥 한 끼 못 먹었지만.

물은 호로병에 담아 입술만 적시고 버텼다.

아니면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을 수 없겠지.

게다가,

네가 말한 그 보잘것없는 짐이 초 공공을 대접하기 위해 쓰촨성 안찰사가 특별히 주문한 것이라면 비용이 문제는 아니다.”

치우의 말에 왕위는 입을 다물고, 왕방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왕호는 입을 딱 벌렸다.

저 꼬마 말대로 안찰사가 중앙의 실세역인 초 공공을 대접하기 위해 비단이불을 특별히 사 온 것이라면 말이 된다.

아까 차 포두가 말한 내용과도 얼추 아퀴가 맞지 않는가.

왕호는 이제 어느 정도 치우의 말에 믿음이 생겼지만,

그래도 풀어지지 않는 의문들은 많았으니 재차 물어보고,

치우의 답이 마음에 든다면 그다음 행동을 결정하기로 했다.


“좋다. 강룡금장의 도련님.

하지만 난 이해가 안 가. 네가 왜 굳이 이 먼 사천까지 목숨을 걸고 숨어와야 할 천리속달을 탔으며, 명가 중에서 명가인 강룡금장 도련님이 왜 심한 화상을 입고, 마치 굽다가 도망친 똥개처럼 도망을 쳤냐는 거지, 대답할 수 있나? ”

왕호의 탐색하는 듯한 눈빛을 바라본 치우는 아이답지 않게 하, 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 할 수 없구려. 본래 왕방이 내게 물었을 때 대답을 안 한 것은,

나도 사실 정확히 모르는 액운을 다른 관계없는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해 어떤 봉변을 당할까 두려웠던 탓이 있었소.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이 나온 이상 내가 사정을 말하지 않으면 오해만 생기겠죠. ”

참으로 아이답지 않은 노인 같은 말투에 세 거지는 모두 기가 찼다.

“ 강룡금장은 이제 우리 강 씨 세가 것이 아니오.

지난달 우리 일가는 강룡금장을 빼앗겼소. ”


뭐라고? 하며 왕호는 비명 같은 외마디를 지르곤 입을 딱 벌렸다.

왕방이나 왕위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리둥절했다.

강룡금장이 어딘가.

산서, 사천 할 것 없이 중원의 서 측 지역의 금장에서는 손에 꼽히는 곳이다.

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금력이 있는 만큼 강룡금장을 지키는 무사단만 해도 일개 무림방파 이상의 강력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힘으로만 따진다면 행정구역상의 성을 관장하는 성주 이상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런 강룡금장을 빼앗겼다니.

게다가 먼 거리 탓인지 아직 그 소문은 들은 바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저 치우라는 아이는 매우 곤란한 상황일 것이다.

“ 아니, 대체. 왜? 누가? 무슨 일로? ”

앞뒤 없이 더듬대며 왕호가 말을 꺼내는 것이 꽤 당황했던 모양이다.


어둠이 깔린 한 밤이었지만 대낮처럼 밝았다.

전각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치솟아서 금장 후원은 훤하게 보였고,

그 소란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헤맨 고용인들과 무사들이 가득했다.

치우는 어머니와 함께 겁에 질린 얼굴로 후원의 안채 앞뜰에 나와 서 있었다.

사방에서 아우성이 들리고,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평소에 어머니와 치우 같은 금장의 내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던 경호무사들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혼잡을 뚫고 한 남자가 비틀대며 후원의 뜰로 들어섰다.

그 남자를 본 순간 어머니와 치우는 동시에 소리치며 달려갔다.

“ 여보! ” “ 아버지! ”

전각의 타오르는 불길을 등에 지고 나타난 사내는 바로 당금 강룡금장의 주인, 강인재 였다.

과거 서안에서 자리 잡아 온 강룡금장의 영향력을 북경까지 펼쳐 사업 재능과 과감성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서안 상계의 떠오르는 신용.

그 사내는 지금 옷이 여기저기 그을린 상태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낭패한 모습으로 후원에 들어섰다.

“ 치우야, 여보. 미안해. ”

말을 마친 사내는 몇 걸음을 못 걷고 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는 사이 강룡금장의 거대한 장원 여기저기서 뭔가 폭발하는 소리와,

엄청난 화염들이 치솟아 후원까지 날아들었다.

기겁하여 마치 쥐 떼처럼 우ㅡ 소리를 치며 남아 있던 하녀와 가신들이 뿔뿔이 사라졌다.

쓰러진 강인재를 향해 아내와 아들 치우가 달려들었으나 거의 눕다시피 한 장년의 아버지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유복한 집 안에서 자라 풍족하고 안온한 강룡금장에 시집와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오던 강인재의 아내, 유화는 어쩔 바를 모른 채 머리에서 피가 솟구치는 남편의 상처에 속절없이 손바닥을 덮고 있을 뿐이다.

덜덜 떠는 유화의 손바닥 사이로 야속하게도 피가 멈추지 않고 솟구쳤다.

강인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들, 치우를 손짓하여 불렀다.

치우는 목소리마저 희미한 아버지의 입술에 귀를 바짝 가져갔다.

“ 치우야······. 너 빨리 안채의 비고로 들어가서 장원을 빠져나가라.

시간이 없다. 어서 빠져나가서 사천의 개방 지부를 찾아가라.

그곳에 가서 황옥이라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사정을 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자세한 얘기할 틈이 없다···. 어서···.”

“ 안 돼요. 아버지. 이대로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어요.

그리고 어머니는요? 제가 포정사로 달려가겠습니다. 판관에게 고해서······.”

“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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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광견추혼단 狂犬追魂勯 +4 20.05.28 515 5 9쪽
21 유인 +4 20.05.27 518 6 9쪽
20 추종 追從 +2 20.05.26 528 5 9쪽
19 어사 20.05.25 529 3 10쪽
18 강시독 20.05.24 513 5 10쪽
17 녹죽장 20.05.23 528 4 10쪽
16 강시당 20.05.22 552 5 9쪽
15 관제묘 20.05.21 584 7 10쪽
14 역모 20.05.20 588 5 10쪽
13 고문 20.05.19 587 7 9쪽
12 동창 20.05.19 634 10 9쪽
11 탈출 20.05.15 635 5 10쪽
10 합의 20.05.15 654 8 9쪽
9 용모파기 20.05.14 681 8 10쪽
8 기록 20.05.14 714 7 10쪽
7 함정 20.05.13 753 7 9쪽
6 지하통로 +1 20.05.13 815 7 9쪽
» 습격 +1 20.05.12 921 8 12쪽
4 명분이 없다 +1 20.05.12 989 11 9쪽
3 협의 +1 20.05.12 1,052 13 9쪽
2 +1 20.05.12 1,350 19 10쪽
1 구원 +4 20.05.11 2,301 5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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