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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혹은 꼼수


[작법, 혹은 꼼수] 자존심은 지키되 자만하지 마라

안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글쟁이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은, 어떤 의미에선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존심이 강하다는 건 결코 허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반면에 자만심은 좀 다른 이야기다. 아주 명백히.

소위 글을 쓰는 일을 해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둘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존심과 자만을 같은 걸로 본다는 이야기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녀보면, 이런 부류들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설가를 지향하든,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작가를 꿈꾸든, 전부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수년 동안 도전을 했지만 여전히 습작가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대단한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들 중 정말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한 명도 없었다.

분명히 이 직업군은 재능이라는 걸 갖고 있으면 여러 모로 장점이 될 수 있다.

재능이 없다면 그걸 보완할 수 있는 열정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들은 그것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 중 일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은 늘고 패배의식에 절어서 남을 시기하고 폄훼하는 일로 소일하게 된다.

다른 이의 성공을 단지 운이 좋거나 어떤 반칙을 써서 이룬 거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꽤 있다.

<아무개가 모 공모전에 당선되어 막대한 상금을 받았다더라.>

이런 소리를 들으면 승부욕이 생겨서, 나도 꼭 그렇게 되리라 하는 마음가짐을 찾아보기 힘들단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이뤄낸 신델레라의 성공기쯤으로 치부한다.

그 사람이 그걸 이루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뎠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와 같은 서사 문학은 단시일에 이루기 힘든 영역이다.

선천적인 재능만으로는 부족하고, 후천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일가를 이룰 수 있는 분야다.

그럼에도 이 간단한 진리조차 간과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앞서 말한 커뮤니티들을 다녀보면 스스로를 <준비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자부심을 갖는 건 좋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의 실력은 갖춰야 하는 게 아닐까.

내 경험상, 그들에게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남이 쓴 걸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란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글 쓰기>의 진입벽을 터무니 없이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뛰어난 경기력을 보면서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화가의 작품을 보고 나서 나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찾기 힘들다.

그런데 그들은 유독 글을 쓰는 걸 참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말 그럴까?

나는 마흔줄을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때로는 문장 하나를 쓰지 못해서 몇날 며칠을 밤잠을 설쳐가면서 끙끙 앓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글을 쓰는 걸 우습게 보는 걸까?

그건 자존심과 자만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오만하고 게으르며 독선적이기까지 하다.

어떤 일을 종사하다가 그게 안 풀리니까 글이나 써야지, 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인간들.

그들을 볼 때마다 어처구니 없고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특별히 그들에게 위기의식 같은 걸 느끼진 않는다.

왜, 나는 그들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 거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우스울 뿐이다. 

글이라는 게 몇 개월 끄적댄다고 당장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우습고 우스울 뿐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냉정해져라.

그리고 자신의 현주소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따져보라.

그런 다음에 출발점을 제대로 찾아서 시작하라.

그걸 하지 못하면 결코, 그 꿈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자존심, 그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자만은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독이 된다.

 

 

 


댓글 4

  • 001. Personacon 강춘봉

    13.01.05 12:04

    저에게 딱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요새 자만에 빠져 앞을 제대로 못 보는것 같습니다.

  • 002. Lv.1 [탈퇴계정]

    13.02.03 18:50

    하긴 저도 남아있는 게 알량한 자존심 하나 밖에 없네요....ㅎㅎㅎ
    근데 저는 자만심이 너무 쪼그라들어서 좀 생겼으면 합니다. ;ㅅ;

  • 003. Lv.1 [탈퇴계정]

    13.02.25 06:39

    제일 쉬운게 글 쓰긴데...

  • 004. Lv.25 공룡사육사

    15.04.24 06:25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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