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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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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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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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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쪽

14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9)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59.

- 장판은 깔아두었다. 계획대로 진행해.

1:1 메시지 창이 닫혔다. 답변을 듣지도 않고 빠르게 닫힌 창.

상대의 반응 따윈 상관하지 않은 일방적 의사소통.

그 고압적인 태도의 폭군은, 늑대머리를 달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늑대머리를 손질해 만든 투구.

이 투구는 가죽만 벗겨 다시 늑대의 두개골모양으로 제련된 쇠에 덧씌워 제작되었다. 목덜미의 갈기털과 이빨까지 유지해야 했기에, 손이 많이 가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제작단가는 높지 않았다.

재료는 초보자 존에서 나오는 엘리트 늑대의 머리면 충분했고, 투구를 만드는 생산직은 널리고 널렸다. 초반에 무두질 스킬 올리는 데에는, 늑대머리 투구만한 것이 없었다.

웃돈을 얹어 추가 옵션을 달면, 늘어뜨린 늑대 갈기 아래로, 목을 보호하는 파츠를 장착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집트 벽화에 나오는 신처럼 보이기 때문에, 옵션을 달아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방어력이 낮았다. 게다가 뾰족하게 돌출된 늑대 주둥이 때문에 머리 위 시야가 가려지는 단점도 있었다.

그렇지만 겉보기엔 멋있어서, 전사계열 직업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 투구를 쓴 자도 패션을 의식했는지, 상반신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몸은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졌다.

캐릭터를 만들 때 넣은 옵션이 아닌 진짜 근육.

그 증거로 근육위에 타투가 새겨져 있다.

마도로스社 에서는 플레이어의 신체 정보를 충실히 반영한 경우에만, 해당부위의 타투 사용을 허가해준다.

아무나 멋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팔뚝에 새겨진 기묘한 곡선의 다발들은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역동적이었다.

푹.

한 자루 도(刀)가 바닥에 꽂히며 피 냄새를 흘렸다. 그 옆에는 누군가의 팔뚝이 뒹굴었다. 이미 주변은 피가 낭자했다.

적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은 아이템으로 표기 되지만, 이 팔뚝은 그런 게 없다. 아예 정보가 존재치 않는다.

그렇다면 루팅도 아니고 드롭된 것도 아니다. NPC든 적의 것이든, 원칙적으로는 자른 즉시 사라져야 한다.

더 오션에서는 살아 있는 존재의 신체를 잘라 분리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전투 중 칼로 베는 동작을 해도, 상대에게 데미지가 들어갈 뿐이다.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닌지라, 기본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심한 상처를 입으면 피야 흘리지만, 상처부분은 뭉뚱그려져 표현된다.

이때도 마찬가지의 이유가 적용된다. 가상현실게임이라 해서 모든 상황이 생생하게 표현될 수는 없다.

레벨업을 위한 사냥, 전쟁, 결투, PK등등. 무력이 사용되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부상과 죽음이 남겨진다.

부어오르는 피부의 멍. 쩍 벌어진 상처.

흘러나오는 내장. 흥건히 배어나오는 피.

발걸음마다 퍼지는 피 웅덩이의 파문. 발길에 차이는 시체.

누구도 이런 광경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은 완화되어 적용된다.

상처는 그냥 거친 텍스쳐로 대체되어 거부감을 줄인다. 혈액의 노출은 플레이어가 옵션으로 원하는 만큼 설정할 수 있다. 시체의 경우는 그냥 딱딱하게 굳은 얼굴만 빼면, 인형처럼 생기 없는 존재로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원하면 언제든지, 하드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의 절손만은 맘대로 하지 못한다.

퀘스트의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하다거나 할 경우 아이템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한다.

그나마도 뼈나 가죽의 형태로만 남아서 혐오감을 줄인다.

하지만 이곳에 뒹구는 팔뚝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NPC의 것도 아니며, 적의 것도 아니고, 아이템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유저의 팔뚝.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특수 직업에게 주어지는 레전드 스킬에나 달린 옵션-‘절단’의 결과.

그리고 늑대머리 투구를 쓴 자의 직업은, 리퍼(Reaper).

그 말 그대로 수확하는 자이지만, 그가 거두는 것은 들판에 영근 곡식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 그것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수확한다. 목숨까지도.

아이러니 하게도 리퍼의 캐릭터명 역시 똑같이 ‘리퍼’였다.

약점을 잡은 위즈를 협박해 이용한 자.

빙글뱅글의 제압을 위해 팔을 잘라온 것도 그가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젠 시간이 없군.”

그의 시야에는 다른 창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용암지대가 아닌 다른 장소를 비추는 화면.

‘세 갈래 운명의 길’과 같은 스킬은, 각 분신들을 조종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야를 제공한다. 하지만 리퍼 앞에 떠오른 창은, 무언가를 조작하기 위한 창이 아니다. 그 증거로 리퍼는 지금 손을 놓고 있었다.

조작하지 않았는데도 화면 속의 장소는 수시로 바뀌었다.

화면이 비추는 모든 장소마다 사람들이 숨어 있다. 풀과 나뭇가지를 엮어 뒤집어쓰고 엎드린 모양새는 길리슈트를 착용한 현대의 저격병과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활도 석궁도, 마법을 쓸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들은 띄엄띄엄 흩어져 한곳을 관찰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레미라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폭발로 형성된 크레이터 가장자리에 있었다.

가끔 불안한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 자리를 옮겼지만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다리는 모양새다.

리퍼는 이들이 위즈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다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숨어서 관찰하는 자들은 그런 사정을 모른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면 모를까, 숨어서 얻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리퍼는 이들 역시 레미라 마법사와 같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성기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대기 중이다.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포위망은 아니었다. 드문드문 빠져나갈 구멍은 남겨졌다. 전투를 피하려면 빈 곳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있었다.

어떤 무기도 소지하고 있지 않은 그들은, 성기사처럼 우락부락한 근육도 없었고, 마법사처럼 마력을 갈무리 하지도 않았다.

차이나 칼라를 닮은 목깃에서 빛나는 디바인 마크가, 성직자 계열일 것이라는 추측만을 가능케 할뿐이다.

“소문의 이단심문관이로군.”

하나같이 올백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아래로 드러난 얼굴들은 서로 달랐지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성직자다운 따스함이 결여된 차가운 표정.

미동도 없이 땅에 뿌리박은 듯 곧게 서 있는 자세.

그들은 잡담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할 것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리퍼는 코앞까지 접근해도 그들의 숨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전사가 아니지만 그만큼 강한 체력을 가졌으며, 마법사가 아니면서 그만큼 자제심이 깊었다. 또한 암살자가 아니면서 그만큼 은밀했다.

그들 중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화면과 정면을 바라보는 위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은 화면너머의 리퍼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대는 적인가?

리퍼의 입에서 상대가 듣지 못할 대답이 흘러나왔다.

“YES.”


◇◇◇◇◇◈◇◇◇◇◇◇◈◇◇◇◇◇◇◈◇◇◇◇◇


“나와! 나오라고! 리퍼! 이 개자식아!”

빙글뱅글은 눈이 풀렸고,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려댔다. 눈앞의 위즈는 안중에도 없었다.

무능력자인 위즈를 깔보던 사람은 어딜 가고, 고통으로 몸을 떨어대는 불쌍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아픈 척 해봐야 이득도 없는데 연기는 아닌 것 같고. 진짜 아프다는 것인데……어째서?

위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한쪽 팔이 날아갔다. 물론 아프다. 하지만 적절한 선에서 통각으로 인한 신경 신호가 커트되고, 그 강도도 조절되었다. 애초에 통각 쪽은 예민하게 설정해봐야 좋을 게 없는 요소다.

아무리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추구하는 가상현실이라 해도, 이용자가 쇼크로 죽을 위험까지 나 몰라라 하진 않는다. 아무리 이용자가 통각센서를 건드려 높게 설정해도, 시스템이 알아서 그 수준을 낮춰버린다.

길어도 3초안에 통각수치가 다운 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편재도 얼얼한 느낌만 들뿐, 처음 팔이 날아간 순간처럼 아프지 않았다.

헌데 빙글뱅글은 진짜 현실에서 팔이 잘려나간 것 마냥 히스테리를 부린다.

‘결론은 리퍼가 무슨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겠지.’

규모는 작지만 필드를 만드는 능력을 가졌고, 필드를 깨부숴 데이터 그리드를 노출시키는 존재가 리퍼.

유저의 사지를 절단해 고통을 주는 방법을 알아도 이상하지 않다.

‘일단은 계획대로 움직이자.’

위즈는 발광하는 빙글뱅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접근하자 빙글뱅글은 손에 쥔 매직스틱을 찔렀다.

“W! 리퍼는 어디 있나!”

원래 매직스틱에는 약간의 물리 공격력과 물리 방어력이 부여되어 있다. 접근전에서 마법사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위즈도 그쯤은 알고 있었기에, 찔러 들어오는 매직스틱을 비껴 쳐냈다.

완전히 맨손이 되어버린 빙글뱅글의 목덜미에 학살자의 망령을 겨누며 위즈는 명령했다.

“방패를 꺼내.”

“이놈! W!”

“두 번 말하지 않겠어. 시키는 대로 해. 그게 지금의 캐릭터를 보전하는 방법이야.”

“뭐?”

“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방법은 아주 많아. 이렇게 널 붙잡아 두는 것도 있고, 절벽에 올라가는 걸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는 방법도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제 3의 방법을 쓰려 해.”

“달콤한 소리를 하는 구나. 마치 날 구하기 위해 떨어뜨린 것처럼 말하고 있질 않나!”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빙글뱅글의 눈은 위즈에게 고정되었다.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위즈는 바닥에 떨어진 스태프와 매직스틱을 양 발가락으로 움켜쥐었다. 한쪽 손이 멀쩡했다면 간단히 회수했겠지만, 지금 위즈는 외팔이 신세.

손으로 주우려면 빙글뱅글의 목에 겨눈 칼부터 치워야 한다.

그래서 급한 대로 발가락 사이에 걸어둔 것이다.

“네가 날 구할 이유는 없다. 그건 리퍼도 마찬가지지.”

“맞아. 난 댁이 어찌되는 상관없어. 바하르칼 계열 유저이면서, 네크로맨서. 원래대로라면 바하르칼 용병을 적대할 이유가 없어. 하지만 당신들은 사사건건 방해가 되더라고. 이번에는 당신 때문에 난 캐릭터를 지워야 할 처지까지 되었으니까.”

“너도 이단심문관과 볼일이 생겼나? 그 고스트 블레이드 때문에?”

“아니. 난 그쪽과는 상관없어. 아이린을 레미라까지 데려다주지 못해서, 레미라 마법사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거야. 아마 모든 학자계열 NPC들에게 찬밥 신세가 되겠지.”

“스케일 참 크군. 그래서 나와 함께 캐삭빵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 그런데 난 속편한 입장이 아니거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 시키는 대로 하지 그래? 물론 리퍼가 죽일지도 모르지만, 레벨 1이 될 때까지 하진 않을 테니까.”

“그 말 듣고 퍽이나 시키는 대로 하고 싶겠군.”

빙글뱅글이 빈정대는 것도 당연하다. 조금 전까지 치고 박고 싸운 상대에게 단박에 회유되는 게 이상한 거다.

“아렌의 크리스.”

빙글뱅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리퍼는 베타 유저인가 보더라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아렌의 크리스를 가진 걸 알고 있었어. 그게 네크로맨서라면 누구나 침을 흘려대는 아이템이라던데……뭐, 지금 반응을 보니 사실 확인은 할 필요도 없겠네.”

“누가 침을 흘린 다는 거냐! 이런 상황에서 그딴 아이템이 무슨 소용 있어!”

“그럼 그 입에 흐르는 건, 침이 아니라 땀이냐?”

“그래 땀이다!”

“혀로 땀을 흘리는 건 개 같은 짐승이나 그러는 거다.”

“헛소리 마라.”

“그래. 헛소리는 이정도로 해두고. 지금의 제안, 나쁘지 않으니까, 후딱 방패나 꺼내라고.”

“아무 제안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제안!”

“방패를 꺼낸다. 그 대신 당신은 성기사와 이단심문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내 밑천을 들어먹을 속셈이구나!”

위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신. 절벽을 기어 올라가서 여길 빠져나갈 생각이었지? 성기사나 이단심문관을 피해서?”

“그렇다.”

“만약 내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도망쳐서 지금은 배를 타고 있었겠지.”

“틀렸어.”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거두고, 시스템 창을 열어 스크린 샷을 불러내었다. 크게 확장시킨 다음, ‘다 같이 보기’ 옵션을 체크했다. 스크린 샷에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숲에서 야영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들을 인솔하는 자들은 허리춤에 디바인 마크를 매달고 있었다.

“성기사들이로군.”

“우측하단에 미니 맵도 함께 찍혀 있어.”

위치는 잊혀진 폐허로부터 2킬로미터 거리. 캡쳐 시간은 현재 시각으로부터 하루 전.

“우연일 뿐이다. 정말 성기사가 이 근처에 있었다면, 혼돈의 짐승을 보고도 가만있진 않았을 것이다!”

“엔틸리움에서 게이트가 열렸을 때, 숲에 고립된 자들이 있었어. 그걸 알면서도 성기사들은 구하러 가지 않았다. 집단 공격기를 쓰려면 최소한 100명의 성기사가 필요한데, 엔틸리움에 있는 성기사는 딱 100명이었거든. 고위 마족의 출현에 대한 대비는 해야 했으니까.”

“이건 경우가 다르다. 혼돈의 짐승은 급조된 개체일 뿐, 성기사와 고위 성직자의 조합이면 5분도 안 되어 잡는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었나보지 뭐. 예를 들면……신성왕국의 교황들을 만나러 온, 소수정예 전투 집단의 경계라거나.”

하루 전부터 성기사들을 동원시켜가면서까지 대비해야 할 적대 단체가 무엇일까.

빙글뱅글은 밤사이 이곳을 거쳐 간, 스컬그레일 일행을 떠올렸다.

바하르칼 용병단장이면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무력을 가졌으며. 그 휘하의 친위대는 제각각 특기 분야가 있었다.

연금술, 꼭두각시술, 궁술, 마법…….

“흑마법!”

“그래. 스컬그레일도 강하긴 하지만, 흑마법사의 위험성만큼은 아니지. 신성왕국이니 진짜 정통 흑마법은 못 쓰겠지만, 미티어 스트라이크 급의 어떤 하위 호환주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어?”

위즈의 말대로다. 아무리 허리를 굽히고 들어오는 스컬 그레일 일행이지만, 그들을 맞으며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말대로라면 이곳엔 성기사가 없다. 단장 일행을 따라갔을 테니까.”

“다른 스크린 샷을 보면 이해가 빠르겠지.”

이번엔 이동하는 병사들과 성기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미니 맵 상으로는 폐허와 6킬로미터 거리.

성기사와 나란히 걷는 검은 옷의 NPC도 있었다.

“저 사람들 이단 심문관 맞지? 6시간 전에 찍힌 걸로 봐서는, 아마도 진즉 도착했을 거라 생각되는데?”

“올라가 봤자, 저들에게 잡혔을 거란 얘기냐?”

“그래. 우리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이 폐허 근처에 대기 중인 자들도 있고, 증원까지 오는 중. 저들 입장에서는 충분한 예비 병력도 있겠다, 빙글뱅글이라는 네크로맨서를 잡으려 시도하지 않겠어?”

빙글뱅글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째서 내 방패를 노리는 거냐?”

“그야 방패가 있어야 네크로맨서로 활동할 수 있으니까. 그 방패를 착용하면, 네크로맨서의 영혼에 빙의되잖아?”

“리퍼가 그렇게 말하던가?”

“그래. 애초에 빙글뱅글이라는 캐릭터는 마법사. 네크로맨서가 되면, 기존에 쓰던 마법은 위력이 급감하지. 그런데 당신이 쓰는 주문은, 아무리 봐도 맞으면 아플 것 같거든. 당신은 여전히 마법사야. 안 그래?”

“…….”

“잡혀서 좋을 게 없는 건, 진짜 네크로맨서랑 같잖아. 그냥 방패 줘봐. 뺏으려는 건 아니니까.”

“……뭘 믿고.”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덧없이 흘러. 저길 봐. 용암이 차오르잖아.”

용암은 라바 사이테리아가 단단히 뿌리박은 곳까지 밀려들었다. 라바 사이테리아는 뿌리와 덩굴줄기를 들어 용암의 쇄도를 막으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없었다. 용암은 줄기까지 들이 닥쳤고, 밑둥에서부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뿌리부분은 용암에 푹 잠긴 상태로도 살아남았지만, 줄기부분은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네 말대로 꺼내주지.”

빙글뱅글도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주었다.

위즈는 방패를 뒤집어 놓고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 흘린 무기나 챙겨. 여기 두고 가면 영영 못 찾을 테니까.”

이미 학살자의 망령은 인벤토리로 들어간 상태. 빙글뱅글도 스태프와 매직스틱을 주워들었다.

그동안 위즈는 방패 안쪽의 손잡이에 무언가를 끼우려 애썼다.

새끼손톱 크기의 수정조각이었다. 방패 손잡이는 성인 남성의 팔 하나가 들어갈 만큼 넓은 폭을 지녔을 뿐, 뭔가 작은 물체를 끼우거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빙글뱅글이 무기를 회수할 때까지도 위즈는 낑낑대기만 했다.

“뭐 하는 거냐. 난 달라는 대로 줬다.”

아무것도 못하는 위즈를 비꼬는 빙글뱅글. 위즈도 할 말은 있었다.

“댁이 내 팔을 날려 먹어서 그런 거잖아! 한 손으로 쪼그만 수정조각을 고정시킬 수 있겠느냐고!”

“하급 주문 저장 시드로군. 붙일 건 없나?”

“현실 세계라면 접착제든 뭐든 구하겠지만 여긴 게임 속이라고.”

“게임 속에도 접착제는 있다.”

“그런 게 있어?”

“그래. 가장 흔한 게 나무 수액이지. 없나?”

“없어.”

“공구를 쓰기에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건만.”

“내가 무슨 외계인 잡아먹는 공구전사인줄 알아!”

위즈는 너덜대는 웃옷을 쭉 찢었다. 초보자 아처 세트는 힘도 주지 않았는데도 쉽게 찢겨졌다.

그 모습을 본 빙글뱅글이 버럭 소리 질렀다.

“임마! 그래도 여자 아바타인데 자기 옷을 찢어?”

“어차피 입으나 안 입으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이제껏 여자를 상대로 치고 박고 잘 싸웠으면서 내외를 한대? 장난해?”

“싸울 때야 그런 거 안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리고 여자가 아니라도 따졌을 거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게 됐다지만, 그래도 적인데 내가 뒤치기 할 게 걱정도 안 되나?”

“상하의 모두 합쳐서 방어력이 2다. 이거 입는다고 아플 게 안 아프고 그럴 것 같지도 않고, 나중에 수선도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렇게 쓰는 게 더 낫지.”

위즈는 찢어낸 옷으로 수정조각을 감쌌다. 그리고 방패 손잡이에 돌려 감으려 했다. 하지만 한 손만 가지고 감으려 하니 자꾸만 수정조각이 미끄러지며 밖으로 떨어졌다. 보다 못한 빙글뱅글이 달려들어 손을 보탰다.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지? 고맙구먼.”

“시끄러. 매듭이나 단단히 지어.”

수정조각을 방패 손잡이에 붙들어 맨 위즈는, 시스템 창을 열어 리퍼에게 연락했다.

- 준비완료.

- 방패에서 떨어져라.

위즈는 방패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빙글뱅글도 위즈를 따라 움직이려 했다.

“댁은 거기 있어.”

“수상쩍은 주문을 쓸 거면서, 왜 나만 붙어 있으란 거냐?”

“나까지 끌려 들어가면 방패는 누가 가지고 가?”

“끌려들어가?”

빙글뱅글이 의문을 표한 순간, 방패에서 반투명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을 피울 때 생기는 그런 연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물거리는 덩어리.

그것은 망령 상태의 위즈 때처럼, 빙글뱅글의 몸을 삽시간에 휘어 감았다. 빙글뱅글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가만히 서 있었다.

“이건 굴락의 지옥 연기(Smoke of hell)로군.”

그는 이 연기의 정체를 아는 눈치였다. 이때쯤에는 빙글뱅글의 온몸이 연기에 갇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저 목소리만 연기 속에서 울렸는데, 연기는 단단한 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까지 가두었다.

“방패……잘 챙겨라…….”

점점 빙글뱅글의 목소리는 멀어졌고, 자욱하던 연기는 어느 순간 힘없이 흩어져갔다.

연기가 사라진 곳에는 방패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빙글뱅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굴락의 지옥 연기라……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위즈는 방패를 들어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제 용암지대의 중심부는 차오른 용암에 잠겨버렸고, 비교적 높은 지대만 섬처럼 남아 있었다. 외곽부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용암으로 침식당하는 절벽 근처는, 매직 애로우가 떨어질 때마다 걸쭉한 용암이 튀기 시작했다.

“용암이 차오르기 전에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건 힘들겠어. 차라리 죽은 다음에 이 위에서 부활하는 게 더 빠르겠군.”

이렇게 마음먹으니 용암지대에서도 여유가 생긴다. 매직 애로우가 떨어져도 피할 필요 없고, 용암에 잠기는 것도 두렵지 않다.

“쟤는 또 왜 저런대?”

천하태평인 위즈와 는 달리, 라바 사이테리아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화염내성이 있는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 절벽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워킹 팜(Walking palm) 같군.”

지구는 라엘리언의 침공으로 모든 생물이 절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시간이 흘러 과거 생물들의 유전자를 복원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 노력이 모든 종에 적용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식생복원에 특히 도움이 되는 생물인 나무에 대한 연구가 최우선 되었다. 그중에서도 적응력이 높거나, 기타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진 종이 우선시 되었는데, 주로 자작나무·느티나무·포플러·메타세퀘이어·대나무 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제로 그라운드에서는 크게 자라기 전에, 나무가 죽기 일쑤였다. 변종 생물에게 공격받거나, 기존의 변형된 수목에게 양분을 뺏겨 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된 나무가 ‘워킹 팜’.

1년에 4㎝씩 이동한다는 이 신기한 나무는, 대량으로 재배되어 제로 그라운드에 내보내졌다. 성체 때 내보냈기에 양분을 빼앗겨 고사할 염려도 줄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라 해도, 스스로 움직여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갈 수 있기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경우는 달라도 게임 속 라바 사이테리아도 딱 그 꼴.”

하지만 라바 사이테리아는 워킹 팜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워킹 팜은 튼튼한 뿌리가 나무 전체를 지탱 수 있었다.

라바 사이테리아는 원래 그렇게 움직이는 식물이 아니었다. 단단히 자리 잡고 서서 덩굴줄기와 용암을 쏘아 보낸 것으로 알 수 있듯, 한번 뿌리 내리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컨셉이었다.

그런 라바 사이테리아가 용암에 타죽기 싫어 스스로 뿌리를 뽑아 이동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라바 사이테리아의 뿌리는 보행에 부적합했다.

워킹 팜의 뿌리는 단단한 막대기 같은 모양에, 전반적으로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다. 반면 라바 사이테리아의 뿌리는 잘 휘어진다. 게다가 줄기위로 거대한 꽃까지 달려 있다.

불타는 꽃은 불길이 수그러들어 하늘하늘한 얇은 피막만이 남았다.

이동할 때마다 줄기가 휘어지며 꽃이 용암에 가까워질 때마다, 라바 사이테리아의 뿌리가 마구 요동친다. 그때마다 용암이 철벅이며 뿌려졌다. 그렇게 뿌려진 용암이 위즈 근처에서 지글거리며 땅을 녹였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의 꽃은, 화염에 무척이나 취약함이 틀림없다.

라바 사이테리아의 몸부림은, 누가 봐도 고통의 몸짓.

고통을 수치로 표현한 고통지수에 따르면, 최고의 고통은 화상을 입을 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게임 속에서 그렇게까지 고통지수를 구현했을 리는 없지만. 거대 생물이 불길에 휩싸인 몸을 뒤틀며 절벽으로 기어가는 모습은, 적이었던 위즈가 동정심을 가질 만큼 애처로웠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그렇게 프로그램 되었기 때문에?”

용암에 뿌리를 담그고 줄기에 불이 붙은 상태라면,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어째서 의미 없는 몸부림으로 고통의 시간을 늘릴 뿐인 걸까?

“그렇다면 그 목숨 내가 끝내주마.”

위즈는 용암 가까이 다가갔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화염의 발자국이 중첩되었다.

화염속성의 라바 사이테리아를 상대로 코로나가 잘 먹히리라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저 꽃을 때려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라바 사이테리아는 그대로 용암바다로 쓰러지게 된다.

“코로나!”

위즈는 짧게 끊어 쏘아내고는 반대쪽 발로 두 번째를, 그리고 다시 반대쪽 발로 코로나를 쏘아냈다. 연달아 쏘아낸 붉은 화염덩이가 라바 사이테리아의 꽃받침에 명중하자, 거대한 꽃이 기울며 용암과 가까워졌다. 용암에 직접 닿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얇은 꽃잎은 불이 붙어 타들어갔다.

라바 사이테리아는 꽃을 거칠게 흔들었다. 바람이 몰아치며 꽃에 붙은 불이 단숨에 꺼져버렸다.

위즈는 연달아 코로나를 쏘아 보냈다. 이번엔 꽃을 직접 노릴 셈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닿기도 전에, 라바 사이테리아의 꽃이 떨어져버렸다.

“유효타였나?”

꽃이 떨어진 라바 사이테리아는, 무거운 게 떨어진 덕분인지 더욱 빨리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줄기의 절반이 이미 타들어간 상태. 게다가 용암에 잠겨 있던 뿌리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용암을 빠져나온 뿌리들은 그대로 불이 붙어 꺼지지 않았다. 절벽으로 파고드는 뿌리의 움직임이 하나같이 맥이 없다.

그럼에도 계속 뿌리를 절벽에 찔러댄다. 용암지대를 벗어나려는 동작은, 오히려 흙으로 이루어진 절벽의 붕괴를 촉발시켰다. 흘러내린 토사에 라바 사이테리아의 뿌리가 파묻혔다. 큰 움직임을 자제하지 않으면 뿌리는 점점 더 파묻혀 옴짝달싹도 못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꽃받침 부분에서 뭔가가 쏘아져 절벽에 푹 박혔다. 뭔가 지지대처럼 쓰려고 덩굴줄기를 발사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충격으로 절벽이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라바 사이테리아의 뿌리는 완전히 토사에 파묻혀 드러나지 않았고, 기다란 줄기만이 솟아나 있다. 그럼에도 라바 사이테리아는 발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라바 사이테리아의 행동에서는 생존본능을 뛰어넘는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설마?”

위즈는 곰곰을 불러냈다.

“저기로 올라가!”

곰곰의 등에 오른 위즈가 갈기털을 꽉 붙들며 소리쳤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라바 사이테리아가 하는 짓은 스스로를 토사에 파묻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 용암을 피해 와서 하는 게 셀프 생매장이라니. 분명 저건 이상 행동이다.

위즈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팔자 편하게 마물의 사정에 대해 캘 때는 아니지만, 어차피 최단시간 내에 여길 빠져나가지 못하면 죽는 거잖아. 그렇다고 용암에 다이빙해서 자살하는 건 취향도 아니고.’

지금 상황은 위즈에게 있어 가벼운 여흥에 지나지 않았다.

라바 사이테리아가 주변에 쏘아대는 게 뭔지 알아본 다음, 어떻게 죽을 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곰곰은 잔뜩 경사지고 무너져 내리는 토사를 가볍게 뛰어올라갔다. 하지만 라바 사이테리아와는 충분히 거리를 두었다. 너무 가까우면 공격 받을까 경계한 것이다.

위즈는 곰곰의 등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다.

바닥을 이루는 흙은 어두운 색이었다. 절벽의 안쪽, 그러니까 축축하게 젖어 있는 흙이었기에 이런 색이 났다.

바위나 잔돌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흙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 흙들이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깎아지른 절벽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요행이었다.

“어? 이건?”

바닥에 울퉁불퉁한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크기는 주먹만 했으며, 점액질로 인해 흙투성이인 그것은 대체로 둥글었다.

위즈는 점액질을 걷어 냈다. 유리질 광택을 가진 안쪽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유리만큼 투명하진 않았으며, 어딘지 모르게 검붉은 색이 났다.

화로에서 막 꺼낸, 덜 식은 유리 색깔이다.

“이거 봉인구로구만.”


====================================

[ 라바 사이테리아의 화염포자 ]

모체인 라바 사이테리아가 서둘러 영양분을 모아 만든 결정.

봉인구와 같은 성분이지만,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 발아 확률은 낮다.

====================================


정확히 말하면, 사이테리아의 씨앗.

원래대로라면 검보라색을 띄어야 했지만, 용암을 빨아들인 탓인지 불그스름하다.

“죽기 전에 씨를 뿌리려고 절벽에 올랐군.”

궁금증을 해결한 위즈는 화염포자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진짜 사이테리아의 봉인구는 수박만하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그에 못 미치는 크기.

즉, 미숙한 것이다. 이걸 가지고 가봐야 비약의 재료로도 쓰기 힘들 테고, 핏스톤의 간식거리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일단 눈에 보이는 마력량부터 터무니없이 적다. 심어도 싹이 틀지 의심 가는 수준.

“하긴 설명도 그렇게 나왔지.”

위즈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때 라바 사이테리아의 줄기가 위즈 쪽으로 다가왔다.

이미 상당량의 화염포자가 빠져나왔는지, 구멍이 숭숭 뚫린 꽃받침이 드러났다.

“공격할 셈인가?”

위즈는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곰곰을 역 소환시키고, 무기조차 들지 않았다.

“잘 됐어. 용암에 빠져죽기는 싫었거든.”

얼마든지 죽여 보라는 듯 위즈는 가슴을 내밀었다. 라바 사이테리아를 도발하기 위해, 조금 전 내려놓은 화염포자를 발로 짓밟기도 했다.

후두두둑!

위즈의 머리위로 라바 사이테리아의 화염포자가 떨어져 내렸다. 말이 씨앗이지 돌덩이 같은 물체가 수십 개나 떨어져 내렸으니 위즈의 머리가 멀쩡할 리 없다. 금세 머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데미지는 얼마 안 되면서 더럽게 아프네.”

이마를 부비며 위즈는 투덜거렸다. 머리카락으로 덮인 부분이야 표가 나지 않지만, 이마는 호되게 까인 탓에 두 배로 부풀었다.

“이것도 공격이라고 하는 거냐!”

라바 사이테리아의 꽃받침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딱 한 알 남은 화염포자가 붉게 달아올라 있다. 느껴지는 마력량이 제법 농후하다.

“그래! 빨리 끝내! 시간을 아껴야지! 어? 뭐야!”

꽃받침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매가리 없이 폭 꺾였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었어?”

위즈는 실망감에 꽃받침을 걷어찼다. 바삭바삭하게 변한 꽃받침이 쪼개지며 한 알의 화염포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막 퍼 올린 용암처럼 이글대는 화기가 주변을 밝혔다.

하지만 막상 손을 가져가 대니 뜨겁진 않았다. 적당히 따끈한 정도.

둥둥.


<성향 ‘중립 ’의 유저에게 제시되는 퀘스트가 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퀘스트 템이라 이건가? 좋다.”

무능력자는 늘 퀘스트에 목마르다. 발품 팔지 않고도 굴러들어온 퀘스트라니, 위즈는 두말 않고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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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 결합 퀘스트(상위호환용) / 불타는 땅을 찾아서]

필드에 가득 차오르는 용암. 매직애로우가 쏟아지는 하늘.

이 위협적인 환경에 뿌리를 내린 이상 사이테리아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용암까지 빨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진화하였습니다.

그 결과 라바 사이테리아는 펄펄 끓는 용암에서도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차오르는 용암은 라바 사이테리아에게도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 어떤 생물도 용암에 잠긴 채 살아남지 못합니다.

주인에게 버림받기까지 한 라바 사이테리아는 살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리고 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이에 라바 사이테리아는 최후의 힘을 모아 자신의 후세를 남기려 합니다.

라바 사이테리아는 꽃을 피우는데 성공했지만, 갑작스레 차오른 용암 때문에 충분한 영양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화염포자를 모아 적당한 곳에 뿌려주세요.

단, 현재 위치한 필드는 안 됩니다.


난이도: 없음. / 레벨제한: 없음.

퀘스트 발동조건: 성향 중립

임무 1: 화염포자 최소 20개 채집.

임무 2: 화기가 충만한 곳에 뿌려서 가능한 한, 많이 싹을 틔울 것.

보상-1: (셋 중 택일)

/ 화염저항 영구적으로 50% 상승

/ 화염속성 스킬의 발동속도가 일괄적으로 -5초.

/ 화염속성 스킬의 위력이 20% 상승.

보상-2: (둘 중 택일)

/ 마물의 특수공격(현혹)에 완벽한 내성 획득.

/ 마물의 독성에 대한 내성 15% 추가.

보상-3: 살아 있는 마물로부터 아이템 루팅할 확률 30% 부여. [루팅이 성공한 마물은 잡아도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습니다.]

[다른 퀘스트와 결합 시, 발아한 라바 사이테리아를 아군으로 활용가능.]

[관련이 없어 보이는 퀘스트라 해도, 시스템의 판단하에 분기 퀘스트가 결합됩니다.]

[이 퀘스트는 단독으로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화염포자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주면, 발아 확률이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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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포자라……그냥 주변에 떨어진 것만 주워도 20개는 넘겠군.”

위즈는 주먹만 한 덩어리들을 주워서, 식량이 든 주머니에 넣었다. 화염포자가 미숙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이것은 본래 알 상태의 펫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화염포자도 비슷한 경우였는지, 식량 주머니의 밀빵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행이로군.”

위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용암이 급속도로 차올라 지척에 와 있었다. 그동안 용암지형에서 버틸 수 있게 해준 화염돌격까지 해제시켰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빨리 죽어서 위로 올라가는 게 나았다.

EMP가 점차 안정되어가고 있으니, 망령이 된 상태로 지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라바 사이테리아가 움직였다. 라바 사이테리아의 꽃받침이 벌어지면서 집게모양의 돌기가 뻗어 나왔다.


<퀘스트를 수락하여, 모체‘라바 사이테리아’가 혼신의 힘을 다해 당신을 탈출시키려 합니다.>

<성공확률은 10%에 불과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어차피 그냥 있으면 죽을 거 아냐.”

위즈가 수락하자 집게 모양의 돌기가 위즈를 붙잡아 올렸다.

집게마저도 바삭바삭 거리는 게, 영 시원찮았지만. 굵은 줄기 부분은 생각보다 멀쩡했던 모양이었다.

흙더미 위로 드러난 부분이 활시위처럼 뒤로 당겨졌다.

한껏 탄성이 실려 뒤로 휜 줄기 끄트머리에 라바 사이테리아의 뿌리가 휘감겼다.

위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투석기 위로 굴려진 돌덩이 신세임을 깨닫고도 멀쩡할 수 없었다.

“아주 무식한 방법이로구나. 성공률이 10%인 것도 이해가 간다.”

절벽 위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본 위즈는,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확률 10%도 너무 후한 걸?”

라바 사이테리아의 줄기자체만도 100미터를 훌쩍 넘겼지만, 절벽의 높이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잘못하면 절벽에 들이박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서바이벌 마스터리-세 갈래 운명의 길이’절벽에 들이 박은 상태로 발동, 세 개의 분신 모두 지상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절벽에 매달리게 된다. 용암이 차오르는 속도보다 빨리 기어 올라가지 못하면, 망령이 되어 다시 부활을 시도해야 한다.

“이미 선택한 마당에 이것저것 따지기도 우습지.”

위즈는 마음을 비웠다. 최악의 상황이래 봤자 죽는 것 밖에 더 있겠나.

그럼에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가뜩이나 스탯 딸리는데, 비전투 상황에서까지 죽어야 하다니.”


<발사 타이밍을 정할 수 있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발사’를 외쳐주세요.>

<1분 내에 발사하지 않으면, 라바 사이테리아의 줄기가 버텨내질 못합니다.>


위즈의 눈앞에 부채꼴로 펼쳐진 게이지가 생겨났다.

양 끝에 제각각 Control과 Power가 적혀진 게이지 안쪽에는, 한가운데에 위치한 바늘이 있었다.

“무작정 발사 되는 게 아니었어?”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걸 알자마자, 삐죽 튀어나온 입은 쑥 들어갔다.

“컨트롤은 명중률을 높이는 것일 테고, 파워는 그냥 탄성을 높이는 용도인가?”

발사거리가 모자랄 게 큰 걱정이었기에, 위즈는 손가락을 들어 파워 쪽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그러자 줄기 쪽에서 우지직 소리가 났다.


<라바 사이테리아의 줄기 섬유가 손상되었습니다.>


위즈는 황급히 바늘을 가운데로 위치시켰다.

“이거 무조건 파워를 올릴 수도 없네.”

정확성이 문제가 아니라 파워가 관건인데 컨트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곧 쓸모없는 기능이 달려 있진 않을 것이란 데에 생각이 미쳤다.

위즈는 컨트롤 쪽으로 바늘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가상의 투사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탄도, 득 위즈가 날아가는 경로였다.

그 끝은 터무니없이도 절벽 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파워를 끝까지 올려도 닿지 못할 거리. 그렇지만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봐?”

위즈는 게이지의 중간지점에서 Control이 적힌 곳의 딱 한 가운데에 바늘을 위치시켰다.

“발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꽃받침 바로 아래를 붙든 뿌리가 풀렸다. 한껏 구부러진 줄기는 공기를 가르며 바닥을 때렸다. 그 끝에 달려 있어야 할 꽃받침은 저 멀리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흐으으으으!”

이를 악물었지만 입술 주변의 살이 떨리며 일그러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꽃받침에 달린 집게는 위즈를 꼭 붙들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꽃받침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전 굴리기도 아니고 이게 뭐야!”

붉으죽죽한 용암과 이제 막 동이 터오는 하늘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바꿨다. 주변 배경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는 걸 계속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절벽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는 알 지 못했다. 다만 팍삭팍삭 소리가 울리며 충격이 가해졌는데, 이게 매직 애로우 때문이란 사실이 위즈를 식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빌어먹을. 무슨 초급 마법이 이래…….”

꽃받침을 관통한 매직 애로우는 위즈의 귓가를 지나 용암 속으로 빠져들었다. 팍삭팍삭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지금 위즈가 매달린 꽃받침은 매직애로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몸통을 기준으로 왼쪽은 이미 바삭거리는 가루를 흩날리며 너덜대기 시작했다.

왼 팔뚝이 달려있다면, 멀쩡하진 않았을 것이다.

“큭!”

매직 애로우가 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5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5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5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

.

.

매직애로우 하나하나의 데미지는 작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다보니 체력게이지가 금세 쭈욱 내려갔다.

모자 손에 포션을 채워놓지도 않았기 때문에, 떨어지는 체력은 회복시키진 못했다. 설사 포션을 채워두었더라도 마실 수 없었다. 연달아 매직애로우를 두들겨 맞다보니, 상태 이상(경직)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몸을 두들겨대는 매직 애로우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라바 사이테리아의 거대한 꽃받침도 더 이상 둥글지 않았다. 부서진 쿠키처럼 변해 제멋대로인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꽃받침의 회전도 그쳤다.

위즈를 매단 채 꽃받침은 계속 상승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냐!”

위즈는 몸을 뒤틀었다.

마력을 보는 눈을 쓰지 않아도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EMP의 덩어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저기에 닿는 순간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못 되어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배짱은 사라졌다.

환경마력이 주는 위압감이 위즈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코앞에서 매직애로우가 만들어지는 광경이 너무도 생생하다.

“차라리 저거에 맞아 죽는 게 낫겠어!”

회전을 멈춘 꽃받침이 광포한 EMP의 천장을 통과했다. 그 내부는 정전기가 가득한 공간.

더 이상의 매직 애로우 난사는 없었다.

그 대신 위즈의 머리카락이 삐죽 솟았다. 온몸을 간질이는 마력의 흐름은 강압적으로 위즈를 밀어내려 했다.

EMP에 저항하게 되면 올라온 것보다 빠른 속도로 다시 용암지대로 되돌려질 뿐이었다.

위즈는 몸속에서 날뛰는 마력을 다독이는 한편, 마력을 모아 꽃받침에 흐르게 했다.

‘서로 다른 성질의 마력이라 반발을 일으킨다면, 내가 가진 마력을 지금 모조리 밖으로 쏟아내 버리면 되는 것 아냐?’

마력을 그냥 내보낸 것도 아니다. 위즈는 내보낸 주문으로 라이팅 주문을 사용했다.

하지만 마력은 덧없이 소모될 뿐, 주문은 완성되지 않았다. 대신 위즈에게 남은 마력은 10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EMP가 위즈를 밀어내는 힘이 반감되었다.

투둑. 위즈를 붙든 꽃받침이 쪼개지며 EMP에 밀려갔다. 그리고 위즈는 그 반발력에 밀려 위로 튕겨져 나갔다.

“잘 가라. 라바 사이테리아.”

위즈의 몸은 EMP의 천장을 벗어났다. 비로소 제대로 된 하늘이 보였다.

아직 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날이 밝아지며 어두운 밤하늘을 감청색이 밀어내고 있었다.

영락없는 새벽녘의 하늘.

자주 볼 기회는 없었지만, 보게 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하늘.

그 하늘 아래에서 위즈의 몸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시 EMP의 천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음에도 위즈는 두렵지 않았다. 도리어 치기어린 발상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재밌는 걸 해볼까?”

위즈는 인벤토리를 열어 마력 회복 포션을 꺼내 입에 물었다.

마력이 차오르자마자 위즈는, 조금 전과 달리 마력을 내뿜어 EMP와 부딪치게 했다.

위즈의 몸이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이종의 마력에 둘러싸인 상태라면, 소화기의 연동운동처럼 이동하겠지. 하지만 완전히 바깥이라면, 이렇게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거야.’

완전한 기술이 아니었기에 한번 사용할 때마다 600에 가까운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대 여섯 번만 사용하면 절벽의 끄트머리에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이지님!”

“벌써 접속해 있었나.”

아래에서 위즈를 보고 놀라는 레미라 마법사들 사이에, 빌헬름텔과 루시엔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을 마주 흔들어 주려던 위즈는 손을 내렸다. 무사히 빠져나오고 보니, 앞으로 닥칠 일이 걱정된다.

애초에 레미라를 떠나 신성왕국 바하로 온 것은, 실패할 경우 더 오션의 모든 학자계열 직업에게 미움 받는 퀘스트 때문이다. 다음단계로 계속 진행된 퀘스트는, 아이린을 무사히 보호해 레미라까지 인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을 망쳐버렸다.

아이린은 레미라로 가지 못한다. 다크랜드 어딘가로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레미라 마법사에게 뭐라고 설명하지? 마스터들은 어떻게 설득하고?”

그나마 아이린이 날려진 좌표는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크랜드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해킹 이전 버전의 게임 ‘레드 오션’에서도, 갔다 온 사람은 손에 꼽았다.

레벨 요구치가 높은데다가, 정보도 거의 없이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거나 마찬가지

그런 곳에. 단순 퀘스트도 아니고, 사람을 찾으러 가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리퍼나 빙글뱅글을 이용해 자세히 사정을 설명하면 되겠지? 될 거야.”

이미 리퍼에게 레미라까지 동행하기로 약속도 받았다. 빙글뱅글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리퍼가 함께 있으니 옴짝달싹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걸로 마법사들과 마스터를 납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어. 나와라 곰곰.”

소환된 곰곰의 갈기털을 붙잡은 위즈는 착지를 준비했다. 절벽 가장자리.

버려진 폐허의 일부만이 쓸쓸히 남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작가의말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핵’노잼.


질질끄는 제 글도 쪼금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냥 노잼 정도로 봐주십쇼.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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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2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4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1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4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0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0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8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3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3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5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6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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