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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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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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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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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5.

바하르칼 용병들은 가져온 짐을 펼친다, 불을 피운다 수선을 피웠다.

단장이 움직인다고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온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폐허의 한 구석에 텐트가 생겨났다.

빙글뱅글은 단장 일행에 끼었고, 어디선가 나타난 용병마법사들 역시 텐트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가짜 렌틸도 몸을 일으켰다. 위즈는 그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당연히 동료들에게 갈 거다.”

“동료?”

위즈는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꼬았다. 그 얼굴엔 안타까움과 비웃음이 절반씩 섞여있었다.

가짜 렌틸은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위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코앞에 바하르칼의 단장과 친위대가 와 있다. 이렇게 강력한 우군이 있으니 살았다는 안도감만이 밀려왔다.

그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연하게 치뜬 눈이 위즈를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위즈가 썩은 미소를 보냈지만,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에게 참패하였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단장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야.’

그는 위즈를 밀치고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위즈가 한 걸음 옆으로 움직여 다시 앞을 막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자 몸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사 쪽 특성이 두드러진 위즈다. 갓 빈사상태에서 벗어난 마법사가 민다고 밀쳐질리 없다. 그러자 가짜 렌틸이 인상을 썼다.

“비켜라.”

위즈는 피식 웃었다. 발밑에서 텅 소리가 울리며, 손바닥이 가짜 렌틸의 배로 뻗어졌다.

“악!”

황소에게 들이받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짜 렌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겉보기로는 그저 손바닥으로 슬쩍 밀어올린 것뿐이지만, 사실은 진각을 밟으며 촌경을 사용한 것이다.


<무신장이 발동되었습니다.>


눈앞의 시스템메시지가 사라져가는 것을 살피며 위즈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아직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 못 한 모양인데. 넌 지금 나에게 잡힌 거라고.”

위즈는 바닥에 구겨진 채 널브러진 몸뚱이를 들어올렸다. 지금 위즈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일반적인 남성보다 훨씬 작았다. 반면 가짜 렌틸의 키는 일반적인 남성의 수준이었다.

무릎 꿇린 남자가 여자에게 멱살을 잡힌 모습이 연출되었다.

서로의 키 차이로 인해 발생한 언밸런스 때문에, 두 사람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실제로 가짜 렌틸은 그리 목이 졸리지 않았으며, 위즈의 손에도 그리 힘이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험악한 분위기만은 진짜였다.

가짜 렌틸이 입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씩씩거렸다.

“감히 바하르칼 용병단 앞에서 날 공격해? 동료들이 보고 가만있을 것 같나!”

“아까부터 자꾸 동료, 동료 거리는데. 저기 가만히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네 동료는 아니겠지?”

위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가짜 렌틸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스컬그레일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작은 바위에 앉아 도끼날에 낡은 천을 대고 정성스레 문질러댔다. 전사가 자신의 무기를 정비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부하가 얻어맞는 걸 말리는 일보다 중요하진 않다.

“아냐. 단장이 직접 나서는 건 좀 그렇잖아?”

가짜 렌틸이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다른 놈들은?”

이렇게 말하니 가짜 렌틸은 할 말이 없었다.

친위대들은 스컬그레일의 주변을 벽처럼 둘러서 단장을 경호했다. 다른 용병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텐트 주변에 고랑을 파고 있었다. 저마다 자기 맡은 일을 하느라 바빴다.

코앞에서 그가 구타당했는데도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다.

장님이 아닐 텐데도 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노골적인 무시다.

“어, 어째서…….”

위즈는 가짜 렌틸의 멱살을 풀어주었다. 살짝 무릎만 걸친 다리가 접히며, 가짜 렌틸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시선은 바하르칼 용병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불신과 혼란이 어린 것을 본 위즈는 혀를 찼다.

“내가 W인 건 이미 알 테지. 네 이름은?”

“우드스톡.”

충격을 받았는지 순순히 이름이 흘러나왔다. 위즈는 목소리를 낮췄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는 일 아냐. 내가 너랑 투닥거리는 동안, 우리 일행들은 이 주변에서 용병 마법사들을 상대했지. 근데 걔네들은 얼마 안 되어서 미리 준비해둔 텔레포트로 도망 가버렸잖아? 그럼 우리 일행들은 어째서 지금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지? 곧장 폐허로 돌아올 일이지 어째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걸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뒤늦게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우드스톡이 버럭 소리 질렀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므로 위즈는 마이페이스를 유지했다.

“쯧쯧. 전혀 머리 굴릴 생각을 안 하는군. 그럼 질문을 바꾸지. 폐허로 들어오는 스컬그레일 일행이 날 먼저 만났을까, 아니면 내 일행들을 먼저 만났을까?”

스컬그레일은 밖에서 들어왔다. 가짜 렌틸은 폐허에 미리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폐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우드스톡은 조금 전과 똑같은 대답을 입에 올리려 했다. 하지만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페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 의문을 떠올린 순간 그는 이미 위즈의 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위즈의 말대로 폐허 외곽에 있는 사람들이 스컬그레일과 접촉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싸우진 않았다.’

전투를 치른 사람치고는 아무도 지치거나 다친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컬그레일과 친위대는 물론이고, 수행원으로 따라온 자들 역시 멀쩡해 보인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위즈와 조우한 스컬그레일이 싸우지 않은 점이다.

단장 본인에다가 친위대까지 있으니, 정면대결을 걸면 무조건 이긴다. 일부러 져주지 않는 이상 무조건. 그런데도 단장은 위즈와 대화 몇 마디 나누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상대가 누군지 몰라서 그랬을 리 없다.

“설마……암살임무는 포기하기로 한 거냐?”

“맞아.”

“어째서!”

“스컬그레일은 더 이상 우리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들이란 건 이방인이 아니라, 레미라 마법사들을 말하는 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이미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고. 결국엔 단장자리를 내놓고 종교의 권위에 기댈 정도로, 갈 데까지 갔지. 그래서 신성왕국까지 온 거잖아? 교황 만나려고.”

여기서 말을 끊었지만 그는 위즈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한마디로 더 이상 구설수에 오르는 걸 피하려고, 단장이 모든 분쟁에서 발을 뺀 것이다. 하지만 이 폐허가 외진 곳에 있다는 점을 떠올린 우드스톡은 음습한 본능에 충실했다.

“전력은 우리 바하르칼 쪽이 앞선다.”

새삼 상처 입은 자존심을 떠올린 그가, 두 눈에 증오를 가득 담아 위즈를 노려보았다. 위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증거고 목격자고 안 남게 해치울 수 있으시다?”

“단장님과 친위대가 한 자리에 있다. 당연히 가능해.”

“어이구. 제발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소용없다. 네 목숨은 내가 끊어주마.”

“이걸 어쩌나? 난 이방인이라 죽여도 다시 부활하는데?”

“그렇다면 몇 번이고 죽여주겠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우드스톡의 눈을 확인하고 위즈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우드스톡의 시선에서 광전사 만큼이나 피비린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심하게 굴리긴 했나보군. 마법사가 평정을 잃다니.”

위즈는 우드스톡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컬그레일을 믿고 그러나 본데. 정말 싸울 생각이 있다면 어째서 지금 싸우지 않지? 그리고 조금 전 네가 쳐 맞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방관한 걸 떠올려봐. 왜 그러는 것 같아?”

“나도 모른다. 단장님에게도 생각이 있겠지.”

“진짜 멍청하네. 그 머리통에 싸울 생각밖에 안 들어있지? 이유야 뻔한 거 아냐. 스컬그레일 같은 거물이 나타났는데,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잖아. 신성왕국에는 이미 통보도 했을 거 아냐? 그런데 어째서 마중 나온 사람 하나 없느냐고.”

“그건…….”

위즈의 말을 듣고 뭔가 느낀 게 있는지 그는 마력을 모았다.

“탐지 좀 쓰겠다.”

“써. 직접 확인해보면 이해가 빠르겠지.”

우드스톡은 즉시 마력을 모아 파동을 쏘아 보냈다. 출력을 높인 마력의 파동이 그를 중심으로 넓게 파문을 그렸다. 잠시 후, 그는 얼굴을 굳혔다.

“어때? 엄청 많이도 몰려왔지?”

“……그렇군. 이제 알겠어. 단장은 교황을 만나러 가는 길. 그런데 신성왕국에서 암살 같은 걸 저질렀다간, 교황은 절대 단장을 만나주지 않을 거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나라들이 바하르칼을 일제히 공격하겠지.”

“전쟁의 명분도 확실하지. 며칠 전 엔틸리움에 나타난 중급 마족문제를 걸고넘어지면 되는 거니까.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바하르칼이 관련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성전(聖戰)을 선포해도 되겠지. 규모가 커지면 이방인들도 한 몫 잡으려고 끼어들 거다.”

“겁나는군.”

이미 레미라 수호전쟁에서 수많은 이방인들이 안티 바하르칼 진영에서 싸웠다. 죽어도 다시 부활해 덤비는 이들은, 언데드가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 불사의 군대였다.

“그러니 암살이고 뭐고 순순히 포기하라고.”

“손끝하나 대지 않겠다.”

몸을 일으킨 우드스톡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옮겼다.

자칫 잘못하면 바하르칼 용병단을 말아먹을 뻔한 짓을 저질렀으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다들 날 본체만체 한 거야. 난 맞아도 싸다.’

그때 위즈가 우드스톡의 어깨를 붙잡았다.

“또 때리려고?”

“아니, 가지 말라고.”

“왜?”

“어……그러니까……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교섭의 재료가 되었다고나 할까?”

“교섭의 재료? 그게 무슨 뜻이지?”

그를 바라보는 위즈의 눈빛이 애잔해졌다. 우드스톡은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이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저 눈빛을 받고 있자니, 우드스톡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마치 바람난 마누라 도망간 홀아비가, 집까지 홀랑 태워먹고 길바닥에 나앉은 모습이라도 보는 듯 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교섭의 재료가 뭐지?”

위즈는 우드스톡의 몸을 돌려세웠다.

“바하르칼이 신성왕국에서 이런저런 공작을 한 건 사실이야.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이것저것 걸리는 게 너무 많단 말이지. 신성왕국을 달래려면 누군가 남아야 해.”

“희생양을 말하는 거냐.”

“그래.”

“내가 그 희생양이라고?”

“응.”

“날 신성왕국에 던져주고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그렇다더군.”

우드스톡은 위즈를 거칠게 밀어내고 스컬그레일에게 걸어갔다. 주변에 둘러선 친위대들이 우드스톡을 막아섰다.

“웬 놈이냐!”

용병마법사 복장을 하고 있는데다가, 해골모양의 브로치까지 달고 있음에도 이들의 태도는 냉랭했다.

“단장!”

“썩 꺼져라 이놈!”

“비켜! 너희들에게 볼일은 없어!”

스릉. 친위대들의 허리춤에서 은빛 광망이 새어나왔다. 검으로 베기 전부터 금속 특유의 시린 빛이 우드스톡을 때리고 있었다.

“단장!”

말없이 도끼만 닦던 스컬그레일이 일어서더니 우드스톡에게 다가왔다.

“단장! 거짓말이지요? 저 이방인 년의 헛소리에 제가 속은 것이지요?”

스컬그레일은 대꾸하지 않았다. 큼직한 손이 우드스톡의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펄럭.

우드스톡은 어깨가 허전해지는 감각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깨를 감싼 망토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망토는 바하르칼 용병의 상징인, 해골브로치로 고정되어 있었다. 헌데 그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든 우드스톡은, 해골브로치가 스컬그레일의 손에 있음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장이 직접 브로치를 회수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우드스톡의 눈이 충혈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컬그레일의 입에서 그가 가장 듣기 싫었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넌 이제 바하르칼 용병단이 아니다.”

말을 마친 스컬그레일이 뒤돌아섰다.


◇◇◇◇◇◈◇◇◇◇◇◇◈◇◇◇◇◇◇◈◇◇◇◇◇


잠시 휴식을 취한 스컬그레일은 달이 높이 떠오르자 서둘러 출발했다. 명목상의 이유는 교황들과 약속한 날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위즈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원망어린 시선 때문이란 것을.

그때 빌헬름텔이 소리쳤다.

“이지님, 그릇! 그릇!”

“죄송.”

위즈는 살짝 기울어진 사발을 똑바로 들었다. 그때서야 넘치려던 스프가 찰랑이며 그릇에 안착했다. 위즈는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따끈따끈한 온기를 즐겼다. 가상현실게임은 이런 점이 좋았다. 전투나 퀘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도 충분한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별 차이 없는 듯하면서도, 확실히 달라서 좋네요.”

“동감이오.”

“맞아. 좋은 아이디어였어.”

이들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위즈의 가명이었다.

지금 이들은 위즈를 부를 때, 의도적으로 발음을 뭉개고 있었다. 그 결과 실제 들리는 건, ‘이지’가 되었다. 원래 이름인 위즈와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자른 이름이었다.

이렇게 하는 건, 바하르칼 용병들의 눈을 의식해서만이 아니다.

지금 이 폐허 근처에는 여러 나라에서 파견한 스파이들이 숨어 있다.

원래대로라면 스컬그레일을 따라 움직여야 하지만, 다들 한두 명씩 이곳에 남겨두고 간 것이다.

레미라 마법사가 낀 이방인 일행이 이유도 없이 이곳에 나타나진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때문에 다들 식사하면서도 얼굴이 편치 못했다.

숲속의 어둠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까닭이다.

그래서 스프를 묽게 끓여 간단히 저녁을 때우는 중이었다.

스프를 다 마신 위즈는 그릇을 만지작대며 목을 길게 뻗었다. 그 모습을 본 빌헬름텔이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신경 쓰이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치고받던 사이였는데, 막상 저렇게 되고 보니 딱해 보이네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죠. 난데없이 토사구팽이라니. 그것도 바하르칼 용병단의 정예인 용병 마법사가 말이죠. 충격이 크겠죠.”

“저런 걸 볼 때마다 여기가 게임 속이라는 사실을 잊곤 해요.”

“진짜 같은 가짜를 모토로 만들어진 게 가상현실 게임이니까요.”

“배신 같은 더러운 짓거리는 가짜 같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이좋은 고부와 시누이가 나오고, 출생의 비밀도 연적도 없는 아침드라마를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도 안 볼 테니 조기 종영 되겠죠.”

“게임도 마찬가집니다. 저런 갈등관계가 없다면 그만큼 재미가 줄어들 테지요.”

“압니다. 아는데……그래도 기분이 좋진 않네요.”

“그런 위즈님에게만 알려드리지요.”

그 뒷말은 파티채팅으로 이루어졌다.

- 스컬그레일은 일부러 저자를 내쫓은 겁니다.

- 네? 어째서요?

- 어차피 일개 용병 마법사입니다. 희생양이라고 남겨봐야 생색도 못 내지요. 취조를 해봐야 아는 것도 적을 테고.

- 그럼 왜 우리들에게 넘긴 겁니까?

- 바하르칼 용병단은 내부에서부터 부서지고 있습니다.

- 그야 구심점인 단장이 물러났으니까 당연하죠.

- 전 그게 의도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컬그레일은 바하르칼 용병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어요.

- 어째서 그런 생각을?

- 우드스톡이란 자에 대한 처분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지은 죄를.


위즈는 우드스톡이 범한 잘못을 떠올려보았다.

첫 번째는 명령불복종.

정황상 우드스톡이 아이린 암살과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가 렌틸로 분장할 때 사용한 도구들은, 단순히 진흙이나 바르고 염색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교했다. 특히 얼굴에 뒤집어쓰는 가죽은, 현실의 실리콘 가면을 연상시킬 만큼 감쪽같았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우드스톡은 암살임무에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신성왕국에 오는 스컬그레일이 머무는 곳을 지키게 된다.

지은 죄 많은 바하르칼의 단장이니만큼, 암살이나 여러 가지 시비 거리를 피하고자 낸 대책이었다. 처음엔 우드스톡도 성실히 이에 따랐지만, 아이린과 렌틸을 보호하는 일행이 다가오는 걸 알고서, 이전에 받았던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

분명 앞서 받은 암살명령이 취소되었을 텐데도, 우드스톡은 렌틸로 변장했다.

현재 수행중인 임무를 등한시하면서까지 아이린을 암살하려 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조직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죄.

배에서 내리자마자 스컬그레일 일행에는 감시가 붙었다.

각국에서 보낸 스파이들이다. 바하르칼이 국가처럼 취급받지만, 그 근본이 용병인 건 변하지 않는다. 일개 용병들이 어엿한 국가인 레미라를 침공한 일은, 대륙의 모든 국가들을 긴장시켰다. 꼭 바하르칼이 아니더라도 세상 곳곳에 용병들이 있다. 그들이 바하르칼을 따라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래서 스컬그레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로 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스컬그레일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의 부하가 신성왕국에서 사고를 쳤다.

단순한 무력충돌도 아니고, 어린 소녀와 그 할아버지를 암살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암살을 명령한 건 잇페인.

잘못하면 덤터기를 쓰게 될지 모르는 대형 사고다.

이 일이 알려지면 바하르칼 용병단은 갈가리 찢겨나간다. 전쟁이든 자발적인 해체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스컬그레일은 도마뱀 꼬리 자르듯, 우드스톡을 바하르칼 용병단에서 추방해버렸다.


- 하긴, 명령불복종만 하더라도 조직사회에서 용납 못할 죄인데, 자기가 몸담은 용병단을 쫄딱 망하게 만들 사고를 쳤으니 당연한 결과로군요. 이거 제대로 벌 받고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에 스컬그레일의 꿍꿍이가 끼어들 여지는 없는 것 같은데요?

- 제가 누누이 말해오지 않았습니까? 용병마법사는 바하르칼을 대표하는 정예라고. 단순히 마법 좀 쓰는 용병이라고 해서, 전부 용병마법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가장 먼저 보는 게 충성심입니다. 위즈님이 처음 용병마법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그건……시에니투스 근처였지.’

바하르칼의 레미라 침공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산적과 해적들은 시에니투스 인근의 평원에 모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바하르칼의 용병들과 짬짜미를 하고 있었다. 전쟁 준비를 돕는 대신, 혼란을 틈타 땅을 차지하려는 속셈에서였다. 그리고 이때 참여한 용병들은,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 용병마법사였다.


-결국 위즈님이 알린 사실 때문에, 시에니투스의 모든 무법자들에게 공격받았지요. 그 불리함 속에서도 그들이 목숨을 구걸하거나, 임무를 저버리려 했습니까?

- 텔레포트를 사용했지만, 약재를 먼저 내보냈었지요.

- 바로 그겁니다. 용병마법사는 절대 사사로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스컬그레이의 안전문제로, 그가 머물 지역을 경비하라고 보냈더니. 예전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설치는 게 정상일까요?

- 그러고 보니……마음에 걸리는 게 있군요.

- 우리들이 이곳에 올지 어떻게 알고, 미리 렌틸로 변장하고 기다렸느냐……이겠지요?

- 네. 그게 이상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다른 암살자나, 빙글뱅글이 미리 언질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더군요.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곰곰의 이동속도와 의태 때문이다.

오늘 아침 위즈가 소환수로 삼은 곰곰은, 그 근본이 겁쟁이 곰이었다. 이 때문인지 도망치고 숨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암살위협으로부터 어린애를 보호하는 데 이만큼 좋을 수 없었다.

마법사의 탑지에 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암살자의 이목을 피해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곰곰은 본능적으로 사람이 없는 장소를 찾는 능력이 있었다.

야생동물의 감이다.

그러니 우드스톡이 곰곰에 올라탄 아이린과 렌틸의 존재를 눈치 챌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주어진 결과만을 보면, 아이린과 렌틸이 폐허로 오는 걸 눈치 챈 사람이 있었다.


- 누군가 따라붙은 건 분명해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존재인지 감조차 안 잡힙니다.

- 혹시 패밀리어일 가능성은 있을까요?

- 그렇다면 가장 최악의 상황이군요. 이 숲의 모든 동물들을 의심해야 할 테니까요.


위즈와 빌헬름텔은 이 문제를 두고 레미라 마법사들과 상의해보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패밀리어를 알아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엉부엉. 어디선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울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달은 이제 뉘엿뉘엿 능선을 따라 흘렀고, 샛별이 졸음에 겨운 눈을 깜빡거렸다.

불침번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배를 타야하니 쉬어두어야 했다.

팬사이트를 보니 파도가 제법 높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야 배에 타고난 뒤에는 로그아웃 하면 그만이나, NPC들은 그 악천후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럼 내일 봅시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벽만 덩그러니 남은 건물을 중심으로 둥글게 흩어져 잤다.

벽면에는 거대한 털 뭉치 같은 게 기대어져 있었다. 위즈는 그것을 쓸어보았다.

그웡.

주인의 손길을 느낀 곰곰이 눈을 끔벅거렸다.

“그냥 만져본 거야. 자라.”

곰곰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오늘 아침 위즈와 계약을 맺을 때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는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상당히 안정되어있다.

사람을 꺼리는 곰곰의 성향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위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곰곰의 품에는 아이린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위즈가 지켜본 결과 어린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이 발휘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야생의 세계에서 수컷이라 해도 간혹 부성애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잘된 일이었다.

렌틸의 말을 들어보니 곰곰이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길 같지도 않은 암벽까지 타고 올랐다지?’

그러면서도 아이린을 놓지 않으려고, 나무덩굴을 뜯어 온몸에 친친 감았다고 한다.

‘사람이 곰 인형을 안고 자는 건 봤어도, 곰이 사람을 안고 자는 건 처음 보는군.’

왠지 귀여워 보이는 광경에 위즈는 미소 지었다.

“나도 이제 자야지.”

빙글뱅글을 따라 위즈도 로그아웃을 했다.


<더 오션에서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위즈의 모습이 은색의 빛 가루를 흘리며 흐려졌다.

잠시 후 곰곰의 몸뚱이가 투명하게 변했다.


작가의말

더워요. 더워요. 더워요.


[10,223 -> 10,424]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 작성자
    Lv.99 시러스
    작성일
    14.07.23 18:52
    No. 1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이름좀늘려
    작성일
    14.07.23 21:24
    No. 2

    그렇다면 아이린의 몸뚱이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8 폭렬천사
    작성일
    14.07.23 22:30
    No. 3

    공각기동대의 광학미채...
    풀메탈패닉의 ECS... 같은 느낌으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7.26 14:09
    No. 4

    위즈는 우드스톡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컬그래이를 믿고그라나본데...
    스컬그래이를> 스컬그래일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8 폭렬천사
    작성일
    14.07.27 11:15
    No. 5

    수정하였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이름좀늘려
    작성일
    14.07.26 17:24
    No. 6

    그곳에는 스컬그레일이 앉아있엇다. 그는 작은바위 위에 앉아 도끼날을 닦았다-
    그곳에는 스컬 그레일이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도끼날을 다듬고 있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8 폭렬천사
    작성일
    14.07.28 09:02
    No. 7

    ~앉아 있었다. ~도끼날을 다듬고(닦고) 있었다.
    .
    .
    .
    "~하고 있었다" 식의 표현은 가급적이면 연달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무리하게 "~했다" 로 끝나는 문장으로 만들어서 생긴 일 같습니다.
    이름좀늘려 님께서 지적하신대로 고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매끄럽게 만들어보려고 해보았습니다.

    Ctrl + F키로 검색창을 연 뒤, '작은바위' 를 키워드로 해서 해당 문장을 살피시면,
    수정된 게 보이실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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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4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8) +3 15.04.22 874 15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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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2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4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1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3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0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0 16 23쪽
»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7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3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8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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