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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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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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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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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2.

일반적으로 골렘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소환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펫 인벤토리에는 넣지 못하며, 어디까지나 소환주문으로 불러내야만 한다.

빙글뱅글은 소환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본인 입으로도 소환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럼 골렘의 코어만 가지고 만들었다는 건가?’

이 방법을 사용하면, 골렘의 육체를 구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주변으로부터 공급 받는다.

주변의 돌이나 바위를 이용하면 스톤 골렘.

늪지대에서 생성했다면 머드 골렘이.

나무가 울창한 곳에서 사용했다면, 우드 골렘이 생겨난다.

이 폐허에 널린 게 석재이니 당연히 스톤 골렘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만 위즈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네크로맨서가 어째서 스톤 골렘을?”

“날 알고 있나?”

빙글뱅글은 위즈가 아는 체 하자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어디서 마주쳤지?”

“당신도 제법 유명인사 아닌가? 빙글뱅글?”

이름까지 정확하게 집어내자 빙글뱅글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그렇다고 치지. 그보다 조금 전의 발언은 뭐지? 스톤 골렘을 불러낸 게 불만인가?”

“네크로맨서라면……뼈나 시체를 이용해 골렘을 만들지 않나?”

“뭐? 하하하핫!”

빙글뱅글이 온몸을 크게 떨어대며 크게 웃었다.

“뭐가 우습지?”

“크크크. 우습지 그럼 안 우습나? 대체 네크로맨서를 뭐로 보는 거냐. 무조건 시체하고만 논다고 생각하나. 이보라고, 네크로맨서는 소환사의 일종이다. 뭐가됐던 소환할 수 있단 말이다. 꼭 언데드만 고집하란 법은 없지. 그리고 골렘의 재료로 뼈는 사용할 수 있지만, 시체는 불가능 하다고.”

“시체는 안 된다고?”

“당연히 안 되지. 더 오션은 가상현실게임이다. 언데드에 익숙해지는 것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런데 시체로 만든 골렘이 걸어 다닌다고 생각해봐라. 그걸 보고 기절할 유저가 수두룩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무서운 여자로군. 그러니 겁도 없이 프로즌 스피어 앞에 들이닥쳐 공격한 거겠지만. 궁금증은 풀렸나? 나도 한 가지만 묻자.”

“말해.”

“넌 전사냐 마법사냐?”

앞서 빙글뱅글은 코앞에서 위즈가 터뜨린 라이팅 주문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라이팅 주문으로 시각을 통제하는 건 마법사의 특기이다. 하지만 뒤이은 공격은 거도(巨刀)를 휘둘러 댄 것이었다. 마법이 아닌 물리 공격.

물론 마법사라고 물리 공격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위력이 형편없으니 문제지.

허나 위즈의 공격은 묵직했다. 배리어를 순식간에 깎아버릴 정도의 강공.

이러니 마법사인지 전사인지 헷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즈는 빙글뱅글을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순순히 알려줄 것 같아?”

“……하긴, 서로 상극인 직업의 스킬을 전부 사용할 수 있으니……쉽게 그 비밀을 알려줄 리 없겠지. 나도 기대는 안했다. 이제 슬슬 놀아볼까? 충분히 쉬었겠지?”

스톤 골렘이 들어 올린 양팔을 맞부딪쳤다.

꽝! 충격파가 발생했다.

바닥에 자잘한 돌이 움직이고, 잡초가 몸을 뉘었다.

이것은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위즈는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있었다.

마력을 보는 눈을 사용 중이었기에, 골렘을 감싼 마력이 똑똑히 보였다.

조금 전 골렘이 양팔을 맞부딪칠 때, 한 덩어리의 마력이 떨어져 나왔다. 그것은 위즈와 골렘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다. 주인에게서 떨어진 마력은 주문으로 사용되는 게 아닌 이상, EMP에 녹아들어 사라지고 만다.

더운 여름날에 물을 뿌리면, 증발되어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헌데 골렘에게서 떨어져 나온 마력은 단일 개체로서 유지되고 있었다.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정령강화-바람을 신발에 걸고 이동했다. 바닥에 떨어진 마력을 피해서 움직인 것은 물론이다. 수상한 것일수록 조심하는 게 좋았다.

그 모습을 본 빙글뱅글이 스톤 골렘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키투스!”

그것이 스킬인지, 아니면 스톤 골렘의 이름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스톤 골렘이 빙글뱅글의 말에 반응했다는 점이다.

쿵쿵쿵쿵!

스톤 골렘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위즈가 바라보는 세상이 위 아래로 울렁거렸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거꾸로 세워 바닥에 찍었다.


<적의를 삼키는 탐욕의 대지가 발동되었습니다.>

<5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땅이 요동치면서 침강과 융기를 반복했다. 지금의 흔들림에 비하면, 스톤 골렘의 발걸음 때문에 흔들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래 이 주변은 폐허에서도 편평한 편에 속한 땅이었지만, 조금 전 빙글뱅글을 상대한 뒤로는 땅이 갈라지며 들쑥날쑥한 지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스톤 골렘을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같은 스킬이 사용되자,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한 번 깨졌던 땅은 더욱 조밀하게 갈라졌다. 균열이 없이 멀쩡해 보이는 땅도 푸석푸석하게 변한지 오래다.

스톤 골렘의 돌격은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푸석푸석한 땅에 발이 파묻혀 움직임이 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톤 골렘은 빙글뱅글의 명령대로 위즈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스톤 골렘이 허벅지까지 빠진 다리를 억지로 놀리자, 흡사 쟁기질을 해놓은 곳처럼 길게 고랑이 생겨났다.

위즈는 땅에 박아 넣었던 학살자의 망령을 꺼냈다. 그리고 섀도 런으로 접근한 뒤, 먼저 평타를 먹였다. 스태미나 100이 빠져나가면서, 스톤 골렘의 몸이 휘청거렸다.

다리가 흙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스톤 골렘은 위즈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위즈는 재차 평타를 먹였다. 휘청거릴 때 평타를 계속 먹이면, 스톤골렘을 넘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서이다.

오랜 시간 단단하게 다져진 땅은, 학살자의 망령의 힘으로 부서져 있다.

스톤 골렘이 넘어지면, 그 무게 때문에 흙속에 파묻힐 것은 분명한 사실.

그리고 넘어진 적이야말로 차려진 밥상 아니던가.

헌데 차려진 밥상을 만들어야 할, 두 번째 공격이 의외의 곳에서 가로막혀버렸다.

그냥 단순하게 골렘의 팔과 부딪친 것이다.

휘두르는 도중이라 충분히 힘이 실리지 않은 상태에서, 학살자의 망령이 골렘의 팔을 때렸다. 당연히 스톤 골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걸 막았다고?”

위즈는 의아해 했다.

스톤 골렘은 균형을 잡기 위해 두 팔을 허우적대고 있다.

그럼 공격을 막은 팔은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란 말인가.

순간 위즈의 머리위로 그림자가 졌다. 피할 틈조차 없었기에, 위즈는 배리어부터 펼쳤다.

바위로 이루어진 묵직한 주먹이 위즈를 횡으로 후려갈겼다. 타격이 가해짐과 동시에 배리어가 일그러지며, 바위주먹이 위즈의 몸에 닿을락 말락했다. 그때는 이미 배리어가 버텨주는 틈을 타, 위즈의 몸이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위즈는, 스톤 골램의 상체에 달린 네 개의 돌기를 발견했다.

“팔이 4개?”

위즈가 놀라는 것을 본 빙글뱅글이 선선히 답해주었다.

“그렇지. 4개다. 물론. 더 많은 팔을 뽑아낼 수도 있지.”

빙글뱅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톤 골렘의 어깨에서 두 개의 팔이 더 돋아났다.

“그러면 균형이 안 맞을 텐데?”

이미 상체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반면 하체는 빈약했다. 이렇게 되면 상체의 무게에 하체가 깔려 붕괴되어버린다.

“걱정할 필요 없어. 왜냐하면…….”

발밑에서부터 떨림이 일어났다. 땅속이었다.

위즈는 몸을 날리며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 위즈가 서 있던 자리에 바위들이 연결된 굵직한 기둥 같은 게 솟아났다. 그것은 바위와 바위사이가 관절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저 계집을 뭉개버려라!”

빙글뱅글이 명령하자 땅속을 뚫고나온 바위의 군집체가 꼬리라도 되는 듯, 크게 휘어지며 위즈에게 날아들었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세워서 막는 것과 동시에 몸을 띄웠다. 부딪친 충격까지 더해져 위즈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위즈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착지장소를 골랐다. 하지만 착지 장소에는 조금 전 위즈를 날려버린 것이 땅을 뚫고 튀어나와있었다. 위즈는 충격에 대비해 몸을 웅크리며, 다시 학살자의 망령을 내밀었다

휘익, 뻑!

“크웩!”

내장이 흔들리는 감각에 위즈는 눈을 부릅떴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묵직한 타격감이 몸속 깊은 곳까지 울리는 느낌이다.


<5초간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빌어먹을!”

스톤 골렘을 상대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스턴과 같은 상태 이상이다.

그래서 신중하게 상대하려고 별짓을 다 했는데, 이놈의 골렘이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반격당하고 말았다. 위즈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낙하 데미지가 500넘게 들어왔다. 빈사상태에 빠지지 않은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위즈는 근성 스탯을 믿고 전신에 힘을 주었다. 희미하게 꿈틀거리며 팔이 움직였다.

그동안 스톤 골렘은 진면목을 드러냈다.

땅 속에 파묻힌 부분이 솟아오르며, 스톤 골렘의 상체를 밀어 올렸다. 그러고도 남은 부분은 땅을 헤치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위즈는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 다리라고 생각한 것은, 또 다른 팔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다리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란 몸통만이 있을 뿐이다.

“상반신은 인간형…하반신은 뱀의 모습인가?”

“골렘은 하반신이 튼튼하지 않으면 자멸하기 쉬우니까. 그래서 하반신의 면적을 늘렸지. 반드시 다리의 형태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

“덕분에 상체역시 보강할 수 있게 되었다.”

“보강?”

“직접 보면 이해가 쉽겠지.”

스톤 골렘의 상체에서 무수히 많은 팔이 튀어나왔다. 수십 개나 되는 팔이 등짝에서 솟아나 원을 그리며 쫙 펼쳐졌다.

흡사 절에서 볼 수 있는 천수관음의 모습 같다.

“이 팔들은 장식이 아니라고. 전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빙글뱅글의 말마따나 스톤 골렘의 팔들이 서로 다른 동작을 취했다.

근처의 바위를 집어든 것이 있는가 하면, 쓰러져 있는 위즈에게 주먹을 날리는 팔도 있었다.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해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위즈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주먹들이 내리꽂히며 흙더미가 솟았다. 위즈는 흙더미가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위즈는 일단 포션으로 체력부터 회복시켰다.

‘이 녀석도 혼돈의 짐승만큼이나 포션깨나 쓰게 생겼네.’

하지만 남은 포션이 얼마 없다. 이래서야 몸을 사릴 수도 없다.

‘속전속결.’

위즈는 스톤 골렘을 피해 폐허 깊숙이 몸을 날렸다. 스톤 골렘이 손에 들고 있던 바위를 던져댔다.

반쯤 무너지고 기운 건물들은, 골렘이 던진 바위를 맞고 완전히 박살이 났다. 위즈는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폐허를 누볐다.

건물의 잔해를 무사히 피했다 싶으면, 머리위로 바위가 날아들지.

땅은 흔들리지. 흙먼지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리지. 난리도 아니었다.

위즈는 그랄누타이 제독의 함선에서 쏘아대던 투석 공격을 떠올렸다.

골렘으로 바위를 장전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투석기는 너무도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위즈에게 날아드는 바위들은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저 위즈가 있을만한 장소에 마구 던져댈 뿐.

“정신없어 죽겠네.”

위즈는 폐허를 헤집으며 공터 쪽으로 튀어나왔다. 빙글뱅글이 서 있는 곳의 측면이다.

스톤 골렘이 위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소환자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면 대응할 방법은 하나다. 소환자인 빙글뱅글 가까이 붙는 것.

그러면 스톤 골렘은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자신까지 공격받을 걸 알면서, 빙글뱅글이 터프하게 나올 리 없다.

‘그 대신 네크로맨서인 빙글뱅글과 너무 가까이 붙게 된다. 가까운 만큼 주문을 피하기가 힘들어지겠지.’

이미 빙글뱅글은 자신을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프로즌 스피어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무신장으로 프로즌 스피어를 부술 때와 같은 요행을 바랄 순 없었다. 캐스팅이 끝난 주문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더 이상 스킬을 아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도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단검을 꺼내어 쥐었다. 그리고 달려가는 직선상의 경로 위에 화염병을 연달아 던졌다. 병이 깨지며 불길이 솟구쳤다. 위즈는 화염돌격을 발동시키며,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춤을 추듯 경쾌하게 스탭을 밟을 때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염의 발자국 5개를 밟았습니다.>

<화염돌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효과가 중첩됩니다.>


“프로즌 스피어!”

빙글뱅글이 주문을 날렸다. 위즈는 주문을 맞받는 것보다 흘려내는 방법을 택했다.

진각을 밟으며 허리를 젖히자, 발끝이 가볍게 들리며 작은 궤적이 그려졌다.

“코로나!”

평소 사용하던 것과 달리 낮게 날아간 붉은 화염은, 빙글뱅글이 쳐놓은 배리어의 하단을 때리고 소멸했다. 그와 동시에 위즈의 머리위로 스쳐지나간 프로즌 스피어가 터져나가며 무수히 많은 얼음조각을 뿌렸다. 코앞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위즈는 땅에 등이 닿자마자 섀도 런을 사용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동안 빙글뱅글은 인상을 쓰며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한차례 공격을 막아냈으니 반격할 모양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닌 게, 매직스틱에 흐르는 마력양이 너무 부족하다. 기껏해야 라이팅이나 한 번 쓸까말까 할 정도.

다시 그림자 밖으로 빠져나온 위즈의 눈에 띈 빙글뱅글의 모습은 충분히 이상해 보였다.

전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나 임무완수가 아니다. 자신의 생존이다.

그러자면 적의 의도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의 눈이 어딜 보고 있는지, 무심코 땀을 바지에 닦는 행동, 안절부절 못하며 무기를 점검하는 움직임 등등.

빙글뱅글은 그저 딱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을 뿐이다.

위즈는 그 행동에서 전의가 아닌, 당혹스러움을 읽었다.

‘어째서?’

세상은 여러 가지 요소가 뒤얽혀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원리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사물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위즈는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나왔다. 공격을 위해서가 아니다. 당연히 방어도 아니다.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위즈는 빙글뱅글이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위즈의 시선을 받은 빙글뱅글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발밑에서 달각 소리가 울렸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갈 조각이라도 밟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를 날렸을 때도, 뭔가 둔탁한 소리가 울렸어.’

코로나는 배리어를 때리고 소멸했다. 그런데 분명 퍽 소리가 났었다.

그리고 지금 빙글뱅글의 발밑에서 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전혀 다른 두 소리가, 같은 대상 때문에 나는 것이라면?

위즈는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빙글뱅글의 발치에서 뭔가가 움직인 것도 같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물체가, 갑자기 나타나 배리어 앞을 가로막은 거야.’

위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나온 빙글뱅글은 자신의 마력을 집중했다.

집중된 마력은 매직스틱이 아니라, 발밑을 향하고 있었다.

위즈는 스톤 골렘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양 손을 맞부딪친 스톤 골렘으로부터 마력의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싸우던 도중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위즈는 빙글뱅글이 지금 마력을 발밑으로 보내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설마 골렘을 두 마리 불러냈던 것인가?”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 말이었다. 그 말은 의외로 정확한 것이었다.

빙글뱅글이 발을 치우며 자신이 밟고 있던 것을 드러냈다.

“눈치 빠르군.”

그가 밟고 있던 것은 크기가 사람 정강이 높이밖에 안 오는 작은 돌무더기였다. 그것이 꼬물대지 않았다면 전혀 골렘인 줄 몰랐을 것이다.

누가 봐도 전혀 전투용으로 생각할리 없는 크기다.

하지만 위즈는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날린 코로나는, 빙글뱅글의 배리어에 맞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소형 골렘이 공격을 막은 건가?”

“주인을 끔찍이 위하는 녀석이니까.”

아무리 작아도 골렘은 골렘. 코로나를 맞고도 크게 부서진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럼 어째서 몰래 마력을 불어 넣고 있었던 거지?’

빙글뱅글은 저 작은 골렘에게 마력을 공급했다.

별도로 마력을 불어넣어줘야 할 만큼 운용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만큼 대단한 일을 한 골렘은, 조금 전 수십 개의 손으로 위즈를 공격하는 녀석밖에 없다.

여기서 위즈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 해도, 평범한 골렘을 변형 시켜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지. 외형의 변화는 작은 골렘과 합체했을 때 생기는 거겠지?”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대단하군.”

빙글뱅글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톤 골렘에 달린 수많은 팔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골렘이 가진 원래의 팔다리 뿐.

“그나저나……코로나라니.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르는군. 내 기억에도 없는 여자가 날 알아보고, 코로나까지 쓴다라……내 생각에 넌 W일 것 같군.”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기다리다 지치는 줄 알았잖아.”

빙글뱅글의 입술이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하루도 네 놈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런…상사병이라니. 안타깝지만 동성 간의 사랑에 눈뜨기엔, 내 성적 취향은 노멀하단 말이지.”

“지금은 여자의 모습이니 어울려줘도 될 것 같은데?”

“포기하지 마. 넌 충분히 남자다우니까 아직 여자를 사귈 수 있다고.”

위즈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빙글뱅글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핫하! 예전에 나와 대련했을 때 진 녀석이, 이리도 뻔뻔하게 나오다니. 그동안 레벨은 안올리고 간만 키웠나보구나!”

빙글뱅글이 방패를 끌러 쾅 소리가 나게 바닥에 박았다. 방패 속에서 끄집어낸 책은 마력을 받아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손에 들린 매직스틱은 하늘 높이 곧추세워졌다.

방패와 책과 매직스틱의 세 가지 장비를 꺼내든, 빙글뱅글만의 완벽한 전투태세다.

예전에도 한 번 본적이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위즈는 빙글뱅글이 진심으로 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혼돈의 짐승 때문에 성기사들이 신성왕국 남부로 몰려오고 있을 거야. 그런데도 진짜로 할 생각이야?”

“이미 이단 심문관이랑 한번 싸우고 온 길이다. 한번을 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 할쏘냐!”

그 말을 들은 위즈는 순수한 의미에서 감탄했다.

“쥐가 고양이와 싸워 살아남았다는 건가?”

“그 쥐에게 파 먹힐 지렁이 주제에 말이 많구나.”

책장이 파락파라락 넘겨지면서, 빙글뱅글의 근처에 악령들이 나타났다.

사람에게 빙의되어 마음대로 조종하는 골치 아픈 녀석들.

마음속의 성전이 있는 위즈에겐 악령의 존재란, 날파리 정도의 귀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것도 모르고 빙글뱅글은 끝없이 악령들을 불러냈다.

위즈는 라이팅을 만들어 머리에 머무른 휘광의 빛을 숨기며 중얼거렸다.

“엔틸리움에서 탈리스만을 하나 샀는데, 악령 따위가 통할까?”

사실은 그런 건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을 것이니 위즈는 뻥부터 쳤다.

위즈의 말을 들은 빙글뱅글이 책장을 넘겼다.

“그렇다면 악령을 업그레이드 시키면 되지.”

빙글뱅글은 인벤토리에서 수정조각을 꺼냈다. 왠지 낯익다.

‘핏 스톤이 삼킨 혼돈의 조각과 닮았어.’

흘러나오는 마력 역시 어둡고 음울한 느낌을 뿌리고 있다. 다만 색이 다를 뿐이다.

핏 스톤이 먹은 것이 어둠과 보라색이 섞인 느낌이라면, 빙글뱅글이 지금 꺼내든 것은 암적색에 가까웠다. 굳이 같은 색깔을 찾는다면, 피를 닦아낸 천에 남겨진 갈색 얼룩과 같달까.

“그것도 혼돈의 조각인가?”

“혼돈이 아니지. 이건 갈망의 조각이다.”

“갈망?”

“게임 속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마족들은 대부분, 혼돈의 권속이다. 우리들 식으로 말하면 혼돈의 파벌인 것이지. 이건 그것과 전혀 다른 갈망의 파벌의 힘이다. 혼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지. 똑똑히 보아라.”

빙글뱅글이 허리를 숙여 작은 골렘에게 갈망의 조각을 박아 넣었다. 소형 골렘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몸뚱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

무너져 내린 자갈무더기는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당황한 빙글뱅글은 자갈무더기를 뒤적여 주먹만 한 덩어리를 꺼냈다. 잘 닦여진 수정구에 울퉁불퉁 금색의 막대기들이 튀어나와 있어서, 언뜻 보면 광산에서 막 캐낸 광석처럼 보인다. 빙글뱅글은 그것을 손에 올리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마력은 깃들지 못하고 흩어져버렸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빙글뱅글은 주머니 속에서 시험관을 꺼내 내용물을 뿌렸다. 그리고 다시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번엔 마력이 잠시 머무는 듯싶었다. 하지만 마력의 공급을 끊자 마찬가지로 흩어져버렸다.

“골렘의 코어인 모양인데, 완전히 죽어버린 모양이군.”

빙글뱅글은 코어를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쳇. 매개체로 쓸까 했더니 버티질 못하는군.”

그때 빙글뱅글의 주위를 떠돌던 악령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대는 것과 같은 난잡한 소음도 뚝 그쳤다.

악령들의 얼굴 부분에 구멍모양으로 드리워진 음영에는 붉은 점이 떠올랐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것은 마치 눈동자와도 같았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빙글뱅글이 버린 소형 골렘의 코어였다.

몸! 몸이다아아아!

나에게 육체를!

악령들이 악다구니를 쏟아 부으며 소형 골렘의 코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코어의 색깔이 녹슨 철과 같은 색으로 변했다.

빙글뱅글이 크게 웃었다.

“그럼 그렇지!”

빙글뱅글은 소형 골렘의 코어를 집어 들었다.

골렘과 악령.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의 조합이 무얼 만들어낼지 위즈는 알 지 못했다.

다만 의기양양해하는 빙글뱅글의 태도로 미뤄 보건데, 처치하느라 진땀을 뺐던 혼돈의 짐승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가 나타날 것만 같아 걱정이었다.


작가의말

내일 오탈자 수정 및 보충하겠습니다.


[8,065자 -> 10,160]



2014.11.08 수정

[10,160 => 1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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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49화...5-(ED) +5 15.05.24 977 23 52쪽
151 14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9) +2 15.05.03 1,228 16 44쪽
150 14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8) +3 15.04.22 874 15 34쪽
149 14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7) +3 15.04.05 894 14 29쪽
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2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4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1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4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0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0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7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3 24 22쪽
»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3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5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6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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