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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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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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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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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37.

늑대머리 거인, 아니 혼돈의 짐승은 죽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위즈가 사용한 코로나는, 익스플로전 튜브의 폭발을 받아들여 사용한 것.

고농도로 응축된 압력과 화염이 탄환이 되어, 혼돈의 짐승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턱을 뚫고 빠져나온 화염의 탄환은, 혼돈의 짐승의 심장을 태운 뒤 등을 뚫고 빠져나왔다.

정수리 쪽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몸뚱이에서는 굉장한 냄새가 났다.

불판위에 고기를 올리고 방치했을 때에나 맡을 수 있는 냄새.

일명 태운 고기냄새가 났다. 가슴팍이 너무 익어서 갈색으로 변했고, 심장이 들어있는 부분은 숯처럼 부스러졌다.

사실상 이건 시체다. 이미 사망했다는 메시지까지 떠올랐다.

그런데 경험치는 안주고, 1분 뒤 다시 살아난다고 하니 위즈는 질려버렸다.

“어째서야?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살아나는 거냐고!”

『진정해라 위즈.』

“내가 진정 안하게 생겼어? 원래 이 퀘스트는 아이린이란 여자아이에게 치료제만 건네주는 거였다고. 그런데 몇 번이나 싸워야 하는 거야? 암살자는 그렇다고 쳐. 마족이랑 마물은 왜 튀어나오는데? 나 아직 초보라고. 한 술 더 떠서 이 녀석은 마왕의 심복 같은 놈이잖아!”

짜증날 만도 하다. 아직 싸우기에 버거운 적들이 연달아 나타나니, 위즈는 당연히 스트레스 받았다. 그동안 신성왕국에서 핏 스톤이 도와주지 않았기에 더욱 힘들었다. 그걸 알기에 핏 스톤은 위즈를 살살 달랬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봐야 이 녀석은 라이칸스로프. 혼돈의 조각만 찾으면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걸 무슨 수로 찾아!”

『그대에게 마력을 보는 눈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건가?』

“아……그랬지?”


<‘마력을 보는 눈’이 시전 되었습니다. 2초당 1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위즈의 눈동자가 검푸른 색으로 물들었다.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혼탁한 보라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혼돈의 짐승에 올라탄 상태이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 주변은 혼돈의 마력이 짙은 농도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혼돈의 짐승이 죽었기 때문이다.

“전부 어두운 보라색이야. 아무래도 숲속에서 나무 찾긴데 이거?”

위즈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핏 스톤이 조언해주었다.

『하얗게 빛나는 것이 있는지 확인해봐라.』

“하얗게 빛나? 검은 색이 아니고?”

『마스터가 그러셨지. 마력이 고농도로 뭉쳐진 상태에서는 언제나 하얗게 빛난다고.』

“아…….”

힌트를 얻은 위즈는 밝게 빛나는 것의 존재를 찾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즈의 시선이 한 곳을 바라보았다. 핏스톤의 말대로 그런 게 있었다. 하얀빛이 혼돈의 짐승 가슴팍에서 빛나고 있었다.

“심장 쪽?”

원래는 머리에 박혀 있던 것이지만, 위즈가 정확히 정수리를 노려 꽃은 코로나에 밀려 심장에 박힌 것이었다.

『심장이라? 여기부터는 내가 처리하겠다.』

“먹을 거야?”

『설마 불만인가? 레미라 섬에서 골렘을 움직일 때를 생각해봐라. 그동안 퍼준 마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먹어야지.』

애초에 에켈 요새의 지하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핏 스톤이 요구한 것이,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었다. 핏 스톤에게는 단순한 의식주의 문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아니 딱히 먹는 것 가지고 뭐라 그러는 건 아니고. 그 혼돈의 조각이란 게 마왕의 힘이 담긴 거라고 하니까. 혹시라도 해롭진 않을까 해서.”

혹시라도 핏 스톤이 혼돈의 짐승처럼 되진 않을까 위즈는 걱정이었다. 그게 보편적인 전개이니까. 하지만 핏 스톤의 태도는 느긋했다.

『꼭 마왕의 마력이라 해서 못 먹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별미라고 해야 하지. 인간은 달콤한 음식도 먹고, 짠 음식도 먹고, 쓴 음식도 먹는다. 마력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마력이나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나지. 이건 톡 쏘는 맛이 있는데다가 농도가 짙다. 오랫동안 두고두고 씹어 먹을 수 있겠군. 잘하면 육체를 보강할 수도 있겠어.』

“그런가? 그럼 이만 내려간다. 식사 잘하고.”

축 늘어진 혼돈의 짐승의 정수리에서 내려오며, 위즈는 구멍 난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혼돈의 짐승의 가슴팍에 달라붙은 핏 스톤이, 손가락만한 조각을 조심스레 혀로 감아 잡아당기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수정조각은 억지로 뽑아내려는 힘에 저항하려는 듯, 마력의 파동을 뿜어댔다. 그 모습은 심장이 맥동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혼돈의 조각.

마계의 지배자, 마왕의 마력이 실체화된 결정.

『진짜 애먹이는군.』

핏 스톤의 힘으로도 잘 안 뽑혀지는 모양이다.

위즈는 단검을 꺼내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칼날을 따라 흐르는 마력이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날을 만들어냈다.

엔틸리움의 축제에서 ‘풀몬티 제이비어’라는 석수에게 배운 공상선긋기다.

제이비어는 원래 이걸 맨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궁극의 경지.

하지만 정교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한 이유로, 실전에서는 이렇게 무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제이비어조차도 정을 손에 쥐지 않고는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위즈는 그나마도 쉽지 않았다.

마력을 보는 눈의 힘을 빌린 위즈는, 다른 사람들보다 마력을 컨트롤 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축제 때에는 제이비어처럼 정을 가지고 공상선긋기를 사용해 조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 만든 공상선긋기의 칼날은 새끼손톱만큼 짧았다.

이래서는 전투에서 사용하긴 힘들다. 그래서 위즈는 실제 무기를 들고 공상선긋기를 사용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칼날은 예리하면서도 길게 뻗어나갔다.

‘그렇지만 이건 꼼수에 불과해.’

지금 위즈가 하는 마력 컨트롤은 정교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힘껏 칼날에 마력을 들이붓고 있을 뿐이다. 그 증거로, 초당 마력의 소모가 15다. 조각을 할 때의 3배인 것이다.

‘개선이 필요해.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순 없어.’

위즈는 길게 뻗은 마력의 칼날을 휘둘렀다.

혼돈의 수정이 박힌 가슴팍의 구멍은 벌써, 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곳에 마력이 칼날이 지나가면서, 숯가루가 퍽퍽 날렸다. 그리고 핏 스톤이 당기는 힘에 딸려, 혼돈의 조각이 박힌 살점이 통째로 끌려나왔다. 당연히 핏 스톤은 고깃덩어리 째로 삼켜버렸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핏 스톤이 입을 열었다.

『협조에 감사한다.』

그리고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혼돈의 짐승’이 부활하는 것을 저지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경험치가 차등 분배됩니다.>

<유저 ‘위즈’ 님이 얻을 경험치는 10,000입니다.>


깔끔하게 경험치가 1만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더군다나 기여도대로 경험치가 분배된다면 ‘9,320’ 이런 식으로 들쭉날쭉하게 나와야 정상. 그렇다면 실제 위즈가 얻어야 할 경험치는 1만보다 훨씬 높다는 뜻이다.

“끙…경험치 상한선에 걸리는구나.”

더 오션에서는 지나치게 강한 적과의 전투를 장려하지 않는다.

저레벨들이 고레벨과 파티를 맺고서 쩔을 받아 크는 걸 방지하게 위해서다.

노력 없는 성장은 무의미하다는 게 큰 이유다.

이렇게 되면 유저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억제하여, 게임 속 컨텐츠의 폭발적인 소모를 막을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즐기는 것. 그런 사람들에게 쉽고 빠른 성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 속 활동에 세금까지 내는 게 요즘세태.

사냥으로 획득한 아이템의 거래에 세금을 물고, 게임 속 부동산의 가치가 마구 뛰는 이때.

쩔을 받아 캐틱터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와 다름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 속에 인플레이션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은 분명히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가?

라이트 유저들의 반발은 당연히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성장에 필요한 경험치를 얻을 때는, 레벨별 상한선이 적용되었으며, 쩔의 효율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짜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얻은 경험치를 보니 위즈는 입맛이 썼다.

전투하면서 사용한 포션이 50병 가까이 된다. 시간도 엄청나게 걸렸다. 무엇보다 위즈가 지불한 리스크가 너무 컸다. 한 대라도 제대로 맞으면 죽는 상대 아닌가.

만약 위즈가 2차 전직까지 마친 유저였다면, 십만에 가까운 경험치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위즈는 무능력자. 절대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니까.

“뭐, 스킬 숙련도가 확 올라갔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어쩌겠어.”

혼돈의 짐승은 위즈의 레벨대에서 상대하기엔 난이도가 높은 적.

이런 적과 맞서 싸운 보상이 고작 경험치만 있는 건 아니다.

더 오션에서는 단지 레벨과 스탯만이 강함의 척도가 아니다.

스킬의 숙련도와 레벨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오로지 해당 스킬을 사용해야만 향상된다. 하지만 무턱대고 기계적으로 사용하면, 숙련도가 거의 상승하지 않는다. 해당스킬을 사용하여, 유효한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섀도 런을 사용하는 경우, 적의 공격을 5연속 회피하면 숙련도가 0.01이 오른다. 하지만 섀도 런과 연계하여 공격을 성공시키면, 0.02의 숙련도가 오른다. 그리고 시너지 스킬로 재미를 보면, 그냥 0.01의 숙련도가 오른다.

물론 해당스킬의 레벨이 높아지면, 이정도로 숙련도가 오르지 않는다. 보다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스킬을 마스터하기가 힘든 것이다.

위즈는 오늘 스킬 마스터라는 목표에 가까워졌다.

왜냐하면 수준 높은 적을 상대로 장시간 전투를 벌이고, 무사히 살아남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적과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런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여러 스킬들의 숙련도가 껑충 뛰어올랐다.

‘경험치나 득템의 문제는, 이런저런 문제로 상한선이 있다. 하지만 전투 내용까지는 부정할 수 없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가진 스킬은 제한되어 있다. 그 제한된 스킬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에, 살아남았으며 승리에 기여한 것이다.

이 경우 오르는 스킬 숙련도는 정해져 있지 않다.

유저가 얼마나 힘들게 싸웠으며, 적재적소에 스킬을 사용했느냐가 관건.

그 결과 섀도 런 스킬은 무려 레벨 5를 달성했다.

공상선 긋기도 레벨 2가 되었으며, 화염돌격 스킬과 정령강화는 무려 레벨 8이 되었다.

스탯도 성장했다. 근성이 +10되었으며, 행운이 +3, 집중력은 +20이 되었다.

장시간 질주상태를 유지하여, 랜덤으로 획득한 스탯도 있다. 힘에 +1, 민첩에 +2.

적다면 적은 스탯들이지만, 잇페인에게 스탯을 갈취당하기 전의 상태에 가까워진 건 분명하다.

상태창의 확인이 끝난 위즈는 비로소 주변을 정리할 기분이 들었다.

멀리 피해 있던 빌헬름텔이 손짓하고 있다. 마법사들은 제자리를 지켰고, 루시엔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위즈와 함께 움직이던 사냥꾼도 혼돈의 짐승의 정수리로 지금 막 뛰어내리는 중이다.

사냥꾼의 경우는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핏 스톤을 보고도 그냥 바위덩어리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하지만 루시엔은 beadsman, 성직자다. 핏 스톤의 존재에 의문을 품을 게 뻔하다. 게다가 혼돈의 조각까지 핏 스톤의 입속에 있으니, 아직 혼돈의 짐승을 해치우지 못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녀석도 해치웠으니, 펫 인벤토리에 넣을게.”

『아직 신성왕국의 영역이니 그래야겠지.』

위즈가 펫 인벤토리를 열자 시커먼 아공간이 나타났다. 핏 스톤이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위즈는 펫 인벤토리를 닫았다. 그러자 혼돈의 조각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단절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주변을 에워싼 보라색이 점차 옅어졌다.

“의심은 피할 수 있겠군.”

위즈는 문득 왠지 혼돈의 짐승의 덩치가 조금 줄어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체이니 커지든 작아지든 상관은 없지만, 위즈와 함께 온 사냥꾼은 이 변화에 열광했다.

“오오!”

사냥꾼이 혼돈의 짐승의 머리통에 줄을 매달았다. 이제 혼돈의 짐승은 절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무너져 내린 석회암 지대에 주저앉아 있던 혼돈의 짐승은, 이제 다리를 대롱거리며 절벽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만큼 작아버린 것이다.

위즈는 그전에 지상으로 올라와버렸다.

“이런 게 쓸모가 있는 겁니까?”

“있고말고. 이걸로 옷을 해 입으면 얼마나 튼튼하겠나?”

“이젠 평범한 라이칸스로프인데요?”

“그래도 상관없어. 라이칸스로프의 가죽은 곰 가죽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튼튼하지. 자네도 만들어줄까?”

“아뇨. 전 됐습니다. 앞서간 일행과 함께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런가? 아쉽구먼.”

사냥꾼이 손을 내밀었다. 위즈는 그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내 살아생전 이런 모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구먼. 함께해서 영광이었네.”

“목숨을 걸고 도와주신 용기, 기억하겠습니다.”

위즈와 인사를 나눈 사냥꾼은 루시엔에게 찾아서 작별인사를 했다.

“겨울에 이곳을 찾아주시면, 맛있는 사슴고기를 대접하겠습니다.”

“위험한 일에 끼어들게 해서 죄송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산골 촌놈에게 무용담이 생겼는데 오히려 잘되었습죠. 아이쿠야. 바쁘실 텐데 이렇게 붙잡으면 안 돼지.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윽고 평범한 라이칸스로프의 크기로 줄어든 혼돈의 짐승은, 사냥꾼의 손에 질질 끌려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위즈는 호숫가로 걸었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물론 빌헬름텔까지 모두 모여 있다.

“어떻게든 잘 해결되었군요. 암살자들은?”

“어느 샌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라이칸스로프들은 전부 소모시켜버렸고요.”

“탐지결과인 겁니까?”

위즈는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마법사들의 주변으로 마력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빌헬름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더군요.”

“사실상 암살자들을 전부 처리했다……고 봐야 될 것 같군요.”

“암살자들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잖습니까?”

“아뇨. 암살자들은 더 이상 적수가 못됩니다. 그렇지요? 마법사 여러분들?”

위즈의 눈길을 받은 레미라 마법사들이 씩 웃었다. 위즈는 그들이 꺼내든 매직스틱에 눈길을 주었다. 아직도 마력을 보는 눈이 작용중이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흐름이 훤히 보였다. 모두의 마력이 한데 엉켜서 지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위즈는 금이 가 푸석거리는 지면을 탁 소리 나게 밟았다.

“조금 전 익스플로전 튜브가 폭발할 때, 이곳이 붕괴되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니겠지요?”

“바로 알아맞혔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요?”

“그거야 해안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위즈와 마법사들의 대화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빌헬름텔이나 루시엔으로선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루시엔의 질문에 위즈가 설명해주었다.

“신성왕국에서는 마법을 쓰기 힘듭니다. EMP가 불안정해서 마력을 컨트롤하는 게 몇 배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알고 계시죠?”

“당연하죠! 그래서 마법사 유저들은 혼자서 신성왕국을 밟지 않아요.”

성직자인 루시엔도 아는 내용이다. 위즈는 밟고 있는 땅에서 돌조각을 주워들었다. 땅속에 박혀 있던 모양인지, 물기 어린 흙이 묻어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덩어리는 진즉에 붕괴되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일이 아니지요.”

루시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즈의 말은 마법사들이 마력을 쏟아 부어 이곳을 지탱하고 잇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중급마법사라면 초급주문 정도는 쓸 수 있다지만, 그냥 순수한 마력만으로 무얼 하는 건 불가능 할 텐데?”

마력과 디바인 파워는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힘. 단순한 소모치인 체력과 스태미나와 달리 컨트롤 역시 중요하다. 그런 힘을 다루는 성직자답게, 루시엔은 마력만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고 있었다.

위즈 역시 루시엔의 생각에 긍정했다.

“불가능 해야죠. 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신성왕국의 남부입니다. 그것도 해안가. 신성왕국의 변두리 지역이지요.”

“그게 어떻다는 거죠? 변두리여도 이곳 역시 신성왕국이잖아요.”

위즈는 수인을 맺어 라이팅 주문을 성공시켰다.

“이건 초급 주문입니다.”

“그렇네요.”

“그리고 제 마법 실력은 초급도 못 됩니다. 그런 사람이 EMP가 뒤엉킨 지역에서, 라이팅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즉, 이런 겁니다. 이곳은 원래 신성왕국의 땅이 아니었다.”

“신성왕국이 영토 확장을 했다는 건가요? 전쟁을 해서?”

“아뇨. 전쟁은 아닐 겁니다. 제 짐작대로라면, 이곳은 300년 전만 해도 다른 나라의 땅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항마전쟁의 과정에서, 그 다른 나라가 바다 속에 가라앉아버리면서 자투리땅이 남은 겁니다. 자연스레 이 땅은 신성왕국에 복속되었겠죠.”

위즈가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레미라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맞소. 이 땅은 원래 카탄 왕국의 것이었지.”

곰곰 생각하던 루시엔이 손뼉을 쳤다.

“가만! 그렇다면 여긴 EMP의 흐름이 꼬이는 지역이 아니로군요! 즉, 마법사들이 자유롭게 마법을 쓸 수 있는 지역!”

이렇게 되자 다들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마법사들과 함께 움직인 빌헬름텔의 시선이 뜨거웠다.

어째서?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은은, 극도로 주문을 억제하여 사용했다.

중급마법사라면 단순한 발사체 주문도 한사람이 수십 개 가까이 날릴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위험한 순간에도 본래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힘겹게 주문을 사용했고, 이 때문에 암살자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도 애를 먹었다. 지면을 늪지대로 바꾸는 주문 같은 걸로 소극적인 대응을 하기도 했다.

빌헬름텔의 생각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일부러 약세를 드러내 암살자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은 했다.

그렇게 해서 무슨 이득을 얻는단 말인가?

어차피 마법사들의 탐지스킬 때문에, 은신을 포기한 암살자는 적수가 못됐다.

빌헬름텔의 생각엔 마법사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마력의 컨트롤이 힘든 것처럼 연기한 겁니까?”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오. 저들도 바보는 아닐 텐데, 마법사와 상성이 나쁜 암살자들만으로 습격을 한 저의가 의심스러웠지. 분명 어디엔가에서는 용병마법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극도로 주문사용을 억제하고 탐지에 주력한 거요.”

“아하!”

“하지만 끝까지 마법사는 나타나질 않았소.”

“그 말을 듣고 보니 찜찜하군요.”

그때 루시엔이 손을 들어올렸다.

“저어……어쩌면 이유를 알려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모두의 시선이 루시엔을 향했다.

“누군데요?”


◇◇◇◇◇◈◇◇◇◇◇◇◈◇◇◇◇◇◇◈◇◇◇◇◇


딜런은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호숫가에 앉아서, 호수의 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아무튼 몸이 깃털처럼 가볍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로 보아 사후세계에 있다는 것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딜런은 자신이 죽기 전에 보았던 누군가의 엉덩이를 떠올렸다.

‘낙석이었겠지.’

이미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있었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그래서 미리 익스플로전 튜브의 촉매를 깨뜨렸다.

자신이 죽더라도 폭발하도록. 자신이 죽어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아마 지금쯤이면 폭발과 함께 지면이 붕괴되어 모두가 압사 당했을 것이다.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도망치라고 했지만, 위험지역을 채 벗어나진 못했을 것이다.

‘몇이나 살아남았을지…….’

딜런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와 닿는 햇볕이 따사롭다.

그 자신은 암살자. 이런 평화로운 시간을 누릴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조금 있으면 날 괴롭힐 악마들이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딜런을 에워쌌다. 조금 전까지 누리던 양지는 음지로 바뀌었다. 딜런은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암살자가 죽어서 갈 곳은 지옥뿐.

저들이 어떻게 자신을 괴롭힐지 무서웠지만, 눈으로 보지 않으면 두려움은 감소된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 보인다.’

그런 딜런을 보고 누군가 입을 열었다.

“이 암살자, 우릴 보더니 자는 체 하는데요?”

누군가 딜런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요! 암살자씨. 눈 좀 떠봐요. 정신 차린 거 다 알고 왔다고요.”

“일단 몸부터 묶어놓는 건 어떨까요?”

딜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악마들, 무슨 짓을 하려고?’

딜런은 반항하지 않았다. 지옥에서는 악마를 거스를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한 딜런은 그냥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경기까지 일으키네? 이러다 피토하고 죽는 거 아냐?”

“일단 치료는 했다고요.”

“이게 말입니까? 낯빛도 창백한 것이 상태가 영 아닌데요?”

딜런은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럼 죽은 놈의 혈색이 좋겠느냐며.

“그거야……암살자니까 목숨만 붙여 놓은 거죠. 완벽하게 치료해놓았더니 뒤에서 칼이라도 쑤시면 곤란하니까요.”

“반만 치료했다는 겁니까?”

“반의반의 반만 치료 했어요.”

“치료를 하려면 하고, 안하면 안하는 거지. 반의반의 반만 치료할 수도 있는 겁니까?”

“그냥 성금함에 동전만 적게 넣으면 되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이상하다. 자신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들려오고, 그 방법까지 해괴하다. 돈을 적게 지불했다?

마치 돌팔이의사가 돈이 적다며, 대충 치료했다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급기야 이들의 이야기는 바하르칼 용병단의 내부사정까지 이슈가 옮겨갔다.

“이래서야 스컬그레이가 물러난 뒤의 상황을 묻진 못할 거 같은데요?”

“그럼 누구에게 내부사정을 물어야 하나…….”

딜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지간히도 수다스러운 악마들이로구나.’

그는 참다 참다 못해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머리에 뿔이 달려 있지도 않고, 삼지창 같은 걸 들고 있지도 않다. 험악한 표정으로 겁을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딜런은 이들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바하르칼의 하부조직들은 지금 내홍을 겪고 있다. 차기단장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다들 단장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상대로 편 가르기가 이루어지는 중이지. 세력을 확장하면 그만큼 우리할 테니.”

“혹시 가장 유력한 게 잇페인?”

“맞다. 그래서 잇페인의 부하인 암살자들을, 말도 안 되는 임무에 투입시켜 없애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악마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 이 사람 말대로라면 아귀가 딱 맞는데요?”

그러자 다른 악마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처럼 로브를 걸친 자였다.

“그래서 마법사가 없었던 것인가?”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활을 메고 있는 남자는 아직도 미심쩍은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는 암살자와 용병마법사는 모두 잇페인의 소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째서 마법사들이 암살자를 돕지 않는 거요?”

딜런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마법이란 학문은 너무 복잡하다. 대마법사 칭호를 받은 사람이라도 모든 마법에 정통할 수는 없다. 그러니 각자 장기로 삼는 분야가 갈리고, 그래서 다양한 계파가 생겨났지. 잇페인은 사령술과 흑마법에 특화된 마법사다. 그가 이끄는 마법사도 그렇지.”

“그 말은……다른 분야의 마법사도 있다는 뜻인가?”

“당연하지 않나? 보아하니 아처인 것 같은데, 아처도 다들 특기분야가 있지 않나? 저격에 특화된 자도 있고, 속사에 특화된 자가 있고. 독이나 덫까지 함께 사용하는 자도 있지.”

“물론 그 말대로지만…그렇다고 해서 아처들이 끼리끼리 모여 움직이진 않을 텐데?”

“하. 자존심 강한 마법사가, 다른 파벌과 뒤섞이기는 힘든 게 당연한 거 아뇨! 특히나 잇페인은…내 상관이지만 이 인간은 자기 부하도 마음에 안 들면 갈아버리는 놈이지. 그런 놈 밑으로 자기 제자를 보낼 마법사가 어디 있나? 당연히 계파가 다르다는 핑계로, 지휘체계까지 갈라지게 되었지.”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가는군.”

“잇페인은 바하르칼 내부에서도 평판이 안 좋구나.”

“그게 결국은 자기 목을 조여서 이 상황까지 왔다는 거로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반응을 보며 딜런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자들은 어째서 바하르칼의 일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가? 죽은 자신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설마……당신들, 악마가 아닌 건가?”

그 말에 여자가 째지는 목소리를 냈다.

“누굴 보고 악마라는 거야!”

찰싹! 뺨에 달라붙는 손맛이 찰지다. 딜런의 고개가 홱 돌아가 나무에 부딪쳤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성직자의 복장을 하고 있다. 아무리 악마라 해도 이런 옷을 입진 않을 것이다.

“그, 그럼 당신들은 대체…….”

이들 중 하나가 허리를 숙여 딜런의 앞에 고개를 내밀었다.

연두색과 노란색의 옷감을 사용한 아처의 옷을 입고 있다. 이건 너무 촌스러워서 이방인들이나 입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옷을 입은 여자가, 암살대상 근처에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딜런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 그럼…너희들은…….”

아처복장을 한 이방인 여성이 히죽 웃었다.

“햐~이것 봐라? 설마 지금까지 자기가 죽은 걸로 알았던 거야?”


작가의말

졸려서 미치겠네요......

내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서 마저 올리겠습니다.

더워서 밤에 잠을 못잤더니 결국 이렇게 피폐해지는군요.

하하...날씨가 더울 수록  자꾸만 말리는 페이스.

5월달에는 1.1만자 가까이 쓰고도 멀쩡했는데, 지금은 아니네요.

확실히 맛탱이가 갔다는 걸 느낍니다.

여름은 정말이지 힘든 계절입니다.


내일은 무지 덥다는 데, 다들 더위 조심합시다요...


수정&보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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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4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8) +3 15.04.22 874 15 34쪽
149 14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7) +3 15.04.05 895 14 29쪽
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3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4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2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4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0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1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8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3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4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6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7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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