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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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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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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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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3.

위즈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위험한 게 완성되어버린다.’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위즈가 떠올린 것은, 지금까지 배운 스킬들이다.

섀도 런, 진각, 화염돌격, 정령강화(바람속성) 등등.

전부 스킬 그자체가 데미지를 주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근래에 들어 애용하는 섀도 런은, 원래가 회피기술이다.

적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가 겹쳐졌을 때에 한하여, 그림자를 통해 직접적인 공격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공격의 ‘찬스’만 제공해주는 것이다.

진각은 명중률과 공격력을 5씩 상승시키기 위해 사용해주는 것이다. 위즈처럼 이동할 때마다 밟아대는 게 아니라, 무기를 들고 찌르고 베는 순간 밟아서 순간적으로 공격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적에게 직접 사용할 경우 고정 피해를 입히긴 하지만, 고작 50에 불과하다.

화염돌격은 화염저항력 100% 빼고는, 그냥 주변 환경을 불바다로 만드는 기능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령강화(바람속성)의 경우는, 무기에 걸어둘 경우 명중률만을 올려줄 뿐이다.

위즈가 가진 스킬은 하나같이 이런 것들뿐이었다.

원래부터 전투를 목적으로 캐릭터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인지, 순수한 공격용 스킬이 전무했다.

그 대신 A, B의 두 가지 스킬을 보유한 경우나, 혹은 순차적으로 둘 이상의 스킬을 사용할 때, 쓸 수 있는 시너지 스킬 C가 있을 뿐이다.

시너지 스킬 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건, 코로나다.

헌데 코로나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불속에 들어가 춤을 춰야 했다. 불속에 나타나는 화염의 발자국을 밟아 위력을 늘리지 않으면 데미지가 낮게 떴다.

‘그럴 시간이 없어. 그냥 한번 쓰면 데미지가 들어가는, 그런 스킬이 나는 필요하다고.’

아니, 있긴 있었다. 지금 위즈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스킬이 딱 하나.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

핏 스톤과의 거래로 얻은 유니크 스킬로, 마스터 레벨이 1이다.

이름 그대로 수많은 가시를 소환해 무차별로 찔러버리는 범위공격이다.

스킬 창에는 이렇다 할 설명이 전혀 없지만, 실제 몇 번 사용해본 결과 마력 소모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위즈도 이 스킬만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꼈다가 사용했다. 마력소모가 얼마나 심하냐면, 스킬을 사용하는 도중에 마력포션을 계속 퍼마셔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중에 캔슬 될 수도 있다는 경고메시지까지 떠오른다.

‘근데 나는 혼돈의 짐승과 싸우느라 포션을 소모해버렸잖아. 마력포션이 몇 개 없다고.’

포션을 보급 받지 않는 한, 이 스킬은 쓰지 못한다.

불과 몇 초 동안 위즈가 떠올린 사고는 여기까지다.

대번에 혼자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불러 함께 싸우면 어떨까?’

생각을 떠올린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위즈는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저 붉은 코어로 골렘이 만들어진다면, 결코 평범할 리 없다.

무려 악령이 사용된 골렘이다.

악령이 어떤 존재인가.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멋대로 조종하고, 결곡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는. 그야말로 재앙 아닌가.

위즈 자신이야 마음속의 성전 덕분에 빙의될 걱정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캐스팅에 집중해야 하는 마법사들은, 악령의 견제를 받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군의 숫자가 많아봐야 손해야. 악령에 대한 방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소용없다고.’

위즈는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일단 연락은 해두어야 했다. 혹시라도 수색이 빨리 끝나 이쪽으로 돌아오면 큰일이니까.

‘사실대로 알리면 돕겠다고 달려올지도 몰라. 아마 엔틸리움에서 구입한 탈리스만 같은 것에 의지해서 악령에 대항하려 하겠지. 하지만 저건 그 정도로 당해낼 상대가 아냐. 그 많은 악령들이 저 작은 덩어리에 응축되어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나도 당해버릴 지 몰라. 그러니까 일단…….’

단검과 학살자의 망령을 양손에 나눠 쥐며,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학살자의 망령으로는 평타로 타격을 입히고, 단검으로는 공상선긋기를 사용해 코어를 갈라버릴 작정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공격 스킬이 없다면 없는 대로 대항할 생각이다.

서로 다른 동작으로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지만 크게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학살자의 망령에는 단순히 마력만을 주입해, 망령의 힘을 일깨우면 되었다. 정교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한 건 단검을 쥔 쪽의 손이다. 공상선긋기라는 스킬 때문.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이 영혼은 강렬한 전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싸움에 목마른 영혼이 당신의 몸을 잠식합니다.>

<이 영혼은 당신의 몸을 빌려 적을 섬멸할 것입니다.>

<영혼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50의 마력이 소모되고, 일반 공격을 할 때마다 100의 스태미나가 소모됩니다.>

<근성과 집중력 스탯의 영향으로, 영혼을 다시 잠재울 수 있습니다.>


『이지 없는……껍데기들이 아우성을……치는구나.』

‘껍데기?’

위즈는 망령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궁금했으나 지금은 전투 중이다. 호기심을 접어두고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으로 평타를 먹였다. 스태미나가 100이나 빠져나가며, 빙글뱅글을 감싼 배리어가 출렁거렸다. 앞서 공격했을 때에 비해 효과는 미미했다. 일부러 약해보이는 측면을 노렸는데도 이렇다.

빙글뱅글이 배리어에 주입하는 마력의 양을 늘린 것이다.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재생되는 게 더 빨라, 배리어는 겉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기억도…감정도…모두 빛이 바래……진정한 자신을 잃은 그림자들.』

또 다시 학살자의 망령에서 뜻 모를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자신을 잃어? 아!’

위즈는 거도(巨刀)에 깃든 망령이 악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망령은 지금 내게 뭔가를 알리려 하고 있다.’

잇달아 평타를 먹이면서도 위즈는 망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일까, 그 틈을 노리고 빙글뱅글의 매직스틱이 겨누어졌다.

“싸우는 중에 딴 생각을 하다니! 내가 만만하게 보이더냐! 칠 바인드!”

냉기의 덩어리가 빠르게 접근했다. 냉기가 지나간 길마다 공기가 얼어붙으며, 얼음으로 이루어진 선이 그려졌다. 그것들은 뒤엉킨 가시덩굴처럼 위즈의 몸을 옭아매려고 했다.

‘섀도 런은 안 돼. 피할 때는 좋지만, 다시 모습을 드러났을 때는, 저 얼음 덩굴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칠 바인드는 적을 묶어놓는 주문. 얼음족쇄보다 넓은 범위에 영형을 미칠 수 있다.


<공상선긋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해제될 때까지 초당 5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위즈는 단검에 마력을 잔뜩 밀어 넣었다. 공상선긋기 스킬로 만들어낸 마력의 칼날이 1미터 가까이 솟구쳤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과 마력의 칼날을 번갈아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냉기를 물씬 피워 올리는 얼음덩굴은, 위즈에게 다가오는 족족 박살나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얼음 파편들이 위즈의 몸으로 튀었다.

위즈는 인상을 찌푸렸다. 파편 몇 개가 튀었을 뿐인데, 빙글뱅글의 마력이 점점이 몸에 찍혀 있다. 이건 위자드 마크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발사체 스킬이라면, 아무데나 막 대고 쏴도 다 맞는다. 레이저 유도된 미사일처럼 정확히 목표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위즈는 서둘러 몸 전체에 마력을 한 바퀴 돌렸다. 위즈의 마력으로 한차례 씻은 몸에는, 빙글뱅글의 마력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무기에 불어넣는 마력의 컨트롤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다.

단검에 어린 마력의 칼날은 자취를 감추었고, 학살자의 망령에 흐르던 붉은 기운도 옅어졌다. 한 자루의 무기만으로 얼음 덩굴을 상대하는 건 힘들었다. 당연히 제대로 부수지 못한 게 위즈에게 날아들었다. 피할 수밖에 없다. 위즈는 뒤로 몸을 날렸다.

빙글뱅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톤 스피어!”

위즈의 종아리를 뚫고서 바위로 이루어진 창날이 불쑥 튀어나왔다. 220의 데미지가 들어왔다.

“큭!”

학살자의 망령을 휘둘러 그것을 부수면서도, 위즈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었다. 칠 바인드 주문으로부터 뿜어지는 냉기는 여전했으며, 자신을 노리고 뻗어오는 얼음덩굴도 있었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에 마력을 불어넣는 한편, 다시 공상선긋기 스킬을 사용해 마력의 칼날을 생성해 났다. 다시금 두 자루의 칼로 얼음덩굴을 부수며 걸음을 내디딜 때, 빙글뱅글이 또 다른 주문을 사용했다.

“스톤 스파이크!”

이번에 위즈의 발밑에서 손가락 길이만한 뾰족한 돌기들이 솟아나왔다. 위즈의 신발은 구멍이 숭숭 뚫렸고,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종아리에 이어 발바닥까지 당하자 위즈의 다리가 순간 휘청거렸다.


<발을 집중적으로 공격당해 이동속도가 5분간 저하됩니다. [(B) 1초당 0.5m]>


위즈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모자손 건틀릿에 내장된 인벤토리에서, 포션 하나가 사용되었다. 삽시간에 상처가 아물고 피가 그쳤다. 하지만 느려진 이동속도는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도 평상시 이동속도가 아닌, 전투 시 이동속도가.

“곤란한 걸.”

위즈는 지금까지 남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강점을 이용해 싸워왔다.

특히 섀도 런 스킬을 손에 넣은 뒤로는 회피능력만 높아진 게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돌입했다가 빠져나오는 능력이 생겨 전투 효율이 높아졌다. 높은 생존율이야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헌데 그것도 지금은 안 통한다. 때마침 칠 바인드 주문의 효력이 다하지 않았다면, 지금 위즈는 꽁꽁 언 채 빙글뱅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한번 재미를 본 주문이기 때문일까, 빙글뱅글은 다시 매직스틱을 들어올렸다.

냉기를 품은 작은 마력의 결정들이 어지러이 흩어져갔다.

“칠 바인드!”

위즈는 다시 마력을 수습해 학살자의 망령과 단검으로, 날아드는 냉기의 파도에 저항했다.

섀도 런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빙글뱅글의 의도가 훤히 보인다.

계속 밀리다보니 위즈는 어느새 처음의 자리에 서 있었다.

반면 빙글뱅글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제 알겠나? 이게 마법사라는 거다. 배리어나 라이팅만 겨우 쓰는 놈들과는 격이 다르단 말이다.”

빙글뱅글의 손아귀에서 골렘의 심장이 벗어났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떠받치듯 천천히 떠올랐다.

녹슨 철의 빛깔로 물든 덩어리에서 조금 전 빨아들인 악령들의 머리가 불쑥불쑥 솟았다. 그 머리들이 한데 뒤섞여 뭉개지더니 희뿌연 덩어리를 이루었다. 안개를 뭉쳐서 반죽하면 이럴까 싶은 느낌. 그 한가운데에 골렘의 심장이 들어 있었다.

마치 현미경으로 본 아메바와 같은 간단한 구조다.

더 이상의 변형은 없었다.

‘어차피 약점이 훤히 보인다.’

빙글뱅글이 만든 골렘은, 전투용으로는 부적합 했다.

골렘은 사용되는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스톤 골렘, 머드 골렘, 브론즈 골렘 등등.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게 스톤 골렘이다. 바위는 망치와 정만 있으면 깨지지만, 그 누구도 바위를 부드럽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이 쇠붙이를 다루기 이전에는, 돌이야 말로 단단한 물체였다.

그런 바위로 만든 골렘이었으니, 간단히 파괴당할 리 없다. 아니, 간단히 파괴당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간단하게 파괴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약점이 바로 골렘을 만드는 핵심 부품인 코어다.

이 코어에 약간의 상처라도 입게 되면, 출력이 떨어져 주저앉는다.

아예 파괴해버리면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되어버린다.

코어는 사람의 심장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그런 골렘의 코어가 어디에 들어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래서 빙글뱅글이 만든 골렘은 전투에 부적합했다.

‘저길 노리면 끝난다. 골렘을 처리한 다음엔 곧장 빙글뱅글에게 공격을 퍼붓자. 주문 같은 거 사용할 틈을 안주는 거야. 여차하면 한 번 죽어서, 망령화 상태에서 뒤치기라도 하지 뭐.’

위즈는 양손의 무기를 휘둘러, 냉기를 퍼뜨리며 밀고 들어오는 얼음덩굴을 부수며 전진했다. 조금 전 다리를 다쳐 얻은 이속감소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이러다 끝이 없겠군.”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바닥에 힘주어 박았다.


<적의를 삼키는 탐욕의 대지가 발동되었습니다.>

<5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오늘만 이 스킬을 세 번째 사용했다. 천년의 세월동안 다져진 흙은, 이제 곱게 갈린 밀가루처럼 되었다. 땅이 흔들릴 때마다 흙 알갱이가 튀어 올랐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에 체중을 실으며 균형을 잡았다.

반면 빙글뱅글은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매직스틱으로 모여든 마력이 흩어져갔다.


<적이 사용한 ‘대지 계열 주문’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이틈을 노려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서려 걸음을 옮기는데 뭔가가 발에 채였다. 부서진 얼음의 사각거림 대신, 훨씬 단단한 게 발바닥을 압박해왔다. 슬쩍 내려다보니 얼음 조각 사이에 뾰족하게 깎여진 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이즈로 봐서는 위즈의 발에 상처를 입힌, 스톤 스파이크의 부산물이다.

인근의 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광역 스킬 때문에 캔슬 되어버린 것이다.

“호오?”

『그림자는……빛이 밝을수록 짙어진다…….』

전투에 몰두하느라 들리지 않던 망령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림자가…스스로를 그림자로 인식할 때…안식이…찾아…오리니…….』

순간 위즈의 머리에 가득 낀 안개가 걷히며 답답함이 사라졌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위즈가 뭔가 깨닫고 소리 지르자, 빙글뱅글이 입술을 깨물며 매직스틱을 치켜들었다.

“어림없지!”

빙글뱅글이 방해할 새라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땅에 박았다.


<적의를 삼키는 탐욕의 대지가 발동되었습니다.>

<5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물이 가득 담긴 잔을 좌우로 흔들면, 잔을 따라 물이 위로 솟구친다.

지금 흔들리는 지면 역시, 곳곳에서 흙더미가 솟았다. 그 흙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며 위즈는 빙글뱅글 쪽을 살폈다.

빙글뱅글은 아예 무릎 꿇은 자세로 이 흔들림을 이겨내고 있었다.

마력을 보는 눈에 비친 빙글뱅글의 양손에는 마력이 집중되는 중이었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캐스팅이라니…….’

빙글뱅글이 자신에게 품은 원한의 깊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위즈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골렘이 완성된 건 아닌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위즈는 마음이 급해졌다.

골렘이 깨어나기 전에 일단 빙글뱅글부터 제압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나 혼자서는……혼자서는…….’

학살자의 망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작해야 땅을 뒤흔드는 광역스킬로, 빙글뱅글을 귀찮게 만드는 주제에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나마도 이 스킬은 위즈가 쓰는 게 아니다. 학살자의 망령이 없으면 쓰지도 못한다.

‘이건 내 힘이 아니야.’

곧바로 반문이 터져 나왔다. 과연 그럴까.

학살자의 망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왔다.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빙글뱅글이 모으는 마력은 흐름을 잃고 고정된 풍경으로 변했다. 흔들리는 대지도 떨림을 그쳤으며, 온몸을 짓누르는 긴장감도 사라졌다.

마치 세상에서 유리된 것과 같은 감각이다.

마치 잇페인과 심상세계에서 싸울 때와 같은 감각이다.

의식의 가속.

이기적인 시간의 흐름에 탑승한 위즈는,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에 전율했다.


이지 없는 껍데기들이 아우성을 친다.

기억도 감정도 모두 빛이 바래, 진정한 자신을 잃은 그림자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그림자가 스스로를 그림자라 인정할 때 안식이 찾아온다.


모두 망령이 남긴 말이다.

첫 번째 문장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위즈는 착각하고 있었다.

망령이 지금 상황에서 떠드는 게 악령의 존재 때문이라고. 같은 영이니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위즈에게 경고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진 두 번째 문장은 위즈의 생각을 뒷받침해줬다.

헌데 세 번째 문장에서부터 뭔가 어긋남을 느꼈다.

망령이 그림자라면 빛은 누구인가? 대적자인 위즈 자신?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 했으니, 자신이 강할수록 악령도 강해진다는 뜻인가?

앞뒤의 뜻이 전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듣고 나서 깨달았다.

망령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위즈 뿐이다. 또한 망령은 바깥의 상황에 대해 알 능력이 없다. 그래서 위즈가 보고 듣는 것을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바하르칼 마법사들이 아쿠에리언 아이들을 노릴 때도, 위즈가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소리쳤었다.

그 말에 학살자의 망령이 반응해줘서,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조금 전 가짜 렌틸을 상대했을 때에도, 용병 마법사들이 아이린을 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역시나 학살자의 망령은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러니 학살자의 망령이 악령의 존재를 느끼고 내게 충고할 수는 없어.’

그럼 학살자의 망령은 어째서 그런 말들을 했을까.

무기에 깃들인 망령이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되는대로 지껄인 것일까.

위즈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관점을 바꾸면 말이 되는 것이었다.

학살자의 망령을 쥐고 있는 건, 바로 위즈 자신.

그러니 학살자의 망령이 알 수 있는 건, 위즈에 대해서 뿐이 없다.


이지 없는 껍데기들이 아우성을 친다.


첫 번째 문장.

스킬의 위력에 기대어 적을 상대하려는, 영혼 없는 공격을 꼬집은 것이다.

게임 초반 위즈는 변변찮은 스킬도 없어서, 나무 몽둥이만으로 싸웠다. 그렇다보니 무턱대고 강공으로 나가지 못하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공격을 했다. 에누리 없이 효율을 따지다보니, 모든 공격은 혼신을 다해 이루어졌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을 한다. 물론 가랑비에 옷이 젖는 법이니, 이런 공격이 전혀 무의미하다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날카로움이 많이 죽은 건 사실이다.

‘옛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스탯이 늘었다. 스킬 없이 빌빌대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스킬이 많아서 골라 쓸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내 전투는 예전만 못한 것일까.’


기억도 감정도 모두 빛이 바래, 진정한 자신을 잃은 그림자들.


두 번째 문장.

스킬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비판한 것이다.

위즈는 보유한 스킬들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려 한 적이 없다. 그냥 스킬의 설명을 읽고, 데이터상의 분석만을 보았다. 그 스킬을 누가 창시했고, 누가 사용해서 유명해졌는지는 모른다. 그건 배경에 불과한 것이라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이다.

‘헌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거야 말로 정말 주요한 것이었어. 스킬을 만든 이의 의도를 안다면, 운용력은 지금보다 배로 높아질 테니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세 번째 문장.

이건 작용과 반작용의 문제, 인과율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적이 강함을 인식했다면, 더 이상 두려워해선 안 된다. 두려움은 몸을 굳게 만든다.

지금은 전투중이다. 혼자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더 이상 망설임은 없어야 한다. 망설임은 빈틈을 만든다.

패인이 늘어날수록, 패배의 확률 역시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처럼 싸우면 난 정말로 지고 만다.’


그림자가 스스로를 그림자라 인정할 때 안식이 찾아온다.


네 번째 문장.

앞서한 말을 모두 이해하고, 지금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았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수 있다. 놓치고 있던 것을.

‘나는 약하다. 빙글뱅글도, 악령과 융합한 골렘도. 좋은 스킬이 있다고 상대할 수 있을만한 적이 아냐. 하지만 시도해볼만한 일이 남아 있다. 그게 뭐지? 내가 놓치고 있던 게 뭐지?’

약한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더 오션을 플레이 해왔다.

처음 시작했던 크레센토 왕국의 수도 미노클에서는, 일개 도서관 사서부터 왕자에게까지 도움을 받았다. 레미라를 수호전쟁 때는, 중립도시 시에니투스에서 알게 된 무법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까지 위즈는 자신의 힘만으로 여기가지 온 게 아니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내려다보았다. 망령에 씐 상태에서는 움직임이 달라지고, 배운 적 없는 스킬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이 역시 자신의 힘이 아니다.

그리고……게임 바깥에 살고 있는, 현실의 자신.

편재.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누나 덕분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얼마나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나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고집 부릴 이유가 없다.

위즈는 메신저 창을 열었다. 빌헬름텔의 이름에 불이 들어와 있다.

‘동료의 힘이 곧 내 힘이다.’

스킬창이 열렸다. 맨 위에 적힌 두 개의 스킬이 위즈를 반겼다.

카무플라주와 카피 캣. 이 스킬들이 여기까지 위즈를 이끌어왔다.

‘믿는다. 내 힘을.’

인벤토리가 열렸다. 내부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혹시라도 쓸모가 있을까 싶어 담아둔 파괴된 제단의 파편. 그 너머에서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건, 제단과 짝을 이루는 의식용 검.

아렌의 크리스.

‘그래. 이런 것도 있었지.’

낮은 데미지에 쓸데없이 무겁기까지. 생 나뭇가지를 꺾어 급조한 몽둥이보다 쓸모가 없어 처박아둔 아이템이다. 위즈의 시선을 받은 아렌의 크리스에서 정보창이 떠올랐다.


====================================

[아렌의 크리스][내구도: 무한]

의식용 단검.

제물의 생명을 마력으로 변환시켜주는 물건입니다.

[제물이 가진 현재체력의 1/100이 1의 마력으로 바뀝니다.]

물리공격력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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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마력으로?”

위즈는 아렌의 크리스를 집어 들었다.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된 빙글뱅글의 모습이 움직이며, 시간은 비로소 공평하게 흘렀다.


작가의말

내일 오탈자 수정 및, 내용 추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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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8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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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49화...5-(ED) +5 15.05.24 977 23 52쪽
151 14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9) +2 15.05.03 1,228 16 44쪽
150 14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8) +3 15.04.22 874 15 34쪽
149 14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7) +3 15.04.05 894 14 29쪽
148 14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6) +3 15.03.26 992 21 29쪽
147 14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5) +2 15.03.25 1,024 18 31쪽
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2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4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1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3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0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0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7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7 29 27쪽
»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3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8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3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5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6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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