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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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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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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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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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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21쪽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34.

암살자들과 라이칸스로프들을 함께 상대하는 일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초반엔 빌헬름텔과 중급마법사들이 압도했다. 철궁을 꺼내든 빌헬름텔은 모자란 공격력을 보충하여, 사실상 샤프슈터가 쏜 것과 다름없는 화살을 날려댔다. 그 결과 암살자와 라이칸 스로프들을 절반이나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레미라의 중급마법사들의 조력도 한몫했다. 적들이 공격을 피하려는 방향에 미리 마법을 날려서, 부상을 입히거나 퇴로를 차단했기에 적들은 빌헬름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우위를 점한 건 처음 몇 분이 전부다.

이내 태세를 정비한 암살자들과 라이칸스로프들은, 마법과 화살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본 빌헬름텔과 레미라 마법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 기세를 탄다면!”

“가능할 것도 같군.”

현재 빌헬름텔과 레미라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C그룹은, 바닥이 무너지면서 둘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합류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균열이 깊은 바다와 같다면, 균열로 에워싸인 땅덩어리는 섬.

그런 땅덩어리들을 징검다리로 이용하면, 뒤쪽에 있는 보다 널찍한 땅으로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그 널찍한 땅도 균열에 에워싸인 건 마찬가지.

그렇지만 널찍한 땅에 걸쳐진 균열은 그 폭이 매우 좁았다.

도움닫기 없이도 그냥 건너갈 수 있을 정도다.

일단 그걸 방해할 적들은 지금 한차례 된통 당하고 멀찍이 물러난 상태다. 빌헬름텔이 라이칸스로프를 많이 잡아서 포위망도 엉성해진 상태.

서로 엄호를 해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 빌헬름텔이 먼저 활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단지 견제 사격일 뿐이지만, 발사된 화살의 숫자가 많았다.

그 뒤를 이어 마법사들의 주문이 날아들었다. 스프레드 폼으로 확산시킨 주문은 위력이 떨어졌지만, 동시에 날아든 주문의 숫자가 너무 많아 사실상 범위공격 주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리고 날리는 공격이 아니다! 얌전히 맞아 줄까보냐!”

“뭉쳐있지 마라!”

암살자들과 라이칸스로프들은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팝콘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전히 에워싼 형세이지만, 인원이 크게 줄어 포위망은 사실상 와해된 것이나 마찬가지. 이렇게 되고 보니 암살자들은 고육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말 대신 타고 있던 라이칸스로프에서 일제히 내린 것이다.

“기동력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포위망의 구멍을 메워보겠다는 건가?”

암살자들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던 라이칸스로프들을 따로 운용하자, 일단 라이칸스로프의 숫자는 늘어났다. 그래도 겨우 여섯 마리가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헌데 암살자들은 그렇게 늘린 라이칸스로프를 포위망 형성에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멀찍이 뒤로 밀어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는 라이칸스로프들을 보며 빌헬름텔은 의아해 했다.

“이유를 모르겠군.”

그동안 레미라 마법사들은 말을 몰아 하나둘씩 목표로 삼은 땅덩어리로 올라왔다. 끝까지 남아 있던 빌헬름텔은 적당히 견제 사격을 가하고는 몸을 돌려 피신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말을 다른 마법사에게 양보한 상태.

징검다리처럼 밟고 갈 땅과 땅 사이는, 사람의 도약력으로 넘기엔 넓은 것도 있었다.

그럴 때는 도움닫기로 어떻게든 간신히 뛰어넘었다.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땅이 붕괴되었다. 여러 사람이 말까지 타고 지나간 곳은 약해져 있었는데, 도움닫기를 하면서 사용한 진각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하지만 아처는 몸이 날래다. 샤프슈터로 키우기 위해 힘 스탯에 치중했다고는 하나, 전투경험이 많은 빌헬름텔은 침착하게 떨어지는 중에도 줄을 걸어 몸을 고정시키고 기어 올라왔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소.”

“그래도 기본은 아처니까 이 정도로 죽진 않습니다.”

빌헬름텔은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C그룹 전원이 모인 땅은 지반이 제법 튼튼해 보였다. 말까지 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어도 붕괴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흠…….”

마법사 몇몇이 눈을 감고 탐지를 사용 중이었다. 아마 발밑의 빈 석회암 동굴 속의 라이칸스로프 때문인 것 같았다.

“놈들이 날뛰는군.”

“석주를 부수는 중일 겁니다.”

한시바삐 균열을 뛰어넘어야 한다. 놈들은 균열을 넓혀서 일행을 완전히 생매장시키려 하고 있다.

“당신은 말이 없는데 괜찮겠소?”

빌헬름텔이 타던 말을 양보한 마법사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지날 곳은 폭이 좁지만, 아래에서 라이칸스로프들이 계속 난동을 부리고 있으니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는 일. 빌헬름텔은 허리춤에 걸린 밧줄을 흔들어 보이며 마법사를 안심시켰다.

“조금 전에도 보셨지 않습니까. 여차하면 줄을 걸어 올라오면 됩니다. 그러니 염려 마시고 먼저 건너가시죠. 아, 저놈들 또 시작이네!”

빌헬름텔이 활시위를 당겼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암살자들과 라이칸스로프들이 화살을 피하며 흩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접근해 있는 상태. 균열을 건너는 중 견제 사격이 뜸해진 틈을 타 이만큼이나 접근한 것이다.

“이번에도 제가 맨 나중에 가겠습니다. 이번엔 확실히 발을 붙잡아놓을 겁니다.”

빌헬름텔은 인벤토리에서 저급 화살을 몽땅 꺼냈다. 화살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그의 손이 빠르게 활시위와 화살통을 오갔다. 마치 동영상의 재생속도를 2배로 돌린 것처럼 신속한 사격. 단순히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튕겨낸 거라 위력은 줄었지만, 지금 사용하는 활은 튼튼한 철궁. 기세가 매서우니 암살자들과 라이칸스로프들이 치를 떨며 물러났다.

“저 괴물새끼!”

“지치지도 않냐!”


◇◇◇◇◇◈◇◇◇◇◇◇◈◇◇◇◇◇◇◈◇◇◇◇◇


마법사의 경우엔 자꾸 주문을 사용하면 할수록 피로해지고, 마력의 재생이 느려지게 된다. 마력문제는 포션으로 해결해도, 피로감은 오직 휴식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특히 마력의 컨트롤이 어렵다는 신성왕국에서는 누적된 피로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러니 암살자들 입장에서는 마법사들이 주문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이득이었다.

이미 마법사들이 견제용으로 날리는 주문도 처음처럼 매섭지 않다. 제대로 조준해서 날리기 보다는, 스프레드 폼으로 널리 퍼뜨리는 것을 선호하는 게 그 증거.

암살자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후후. 계획대로다!’

‘놈들이 큰 주문을 쓸 틈을 주지 마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이들이라 눈빛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마법사는 마법사.

상황에 걸 맞는 주문 한방이 모든 걸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특히나 암살자들이 경계하는 최악의 상황은, 이 석회암 지대에 늪지대를 만드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늪지대생성 주문으로 만든 늪은 깊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발밑의 석회암 지대 속에 뚫린 수많은 동굴과 빈 공간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깊이의 늪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엄청난 깊이의 늪. 이게 문제였다.

암살자들은 극한의 훈련을 받은 프로페셔널. 늪에 빠진다고 죽진 않는다.

암살자들이 두려운 것은, 늪에 빠진 다음의 일이다.

늪지대 생성 주문은, 그 효력이 다하면 주변의 지형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삼켜버린 대상물을 품고서 단단한 땅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땅에 갇혀버린 생물은 질식해서 죽어버린다. 암살자들이야 땅을 헤치고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단단한 석회암 속에 갇혀버린다면 암살자라도 갇혀죽을 수밖에 없다. 설사 얇은 부분을 뚫고 빠져나온다 해도, 어지러이 얽힌 석회암 동굴을 헤매다 조난당할 게 뻔하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조금이라도 길게 캐스팅을 하면, 자꾸 깔짝대면서 신경을 긁었다.

아처인 빌헬름텔의 경우는 아예 신경도 안 썼다. 정확한 조준 사격이 무섭긴 했으나, 화살은 소모재이다. 화살이 다 떨어지면 아처는 허수아비 신세.

암살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헌데 실제로는 마법사들이 얌전하게 굴었고, 빌헬름텔은 화살을 퍼부으며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다.

“대체 화살을 얼마나 갖고 있는 거야?”

마법사들이 말을 몰아 균열을 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암살자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라이칸스로프들도 마찬가지.

“석주를 부수던 놈들도 몇 안 남았어. 중독이 심해져서 다들 죽어버렸다고.”

이제 결단을 내려야했다. 죽어버린 리더를 대신해 지휘를 맡은 암살자가 입을 열었다.

“자폭이 가능한 놈들을 전부 균열로 내려 보낸다.”

“놈들이 제멋대로 자폭해버리면 위력이 반감될 텐데?”

“맞아. 자폭은 코앞에서 직접 이루어져야 살상력이 극대화된다고.”

말을 꺼낸 임시리더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라이칸스로프 한 마리가 튀어나와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 그가 타고 있던 녀석이다.

“염려마라. 내가 함께 내려간다. 자폭할 위치를 직접 정해주고, 연금술사에게 구입한 이 화합물도 함께 사용할 거다.”

임시리더가 라이칸스로프에 올랐다. 죽으러 가는 길. 그럼에도 암살자들은 그의 행동에 감동받지도, 침울해하지도 않았다.

암살자 하나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을 뿐이다.

“그 외에 남길 말은?”

“내가 실패하면, 잇페인에게서 벗어나라.”

“뭐?”

다른 암살자들이 놀란 듯 임시리더를 바라보았다. 자기 목숨까지 걸면서 실패를 입에 올리는 건, 암살자의 몸에 배인 조심성 때문이라고 해도. 배신할 것을 종용하는 건 암살자답지 않았다.

“이봐. 머리가 어떻게 됐나?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 임무, 암살자만으로는 절대 완수 못한다.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우리들은 지금 암살자이면서, 암살자의 스킬은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은신이지. 우리들은 숨어 있다가 단검을 찔러 해치우는 게 특기인 어둠의 족속이다. 그런데 이렇게 밝은 대낮에 모습을 드러낸 채 싸우고 있지 않나?”

“상대가 마법사이니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잘 숨어도 탐지에 걸려 위치가 노출되잖나.”

“모든 직업엔 상성이란 게 있다. 아무리 최상급 암살자라 해도, 마법사를 상대로는 한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마법사들이 많다면 차라리, 방패전사와 아처를 함께 묶어 상대하는 게 효율적이다.”

“레미라 마법사들이 타깃을 감싸고 돌 줄 누가 알았겠어?”

임시리더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3년이나 계획된 일이다.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 그런데 지원은 어디 있나? 암살자가 불리한 상황인데 윗선들은 뭐하고 있지?”

“그건…….”

“아직도 모르겠나? 우리들은 버리는 말이다.”

임시리더의 말에 암살자들이 반발했다.

“어차피 암살자는 소모품이다. 이제 와서 죽는 게 두려운 건가?”

“지금 우리가 소모품으로 소모되는 거로 보이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폐기 처분되기를 기다리는 쓰레기다.”

“비약이다. 하급 암살자도 아니고, 우리들 같은 중급암살자를 이렇게 쉽게 버린다고? 어째서?”

“스컬그레이가 바하르칼 용병단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단장의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다. 이미 수많은 파벌이 싸우고 있겠지. 우리처럼 현장에 파견된 자들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에겐 누구도 회유하러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들 암살자들이 잇페인의 직속부대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들은 암살자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수많은 파벌들이 잇페인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다.

잇페인의 숨겨진 단검인 암살자부대를, 임무 수행 중 지워버릴 생각인 것이다.

“우리들의 상관이지만, 잇페인은 위험인물이지. 잔혹한 심성. 끝 모르는 마력. 무엇보다 바하르칼 용병단을 창단 할 때부터 살아온 괴물이다. 나이가 300살이란 소리다. 아마 이종족이겠지.”

사람이라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단장에 오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잇페인을 견제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먼저 세력부터 약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암살자들이 상성이 나쁜 마법사를 상대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래도 걸리는 건 있다.

“하지만 아예 지원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네크로맨서가 가세해 있다고. 라이칸스로프를 보내준 데다가, 얼마 전에는 통 크게 중급마족까지 불러내려 하지 않았나?”

“그럼 그냥 중급마법사를 붙여줘야지 왜 하필 네크로맨서지? 여긴 신성왕국이다. 네크로맨서가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확실히 네크로맨서는 지금까지 이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라이칸스로프를 통해 지령서를 보내주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했을 뿐이다. 그건 신성왕국이라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다면?

“그렇다고 잇페인을 배신하라니!”

“선택은 너희들의 몫이다. 어차피 내가 일으킬 폭발이라면, 그냥 너희들까지 휘말려 죽었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몸에 주입된 잇페인의 마력은 사실상 저주나 마찬가지. 신성왕국에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지.”

임시리더가 난데없이 복면을 벗었다. 한쪽 귀가 잘린 중늙은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암살자 훈련 중에 자주 보던 얼굴이다.

“교관?”

중늙은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칸스로프에 올랐다.

“이 자식들아. 너희들은 내 새끼 같은 놈들이다. 부탁이니까 너무 빨리 따라오진 마라.”

교관이 탄 라이칸스로프가 균열로 몸을 던졌다. 다른 라이칸스로프들도 그 뒤를 따랐다. 암살자들은 말없이 균열을 벗어났다.

“이게 뭐냐고. 젠장.”

암살자 하나가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빌헬름텔은 활을 내렸다. 저희들끼리 쑥덕대던 암살자들이 포위망을 풀고 물러섰기 때문이다.

“균열로 들어간 놈들 때문인가?”

빌헬름텔도 레미라 마법사들도 똑똑히 보았다. 모든 라이칸스로프들이 한데 뭉쳐서, 발밑의 빈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 의도야 뻔히 보이는 것.

석회암지대의 붕괴를 가속화 시켜, 아예 생매장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C그룹 사람들 중에 동요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마법사들의 절반이상이 건너갔다. 그리고 설사 붕괴된다 하여도, 말을 박차고 몸을 날리면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빌헬름텔의 경우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죽음은 페널티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빌헬름텔은 화살에 미리 밧줄을 메어두었다. 여차하면 이걸 이용해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마법사가 말을 달려 도약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발밑에서 콰르릉 소리가 울렸다. 충격이 어찌나 큰지, 단숨에 서 있는 땅덩어리가 기울며 두 쪽이 났다.

“아주 발악을 하는구먼.”

빌헬름텔은 단검을 땅에 박아 기울어진 지면에서 중심을 잡았다. 뒤 돌아보니 기울어진 부분이, 균열의 경계와 맞닿아 있다. 흡사 넘어진 팽이가 벽에 닿은 모양새다.

아무리 라이칸스로프가 힘이 좋아도, 단순히 석주를 들이받는 것만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순 없다.

빌헬름텔은 자연스레 위즈가 알려준 라이칸스로프의 자폭을 떠올렸다.

뒤이어 같은 폭발음이 나면서 균열이 심해졌다. 그걸로 확실해졌다.

“엄청나군.”

지하에서 일어난 폭발임에도, 그 충격이 고스란히 지면에 전해진다. 그리고 잇따른 충격이 지면에 생겨난 균열을 더욱 넓게 퍼뜨리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 가해진 폭발의 압력이 빠져나올 곳을 찾아 팽창하면서, 지면을 찢고 나오는 것이다.

갈라진 틈으로 시커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저게 어둠의 마력 같은 거로군.”

폭발의 피해도 피해지만, 저것에 닿는 것도 데미지가 크다.

그래서 빌헬름텔은 섣불리 움직이기 보다는, 검은 아지랑이가 충분히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한 번의 폭발음이 울렸다. 이번엔 레미라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 들썩였다. 마법사들은 놀라는 말들을 달래 호숫가로 피신했다.

빌헬름텔은 더 이상 기다렸다간 발 디딜 곳조차 사라질 것 같다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겠지.”

그는 지면에 박아 넣은 단검을 밟은 채 활을 쏘았다. 밧줄을 매단 화살이 날아가 나무를 관통했다. 줄을 당겨보니 화살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빌헬름텔은 밟고 있던 단검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몸은 경사진 노면을 따라 미끄러져갔다. 빌헬름텔의 발이 깎아지른 절벽에 닿았다. 균열의 경계면이다. 발 디딘 땅덩어리가 기울어지며 푹 꺼진 바람에, 균열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가 되어있었다.

화살에 메어진 밧줄을 타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발밑에서는 계속해서 뻥뻥 소리가 울렸다. 그럴 때마다 절벽에서는 흙더미가 쏟아졌다.

“끙!”

비로소 땅을 밟은 빌헬름텔의 뒤에서, 이제까지 밟고 있던 지면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 바람에 빌헬름텔이 올라선 균열의 경계면이 깎여나갔다.

빌헬름텔은 즉시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붕괴를 피한 빌헬름텔은 몸을 일으켰다.

“음?”

손을 짚은 바닥이 이상하게도 푸석거린다. 손가락을 세워 긁어보니 미세하게 실금이 가 있다. 하지만 당장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빌헬름텔은, 사냥꾼에게 배운 추적 스킬을 발동했다.


<헌티드 워크를 사용했습니다. 지면에 남겨진 흔적을 살필 수 있게 됩니다.>


조금 전 발견한 실금이 붉은 색 실선으로 표시되었다. 고개를 든 빌헬름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실금은 폭발이 일어난 주변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레미라 마법사들이 피한 호숫가주변은 물론, 무너져 내린 땅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까지 퍼져 있었다.

최소한 지름 1킬로미터에 달할 것으로 보았다.

쿠궁!

다시 한 번 발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빌헬름텔의 눈앞에서 외곽지역에 균열이 새로이 생겨나는 게 보였다.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우연히 실금이 멀리까지 퍼진 게 아니라, 일부러 만든 것이라고?”

빌헬름텔은 문득 지면에 드러난 실금이, 뒤쪽에 무너져 내린 땅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실금이 생겨나 약해진 석회암지형이 원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심부는 이미 붕괴되어 깔때기와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의 머리로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건 파괴력을 일점 집중 시킬 수 있는 구조다.

“먼로 효과야……일개 게임의 NPC가 파괴공학의 원리를 사용하다니.”

폭발의 진원지가 제각각이었던 것을 간과한 탓에 적의 의도를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분명해졌다.

앞서 붕괴된 곳은 이제 완전히 붕괴되어 깔때기 모양에 가깝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중심부를 기준으로 수 백 미터의 원을 그린 가상의 테두리.

그 테두리 부분까지 미세한 실금이 가있다.

이제 중심부에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면, 파괴에너지가 중심부에 모여 대상을 관통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관통을 노린 게 아니다.

미리 실금이 가게 만든 땅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다.

지면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니 분명 그렇게 된다.

빌헬름텔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폭발은 지면에 실금을 퍼뜨리기 위한 밑 작업이었다. 진짜 폭탄을 사용했다면 쉽게 의도를 알아챘겠지만, 이 게임의 배경은 서양풍 중세에 가깝다. 기껏해야 분진 폭발이나 응용하는 시대이니, 효과적으로 폭발을 통제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설마하니 1킬로미터나 되는 땅을 통째로 가라앉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곧 마지막 폭발이 일어나면 모두가 추락사하게 된다.

지금부터 마법사들이 전력으로 말을 달려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여긴 신성왕국이니 비행주문조차 쓰지 못한다. 나야 이방인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저들은 NPC.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빌헬름텔은 흔들리는 대지를 차분히 걸어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이런 곳에서는 로그아웃조차 할 수 없다. 빌헬름텔은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때 빌헬름텔에게 메시지가 왔다. 위즈가 보낸 것이었다.

- 지금 제가 보낸 아군이 그리로 먼저 갔습니다. 균열 때문에 분단되었다고 했죠? 일단 균열을 메워버릴 테니, 일단 한곳에 모여 대기해주세요. 저 혼자는 처리하기 힘든 적이 있어서, 녀석을 꽁무니에 단 채 그리고 가고 있습니다. 제가 신호하는 대로 총공격을 퍼부어 주세요. 빌헬름텔님은 네이쳐스 아크로 장거리 저격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빌헬름텔의 얼굴이 환해졌다.


작가의말

연참 1일째. [9,480 자]



2014.11.08 수정

[9,480 => 9,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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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14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4) +4 15.03.19 883 23 29쪽
145 14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3) +5 15.03.16 954 16 32쪽
144 14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2) +3 15.02.16 1,202 19 27쪽
143 14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1) +4 15.01.25 993 15 29쪽
142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4 14.12.26 854 27 42쪽
141 13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9) +5 14.09.21 953 23 38쪽
140 13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8) +3 14.08.17 1,143 27 23쪽
139 13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7) +3 14.08.04 750 21 18쪽
138 13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6) +1 14.07.30 751 16 23쪽
137 13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5) +7 14.07.23 848 24 23쪽
136 13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4) +3 14.07.21 728 29 27쪽
135 13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3) +2 14.07.18 843 24 22쪽
134 13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2) +4 14.07.17 769 21 23쪽
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3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6 37 29쪽
»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7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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