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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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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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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2쪽

13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0)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50.

처음엔 아무도 이곳에 오려 하지 않았다. 땅이 통째로 뒤집어지는 폭발로 인해 다들 도망가느라 정신없었다. 게다가 지반이 약해졌는지 추가로 붕괴되고, 지옥에서나 들을 법한 끔찍한 울부짖음 같은 게 들렸다.

그렇다고 안 올 수는 없었다. 아이린의 실종과 관련 있다면, 당연히 이 폭발에 대해 보고해야만 한다.

“허……엄청나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을 꺼낸 레미라 마법사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다셨다. 그의 시선은 눈앞의 광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뜨거운 수증기가 부옇게 몰아치는 너머로,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 깊이를 가늠 못할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이것은 과장된 표현.

바닥으로 보이는 곳에서 불꽃이 일렁대고 있으니, 대강의 깊이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다만, 그 깊이가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벗어나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설마 저건 마그마인가?”

누군가 입을 열었다. 수증기가 심하게 피어오르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바닥으로 검붉은 뭔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 의문을 누군가 받아주었다.

“그럴지도. 이만한 폭발이라면, 지하의 용맥을 건드리고도 남을 테니.”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화산폭발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마그마가 흘러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

학자군 직업인 마법사들은 재난에 휩쓸릴 뻔한 것조차 잊고, 저 아래쪽 상황을 살피기 바빴다. 그때 어떤 번쩍임이 생겨났다.

“어?”

눈을 비비던 마법사는 자신이 잘못 보았겠거니 여겼다. 매운 유황연기 때문에 착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번쩍임이 일어나자, 마법사는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용암이 흐르는 초고온의 대지위에서, 누군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방인 위즈가 살아남았군.”

그 사이 탐지를 사용한 마법사가 털썩 주저앉았다. 마력패턴은 위즈와 일치했다.

여기까지야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헐떡이는 마법사였다.

마법사들은 의아해 했다. 고작 탐지를 사용한 것만으로 지치다니?

“폭발 때 어디 다친 게 아닌가?”

“그게 아니네. 이상하게도 저 아래쪽은 EMP가 미쳐 날뛰고 있어.”

“그릴리가? 이곳은 신성왕국의 외곽일 텐데…….”

하지만 곧 마법사들은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매직애로우가 허공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나, 깊숙이 파인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헛? 저것은…….”

“틀림없어. 고위주문의 발현에 따른 EMP의 폭주 현상.”

그렇다면 엄청난 폭발로 생겨난 구덩이와, 그 전에 감지된 막대한 양의 마력방출이 설명된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의 마력방출 덕분에 마법사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대피할 수 있었다.

사용된 주문의 종류는 몰라도 마력량만큼은 어마어마했으니까.

“가만……위즈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누군가 흘린 의문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멍해졌다.

고위주문, 전설의 미티어 스트라이크 같은 괴물 같은 주문을 사용한 직후엔 그 지역의 EMP가 고갈된다. 뒤이어 고갈된 분량을 채우기 위해 외곽의 EMP가 밀려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거칠어진 EMP가 저절로 뭉쳐져 매직애로우가 생겨난다.

하찮은 주문이라도 숫자가 많으니 그 파괴력은 가히 전설의 주문 못지않다.

게다가 그만큼의 주문이 생겨나면서 또 EMP가 소모되니, 다시금 고갈된 EMP를 채우기 위해 외곽지역에서 EMP를 끌어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 매직 미사일이 생겨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현상은 EMP가 안정될 때까지 반복된다.

하늘에서 무한정 날벼락이 치는 빌어먹을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마법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용암으로부터 전해지는 열기는 화염내성이 있다 해도 쉽게 버텨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설사 버틴다고 해도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탈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하늘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매직 애로우는 어떤가?

가랑비도 소나기도 아닌, 우박 폭탄과 다를 게 없다.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

더 놀라운 건 간간히 눈에 띄는 번쩍임이다.

저건 단순한 스킬의 빛이 아니다.

“말도 안 돼! 마법이잖아!”

“그럴 리 없어! EMP가 미쳐 날뛰는 곳에서 무슨 수로 마법을 써?”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우리도 초급주문이라면 쓸 수 있지 않나?”

“저 불구덩이 속에서? 제정신이야?”

“잠깐. 하나가 아냐. 두 사람이다.”

그 말에 다시 확인해보니 번쩍임은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앞 다투어 탐지를 쏘아 보냈다.

한껏 출력을 높인 마력의 고리가 깊이를 모를 구덩이를 샅샅이 훑었다. 마력의 고리에 분명히 두 개의 생명반응이 걸려들었다. 그리고 두 개의 마력도.

EMP의 응집과 풀림이 반복되었다. 본신의 마력으로 얽어맨 EMP가 길게 줄기를 그리며 쏟아졌다. 이 순간에는 어쩐지 마력의 종류가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확인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불과 1~2초의 짧은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증거.

“하나가 위즈라면……다른 하나는 대체 누구지?”

“일행 중 다른 자들 아닐까?”

“같은 편끼리 왜 싸우겠어?”

이방인 세 사람 중에, 아이린의 신변에 이상을 느끼고 돌아온 건 위즈가 유일하다. 그리고 조금 전의 탐지주문으로 확인해보니,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마력패턴이기도 하다.

“일단 적일지도 모르니 준비는 해두어야겠군.”

마법사들은 제자리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EMP의 흐름이 잔잔해지면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될 것이니…….


◇◇◇◇◇◈◇◇◇◇◇◇◈◇◇◇◇◇◇◈◇◇◇◇◇


포탈이 발동되는 순간, 위즈는 보았다.

너무도 선명했다. 마력이 뒤얽히며 생겨난 빛 속에서 태어난 술식의 타래들이.

그것들은 등나무 줄기처럼 굵게 친친 감기며 아라베스크와도 같은 복잡한 문양으로 변해갔다. 같은 모양의 패턴이 무수히 반복되며 전체를 이루니 그것 말고 다른 걸 떠올릴 수 없었다.

전형적인 프렉탈 구조.

평소부터 이러한 장식물을 숱하게 보아왔기에 위즈는 그 패턴을 자연스레 기억해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마력을 많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술식이야.’

포탈의 작동에 필요한 술식은 이미 존재한다.

파헤쳐진 바닥에 드러난 것들.

그런데 다시금 술식이 짜이는 모습을 보노라니 의문이 생겨났다.

아이린을 집어삼킨 빛은 포탈에 의한 것. 이미 엄청난 양의 EMP가 몰려드는 상황이다.

헌데, 그 아수라장 속에서 저렇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또 다른 ‘술식’이 존재하는 게 가능할까?

위즈가 알기론 그렇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술식이 겹치면 상쇄돼지. 그러니 두 번째 술식은 존재해서는 안 돼.’

하지만 프렉탈 구조의 두 번째 술식은, 뻔히 눈앞에서 빛나고 있다.

겹친 상태인데다 둘 다 작동한다. 마냥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위즈는 죽음을 맞았다.


<캐릭터 ‘위즈’가 사망했습니다.>

<사망 패널티를 받아 힘 스탯 5가 깎입니다.>

<망령화 상태가 1시간 유지됩니다.>

<걸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당신은 헤엄치듯 이동할 수 있습니다.>

<1시간 내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다행이군. 일단 곰곰은 펫 인벤토리에 넣었고, 핏스톤은 멀리 대피시켜두었으니까.’

위즈는 투명해진 자신의 몸을 뚫고 토사가 내려와 쌓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있었지만, 유령의 육체는 쏟아지는 토사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버렸다. 그러다보니 위즈는 자신이 스스로 움직여 이 토사의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는 착각을 느꼈다.

고운 흙의 입자와 간간히 섞인 돌들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그럴 만도 했다.

‘지렁이에게 눈이 있다면 이렇게 보일지도 모르지.'

위즈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가상현실게임이란 이래서 좋단 말이지.’

어이없는 죽음이긴 했으나, 유령이 된 몸이 지표면을 관통해 움직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위즈는 그리 나쁘진 않은 죽음이라고 중얼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사의 흐름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엔 천장이 무너지며 파편과 자갈이 섞였지만, 점차 순수한 흙만이 흘렀다. 그러다가 다시 돌조각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흙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상태임에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망령화 상태인 위즈의 시각이 마치 엑스레이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상에 있을 때는 그냥 평범한 인간의 시각으로 게임 속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망령화 상태에 이런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흠……이게 유령의 시각이라 이건가? 그럴듯하군.’

유령이 된 위즈의 시각에는 온통 시커먼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간간히 은은한 회색의 반투명한 실루엣이 시야에 잡혔다. 그것들의 모양으로 미루어 흙속에 섞인 돌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돌 부스러기가 많이 섞인 건, 무너진 지하구조물 때문이었어. 그렇다면 이제 와서 다시 돌이 섞이는 건 어째서지?’

별것 아닌 변화였지만 위즈는 마음에 걸렸다. 위즈는 문득, 나중에 들어온 돌들이 일정한 모양을 갖춘 것을 깨달았다.

어떤 것은 기다랗고, 어떤 것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도 했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전부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제서야 위즈는 이 돌들이 지상에서 온 것을 알았다.

‘맞아, 포탈이 가동되면서 지상의 폐허에까지 영향을 준거야!’

아마 지상에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함께 온 일행들이 걱정되었지만, 조금 전 EMP가 날뛰던 장면을 떠올린 위즈는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 사람들도 명색이 마법사니까, 위험한 줄 알고 피했겠지.’

위즈는 토사의 흐름을 거슬러 천천히 움직였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포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이린은 알지 못할 곳으로 보내졌다. 그건 이미 일어나 버린 일. 이제부터 아이린을 어떻게 구해내야 할지 궁리해야 한다.’

그 첫 걸음이 포탈의 관찰이다.

지상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 확인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이렇게 망령화 상태에서 해결하는 게 더 나았다. 그렇지만 보는 걸로 끝나선 안 되었다.

눈으로 본 것을 밖에 알려야 했으니, 스크린샷을 찍든지 하다못해 글로 적어놓아야 했다.

‘근데 난 지금 유령이잖아?’

필사 스킬도 있고, 인벤토리에 필기구도 있다. 그걸 쓰려면 지금 이곳에서 부활해야 한다.

‘땅속에 낀 채로 부활이라…….’

당연히 생각할 가치도 없는 멍청한 짓거리.

스크린샷을 찍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렇게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선 소용없다. 카메라 렌즈에 흙덩이를 가져다 댄 거나 마찬가지이니, 제대로 뭔가를 찍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망령화가 되면 유저가 사용할 수 있는 게임 속 기능에 제한이 걸린다.


<망령화 상태에서는 스크린샷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걸 어쩐다?’

포탈이 있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 위즈는 지금의 결정에 회의적이었다. 뭔가 정보를 알아내려고 해도, 당장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뭘 어쩔 것인가.

그때 위즈는 자신이 있는 장소가 흙 알갱이로 가득 찬 곳에서, 균일한 회색 빛 공간으로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위즈는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보았다.

‘여긴 땅속이야. 그리고 난 유령. 지금까지는 흙의 고운 입자들이 유령인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사방이 회색인 공간이 나타났다. 빈공간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속이 회색인 어떤 것을 내가 뚫고 지나간다는 뜻이야. 이곳에서 회색인 건……돌, 바위뿐이야.’

위즈는 일단 크기부터 살폈다.

돌의 크기는 백여 미터를 훌쩍 뛰어넘었다. 게다가 표면에 마법 술식으로 보이는 홈들이 무수히 존재했다.

지하에서 이런 모양의 돌이라면, 포탈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땅에 파묻혀 있을 뿐,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원하던 것을 찾았음에도 위즈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좀 더 많은 걸 알고는 싶지만, 기록할 방법이 없으니 이 이상 관찰은 무의미하다.’

미련을 버린 위즈는 지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때였다.

드드드득.

아래쪽으로 흐르던 토사가 반대방향으로 쓸리며 급격한 움직임을 보였다.

‘뭐지?’

가상의 한 지점을 중심으로 토사의 흐름이 왜곡되고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뭔가가 흙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위즈는 포탈 주변에 펼쳐져 있던 이상한 결계를 떠올렸다.

‘설마 그게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건가?’

결계는 출입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흙이 밀려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게다가 반드시 막아야 할 적에 따라 여러 가지 특성까지 부가 된다.

예를 들면 에켈 요새의 결계가 그렇다.

위즈가 게임을 시작한 곳은, 더 오션 속에서도 강성한 국가로 손꼽히는 크레센토 왕국이었다. 그 수도인 미노클 근처에 세워진 요새가 바로 에켈 요새.

이 요새는 말만 요새였지 사실은, 핏스톤을 봉인해둔 장소였다.

따라서 마족이나 언데드의 침입을 막기 위한 특성이, 결계에 추가 되었다.

지금처럼 망령화 상태의 유저는 지나갈 수 없는 것이다.

‘저 결계가 그렇다면 나도 밀려날 테지.’

그렇지만 위즈는 물러서지 않고 미적거렸다. 혹시나 싶어서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흙의 움직임이 멎었다.

정확히는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보는 게 옳았다.

위즈는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결계가 흙을 밀어내버리고 생긴 공간, 그러니까 포탈의 안쪽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언데드를 막지 않아?’

위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포탈은 항마전쟁 당시, 마족들의 눈을 피해 witch가 만든 시설이다.

그 당시 언데드가 하급병사로 사용되었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당연히 언데드의 접근을 차단하는 결계가 쳐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엔 망령이 된 위즈가 버젓이 들어와 있다.

망령은 언데드의 일종.

결국 이 결계는 단순히 물리력만을 행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앞뒤가 맞지 않아.’

이상함을 느낀 위즈의 눈에 금속성의 물체가 들어왔다. 결계내부의 공간에 떨어진 그것은 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지만, 그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방패? 가만……저건 빙글뱅글이 들고 있던 거잖아?’

어차피 유령 상태이니 위즈는 거칠 것이 없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로 했다. 그때 방패 근처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쑥 솟았다.

흐느적거리는 그것은 수면에 떨어뜨린 기름처럼 주변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기체는 아니었고, 액체 상태는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에 그것은 망령화 상태인 위즈의 몸을 관통하는 듯 보였다.

‘뭐지 이건?’

위험해보이지 않았기에 위즈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것은 삽시간에 위즈의 몸을 휘감아버렸다.

‘윽!’

물체를 통과시키는 유령의 몸이 구속되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빙글뱅글의 방패에서 튀어나왔으니, 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위즈는 당황하여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단단히 죄어들었다.

투명한 육체는 방패 쪽으로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인스턴트 필드-망자의 아가리에 들어오셨습니다. [20분 지속]>

<현재 필드에선 생명체의 모든 스탯이 -50%가 됩니다.>

<현재 필드에선 생명체가 배운 모든 스킬이 봉인 됩니다.>

<현재 위즈님은 언데드입니다. [망령화 해제까지 남은 시간 48분]>

<몸이 무거워집니다 : 언데드 종족에게 이동속도 -20%>

<직감 : 20미터 범위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이곳에선 사망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출력된 시스템 메시지보다도, 갑자기 바뀐 배경이 위즈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뭐야, 여긴?”

안개가 옅게 끼어 있는 땅은, 살짝 질척대는데다가 역한 냄새가 났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피어오르는 악취 때문에 위즈는 골이 지끈거렸다. 이런 곳이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도 없다. 누가 이런 곳을 좋아할까. 유저들에게 기피될 테니 알려지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런 곳을 이미 들어와 버렸으니 위즈가 할 행동이야 정해져 있었다.

위즈는 즉시 주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계속 머물러 있을 장소가 아니다.

앉아서 쉬는 것은 생각도 못할 질척대는 바닥. 끊임없이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악취.

무엇보다 이 필드에 들어온 과정이 미심쩍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빙글뱅글의 방패에서 튀어나온 무언가에 붙들려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인스턴트 필드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 필드는 상호 동의하에 생성되는 것.

하지만 위즈는 여기 들어오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안심할 수 있겠냐고. 음?’

위즈는 걸음을 멈췄다. 안개가 급격히 옅어지면서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이동하는 안개.

그 경계를 따라 움직여보니 대략 30평방미터의 공간이 나왔다. 슬쩍 아래를 살펴본 위즈는 이곳이 깎아지른 절벽 위의 공터 같은 곳임을 깨달았다. 건물 안도 아닌, 필드가 이렇게 좁은 경우는 흔치 않다.

위즈는 앞서 출력된 시스템 메시지를 불러내 살폈다.


<직감 : 20미터 범위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30평방미터 중에서 20미터 범위를 감지 할 수 있다라……어째서 이런 능력치가 주어진 거지?’

고민해봐야 알 수 없었다. 주변을 살펴본 성과도 미미했다.

방패가 떨어져 있던 삭막한 풍경이, 난데없이 절벽 위로 바뀐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빙글뱅글의 방패는 어디에 떨어진 거지?”

이 이상한 필드로 온 건 방패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패를 찾으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위즈는 방패를 찾아 움직였다. 땅바닥은 흐르는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위즈는 허리를 구부리고 걸어야 했다. 온 신경을 방패 찾기에 쏟던 위즈의 귀가 움찔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냥 무심코 지나친 거였는데,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위즈는 아직 망령화 상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울처럼 형체를 지닌 언데드도 아니고, 유령에 불과한 존재가 걷는데 소리가 난다?

‘설마…….’

위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했다. 누군가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 위즈 말고 사람이 더 있었다.

하지만 위즈의 감각에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 필드에서만은 20미터 이내의 움직임은 모두 감지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은, 상대가 20미터라는 감지 범위를 벗어난 곳에 있다는 뜻이다.

‘20미터라는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나처럼 절벽의 언저리에 바싹 붙어 있다는 뜻이로군.’

상대의 의도가 드러나자, 위즈는 두 가지 사실을 더 알아낼 수 있었다.

자신의 위치는 이미 파악 당했다는 것. 그리고 상대는……

‘날 여기까지 끌고 온 자.’

위즈는 방패 찾기를 중단하고 허리를 세웠다.

“숨어있지 말고 나오시지?”

안개 속에서 보랏빛 전광이 일렁거렸다. 안개가 갈라지면서 짙은 회색의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망령이 된 상태이니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상대의 스킬이 뭐건 간에 몸을 통과해 지나갈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장소에 오기 전 유령상태의 몸이 꽁꽁 묶이는 경험을 했다. 지금 날아드는 저 덩어리를 맞고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뭐인지 몰라도 일단 피하자.’

계산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위즈는 허리를 꺾으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모습은 꼴사나웠으나, 곧 탁월한 선택임이 밝혀졌다.

회색 덩어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쾅! 쾅! 쾅!

분명 날아든 것은 하나였는데,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며 필드가 흔들렸다.

위즈는 땅을 짚고 일어서려다가 흠칫했다.

“이건?”

폭발의 충격으로 생겨난 균열이 근처에까지 퍼졌는데, 균열 사이로 초록색 그리드 선이 노출된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위즈는 구형 단말기의 데이터를 복구하는 일을 한다.

그러니 게임 속의 데이터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건 ‘더 오션’이라는 게임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가 형상화 된 것이었다. 관계자도 아닌 한낱 유저가 볼 수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조금 전 공격으로 필드가 깨지며, 프로그램 코드가 드러났다.

“필드가 아니라……프로그램 자체를 붕괴시켜?”

그런 힘은 운영진이 가질만한 권한이다.

물론 핵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걸 굳이 다른 유저에게 보여줄 이유는 없다. 그냥 혼자서 핵에 의한 이득을 취하면 그만. 그러니 공격한 자는 부정사용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역시 운영진뿐.

‘하긴……당장 이 게임의 운영진을 만나도 이상할 게 없지.’

구원절. 파이오니어 컴퍼니의 업적을 기리는 중요한 날.

파이오니어 빌딩이 테러 당했다.

그리고 다음 날. 파이오니어 컴퍼니와 대립하는 콜로니 연합의 회사 하나는 사장이 교체되었다.

바로 마도로스社.

지금 위즈가 하고 있는 더 오션을 서비스 하는 회사다.

사장이 교체된 이유는, 게임의 모든 데이터가 초기화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저들이 키워놓은 캐릭터와 계정들은 모두 삭제되었다.

현대는 게임 속의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현금화 하는 시대.

그래서 해킹으로 게임 데이터가 날아간 것을, 애들 장난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현실에까지 금전적인 피해를 입힌 셈이었으니, 당연히 그 수습을 위해 사장까지 교체한 것이다.

그 모든 일을 벌인 건, 다름 아닌 편재.

지금 이 게임을 하고 있는 위즈다.

‘그런데 난 파이오니어 컴퍼니 쪽 사람이란 말이지.’

파이오니어 컴퍼니와 콜로니 연합.

백여 년 전만 해도 이 두 세력은, 무력충돌을 빚으며 피를 흘린 관계다. 지금은 그것을 지양하며 평화노선을 걸어가고 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파이오니어 빌딩의 테러가, 콜로니 연합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사실 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파이오니어 컴퍼니 회장의 아들인 편재가, 콜로니 연합 계열사인 마도로스社의 게임을 해킹한 것을 보복으로 여길 소지가 크다.

편재가 건드린 건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그로인해 금전적 손실을 본 유저들에게 보상하느라, 콜로니 연합은 큰 손실을 입었다.

해킹을 한 범인을 찾아 동분서주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위즈-아니, 편재는 그 시기가 적어도 6개월 뒤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마도로스社의 직원들은 유능한 모양이었다.

‘이건 너무 빠른데?’

꼬리를 잡혀 감옥에 가는 거야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자신은 누나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뭔가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위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이봐요……왜 다짜고짜 공격인 겁니까?”

말을 붙이면서 위즈는 공격이 들어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감지거리까지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상대가 마도로스社 직원일 거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야겠지. 내 판단이 잘못되어 상대가 적이라 해도, 거리를 좁히는 쪽이 더 이득이다.’

조금 전의 공격은 사실상 필드를 구성하는 코드가 드러날 정도의 강력한 데이터 변조다.

그것에 맞으면 ‘위즈’라는 유저의 데이터 역시 해체되고 말 것이다.

‘삭제당하는 것과는 다르니, 복구야 가능하겠지.’

문제는 위즈에 대한 데이터의 복구 권한을 가진 게 마도로스社라는 것.

복구를 핑계로 마음대로 주물러댈 수 있다면, 해킹에 대한 물증을 단숨에 잡아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대가 운영진이든, 핵 유저이든 간에 저 공격에 맞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대답 좀 해보시죠?”

재차 말을 붙였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안개너머로부터 보랏빛 전광이 타올랐다.

“쳇!”

안개가 뚫리며 소용돌이쳤다. 조금 전의 그 회색 덩어리였다. 이번엔 머리가 아닌 몸통을 노리고 있었다.

위즈는 조금 전처럼 몸을 뒤로 뉘어 피하려고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회색덩어리가 포크볼처럼 궤도가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위즈는 그 즉시 몸을 굴렸다. 미친 듯이.

하지만 그걸 피해도 문제다. 필드를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으로 보건데, 30평방미터의 땅덩어리는 산산조각 나서 없어져버릴 것이다.

“운영자가 유저를 상대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악다구니를 쓰자 회색덩어리가 멈추더니 자취를 감췄다.

안개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마치 내가 누군지 안다는 그 태도라니. 그래. 뭣 때문에 날 운영자라고 단정 짓는 것이지?”

“저 바닥의 그리드 선은 게임의 얼개입니다. 틀렸습니까?”

“맞다. 더 오션이라는 프로그램 덩어리의 중추지.”

“일개 유저는 그걸 조작할 수 없습니다.”

“1달 전에 벌어진 해킹은 운영진과는 관련이 없었지.”

“그거야 해커가 툴 가지고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이거 왜 이러시나?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응? 위즈, 아니…편재라고 불러줄까? 파이오니어 컴퍼니의 직계. 그것도 회장의 아들.”

위즈는 심장이 덜컥 멈추는 것만 같은 충격을 맛보았다. 게임 속에서 본명은 물론이고, 소속 세력까지 언급되었다. 노인이라면 심장발작이 오고도 남을 충격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위즈는 입을 꾹 다물었을 뿐 겉보기로는 이상이 없었다.

위즈는 노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히 마음의 준비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혀 놀라지 않은 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려 나올까봐 일부러 입을 꾹 다문 게 그 증거.

‘대체 왜 여기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이미 조사를 다 끝마치고 체포영장까지 나온 거란 말인가?’

위즈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럴수록 게임 속의 캐릭터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다.

오죽했으면 이런 시스템 메시지까지 떠올랐을까.


<멘털 그래프가 반전되었습니다.>

<강제 로그아웃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상대는 이미 자신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해킹에 대한 물증은 없어 보였다. 정말 증거가 있다면 정식으로 항의를 할 수도 있었다.

‘아니 공격을 할 게 아니라, 운영자의 신분을 밝히고 날 강제로 로그아웃 시켰을 거야. 그래야 데이터를 압수해 조사에 착수할 수 있으니까. 그러지 않았다는 건, 역시 날 떠보기 위해서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해.’

위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활을 시전 했다.


<망령화 상태가 해제됩니다.>

<캐릭터가 부활하였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현재 필드에선 생명체의 모든 스탯이 -50%가 됩니다.>

<현재 필드에선 생명체가 배운 모든 스킬이 봉인 됩니다.>

<현재 위즈님은 인간입니다.>

<몸이 무거워집니다. : 인간 종족에게 이동속도 -20%>

<직감 : 20미터 범위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이 필드는……뭐랄까…좁아터진 것도 그렇고, 이동속도 페널티도 그렇고. 그냥 사람 하나 처넣고 갈굴 목적으로 만든 것 같군요?”

“정확하다.”

너무도 간단하게 수긍해버리자 위즈 입장에선 황당할 뿐이었다.

“이보세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겁니까? 일개 유저를 핍박할 용도로 만든 장소라니! 이건 범죄입니다. 이런 곳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마도로스社는 지탄 받을 겁니다.”

유저들의 데이터를 홀랑 날려먹은 게 불과 한 달 전에 벌어진 일.

이 장소의 용도가 알려진다면 사람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게임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게임회사는 문 닫을 만큼의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 벌어진 일이라고 다를 리 없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크크크. 이봐. 부활한 이유가 고작, 스크린샷을 찍고 녹음하기 위해서라면 소용없을 것이야.”

위즈가 증거를 만들기 위해 촬영을 시작한 것 알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해명도 하지 않았다.

“설마 내 데이터를 지워버리려고?”

“이보라고. 난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럼 저건 뭡니까?”

위즈는 바닥에 드러난 그리드 선을 다시 가리켰다. 조금 전의 공격이 만든 결과다.

“유저에겐 안 통한다. 정확하게는 아이템 종류의 오브젝트에만 통하는 거지.”

“아이템? 환경이 아니라 아이템?”

“여긴 필드가 아니다. 정확히는 내가 구축한 아이템 속 공간이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필드를 만들 능력이 있으면서 운영자가 아니라고? 뻔뻔한 줄 알아야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난 그럴 능력이 없다. 직접적으로 운영자라고 말한 적도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필드를 만들 권한은 마도로스社에 있다.

그럼에도 운영진이 아니라고 우기니 위즈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태도를 보아하니 끝까지 발뺌할 테지. 그럼 다른 걸 물어보자’

위즈는 자신을 이곳에 끌고 온 용건에 대해 물을 생각이었다. 헌데 몸이 달아 있는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뜻밖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너, 아이린 어쨌어?”

“뭐, 뭐요?”

위즈는 어리벙벙해졌다. 아이린이란 이름을 안다는 건, 적어도 그 애와 접촉했거나 관련 퀘스트를 받은 적이 있다는 뜻.

거기에 아이린의 안위까지 묻는다면, 100% 포탈과 관련 있었다.

포탈이 가동된 사실은 물론, 아이린이 알지 못할 곳으로 날려간 것도 안다는 뜻.

그리고 포탈을 가동한 사람이자, 아이린을 포탈에 밀어넣은 건 빙글뱅글.

‘망자의 아가리’라는 인스턴트 필드에 들어온 계기도 빙글뱅글의 방패 때문이다.

‘최소한 빙글뱅글 본인이거나, 한패거리!’

위즈는 몰래 스킬창을 열어 확인했지만, 스킬창은 회색빛으로 죽어 있었다. 위즈는 지금의 필드에서는 스킬을 쓸 수 없다는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를 기억해냈다.

반면 상대는 여전히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이건 상당한 페널티. 다른 사람이라면 싸움을 포기했을 것이나 위즈는 달랐다.

‘그렇다면 그냥 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수밖에 없겠군.’

더 오션 초기부터 지금까지 위즈는 한 결 같이 무능력자를 고수해왔다.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만능(萬能)의 길을 걷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카피캣을 얻고,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하나둘 늘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능력자임을 망각한 적은 없었다.

무능력자이기에 더 오션의 NPC들에게 인정받는 건 힘들었다. 퀘스트를 받는 건 어려우며, 보상 역시 다른 유저들에 비해 박하다.

그럼에도 만능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건, 더 오션과 연동된 현실의 폐쇄구역 때문이다.

수많은 폐쇄구역 중 하나에 갇혀 있을 누나를 찾기 위해.

‘게임을 포기하고, 다시 현실에서 해킹을 통해 폐쇄구역을 열까?’

그것은 무수히 시도해 보았으며, 무수한 실패를 경험한 방법.

이제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 때, 때맞춰 벌인 일이 게임과 현실의 보안 시스템의 연결이다.

아직까지는 이 둘이 연결된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들통 날 위험은 커진다.

만에 하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게임을 통해, 모든 구역을 지배하려한다면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해킹에 대한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계속해서 교란 작업을 벌이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네메시스라는 이름의 AI.

위즈는 네메시스의 본체에 해당하는 셸터의 거대함을 잘 알고 있다. 그만한 크기의 연산장치라면,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그 덕에 1달이 지나가도록 위즈는 의심받지 않았다.

콜로니 연합이 놀고 있는 건 아닐 텐데도, 아직까지 범인을 못 잡는 것은 그만큼 네메시스가 유능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위즈가 겪는 위기도, 네메시스가 개입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네메시스는 지금까지의 교란 작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네메시스는 해킹할 때 읽어 들인 게임의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줄 수 없다.

‘적어도 게임 속에서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네메시스의 작업에 방해가 될 뿐이야.’

위즈는 머리를 굴렸다. 아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지금 위즈가 서있는 필드-망자의 아가리는 어떤 스킬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반면 상대는 적어도 1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일단 이건 말이 안 되잖아.’

필드 진입 시 출력되는 시스템메시지는 절대적인 것.

게임초보도 이해하기 쉽도록 던져주는 최소한의 힌트이다.

그 내용은 ‘현재 필드에선 생명체가 배운 모든 스킬이 봉인 됩니다.’ 이다.

이 말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위즈는 단박에 언데드를 떠올렸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더 오션에서 언데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장거리 스킬이 전무하다. 체력을 내구도가 대체하고, 마력게이지는 아예 없으니까.’

언데드임에도 마력게이지를 가진 건, 보스나 중간 보스급 뿐이다. 언데드라는 종족을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둘째 치고라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종족이니 마법 같은 걸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이 역시 이슈가 되어 사람들에게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인간.

상대를 인간이라 가정하면 정말 스킬을 쓰는 건 말이 안 된다.

콕 집어 생명체가 배운 스킬은 사용 못 한다고 되어 있었으니…….

이것은 절대조건.

‘근데 말이 참 이상하네? 배운 스킬을 못 쓰게 한다면, 안 배운 스킬은 써도 된다는 말인가?’

사람이 배우지 못한 걸 알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스킬도 배워야지 쓸 수 있다. 안 배운 것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라? 하지만 난 마법을 배우기 전에도 마법을 사용했잖아?’

위즈는 모자손 건틀릿을 내려다보았다.

사용할 수 있는 전투 스킬이 부족했을 때, 몇 번이고 곤경에서 구해준 아이템이다.

모자손 자체는 그 어떤 스킬과도 연관이 없었지만, 아이템 포켓에 저장된 스크롤을 찢어 주문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모자손이 아니어도 이렇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은 참 많다. 그러니 정말로 이 필드에서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못할 생각이라면, 스킬이 저장된 아이템의 사용도 제한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

‘하? 요것 봐라?’

위즈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질퍽거리는 땅이라 걷기는커녕 뛰려 했다간 미끄러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뛰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왜 아이린의 이름이 거기서 튀어나옵니까? 대체 당신은 뭡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위즈는 막 굽혔던 무릎을 펴며 뛰어들려 했다. 그때 안개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제길……대화가 겉돌아 미치겠군. 이봐, 안개를 지울 테니까 그 자리에 꼼짝 마라.”

‘누구 좋으라고!’

위즈는 그 말을 무시하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뛰어들었다. 급격히 거리가 좁혀들면서 삽시간에 상대와의 거리가 20미터 이상 좁혀졌다.


<생명체를 감지합니다. 전방 16미터!>


‘역시로군!’

살아 있는 존재는 지금의 필드에선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상대는 스킬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데이터가 담긴 그리드 선을 노출시킬 만큼 가공할 원거리 공격.

그리고 조금 전 안개를 걷는다는 말을 했으니 해당 스킬까지.

적어도 두 개의 스킬을 사용했으니, 아이템도 두개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반면 위즈는 모자손 건틀릿에 저장된 주문이 얼음족쇄, 그것도 달랑 한 장이다.

‘하지만 그거면 족하다!’

안개가 걷히면서 필드 끄트머리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위즈는 모자손 건틀릿을 까딱거렸다.

모자손에서 쏘아져나간 주문은 목표에 정확히 명중.

득달같이 달려들며 위즈는 상대의 하단을 쓸었다. 미끄러운 바닥을 이용해 슬라이딩하면서, 발목부근을 걷어찬 것이다. 하지만 걷어찬 뒤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시큰한 통증이 일어나면서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단단한 바위를 걷어찼습니다. 발목에 금이 갔습니다.>

<5걸음 중 한 걸음은 절뚝거리게 됩니다.>


“뭐, 뭐라고?”

위즈는 땅을 짚고 일어서며 자신이 걷어찬 것을 확인했다.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그것은 비석처럼 길게 세워진 바위였다. 하지만 생명반응은 분명히 이쪽에서 감지되었다.


<생명체를 감지합니다. 터치!>


“바위가……생명체라고?”

그때 바위 표면이 우수수 떨어지며 두 개의 눈동자가 열렸다.

“역시나 정보대로로군. 불리한 상황일수록 근접전을 건다더니. 뭐 이런 멍청이가 다 있담?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나니 편안하신가, 위즈?”

상대는 카무플라주를 쓴 자신을 가리켜 정확히 ‘위즈’라고 지칭했다.

게다가 현실세계에서 파이오니어 컴퍼니 계열의 인간이란 것까지 알고 있었다.

“상대가 대화를 요청하면 웃으며 맞지는 못할망정, 대놓고 공격이라니 그게 VVIP의 긍지인가? 뭐, 지금은 소용없어 보이지만……크크크.”

상대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위즈의 이마를 건드렸다. 하지만 위즈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이어지는 상대의 말 때문이었다.

“얘기를 듣기는 했어도, 설마 진짜일 줄은 몰랐는데. 이것 참 오늘은 운수대통인 것 같군. 멍청한 AI덕분에.”

“뭐라고……?”

“너도 알 텐데? 네메시스라는 이름이지.”

“네메시스…….”

셸터를 이용해 지금의 콜로니를 더 오션과 융합시킨 AI.

위즈의 파트너이자, 해킹의 공범자.

비밀유지를 해야 할 상황임에도 네메시스는 의도적으로 위즈, 아니 편재의 정보까지 이 자에게 까발렸다.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이 노릴지도 모른다.

피가 거꾸로 솟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위즈는 분노하지 않았다. 아직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AI랑 원수라도 졌나? 뭐에 쓰이는 건지는 몰라도, 네 녀석의 정보를 아주 상세하게 보내주더군. 복수의 여신 이름을 한 AI이니 잘 대해주지 그랬어? 아무튼 그 덕에 VVIP도 만나고 말이야. 내 운도 여기서 트일 것 같군.”

“운이 트인다고? 설마 날 협박할 셈인가?”

“그래. 원래는 가볍게 돈만 뜯어내려고 했는데, 네 녀석이 일을 망쳐서 적당히는 안 되겠어.”

“어쩌라는 말이냐?”

“손해배상을 해줘야지.”

“나는 널 처음 만난다.”

“맞아. 현실에선 본적도 없고, 게임 속에서는 이제야 만난 참이지.”

“내가 무슨 피해를 입혔다고 이러는 거지?”

“아이린! 그 NPC는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조건이란 말이다. 그런데 퀘스트가 비활성화 되어 버렸단 말이다. 이 세상에서 아이린이 사라졌다는 메시지가 떴다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빙글뱅글이 포탈을 이용해 아이린을 어디론가 보내버렸다.”

이번엔 상대가 놀랐다.

“진짜냐? 빙글뱅글, 그 자식이 맞느냔 말이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아이린은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빌어먹을! 그 자식 다른 꿍꿍이가 있었구나!”

정확한 내용을 말해주진 않았지만, 그 반응만으로도 위즈는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빙글뱅글과 손을 잡았던 게 분명하다. 지금의 필드에서 기다린 것도 그렇고, 아이린을 포탈까지 인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 그래. 그러고 보면 바하르칼에서 그 많은 인원을 투입했는데도, 아이린이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건 말이 안 돼. 이 사람은 물론 빙글뱅글도 아이린이 죽길 원치 않았던 거야.’

생각해보면 빙글뱅글은 원거리에서 소환물만 보내는 소극적인 대처를 했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라이칸스로프같은 거나 소환해서 보내기보단, 좀 더 가까운 곳에까지 와서 아이린을 노리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쪽에 레미라 마법사가 있다고는 해도, 세력 수에서 압도하니 빙글뱅글이 지는 위험부담은 그렇게까진 크진 않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충분히 모험을 해 볼만 한 선택지이다.

한마디로 빙글뱅글이 아이린을 죽일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사람 역시 어떤 역할을 했을 거야. 아이린이 죽어버리면 곤란할 테니까.’

위즈는 골치가 아팠다. 이 사람과는 아이린의 안위에 자신의 신변문제까지 엮여 있다.

더 이상 게임 속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위즈의 의심은 깊어졌다. 혹시나 빙글뱅글은 이자가 해킹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눈치 채고는, 일부러 자신과 맞닥뜨리게 한 건 아닐까. 아니 빙글뱅글 역시 네메시스와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빙글뱅글은 날 보고 꼬박꼬박 W라고 지칭했다.’

W는 크레센토 왕국에서 위즈를 지칭하는 이니셜. 그 후 위즈는 대외적으로 자신을 알릴 때면 마찬가지로 이니셜을 사용했다. 그래서 대다수 유저들은 W라는 이니셜은 들어봤어도 진짜 위즈라는 이름은 알지 못했다. 빙글뱅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기만일 뿐이라면?

‘대관절 빙글뱅글은 뭘 노리는 거야?’

위즈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 막 생각을 정리한 상대가 위즈의 어깨를 툭 쳤기 때문이다.

“이봐. 우리끼리 이러고 있어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건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잠깐 동맹을 맺는 게 어때?”

“뭘 믿고?”

“믿을 필요 없어. 어차피 내 말에 따라야 하니까. 잊어버린 모양인데, 난 해킹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가지고 있다고.”

상대의 협박에 위즈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지만, 여기서 화를 냈다간 정말 해킹에 대해 터뜨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폐쇄구역을 열어 누나를 구하는 일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고 만다.’

내키지 않았지만 위즈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계획은?”


작가의말

성탄절, 남는 시간을 전부 글쓰는 데에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분량 폭탄이 만들어졌습니다.


50(E)로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빙글뱅글이 두들겨 맞아야 하므로 조금 늘리게 되었네요. 뭐, 그런 거지요. 흠


아무튼 간만에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언제나 오늘만 같다면 참 좋겠군요.

늦었지만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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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1) +2 14.07.16 817 22 25쪽
132 12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0) +3 14.07.15 693 35 19쪽
131 12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9) +1 14.07.14 809 21 24쪽
130 12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8) * +5 14.07.12 778 23 39쪽
129 12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7) +1 14.07.11 883 28 26쪽
128 12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6) +2 14.07.10 869 26 23쪽
127 12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5) +1 14.07.08 895 37 29쪽
126 12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4) +2 14.07.07 736 18 21쪽
125 12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3) * +4 14.07.03 813 34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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