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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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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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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1.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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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주도에서 생긴 일 (2)

DUMMY

고기국수집은 그저 평범했다.

후루룩, 사람들이 면발을 넘기는 시원한 소리와 정겨운 냄새가 가득한 이 식당.

이곳에 검은균열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기국수집은 평범하고, 또 별 것 없었다.


"일단 국수나 시켜볼까?"

"......그러지."


유덱스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우선 냄새가 좋기도 했을 뿐더러, 밥을 먹지 못했기에 배가 상당히 고팠던 것이다.

유덱스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고기국수만 4그릇을 주문했다. 각자 두 그릇씩 먹자는 거지?


"......그분께서 정말 여기에 균열이 있다고 하셨어?"


내가 말한 '그 분'은 이노켄시아를 의미하는 것이다.

유덱스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제 내게 연락이 두 번 왔어."

"두 번이나?"

"밤에 이곳에서 균열의 움직임이 느껴졌는데,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약 5시간 전 새벽녘에 그 흔적이 사라졌대."


사라졌다고?

검은균열이 이동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나의 표정에 떠오른 의문을 눈치챘는지 유덱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균열은 이동할 수 없어. 한 장소에 균열이 나타나면, 그 장소에만 머물게 되거든. 우주에 있는 블랙홀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사라졌다고 했잖아?"

"나도 그게 의문이긴 한데, 사실 놀라울 것도 없지 않아? 우리가 처음 여의도에서 발견했던 균열도,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했어."


......그건 맞는 말이다.

어째서 블랙홀처럼 강력한 흡입력을 지닌 검은균열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할 수 있는지, 그 사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검은균열은 자신이 있는 장소는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몸을 숨겼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반복하며 변덕을 부릴 지언정.


"국수 나왔습니다."


토론이 중단되었을 즈음, 국수가 나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딱 봐도 맛이 좋아보였다.

이 탱글한 면발. 쉽게 불지도 않을 것 같다.


후루룩-


"......음, 맛은 좋네."


순간 우리의 임무를 잊어버릴 정도로 맛있는 국수였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국수 중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다.

...물론 인간세상에 온 후로 국수를 먹어 본 일이 얼마 없긴 하지만.


"근데 말이야."


벌써 한 그릇을 비운 유덱스가 주변을 살피며 내게 물었다.


"이대로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여기 숨어있는 균열을 끌어낼 수 있지?"


그때였다.


스르륵-


서빙을 하던 직원들과 카운터에서 포스기를 확인하던 국숫집 사장님, 그리고 테이블 여기저기에 앉아있는 손님들이 일제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마치 시간이 순간적으로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기절한 이 상황에서, 오직 나와 유덱스만 정신이 멀쩡했다.

쓰러진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이상야릇한 기분이 밀려왔다.


"......부엌."


내가 쓰러진 인간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유덱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은 천천히 카운터 옆, 부엌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부엌 뒷편에는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보니."


화장실을 보자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어제, 이노켄시아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다.


- 제주도경찰들의 말에 따르면, 실종자들은 모두 이 고기국수집에 들렀었다고 합니다.


- 그 뒤로 실종된 것인데, 이유는 알 수가 없어요.


- 경찰들은 해당 고기국수집 사장님과 직원들을 조사해보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지요. 그들이 범인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0, 그 자체니까요.


- CCTV...... 를 확인해보긴 했습니다만, 조금 기묘합니다.


- 분명히 바깥 CCTV로 확인했을 때, 가게 내부로 들어가는 실종자들의 모습이 찍혔고, 식당 내부 CCTV로 확인했을 때도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다만 나오는 모습이 전혀 찍히지 않았어요.


- 이상한 일이죠. 실종자들이 화장실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았다는 것 말이에요. 오히려 CCTV에는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만 찍혔어요.


- 그렇다면...... 화장실, 그곳에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요?


블랙홀과 검은균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블랙홀이 배가 고파 걸신들린 사람처럼 무엇이든 근처에 있는 것이라면 마구 빨아들인다면, 검은균열은 까다로운 미식가와 같다. 아무거나 먹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균열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단 유덱스와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실종자들이 사라졌을 당시에는, 손님들과 직원들이 이렇게 기절하지 않았었어."


유덱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는, 균열이 우리가 온 걸 눈치챈 것 같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 뿐이니까.


"들어가자."


균열 속으로 가보자.


*

*

*


지난 번 처음으로 마주했던 검은균열은 피라미드였다면, 이번에는 탑이었다. 하늘을 뚫을 듯 길게 솟은 검은탑.

하늘 역시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로 검었고, 어두운 하늘에 걸린 태양은 타오를듯 붉었다.


검은탑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피라미드 때처럼 몬스터트럭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당황했지만 두 번은 당황하지 않는다. 나와 유덱스는 익숙한 듯이 트럭을 피해 내달려 검은탑 내부로 진입했다.


"...아무것도 없네?"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유덱스가 던진 첫마디였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냐. 저길 봐."


나는 계단을 가리켰다. 녀석 말대로 검은탑의 1층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바로 오른편에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오르막길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 계단은 아니었다. 아마도 저 오르막길은, 이 탑의 맨 윗층과 연결이 되어있겠지.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없나?"


올라갈 생각을 하니 영 까마득했는지, 유덱스가 투덜거렸다.

그러나 귀찮든 어쨌든, 피라미드 때 그랬듯이, 우리는 저 길을 올라가야만 한다.


"실종자들이야!"


위로 올라가니 실종자들이 보였다.

다만 그들은 검은색의 고치같은 것에 꽁꽁 묶인 채였는데, 모두 기절한 상태였다. 인간들은 이 균열 속에서 버틸 힘이 없는 것이다.


사삭-


곤충이 움직이는 특유의 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보니, 과연 곤충 한 마리가 있었다.


{나랑 놀아주려고 온 거야?}


거미였다.

그것도 내 키만한 새까만 거미.

인간세상에 저런 형태의 거미가 존재했던가? 가공할 정도의 크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런 종류의 거미가 있었던가?


"우린 실종자들을 찾으러 왔다."


저런 종류의 거미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저 녀석은 분명히 우릴 순순히 돌려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거다.


{실종자?}

"저기 검은 고치에 매달린 세 명의 사람들. 우리가 찾는 사람들이다."

{아, 쟤들?}


거미의 다리가 딸각거리며 움직이더니, 다리 하나를 들고 실종자 한 명을 툭툭 쳤다. 역시 반응은 없었다.


{쟤들은 재미없더라. 같이 놀려고 데려왔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저렇게 잠만 자고 있어.}

"그럼 우리가 데려가도 되겠네?"


그제서야 거미는 유덱스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두 명이나 온 거야? 나랑 놀아주려고?}

"저 사람들."


유덱스는 거미의 말을 무시했다.


"우리가 좀 데려갈게. 어차피 너랑 놀 수도 없다며? 재미없다고 했잖아? 그럼 데려가도 되는 거지?"

{그건 안 돼.}


거미가 실종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거미 다리가 움직이는 끔찍한 소리가 탑 전체에 크게 울려퍼졌다.


{나랑 놀 수 없을 뿐이지, 얘들은 여전히 내 소유물이야.}

"그 인간들은 원래 있던 세상으로 가야 해."

{난 배가 고파.}


......배가 고프다고?

저 거미, 설마?


{난 이곳에 오랫동안 갇혀있었어. 그 말은 즉슨, 오랜 시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얘기야. 간단한 간식조차도 먹은 적이 없는 걸.}

"우리가 먹을 걸 줄게. 그러니 저 세 사람을 돌려주겠어?"


유덱스가 제안했지만 거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저 셋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내가 말했잖아. 여긴 내 공간이야. 여기 들어온 건 모두 내 거야.}

"우린 돌아가야 해."

{나랑 안 놀 거야?}


...쉽게 나가기 어렵겠는걸.

생각을 해보자.

지금 저 거미 녀석은 심심해하고 있다. 아까부터 계속 놀자고 조르고 있잖아.


"좋아. 같이 놀자."

{정말?}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아까부터 눈여겨 봤던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구석에 놓인 카트 두 대였다.

검은탑의 1층부터 이곳 맨 꼭대기인 9층까지는 계단이 아닌 나선형의 언덕으로 이루어져있다.


언덕과 카트 두 대.

저 녀석이 무엇을 하고 놀고 싶어할지는 뻔한 거 아니겠는가.


"레이싱게임을 하자."

{난 레이싱게임이 제일 좋아!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 그럼 지금 당장 하자!}

"잠깐."

{음?}


그냥 하면 안 되지.


"레이싱'게임'이잖아."

{게임이 왜?}

"게임이라는 건, 언제나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안 그래? 적절한 보상이 없는 게임은 그저 노동에 불과하다고."

{음, 그건 맞는 말이지!}

"그렇다면 게임에서 우승했을 시, 우리에게 떨어지는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뭘 원하는데? 나랑 한 번 더 놀기?}

"저 세 사람을 우리에게 줘."

{뭐, 좋아!}


생각보다 쉽게 허락하잖아? 뭐지?

......일단 계속 밀어붙이자. 저 거미놈이 갑자기 마음이 뒤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럼 내가 우승하면, 너랑 너는 나랑 여기서 평생 같이 살면서 날 놀아줘야 해!}


거미가 유덱스를 가리켰다.

순간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덱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럼 지금 당장 게임 하는 거야?}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면."

{맹세하지!}


게임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거미 녀석은 안전모도 쓰지 않았다. 그저 신이 난 채로 카트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놈의 다리에 난 털들이 바짝 서있었다.


징그럽구만.


"......이길 수 있겠어?"


안전모를 착용하는 내게 유덱스가 조용히 물었다.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이다.


"확신할 수는 없어."

"그런데 게임을 하겠다고 선뜻 수락을 하면 어떡해?"

"그럼 방법이 있어?"

".......뭐라고?"

"지금 우리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어. 오직 이 길 뿐이야. 게다가."


나는 유덱스의 귓가에 무어라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바로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 녀석이 무조건 알아야 하는 사실이었다.


"......그런 거라면..... 그래, 알겠어. 다치지나 마."

"걱정하지 마."


{뭐 하고 있어? 빨리 와!}


내가 빨리 오지 않자, 거미가 재촉했다.

카트에 가서 앉자마자, 나는 옆에 있는 거미를 바라보았다.

순간, 저 새끼는 저 몸으로 카트에 어떻게 앉아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좋아. 규칙은 간단해.}


......그딴 거 알 게 뭐람.

지금은 오직 한 가지. '우승'에 집중하자.

실패 따윈 없다. 오직 우승뿐이다.


{여기 9층에 있는 출발선에서 출발한 후, 1층에 있는 피니시라인(finish line)까지 가는 선수가 우승하는 거야! 그 외의 규칙은 없어!}


레이싱게임이 대체로 그렇지.

결국 제일 먼저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규칙.


{준비됐어?! 그럼 지금부터 숫자를 셀 거야! 3!}


긴장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래. 긴장된다.

양 손에 땀이 베어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2!}


브레이크는 밟지 마라, 유스티오.


{1!}


오직 악셀 뿐이다. 드리프트를 기억해.


{가자!}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초반 부스터 잘 받았고! 내가 먼저 치고 가야.......


빙글-


{히힛! 이건 몰랐지?! 바나나지롱!}


저 개새끼! 아이템전이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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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어서오세요, 1호선에 +2 24.01.13 15 2 12쪽
84 시간표만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2 24.01.12 15 2 13쪽
» 제주도에서 생긴 일 (2) +2 24.01.11 17 2 12쪽
82 제주도에서 생긴 일 (1) +2 24.01.10 14 2 13쪽
81 회전교차로에서 우선권은 누가 갖게 되나요? +2 24.01.09 16 2 12쪽
80 인간적으로 제주도에서 초보운전연수는 하지 맙시다 +2 24.01.08 13 2 12쪽
79 떠나요, 제주도 +2 24.01.07 17 2 12쪽
78 검은균열 +2 24.01.06 18 2 13쪽
77 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 +2 24.01.05 1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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