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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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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1.0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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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떠나요, 제주도

DUMMY

참으로 가공할 수축이었다.

나와 유덱스는 기절한 두 명의 인간을 각각 등에 업은 채 미친사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타고 올라왔던 계단밖에는 밑으로 내려갈 길이 없었기에, 우리는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계단 역시, 수축하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을 때마다, 계단은 건드리면 툭, 하고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쪼그라들었다.

그러니 사실상 우리는 '달렸다'라고 볼 수 없을 터. 아마도 '떠밀려왔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구!


수축하는 계단을 마치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와 피라미드의 출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밖으로 통하는 문 역시 작아지고 있었다.


"우선 인간들부터 내보내!"


나의 외침에 유덱스는 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등에 업고 있던 인간들을 좁아지고 있는 문 밖으로 내던졌다.

그런 다음 유덱스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내가 따라가려고 했지만.


"크윽!"


안타깝게도, 내 신체의 절반이 문 밖으로 나왔을 즈음 나는 문에 끼고 말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유스티오!"


숨이 막혀온다. 내 하반신이 갇힌 피라미드가 나의 다리를 조여온다. 당장이라도 두 다리가 잘릴 것만 같은 이 끔찍한 고통.


화아아아아!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은 채, 나는 신성마법을 발동했다. 피라미드가 내뿜는 수축하는 힘이 너무나 거대했기에, 나는 상당량의 신성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덕분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긴 했지만.


"네 다리가 그렇게까지 얇은 줄은 몰랐는데!"


유덱스 말대로, 내 다리는 더 이상 내 다리가 아니었다.

피라미드의 수축하는 힘 때문에, 내 다리 역시 강제로 수축된 것이다.


......어쩌면 끊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걸까.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안타깝게도,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와 유덱스가 쓰러진 두 인간을 데리고 피라미드를 나오자마자, 몬스터트럭 6대가 쫓아온 것이다.


어째 아까보다 더 빠른 것 같은데, 아마 아까는 2명이었지만 지금은 4명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

우리를 트럭으로부터 보호해주던 피라미드가 사라졌으니, 이제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니지.

'그것'을 발견한다면, 도망칠 곳이 아예 없는 것 아닐테지.


쿠콰콰콰콰콰쾅!


굶주린 짐승처럼 우릴 향해 달려오는 몬스터트럭을 피해 앞을 향해 달리며, 나는 겨우 뒤를 돌아보았다. 피라미드가 파괴되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피라미드를 붕괴시킨 수축하는 힘은 우릴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 공간, 다시 말해 '검은균열'이 수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 몸이 이상해!"


유덱스의 말대로 몸이 이상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나의 얼굴이, 유덱스의 얼굴이 마치 오이처럼 늘어난다.

다리가 짧아지고, 그에 비례해 달리기가 느려진다.

헌데 희한하게도, 우리를 쫓아오는 뚱뚱한 몬스터트럭들은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유스티오, 조심해!"

"으윽!"


검은 하늘에 걸린 붉은 달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사막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조석력에 의해 움직이는 바다의 파도처럼, 사막의 모래들 역시 파도를 이루었다.


바다의 파도는 우리를 바닷속으로 집어삼키지만, 사막의 파도는 아니었다.

그 파도는 마치 거대한 봉우리처럼, 거대한 산처럼 우리의 앞길을 막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크억!"


파도는 우리를 내던지고.


쿠우우웅!


우리를 짓밟고.


파아아악! 쿵!


더욱 더 우리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몬스터트럭의 움직임 역시,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느려지진 않았다.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나를 향해 외치는 유덱스의 숨이 거칠다.

그럴 만도 하다. 이 공간, 검은균열의 전체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이 압박감.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화이트홀을 찾아야 해, 유스티오!"


......화이트홀.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존재라고 한다면, 화이트홀은 그 정반대다. 모든 것을 뱉어낸다.

검은균열이 일종의 블랙홀이라면, 화이트홀도...... 존재하는 것일까?


"화이트홀로 빠져나가려면, 웜홀을 찾아내야만 해!"

"......후욱, 웜홀?"


숨이 차오른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사제의 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 고통. 당장이라도 심장과 폐가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래 유스티오. 화이트홀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웜홀이 존재해야만 해."


좋은 의견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이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와 유덱스. 그리고 두 사람. 또한......


"......피라미드."


파괴된 피라미드의 흔적 뿐이다.

......설마?


"유덱스! 피라미드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뭐?!"

"이유는 묻지 마! 당장 달려!"

"......알겠어!"


피라미드가 있는 곳을 향해 방향을 틀자, 사막의 파도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던 몬스터트럭 역시 우릴 향해 방향을 틀었다.

피라미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파도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다시 말해 몬스터트럭이 우릴 공격하기 딱 좋은 포지션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피라미드가 수축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을 것이라는 거다.


"쟤들 다시 쫓아오잖아!"

"유덱스! 몬스터트럭이 열쇠였어!"

"......뭐라고?!"

"몬스터트럭! 그게 열쇠였어! 그게 핵심이었어!"


피라미드가 수축해 사라지기 전.

몬스터트럭은 우리가 피라미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릴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피라미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몬스터트럭은 우릴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설마."

"그래."


몬스터트럭이 이 검은균열의 블랙홀이다. 계속해서 몬스터트럭과 달리기시합을 했다가는, 블랙홀에 휘말린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블랙홀이 아니다.

정확히는 피라미드가 존재했었던 이 자리.


"......찾았어."


피라미드라는 형체가 아닌, 그 형체가 존재했었던 이 자리에 웜홀이 있는 것이다.


"좋아! 그럼 들어가자."

"자, 잠깐만!"


유덱스가 망설였다.

그러는 동안 검은균열의 수축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었다.


"시간 없어 유덱스!"

"불확실한 것에 희망을 걸을 수는 없어!"


......뭐라는 거야?

제일 먼저 웜홀을 주장한 건 너였잖아?


"이, 인간들도 웜홀이 실제로 존재할 지 알 수 없다는데, 우, 우리도 모, 모르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유덱스의 결정적인 단점이다.

평소에는 대담한 듯 행동하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없이 유약해지는 것. 그것이 유덱스의 최대 단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유덱스의 감정 따위 살펴줄 여유가 없었다. 그럴 생각도 없고.


"유덱스."


우린 시간이 없거든.


"마스터께서는 불확실한 것에 희망을 거셨어."


그럴 여유도 없고.


"우리 둘은 이미 불확실한 존재들이야. 그러니까."


슈우우우우우우!


"지금은 내 말을 들어."


나는 유덱스의 손목을 잡아 챈 후, 웜홀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줄어들었던 내 몸을, 누군가 강제로 늘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 두 눈을 마구잡이로 잡아당기는 듯한 더러운 기분이 점점 들지 않았을 즈음.


"허억.... 헉......"


우리 넷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기괴하게 일그러졌던 우리 두 사제의 몸은 원상태로 복귀되었다. 쓰러진 두 사람은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허억.... 나, 다시는......."


쓰러진 사람들 곁에 함께 드러누운 유덱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얼거렸다.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


*

*

*


시간이 지나 쓰러졌던 두 인간의 의식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기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실종사건 역시 해결되는 분위기였다. 물론 여전히 그들은 진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 모이라이가 마신에게 한 예언이 있다고 들었어.


나는 집에 돌아와 유덱스가 내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곱씹었다.


- 과거 마신이 모이라이로부터 자신에 대한 예언을 들은 적이 있었대. 별로 좋지 않은 예언이었다고 하더라고. 그 예언은 결국 마신이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갇히는 결과가 되었는데, 그렇게 갇힌 마신을 프라우스가 구출한거야. 이후 호라이 전체가 지금처럼 망해버린 거고.


의문은 남는다.

마신은 모이라이에게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인가? 아니면 모이라이 측에서 직접 한 것인가?


- 마신에 대한 예언에 따르면, 마신은 결국 저 깊은 땅 속에 묻혀버릴 거라고 했어.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마스터께서는 미래를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


마스터는 돌아가시기 전, 분명 내게 예언에 대해 언급하셨었다.

나는 손에 들린 양피지 조각을 들어올렸다. 반으로 잘린 조각이었다. 이 조각은 마스터께서 마지막 순간에 내게 건네주신 조각이다.

조각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

세상이 평화를 거부하였다.

세상이 질서를 거부하였다.

세상이 정의를 거부하였다.


인간은 제 손으로 평화를 죽였고, 질서를 죽였고, 또 정의를 죽였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일 뿐, 그 누구에게 죄가 있겠는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어찌 피할 수 있을까? 감히 누가 피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를, 숨통을 조여오는 저 거친 손을.


결국 세상은 어지러워지리라.

결국 세상은 황폐해지리라.


+


내용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찢겨져서 알아볼 수 없었다.

이 조각을 읽은 유덱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네가 그랬지. 마스터께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 프라우스가 이 예언을 탐냈었다고. 어쩌면 예언에 숨겨진 진실이 있는 건 아닐까?


숨겨진 진실이라. 그런 게 있을지, 없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프라우스는 이 예언을 자신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프라우스.'


그 놈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

*

*


며칠 후, 정중재와 함께 한식당에서 점심밥을 먹은 뒤였다.


"제주도?"


유덱스가 내게 전화를 했다. 제주도에 검은균열로 추정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중재도 데려가?"

- 안 돼. 인간이잖아. 아무리 디케교신자라고 해도, 일반인을 데려가기엔 너무 위험해. 저번에 여의도에서 있었던 일 기억 안 나?


하긴. 정중재는 분명 믿을만한 녀석이지만, 불확실한 위험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 심지어 이 녀석은 인간일 뿐이니까.


"......알겠어. 바로 김포공항으로 갈게."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정중재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전에 먼저 녀석이 선수를 쳤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놀러갔다 오십시오, 형님!"


......뭐?


"아니, 나는."

"누님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형님! 저 그렇게 눈치없는 놈 아닙니다! 아무리 사제님들이라고 해도, 젊을 때 즐겨야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게 좋은 거라고 배웠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닌데?


*

*

*


정중재의 오해와 함께 나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저녁비행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여럿이었다.


"인천에 큰 공항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유덱스가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보통 제주도 갈 때는 김포로 많이들 오는 편이야. 누가 인천에서 제주도 가니?"

"몸뚱아리만 가지고 오라고 했잖아. 비행기 표는 있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유덱스가 두 장의 비행기 예약내역서를 보여주었다.

안심이 된 내가 이코노미 줄에 서려고 걸어가는데.


"어디가?"


유덱스가 나를 붙잡았다.

녀석은 이코노미의 지나치게 긴 줄이 아닌 다른 곳에 서있었다. 경악스럽게도, 녀석은 내게 윙크를 해보였다.


"우리 비즈니스야."


징그럽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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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편견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2 24.01.19 17 2 15쪽
90 폭설에 고속도로 따위 타고 싶지 않아 +2 24.01.18 1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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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어깨에 새는 키우시는 건가요? +2 24.01.16 11 2 15쪽
87 택시기사도 손님도 서로서로 적절한 매너를 지켜줍시다 +2 24.01.15 12 2 14쪽
86 오지마세요, 1호선에 +2 24.01.14 13 2 13쪽
85 어서오세요, 1호선에 +2 24.01.13 15 2 12쪽
84 시간표만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2 24.01.12 14 2 13쪽
83 제주도에서 생긴 일 (2) +2 24.01.11 16 2 12쪽
82 제주도에서 생긴 일 (1) +2 24.01.10 1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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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요, 제주도 +2 24.01.07 17 2 12쪽
78 검은균열 +2 24.01.06 18 2 13쪽
77 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 +2 24.01.05 1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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