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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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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4.01.0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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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전교차로에서 우선권은 누가 갖게 되나요?

DUMMY

[회전교차로에서 회전하는 차량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이는 당연한 상식이다.

무면허라면 모를까, 최소한 2종 보통 운전면허가 있다면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소리다.


저 제네시스 운전자, 무면허가 아닌 한 이 사실을 모를리는 없고.


"아니, 회전교차로에서 저딴 식으로 밀고 들어오는 놈이 어딨어?"


유덱스의 말대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도로'에서는 늘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법이다.

회전교차로 최초 설계자의 의도대로라면, 본래 이런 사고나 교통체증 등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해만 할 수 있다면, 회전교차로는 절대로 어려운 도로가 아니니까.

이론상으로는 교통체증이 일어나기 어려운 도로니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이라는 새끼가 언제나 이상적으로 흘러가던가?

절대 아니지.


"이봐요!"


제네시스 차주가 차에서 내렸다.

마력덩어리가 느껴진다. 이름은... 전주한인가. 나이는 정중재보다는 많은 것 같고. 금방 내일 모레 서른이 되겠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예?"

"뭐라고요?"


전주한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짜고짜 유덱스에게 달려들었다.

태도를 보아하니,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는 눈치다.


"아니, 내가 오고 있는데 왜 갑자기 튀어나오냐고요?"

"내가 언제 튀어나왔어요? 난 내 갈 길 잘만 가고 있었구만."

"저 멀리서 내 차가 오는 걸 봤으면 멈춰야지, 왜 가느냔 말입니다."

"......뭐?"


유덱스가 뒷목을 잡았다. 하긴, 혈압이 오를만 하다.

사고가 나기 전, 유덱스의 각그랜져는 제 갈 길을 잘만 가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난데없이 갑자기 달려와 박은 건 전주한이다.


"제가 직진을 하고 있었잖습니까. 직진차량이 우선권 갖는 거 모르세요? 예?"

"맞아요!"


이젠 여자친구까지 합세하는구나.

딱 보니까 저 여자, 면허는 없어 보이는데.


"직진차량이 우선권을 갖는다고요?"

"예!"


나의 비웃음이 뒤섞인 물음에 전주한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우회전 하는 차량하고 직진하는 차량하고 사고나면 누가 책임입니까? 예? 우회전 하는 차량이 잘못이죠. 왜냐하면 직진차량이 우선권을 갖게 되니까!"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우회전 차량으로 예시를 든 겁니까?"

"당연하죠. 당신들이 지금 회전교차로에 왔으니까요. 당신들은 회전하고, 저는 직진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제가 우선권이 있는 게 맞는 것 아닙니까? 직진차량에게 우선권이 있는 거 모르시는 겁니까? 이해가 안 가면 법이라도 찾아봐 드릴까요?"


......저런 멍청한 새끼를 봤나.

회전 교차로를 설마 보편적인 '좌회전'과 '우회전'의 개념으로 이해한 거야?


아이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저 돌대가리가 알아먹을까?


"이봐요, 여기 블박 보세요. 여기."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유덱스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었다.


"자, 보이죠? 우리가 회전교차로에 진입했고, 차선 안 바꾸고 쭉 1차선 타고 가고 있었어요. 1차선이요, 1차선. 뭔지 아세요? 이걸 쭉 늘리면 그냥 직진차선하고 똑같은 거예요. 2차선으로도 안 갔죠? 근데 보세요. 당신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2차선 뚫고, 저희가 있는 1차선으로 냅다 들어온 겁니다."


따지고 들자면 우린 1차선에 있었으니, 상대가 설령 1차선에 들어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한들, 천천히 들어왔어야 했다. 우리가 이미 1차선에 있었으니까.


......잠깐, 저 새끼 설마 1차선하고 2차선도 구분 못하는 건 아니겠지?

.......

설마.


"그게 뭔 개소립니까?"


전주한이 소리쳤다.

그래.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았지. 돌대가리가 괜히 돌대가린가.


"회전교차로가 왜 회전교차로겠습니까?"

"......회전하는 교차로니까 회전교차로겠죠?"

"그래요, 회전!"


아니.

아니야.

그만하자 주한아. 거기까지만 해. 더 이상하면 나까지.


"좌회전 우회전 할 때 그 회전! 다시 말해서 회전교차로 자체에는 '직진'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라고요!"


...멍청이가 되는 기분이란 말이다.

저 새끼가 어떻게 면허를 딴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한민국은 면허시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도덕시험보다 더 쉬운 필기시험 난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공부를 안 할 수 없도록 필기시험 족보를 나눠주는 일도 당장 중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허구한 날 면허 따려고 하는 인간들이 'T자만 없었으면' 하며 엄살 부리는 일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T자'가 어려우면 주차는 어떻게 하려고? 사실상 기본 중의 기본인데.


"아니,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여기 1차선! 그냥 회전하는 것일 뿐이지 차선 개념은 똑같다니까?!!"

"그러니까 당신들이 있던 1차선은 회전하는 차선이잖습니까! 그런데 왜 직진이라고 하느냔 말입니다!"

"우리 오빠 말이 맞아요! 여긴 회전교차론데 왜 자꾸 직진타령이에요? 우리가 직진인데!"

"와, 진짜......"


유덱스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화산이 폭발할 듯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제 여자친구랑 저, 대인처리 해주십시오."


어디서 또 들은 건 있구나. 대인처리 해달라고 하는 걸 보니까.


"저희가요?"


유덱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라렸다.


"저희가 왜 대인처리를 해줘야 하죠? 그쪽이 가해자시면서?"

"저흴 쳤잖아요."

"아니 지들이 먼저 냅다 달려와 놓고서는!"

"저흰 멀쩡히 잘만 가고 있었는데, 냅다 달려와서 친 건 당신들 아닙니까?!"

"맞아요!"


음, 이 상황은 부처도 예수도 그 누구도 참지 못하고 쌍수들고 쌍욕을 날리게 될 법한 상황 아니던가.


"지금 당장 보험사에 전화할 겁니다."


어쭈. 그 와중에 보험은 또 들었나봐?

하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어떻게 할까. 여기서 바로 재판을......


"아뇨, 경찰을 부르도록 하죠!"


......유덱스?

내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유덱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경찰이라니. 경찰을 믿어도 될까? 그쪽에서 판단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우리가 뒤집어 쓸 수도 있다고.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유덱스의 표정은 당당했다.


"지금 당장 부르도록 하죠."

"좋습니다! 어차피 결과는 빤하겠지만."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두 남녀경찰관이었는데, 여자 경찰관의 행색이 조금 특이했다. 한쪽 눈에 붉은 색의 비둘기가 새겨진 안대를 착용 중이었다.


"제네시스 차주분께서 가해자시네요."

"예?!"


상황 설명을 들은 후, 안대를 낀 경찰이 즉각 대답했다. 그러자 전주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다. 그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오빠가 뭘 잘못한 건데요?"

"경찰관님, 저는 직진 신호에 잘만 갔습니다. 신호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요."

"회전교차로에서는 회전하는 차량이 우선권을 갖습니다. 차주분께서는 직진차선에 있긴 했지만 끼어드는 차량이기 때문에 우선권을 갖지 않습니다."

"이.... 이......."

"그게 어디 법에 있는데요?!"


전주한이 버벅거리는 사이, 그의 여자친구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어디 법에 있어요? 네? 그게 법으로 합법인 일인가요?"


저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안대를 낀 경찰관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22년도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차주분은 끼어들기 차량이기 때문에, 우선권이 있는 회전하는 차량이 있을 경우 잠시 대기했다가 천천히 진입해야 합니다."

"하, 하지만 전 직진차량인데요?!"

"여긴 회전교차로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마! 너 말고 진짜 경찰관 데려와, 이 미친X아!"


찰나의 순간, 이성이라도 잃은 것일까. 전주한이 안대를 낀 경찰관에게 냅다 달려들었다.

6살이나 어린 여자친구 앞에서 가오라도 상한 건가.

다행히, 경찰관은 다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손으로 전주한을 제압했을 정도니까.


"지금 오빠한테 뭐하는 거예요! 악!"


경찰관이 전주한의 움직임을 제압하자, 그의 여자친구가 항의라도 하려는 듯 다가갔지만.


"이거 놔요!"

"공무집행방해입니다."

"......알았으니까 놔요!"


또다른 남자 경찰관이 그녀를 막아냈다.

순간, 붉은색의 바람이 일렁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설마.


나와 유덱스는 눈을 마주쳤다.

녀석의 눈에 유치한 장난기가 어려 있다.


역시. 그런 거였나.

저 두 경찰관의 진짜 정체는.


"감사합니다, 경찰관님. 아니지."


두 사람은 금방 제압되었다. 경찰관들이 타고 온 차량에 강제로 탑승하게 된 두 사람의 퉁퉁 부은 얼굴이, 차량 창문을 통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두 명의 경찰관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저 둘이 누군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에우노미아교의 사제님들이시여."

"아, 눈치채셨습니까?"

"당연히 눈치챘겠지, 케르토. 유덱스가 우릴 일부러 부른 건데."


두 경찰관, 아니 두 사제는 유덱스와 친근한 시선을 교환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에우노미아교.

질서의 여신인 에우노미아를 모시는 종교다.

붉은 빛의 비둘기가 상징인데, 안대를 낀 저 사제, '이노켄시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특급사제......'


이노켄시아는 에우노미아교의 특급사제다.

마스터사제인 렉스는 내가 알기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아마도, 현재는 이노켄시아가 에우노미아교의 지도자를 맡고 있을 터.


'.......최소 3등급이다.'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 이 정도라면 최소 3등급 상당의 특급사제일 게 분명하다.


".......에우노미아님도 봉인되셨습니다. 사실상 호라이의 세 여신님들이 모두 봉인되셨다고 봐야 하겠지요."


이노켄시아가 두 눈을 붉히며 말했다.

그녀의 인간 이름은 이시아이며, 현재 그녀와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는 에우노미아교의 사제인 케르토와 함께 제주도에서 경찰로 위장한 채 마력덩어리를 쫓고 있다고 한다.


케르토.

아마도 6등급 수준의 하급사제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케르토는 나처럼 딱히 별 볼일 없고, 특출난 재능도 없는 사제였다고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6등급까지 올랐다는 것은, 나름의 근성이 대단하는 것이겠지.


"유덱스로부터 들었습니다. 마력덩어리와 마신을 쫓는 임무를 맡았다고요."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역시 여러분을 도울 테니까요."

".......그런데, 저 두사람은 어쩌실 생각이신지?"


나의 물음에 이노켄시아가 경찰차를 흘끔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질서의 방으로 데려갈 계획입니다."

".......질서요?"

"네. 이곳 제주도 도로의 질서는 참으로 어지럽거든요.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사고가 발생하곤 하지요. 아, 그러고보니 이것을 잊을 뻔 했군요."


이노켄시아가 새까만 검은 덩어리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들은 상자에 담겨있었는데, 투명한 상자 너머 보이는 덩어리들이 오늘따라 더 역겹게 느껴졌다.


"이게 뭡니까? 마력덩어리....... 아닙니까?"

"저와 케르토가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모은 마력덩어리입니다."

".....이걸 왜 저에게?"

"피데스 마스터사제께서 당신께 남긴 임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받아든 상자가 제법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노켄시아와 케르토는 제주도의 얼마나 많은 마력덩어리들을 모아온 것일까.


"마신을 봉인하고, 호라이의 세 여신님들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노켄시아가 말을 마친 후.

두 사람을 태우고 있던 자동차는 사라졌다.

붉은색의 짙은 바람과 함께, 두 사제 역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

*

*


"어으......"


전주한은 눈을 떴다.

순간 엄청난 피로가 전신에 몰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 하루종일 그를 두들겨 팬 것만 같은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흐릿했던 시야가 돌아오고 잠시 후.


"......여기가 어디야?"


전주한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상한 곳에 납치되었다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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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폭설에 고속도로 따위 타고 싶지 않아 +2 24.01.18 1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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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어서오세요, 1호선에 +2 24.01.13 15 2 12쪽
84 시간표만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2 24.01.12 14 2 13쪽
83 제주도에서 생긴 일 (2) +2 24.01.11 16 2 12쪽
82 제주도에서 생긴 일 (1) +2 24.01.10 13 2 13쪽
» 회전교차로에서 우선권은 누가 갖게 되나요? +2 24.01.09 16 2 12쪽
80 인간적으로 제주도에서 초보운전연수는 하지 맙시다 +2 24.01.08 13 2 12쪽
79 떠나요, 제주도 +2 24.01.07 16 2 12쪽
78 검은균열 +2 24.01.06 18 2 13쪽
77 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 +2 24.01.05 1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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