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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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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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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7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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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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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4)

DUMMY

오전 7시 44분.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8시 20분까지 등교해야 했는데, 갑자기 9시 등교로 바뀌었으니 최소 8시 5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 할 텐데 인간 황대근은 여전히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인간 황대근이 드림팀에서 연기하는 다양한 꿈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동안, 혜윰과 메모리는 직원휴게실 소파에 앉아 레이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제가 누군지는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모를리가 없다. 인간 황대근을 게으름에 빠뜨린 죄목으로 징역형을 살다가, 쉐도우에 의해 겨우 풀려난 남자가 아니던가.

물론 공식적으로 풀려난 것은 아니었으나 직원들은 알음알음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레이지가 뇌부서 직원이라 그렇지, 만약 다른 부서 직원이었다면 말이 많이 나왔을 터이다.


"인간 황대근이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혜윰과 메모리는 여전히 의심에 휩싸인 채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혜윰과 메모리는 순간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방금 레이지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온 것인가? 우릴 도와주겠다고? 메모리아부서 직원을? 뇌부서 직원이? 그 콧대 높고 오만한 뇌부서 직원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혜윰이 레이지에게 물었다.


"엥? 왜 저희를 도와준다는 거죠? 뇌부서 아니세요?"


레이지는 표정을 굳혔다. 그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하더니,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끄응... 쉐도우가 제 말을 안 믿어줘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때 먹은 바나나우유 때문에 아주 개망신을 당해서.... 젠장할, 쉐도우 그 새끼가 먼저 날 불러 놓고는, 날 이딴 식으로 개밥취급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굳이 레이지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혜윰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혜윰은 모르겠지만, 레이지의 온 몸에는 제모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때 마셨던 바나나우유의 후유증이 제법 오래 갔던 모양이다.


분명 레이지가 저렇게 된 원인임에 틀림없는 혜윰이 그에게 말했다.


"음, 하지만... 조금 부담스러운걸요."


레이지는 혜윰의 얼굴을 외면했다.


"제 결심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제 도움을 받을 겁니까, 말 겁니까?"


다른 부서도 아니고 권한이 막강한 뇌부서 직원이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그 콧대높은 뇌부서 직원이 '직접'이곳으로 왔다. 보통은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이 무릎을 꿇고 낮게 기어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아, 받겠습니다! 당연히 받고 말고요! 대신 뭐 댓가같은 건 없는 거죠? 그냥 순수한 호의인 거죠?"


메모리의 질문에 레이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표정이 제법 진지한 것이, 바나나우유에게 호되게 혼쭐이 난 모양이다.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 헬스장)



오전 8시 16분. 왕근은 여전히 벤치에 누워있었다.


신성한 헬스장에서 벤치에 누워 빈둥빈둥거리다니, 다른 근골격부서 직원들은 이 생경하고도 기이한 광경에 겁을 먹었는지, 왕근과 황대근 근처에 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 좀 일어나라고!"


황대근은 그에게 별 짓을 다 해봤다. 발로 차보고(바위를 차는 줄 알았다), 주먹으로 때려보고(바위를 치는 줄 알았다), 심지어 머리로 박아(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황대근은 최후의 수단으로 50kg짜리 덤벨 하나를 양손으로 잡고 왕근의 몸에 던져버리기로 결심했다.

이 정도까지 하면 일어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걸로도 안 일어나면... 건물 밖으로 던져봐야지. 들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50kg짜리 덤벨은 무거웠다. 황대근은 최대한 힘을 내 덤벨을 들고는 왕근을 향해 던졌다.

덤벨은 아무래도 무게가 있다 보니, 낙하 속도가 아주 빨랐다.


"아이고, 갑자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


덤벨의 낙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왕근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50kg짜리 덤벨에 맞은 애꿎은 벤치가 일부 부서져 버렸다.


"하하! 대근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운동을 막 하고 싶어지는구만 그래!"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하는 왕근을 보며 황대근은 혜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생각했다.


'인생은 대체로 이 두 가지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황대근의 질문에 혜윰은 한 손에는 돈을, 다른 손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대답했다.


'바로 이거죠. 이 두 가지면,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답니다.'


황대근은 혜윰이 했던 말을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을 느껴본 적은 없는데, 지금 만큼은 달랐다.

헌데, 정말로 단순히 그 '두 가지'때문에 왕근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50kg짜리 덤벨에 얼굴을 맞아 수박 마냥 깨지고 싶지 않아서 일어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왜 갑자기 일어나게 된 것일까?






(대근건설 - 뇌부서)



왕근이 일어나기 약 15분 전, 레이지는 혜윰과 메모리와 함께 뇌부서로 갔다.

아직 드림팀을 제외한 뇌부서 직원들 대다수가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라 뇌부서는 한가했다.


평소 같으면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뇌부서에 발도 들이기 어려웠을 텐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큰 방해 없이 뇌부서 입성에 성공한 혜윰과 메모리는 약간은 얼빠진 표정으로 뇌부서를 둘러보았다.


"이야....혜윰씨.... 저도 나중에는 꼭 뇌부서로 갔으면 좋겠네요...."


메모리가 감탄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뇌부서는 대근건설 최고의 부서답게 아주 화려했다.

엘리베이터는 당연하고, 에스컬레이터와 개인전용 스쿠터 등등 온갖 다양한 이동수단이 존재했다.

메모리아부서의 낡아 빠진 카페 같지도 않은 카페와는 다르게, 뇌부서의 카페는 아주 예뻤다.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이때 메모리는 카페 직원이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니, 여기서는 마음껏 점프해도 되겠는데요?"


점프를 하면 천장에 머리를 박아 뇌질환이 올까 걱정해야 할 정도로 낮은 메모리아부서의 천장과는 다르게, 뇌부서의 천장은 아주 높았다.

세계 랭킹 1위 높이뛰기 선수가 와서 뛰다가, 심심해서 공중에서 트리플악셀을 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높았다.


메모리는 이토록 화려한 뇌부서 건물을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는 뇌부서로 오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혜윰이 친절하게도 그 희망을 터뜨려 주었다.


"꿈 깨세요. 한번이라도 메모리아부서직원이었던 직원은 뇌부서로 갈 수 없어요. 다른 부서면 몰라."


실제로,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이 힘들었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인사팀에서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인사팀은 뇌부서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설사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해도, 모두가 꺼리는 방광팀이나 항문팀, 그나마 운이 좋으면 위장팀으로 갈 수 있었다.


어쨌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뇌부서로는 갈 수 없었다. 메모리아부서 직원이라는 것은 일종의 주홍글자나 다름 없었으니까.



"아, 저기 있다! 워커(worker)! 이봐 워커!"


레이지는 아까부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혜윰과 메모리는 뇌부서에 아무도 없는데 대체 누굴 찾느냐며 그를 타박했으나 레이지는 끈질기게 누군가를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워커]라 불리는 한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워커는 뇌부서의 고장난 문손잡이나 약간 금이 간 유리창 등등을 기웃거리며 뚝딱거리면서 고치고 다니고 있었다.

그 여자는 매우 바빠 보였는데, 여유가 없어 보였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여유 없음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단 한시라도, 단 일 초라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레이지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여자였다. 게으른 레이지와는 다르게 조금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을 지닌 것이다.


레이지가 게으름의 대명사 같은 존재라면, 워커는 부지런함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뭐야, 날 왜 불러 레이지? 나 바빠. 할 일이 아주 많다구."

"워커, 날 좀 도와줘."


그의 말에 워커가 두 눈을 반짝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레이지가 있던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이 돌아다니던 신경도 안 쓰던 그녀였는데, '도와달라'는 한 마디에 갑자기 돌변한 것이다.


부지런함의 대명사 답게, 그녀는 자신에게 일이 생기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널 도와 달라고? 뭔데? 무슨 일인데? 뭘 해야 하는데? 바쁜 일이야? 어떤 일인데 그래?"


레이지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대답했다.


"네가 가장 잘 하는 걸 해줘."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인간 황대근은 잠에서 겨우 깨어났다.

정신은 이미 현실세계에 도착한 지 오래지만, 그는 어쩐지 감은 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성능 좋은 안막커튼 덕분에 방 안은 깜깜했다. 그는 속으로 기도했다. 아직 새벽이기를.


"젠장.... 지금이 몇 시야...?"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 황대근은 상황을 판단하려 애를 썼다.

얼굴은 여전히 이불 속에 묻어버린 채, 그는 이불 밖으로 손을 뻗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낚아 챈 다음, 이불 속으로 가져왔다.


"제발.... 제발 아직 새벽이어라..."


황대근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한 예감을 애써 지워가며 핸드폰 화면을 켰다.


"음, 내가 아직 잠에서 안 깨어났나 보네. 자다 깨서 눈이 부셔서 그런 거겠지. 다시 한 번 봐볼까?"


기적을 바랐으나 기적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작은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젠장할, 지각 같은 건 생기부에 영향 없겠지? 그렇겠지? 지각하면 안 되는데. 김철환 그 새끼 성격상 별 지랄을 다할지도 모른단 말이지. 무섭지는 않지만 그 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지옥이 따로 없구만.'


겨우겨우 준비를 마친 황대근은 오전 8시 48분에 학교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지각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황대근!"


저 멀리 뒤편에서 천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눈이 퉁퉁 부은 걸 보니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게 틀림없다.


"야 황대근, 너 머리 안 감고 나왔냐? 네 뒷머리에 까치가 와서 새끼 낳아도 되냐고 물어봐도 안 어색할 것 같은데."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 헬스장)



인간 황대근이 교실로 들어가는 동안, 또 다른 황대근은 운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자의로 원했던 운동은 아니었다.


"자, 대근군! 그럼 지금부터 간단하게 몸을 풀도록 하자고!"


왕근에게 있어서 [간단하게 몸을 풀기]란 절대로 간단한 게 아니겠지만, 황대근은 상관 없었다.

그에게는 혜윰이 준 인형과 약이 있으니까, 적당한 때 빠지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적당한 때가 과연 언제인가 하는 점이었다.


"오늘은 하체를 할 것이야! 하체야 말로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하체가 약하면 다른 곳도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법일세!"


언제쯤 튀면, 아니 도망가면 될까?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고 나오면 될까?


"좋았어! 스트레칭도 폼롤러도 간단한 몸풀기 운동도 다 마쳤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해 보도록 하지!"


간단한 몸풀기 운동이 비록 한 번도 쉬지 않고 버피 200개이긴 했지만, 뭐 상관없었다.

왕근하고 한 두 번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쯤이야.


그나저나 정말로 적당한 때가 언제일까? 언제가 도망갈 타이밍일까?


"자! 제일 먼저 백스쿼트(Back squat) 10세트를 하도록 하지! 원래는 20세트 하려고 했지만 특별히 봐주는 걸세~ 10세트면 참 별거 아니지 않은가? 아! 참고로 세트간 휴식시간은 30초일세! 한 세트당 무조건 20회씩이야!"


신나게 바벨을 들어 올리는 정신나간 근육돼지 왕근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황대근은 생각했다.


지금이 바로 그 때, 그 타이밍이 아닐까 하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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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3) 21.11.22 18 1 12쪽
147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2) 21.11.21 21 1 12쪽
146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1) 21.11.21 20 1 13쪽
145 선과 악은 한 끗 차이 21.11.20 20 1 13쪽
144 시연아빠 (2) 21.11.20 20 1 13쪽
143 시연아빠 (1) 21.11.19 17 1 13쪽
142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21.11.19 19 1 13쪽
141 당신 미쳤어? 21.11.18 21 2 12쪽
140 그 남자의 의심 21.11.18 19 1 12쪽
139 플렉스(Flex) 21.11.17 19 1 13쪽
138 바쿠(Baku) (4) 21.11.17 23 1 13쪽
137 바쿠(Baku) (3) 21.11.16 18 1 11쪽
136 바쿠(Baku) (2) 21.11.16 20 1 13쪽
135 바쿠(Baku) (1) 21.11.15 20 1 12쪽
134 악몽(The nightmare) (3) 21.11.15 18 1 12쪽
133 악몽(The nightmare) (2) 21.11.14 20 1 14쪽
132 악몽(The nightmare) (1) 21.11.14 19 1 12쪽
131 황대근의 소화불량 (5) 21.11.13 21 1 13쪽
130 황대근의 소화불량 (4) 21.11.13 20 1 12쪽
129 황대근의 소화불량 (3) 21.11.12 19 1 13쪽
128 황대근의 소화불량 (2) 21.11.12 20 1 13쪽
127 황대근의 소화불량 (1) 21.11.11 22 1 12쪽
126 통제불능(out of control) (5) 21.11.11 21 1 13쪽
125 통제불능(out of control) (4) 21.11.10 21 1 13쪽
124 통제불능(out of control) (3) 21.11.10 18 1 12쪽
123 통제불능(out of control) (2) 21.11.09 22 1 12쪽
122 통제불능(out of control) (1) 21.11.09 18 1 13쪽
121 유령의 십자가 (5) 21.11.08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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