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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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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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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1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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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 남자의 의심

DUMMY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시간은 흘러 어느덧 쌀쌀한 바람이 이는 11월 6일 토요일이 되었고, 황대근은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약 몇 달 전, 평택에서 13년 전 범인의 범행수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남성이었는데, 최근 3심 재판이 끝난 상황이다.

피해자는 둘. 남성과 여성 각각 한 명씩이다.

범인의 진술에 의하면, 범인은 신의 뜻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피해자들의 온 몸의 가죽은 벗겨져있었다.


피해자들은 큰하늘님이라 불리는 신의 뜻을 거절했고, 범인은 그저 정의를 행했을 뿐이라 대답했다.

범인은 엽기적인 살인 행각에도 죄를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가운데, 범인의 형이 결정되었다.


재판부에서는 범인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점과, 아직 나이 젊어 앞날이 창창하고, 또 초범이라는 이유를 들어 겨우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워낙 엽기적인 살인 행위인지라 특정 TV프로그램에서는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것 좀 보십시오. 피해자들 사진을 자세히보면 목 부분에 교살의 흔적이 보이죠?]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만약 범인이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면, 손 자국이 반대로 나야 정상인데 사진 속 손자국은 마치 피해자들이 스스로의 목을 직접 조른 것처럼 보인단 말이죠.]

[아니, 그럼 자살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죠. 왜냐면 피해자들이 죽은 후 가죽이 벗겨졌으니까요. 스스로 미쳤다고 가죽을 벗기겠습니까? 자살하는 인간들 보면, 제 가죽 벗기는 인간은 한 명도 없어요. 보통 떨어져서 죽든, 목매달아 죽든 하죠.]

[그럼..... 교살은..... 범인이....? 하지만 왜 손 방향을 이렇게 한 걸까요?]

[자살 같은 타살로 보이게 하고 싶었겠죠. 너무 어설프긴 했지만.]


[제가 듣기로 경찰은 처음에 자살로 처리했었다고 하던데요. 이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걸 자살로 처리합니까? 스스로 교살해 죽을 수 있다고 쳐도, 가죽 벗기기는 쉽지 않죠. 물론 그 부위를 자르는 것도요. 이 세상에 어떤 남자가 미쳤다고 거길 스스로 자르겠습니까?]



이건 모방범죄다. 황대근은 생각했다.


살인범이 가죽을 벗기는 경우는 사실 흔치 않다. 아무리 계획범죄라 해도,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토막을 내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가죽을 벗기는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다.


범인이 큰하늘님을 외치는 까닭에 경찰은 처음에는 구영원을 수사하는 척 했으나, 아무런 성과는 없었다.

재판부 말대로, 범인에게는 정신질환이 있었다. 아마 인터넷에 빠져 살다가 어느 날 13년 전 평택 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멍청하게도 그 사건을 재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범인은 고어영화를 보고 순간적으로.... 유명 고어영화 중 고문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제목은 호스ㅌ..... 어린시절 좋지 않은 형편과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띡—


TV가 꺼졌다.

황대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양아버지가 보인다. 그가 TV를 끈 것이다.


"저런 거 보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다. 살인사건을 겨우 4년을 선고하는 게 어디 있냐? 저 새끼 나중에 나와서 또 누구 한 명 죽일걸? 사형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무기징역은 때려야 하는 게 아니냐? 이런 거 보면 뭣하러 월급 받아먹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리고 살인범 새끼 어린시절을 우리가 왜 알아야 하냐? 어린 시절이 불행했으면 누구 죽여도 돼?"


황대근은 툴툴거리는 그를 내버려둔 채 핸드폰을 킨 후 'N'자가 그려진 초록색 어플을 켰다. 뉴스가 보인다.

뉴스에는 현재 이 사건의 범인에 관해 평택 경찰서장이 인터뷰한 것이 실려있었다.

그는 굳이 기사의 전문을 읽을 생각은 없었고, 기사의 제목만 살펴보았다.


[안광윤 평택경찰서장....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평택경찰이 될 것..... 지켜봐달라.....]






며칠 뒤 월요일 저녁, 시연아빠는 차 안에 있었다. 한참 퇴근시간이었기에, 길은 막혔다.

그는 운전대를 잡고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답답한 앞 차량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결국은....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갑자기 옆 차선에서 새치기를 하려는 한 검은색 세단을 향해 빵빵거리며, 시연아빠는 낮에 회사에서 동료가 했던 말을 회상했다.


'저번에 내가 티비에서 드라마하는 거 봤거든? 어? 아니아니, 지상파 방송 아니었어. 지상파에서 언제는 뭐 그런 거 내놨냐? 맨날 출생의 비밀이나 재벌하고 결혼해서 시월드 겪어제끼는 것만 떼거지로 방영해줬지. 암튼, 제목이 [살려줘]였거든?'


살려줘라니.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고 시연아빠는 생각했다.


'어떤 여자가 사이비에 미쳐가지고 지 딸도 사이비 교주한테 바치려 한 거야. 왜 바치냐고 지 딸을? 그야 나는 모르지. 내가 사이비냐?'

'암튼, 나는 이해는 안 가는데 그 여자는 지 몸도 그 미친 교주한테 죄다 바치는 거야.'

'그런데 그 여자만 그런 게 아냐. 단체로 세뇌당했는지 다른 여자신도들도 그러는 거지.'


'그래, 교주가 무슨 신이라도 된 것 마냥 구는 거라니까. 그런 사이비들 앞에서 교주 욕하잖아? 뒤지게 욕 얻어 처먹는거야'

'그 인간들은 교주를 인간이라고 생각 안 해. 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빠앙—


검은색 세단이 무리해서 차선을 변경하려 시도하자, 시연아빠가 경적을 울렸다.


'근데 뭐,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해도 결국 사이비들이 원하는 건 하나지. 돈 아니겠어?'

'그렇게 신을 생각하면서 성실하고 청빈하게 산다고 입 털어도, 결국 사이비교주가 원하는 건 자기만의 하렘 왕국 건설하고 싶다는 거 아냐?'

'너도 조심해. 네 와이프도 어디 이상한 종교 다닌다며? 구영원이랬나? 종파가 어디래? 기독교야, 어디야 뭐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던 앞 차량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미있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모른다고? 언제 한 번 물어봐. 알아봐서 나쁠 것 없다니까.'

'뭐?...... 아니, 기분나빠하지는 말고. 내가 언제 네 마누라 욕했냐?'

'그래, 그러니까. 혹시 모른다는 거야.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다행이지만, 안 일어났다고 해서 미리 예방해서 나쁠 건 없잖아? 안 그래?'

'당장 카드내역도 확인하고, 생활비도 검사해. 어디 함부로 못 나가게 하고. 그리고 언제 한 번 기회가 되면, 왜 집에 새벽 늦게 들어오는지 알아보란 말이야.'

'보통 가정주부들이 어쩌다 몇 번도 아니고 이렇게 자주 늦게 들어오는 건 말이야, 뭔가 이상하다는 거야.'


빠앙— 빵— 빵—


시연아빠가 회상에서 깨어났다. 뒷 차량들이 그의 차량을 향해 경적을 울려댔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가 앞을 보니, 막혔던 도로는 언제그랬냐는 듯 훤히 뚫려있었다.


그는 뒷 차량을 향해 미안하다는 작은 사과의 표시를 하고는 악셀을 밟았다.







다음 날 화요일, 점심시간에 황대근과 친구들은 서둘러 급식을 먹은 후 교실을 빠져나와 운동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 과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특히 백경민은 식판을 두 번이나 리필해 먹었는데, 아직 성장기라 그런지 먹성도 좋았다.


"안익준 표정 요즘 X같더라."


천강우가 노란색의 길쭉한 과자를 입에 쏙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는 그 새끼가 구영원얘기 하는 걸 거의 들어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언제부터더라? 갑자기 구영원 욕하더라? 막 '정신나간 놈들이지. 보이지 않는 신한테 별 짓을 다하고 있잖아. 안 그래?' 하면서."


황대근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약 두 달 후면 그는 그 유명한 고3이 되기 때문이다.

내 앞길 바빠 죽겠는데 같은 반 남학생 표정이 구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허나 백경민은 아닌 것 같다.


"난 그 새끼가 싫어. 차라리 박정우가 낫지. 안익준은 아닌 척하는 여우새끼라고. 그 새끼 표정이 더 구려졌음 좋겠어."


한편, 안익준만큼 이시연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황대근은 그녀에게,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물었다.


그러자 천강우가 그녀 대신 '이시연의 얼굴은 원래 저 모양'이라 대답했고, 이시연은 천강우의 구랫나루를 쥐어 뜯어버렸다.

물론, 다 뜯지는 않았다.


"요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청소하고, 방 치우고 빨래하고 해서 그래."


백경민이 그녀에게 물었다.


"너 훈련도 하면서 집안일 하긴 좀 힘들지 않냐? 솔직히 너 지금까지 집안일 해본 적 없잖아.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했는데도 힘들어."


그녀가 대답했다.


"요즘 엄마가 집에 잘 안 들어와."

"너희 아빠는?"

"아빠는 일찍 출근해서 늦게 들어오셔. 사실상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정도밖에는 여유가 없어."


황대근이 물었다.


"어머님이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냐?"


이시연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픈데 왜 새벽 늦게 들어오겠어? 내가 힘든 건 엄마가 엄마가 집안일을 안 해서가 아냐. 뭐 하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어. 내가 궁금한 건, 대체 왜 계속 새벽에 들어오느냐는 거야."






(경기도 평택시 - G아파트)



늦은 새벽인 2시 40분 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다른 집들의 불은 거의 꺼져 있었다. 가족 단위로 많이 사는 아파트이니까, 당연하다.


띠리릭—


문이 열리고, 정적이 감도는 어두운 집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굽이 낮은 검은 구두를 벗고,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느슨해진 녹색의 넥타이와 검은 약간은 풀어 헤쳐진 정장을 입은 한 시연엄마가 거실로 들어왔다.


끼익-


왜 새벽만 되면 발걸음 소리 하나하나가 이토록 크게 들리는 것일까?

시연엄마는 최선을 다해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부엌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타악—


그리고 바로 그 때, 거실의 불이 켜졌다.

속으로 깜짝 놀란 시연엄마는 천천히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연아빠가 팔짱을 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디 갔다와?"







한편, 자취방에 있는 메모리는 깨어있는 상태였다.

이제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는데, 왜 아직도 안 자고 있는 것일까?


"씨, 혜윰씨랑 말하고 나니까 이제야 생각이 났네. 피니시팀장님이 뺏어간 내 10만셀! 되돌려 받고 말겠어!"


이전에 메모리는 피니시에게 아나토미 보드게임으로 10만셀을 잃었었고, 할리갈리 보드게임에서도 5만셀을 잃었었다.

총 15만셀이나 잃었으니, 잠이 안 올 만도 하다.

돈 잃은 걸 이제야 떠올린 게 함정이긴 하지만.


띵—! 띵—!


그는 현재 할리갈리를 연습하고 있었다.

띵띵거리는 종소리가 방음도 안 되는 좁은 자취방을 가득 울렸다.

원룸에 빈 집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시각은 새벽시간이다.

새벽에 출근하는 직원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조심해야 할 텐데 메모리는 그러지 않았다.


"피니시팀장! 내가 꼭 발라주마!"


쾅쾅쾅—!


그때, 누군가 그의 집 현관문을 위협적으로 두들겼다.


쾅쾅쾅—!


"아 진짜, 대체 누구야 이 시간에? 예의 없게!"


메모리는 저번처럼 술취한 어떤 남자가 또 집을 잘못 알고 두들기는구나 싶어서, 따끔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허나 그가 한 마디는 커녕 반 마디도 내뱉지 못했을 즈음, 밖에서 잔뜩 성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그 띵띵거리는 개짓거리 그만두지 않으면 두 번 다시는 두 다리로 출근하는 일은 없을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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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시연아빠 (1) 21.11.19 17 1 13쪽
142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21.11.19 19 1 13쪽
141 당신 미쳤어? 21.11.18 21 2 12쪽
» 그 남자의 의심 21.11.18 20 1 12쪽
139 플렉스(Flex) 21.11.17 19 1 13쪽
138 바쿠(Baku) (4) 21.11.17 23 1 13쪽
137 바쿠(Baku) (3) 21.11.16 18 1 11쪽
136 바쿠(Baku) (2) 21.11.16 20 1 13쪽
135 바쿠(Baku) (1) 21.11.15 20 1 12쪽
134 악몽(The nightmare) (3) 21.11.15 18 1 12쪽
133 악몽(The nightmare) (2) 21.11.14 20 1 14쪽
132 악몽(The nightmare) (1) 21.11.14 1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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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황대근의 소화불량 (4) 21.11.13 20 1 12쪽
129 황대근의 소화불량 (3) 21.11.12 19 1 13쪽
128 황대근의 소화불량 (2) 21.11.12 2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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