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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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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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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90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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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악몽(The nightmare) (3)

DUMMY

다음날 10월 26일 화요일 늦은 저녁. 컨트롤은 이미 몇 시간 전에 칼퇴근을 했다.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직원휴게실에 모여 앉아 릴리가 보낸 전서혈을 읽고 있었다.



전서혈에 따르면, 현재 인간 황대근에게서 나타나는 뇌파의 양상이 '살아있니?'와 '오랜만이야'문구를 봤을 때와 같고, 또 영부를 만났을 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꿈을 보내는 이가 범인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범인이 어제 또 대근이 꿈에 함부로 들어왔나봐요."


혜윰이 전날 밤에 인간 황대근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끔찍한 기억을 꿈으로 재생산할 생각을 하다니,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게 틀림없다니까요."


메모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거울은 뭐였을까요? 거울을 보는데 왜 남자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만 보이는 거죠?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혜윰이 대답했다.


"외면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일종의 방어기제인거죠."

"외면이라고요?"

"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외면하고 싶은 거죠. 사실 상처라는 건 아무리 다 나았다고 둘러댄다 해도, 결국 흉터는 남는 법이잖아요. 우리가 어린 페르소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고 해도, 그렇게 큰일을 당하면 결코 잊기는 어렵죠. 끔찍한 기억이었으니까."


황대근은 눈을 감고 소파에 드러누워 다리를 꼰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비록 자세가 조금 싹바가지 없고 시건방져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나름대로 진지했다.


"대근씨."


메모리의 부름에 황대근은 감았던 눈을 떴다.


"이게 전부 사실이면, 대체 영부 그 새끼를 꿈 속에서 어떻게 내보내죠? 놈이 못 들어오게 막긴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 대근이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 올라가서 남성호르몬 수치도 내려갔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스트레스 받다가 저번처럼 탈모 오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끔찍한 소리를 하는 메모리를 달래며 그가 대답했다.


"우리도 그곳에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언제 들어가죠?"


당연한 걸 뭐하러 묻느냐는 듯, 황대근의 표정은 덤덤했다.


"지금 당장 들어가 봐야죠. 얼마 전 대근이가 꾼 꿈의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도 찾을 겸."






(?)



메모리는 혹시모를 사태에 대비해 메모리아 부서에 남기로 했다.

만약 누군가 부서 내로 침입해서 깊은 잠에 빠져든 황대근과 혜윰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니까 말이다.


"슬슬 잠에 빠져들었을 텐데, 대근이는 오늘도 꿈을 꿀까요?"


뭉게구름으로 가득 찬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묻는 혜윰에게, 황대근은 대답했다.


"분명 꿀 겁니다. 영부는, 아니 범인은 또 올 거예요."


한참을 뭉게구름 사이에 서 있던 그들은, 구름들이 좀처럼 걷힐 생각을 하지 않자 일단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결정했다.

여기를 가도 구름 범벅, 저기를 가도 구름 범벅인 길을 한참을 걷다 보니, 주위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간 황대근이 얼마 전 꾸었던 꿈에 나온 검은사막으로, 배경은 바뀌었다.


"어? 저기 대근이가 보여요!"


혜윰이 가리킨 곳을 보니 시커먼 검은모래사막에 한 소년이 보였다.

그 소년은 황대근이었는데, 잠옷을 입고 여기저기를 좀비처럼 걸어다니고 있었다.


꽈당—


그렇게 한참을 걷던 소년은 그만 넘어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그러나 소년은 다시 일어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겁을 먹은 것인지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다.


"어딜 가려는 걸까요?"


혜윰의 질문에 황대근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침 두 사람이 소년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곽두팔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재물산 사건 피해 여성이었다.

곽두팔의 두 손과 두 발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여자의 얼굴은 잔뜩 짓뭉게져 있었다.


자유로이 움직이는 몸통이 얼굴에 붙어있지 않았더라면, 저것이 과연 인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짓뭉게져 있었다.


스슥—


두 사람은 소년을 발견하더니, 곧 도망치는 소년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맨발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달렸다.

두 사람은 아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그들의 생김새 때문일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소년을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해를 입히기라도 할 것처럼 두 사람은 굶주린 짐승처럼 소년을 위협하며 달려왔다.


소년은 도망쳤다. 또 다른 황대근은 위험에 처한 그를 구하려 그에게로 달려가려 했느나, 혜윰이 그를 막아섰다.


"대근씨, 이러면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지금 저 새끼 위험하다고요!"

"타인의 꿈은, 특히 인간의 꿈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거라고 그랬어요."


혜윰을 무시한 채 소년에게 달려가려던 황대근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째서요?"

"인간도 아닌 우리가 함부로 꿈을 건드리는 건, 대근이의 기억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과 비슷해요."


황대근과 혜윰은 드림팀직원이 아니다.

메모리아부서 직원은 사실 그대로의 꿈과 기억을 저장해야 한다.

이 둘에게는 드림팀과 같은 권한이 조금도 없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어떻게 저 녀석을 구해줍니까?"


여전히 도망치기 바쁜 소년을 보며 혜윰이 말했다.


"저도...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ㅈ.... 어라? 저것 좀 봐요!"


혜윰이 거울을 가리켰다.

검은사막으로 뒤덮여 있던 주위 배경은 어느 새 커다란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의 방으로 바뀌었다.


"꿈이 갑자기 바뀌었잖아? 이건 무슨 시간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는구만."


황대근의 말대로, 꿈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저 익숙한 것에만 익숙한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의 개념일 뿐이다.

꿈은 시간을 초월한다. 꿈은 공간을 초월한다.

인간에게는 익숙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일도, 꿈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다.


터벅터벅—


황대근은 거울 가까이 다가갔다.

거울 속에는 인간 황대근의 친부모가 있었다.

황대근의 모습은 비춰지지 않았다.


"여기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생각도 못했었는데."


혜윰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그녀 역시 황대근처럼 거울을 통해 인간 황대근의 친부모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형상을 잘 살펴보니, 그녀가 바라보는 거울에는 친부모가 아닌 곽두팔과 피해 여성의 모습만이 비춰질 뿐이었다.


"대, 대근씨!"


황대근이 친부모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을 무렵, 혜윰이 소리쳤다.


"공간, 공간이 일렁이고 있어요! 이 꿈이 무너지려는 거예요!"


꿈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타인의 침입에 의한 것일수도 있다.

드문 경우기는 하지만, 고도로 훈련된 드림워커가 고의적으로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와장창—


거울의 방에 있던 거울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황대근과 혜윰 머리 위로 떨어졌다.

황대근은 입고 있던 곤색의 캐주얼 자켓을 벗더니 혜윰의 머리를 감싸주었다.

그가 머리에 커다란 유리조각을 맞자마자 둘은 꿈 속에서 빠져나와 무의식에 도착했고, 또 다시 그곳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온 몸이 스파게티 면처럼 늘어나고 몸 속의 장기가 돈까스 망치로 짓뭉게지는 기분이 들며 무의식을 빠져나오고 있는 도중, 황대근은 무의식 속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슥—


그것은 종이였다.

무엇이 적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대근은 손에서 종이를 놓지 않았다.







다음날 수요일, 이른 새벽부터 황대근은 직원휴게실 소파에 누워 무의식에서 가져온 종이를 보며 고민했다.


[STILL ALIVE]

[EC,CE,HO,MO]


첫 번째 문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인데, 대체 두번째 문구는 무슨 뜻일까?


"'저 사람을 보라'라는 말이래요."


컨트롤이 출근하지 않은 틈을 타 메모리아부서 자료실에서 라틴어 단어 사전을 꺼내온 혜윰이 말했다.

그녀가 가져온 라틴어 단어 사전에는 여러 라틴어가 적혀 있었는데, 옥수수를 까먹기라도 한 것처럼 중간 중간 단어들이 많이 빠져 있었다.

인간 황대근이 '들었던' 것들만 기록되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왜 범인은 그런 문구를 남겨둔 걸까요?"


메모리의 질문에 혜윰은 콧김을 내뿜었다.


"뻔하죠 뭐! 허구한 날 자기는 아직 살아있다면서 대근이를 자꾸 도발하잖아요! 아! 정말 빡쳐! 영부를 간신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풀려나지를 않나! 이쯤되면 평택 경찰서에 구영원 신도 한 명 있는 거 아녜요?!"


공범이라, 황대근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영부가 구치소가 잡혀들어갔을 때, 구영원에는 분명히 밤마다 영부가 나타났었다고 했다.

구영원 신도들이 단체로 미치거나 환영을 보지 않는다면, 공범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공범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는 상태다.


털썩—


꿈 속의 여행이 피곤했는지, 혜윰은 소파에 일자로 드러누웠다.


"아~ 이번 사건은 어떻게 해결하죠? 악몽을 어떻게 없앤단 말이에요? 저희는 드림팀 직원도 아니라 함부로 할 수도 없고, 쉐도우한테 들킬까봐 녹스팀장님한테 얘기하기도 곤란하고! 아까 감정팀에서 전화한 거 알아요? 대근이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 완전 올라갔다면서 저한테 바가지 긁었다니까요? 내가 올렸나, 뭐?"


혜윰이 드러누운 소파 옆 바닥에 드러누우며, 메모리가 툴툴거렸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누가 악몽을 좀 잡아먹어주면 좋겠네!"






(대근건설 - 뇌부서 - 드림팀)



다른 드림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녹스는 홀로 남아 자료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자료는 브레인 부장에게, 다른 자료는 메모리아부서에, 또 다른 자료는 드림팀 내에 있는 보관실에 자체 보관을 해야 했다.


똑똑—


누군가 드림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녹스가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 밖에 있던 직원이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릴리였다.


"릴리팀장님?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퇴근 안 하세요?"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녹스는 그녀를 초승달 모양의 탁자와 반달 모양의 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런 뒤 노란빛이 도는 차 한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드세요. 잠 잘 때 좋은 차니까. 푹 잘 수 있게 도와주거든요"


릴리는 녹스에게 감사 인사를 해 보이더니, 본론을 얘기했다.


"음, 저번에 제가 도서관에서 본 게 하나 있거든요."


대근건설의 도서관은 제1건물 브레인에만 존재한다.

다른 부서 직원들도 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어느 부서인가에 따른 제한이 있는 편이다.

도서관에는 책들이 제법 많은데, 이비인후팀장 엔트가 직접 집필한 책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인간 황대근이 직접 보고 들은 것에 관한 내용들 뿐이다.


"어떤 걸 보셨는데요?"

"꿈의 전설에 관한 내용의 책이었어요."

"꿈의 전설?"

"네. 책에는 여러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그게 뭔데요?"

"악몽을 잡아먹는다는 전설 속 괴물이 있다고 하더군요."


녹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물이요? 악몽을 잡아먹는? 처음 듣는 얘긴데요."


노란빛이 감도는 차를 천천히 음미하더니, 릴리가 말했다.


"아주 먼 옛날, 중국과 일본에서 주로 언급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름이.... 바쿠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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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플렉스(Flex) 21.11.17 19 1 13쪽
138 바쿠(Baku) (4) 21.11.17 23 1 13쪽
137 바쿠(Baku) (3) 21.11.16 18 1 11쪽
136 바쿠(Baku) (2) 21.11.16 20 1 13쪽
135 바쿠(Baku) (1) 21.11.15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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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악몽(The nightmare) (1) 21.11.14 1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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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황대근의 소화불량 (4) 21.11.13 20 1 12쪽
129 황대근의 소화불량 (3) 21.11.12 19 1 13쪽
128 황대근의 소화불량 (2) 21.11.12 20 1 13쪽
127 황대근의 소화불량 (1) 21.11.11 22 1 12쪽
126 통제불능(out of control) (5) 21.11.11 21 1 13쪽
125 통제불능(out of control) (4) 21.11.10 21 1 13쪽
124 통제불능(out of control) (3) 21.11.10 18 1 12쪽
123 통제불능(out of control) (2) 21.11.09 22 1 12쪽
122 통제불능(out of control) (1) 21.11.09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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