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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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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3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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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통제불능(out of control) (2)

DUMMY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다음 날 10월 10일 일요일, 기적을 경험한 고길동은 침례식을 받고 정식 신도가 된 뒤 더욱 열심히 구영원을 들락거렸다.

마침 새로이 지파장으로 임명된 다대오지파장 시연엄마와, 요한지파장 김철환이 그의 곁을 지나갔다.


물론 이전 지파장들이 있기는 했지만, 두 명의 지파장이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기에, 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김철환과 시연엄마가 최근 큰하늘님을 위한 제물을 바치는데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에 둘은 지파장이 될 수 있었다.


지파장들의 평균 나이가 68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둘은 제법 젊은 지파장 축에 속했다.


"지파장님!"


두 명의 젊은(?) 지파장들에게 고길동이 소리쳤다.


"지파장님! 임명식 잘 봤습니다!"


김철환과 시연엄마는 걸음을 멈췄다. 김철환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간단한 목례를 해보이더니 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고길동 형제님, 이제 무릎은 괜찮으신 건가요?"


주위에는 신도들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신에 의해, 아니 영부로 인해 기적을 경험하게 된 노인을 경이로운 듯이 쳐다보았고, 지파장 두 명을 존경의 눈빛을 담아 우러러보았다.

기적을 경험한 노인과 젊은 두 지파장의 만남. 신도들은 아닌 척 하면서 흥미로운 듯 그들을 지켜봤다.


"그렇습니다! 아주 팔팔해졌습니다! 이러다 100살까지 살 것 같아요!"


고길동은 김철환과 시연엄마가 큰하늘님을 위한 제물을 바친 덕에 자신이 이렇게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면서, 큰하늘님의 뜻을 받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처럼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죽은 곽두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죽은 이는 듣지 못할 텐데도 말이다.


"하하, 이제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김철환과 시연엄마는 노인과의 대화를 마친 후, 지상 3층에 있는 '기적의 방'으로 올라갔다.

기적의 방으로 가는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시연엄마는 김철환에게 말했다.


"얼마 전 제물을 바친 이후로, 신도들의 마음이 더욱 더 신실해졌어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덕분에 저희 영부님께서 다시 부활하시지 않았습니까? 죽음에서 부활하신 영부님이야말로, 큰하늘님과 가장 가까운 이 세상의 진정한 메시아(messiah)라고 할 수 있지요."


김철환은 검은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넥타이의 색은 녹색이었다.

녹색의 넥타이는 구영원의 지파장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징적인 색이다.

역시 같은 녹색의 넥타이를 메고 있던 시연엄마가 그에게 물었다.


"학교에서는 별 일 없던가요? 자기네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을 텐데요."


김철환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 별 일이야 당연히 있죠. 아직 H고에서는 제가 구영원 신도라는 것을 모릅니다만, 무지한 자들이 함부로 그 사악한 혀를 놀리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어른들이 어린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텐데, 다른 선생들이 이미 입을 놀린 바람에 학생들 역시 사탄의 꾐에 넘어가 우리 영부님을 욕하고 있습니다."


그가 열변을 토하자, 시연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그렇군요.... 저희 시연이가 그런 악마의 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엇나가버린 거예요."


'시연이'라는 이름을 듣자, 김철환은 얼굴에 잠깐 동안 음흉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자매님. 자매님께서 열심히 기도하시고 영부님을 극진히 모시다 보면, 언젠가는 그 아이도 큰하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을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놀이터)



같은 시각, 이시연이 소리쳤다.


"미친, 그건 다 개소리야!"


고길동이 기쁨에 겨워 이제는 구영원을 뛰어다니는 동안, 황대근과 친구들은 H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시연은 벌레라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야, 아무리 곽두팔이 정말 사이비 종교에 빠졌을지 어땠을지 몰라도, 확실히 사이비 아냐? 누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자살을 해?"


이시연 옆에서 그네를 타던 천강우가 하늘 높이 오르며 말했다.


"경찰이 곽두팔은 사이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잖아. 하필이면 곽두팔한텐 가까운 친척도 없고, 결혼도 안 해서 무연고자가 되었다는데?"

"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주위에 아무도 없냐? 그런데 곽두팔은 김철환하고 친하지 않았냐?"


백경민이 툴툴대자, 천강우가 대답했다.


"물론 김철환하고 한 대화를 보면 구영원 신도같긴 한데, 확실한 건가?"

"확실해."


놀이터 특유의 고무 바닥에 앉아있던 황대근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친구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대근은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고무 바닥을 내려다본 채 말을 이었다.


"저번에 여름에 같이 크로스핏 다닐 때, 김철환하고 곽두팔이 구영원에 가는 걸 봤잖아. 확실히 둘 다 구영원 신도가 맞아. 경찰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경찰 역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어. 우리가 본 걸 믿어야 해."


그의 말이 끝나고, 한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개미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정적이 이어지자, 백경민이 툴툴거렸다.


"도대체 뭔 놈의 신이 허구한 날 인간 세상에 재앙이나 내리고 사람 죽이고 쌌냐? 왜 만날 죽이고 지랄인데? 솔직히 이번 십자가 사건은 그냥 딱 봐도 인신공양아니냐?"


타악—


이시연은 갑자기 공중으로 높이 떠오른 그네에서 거칠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바람에 천강우는 깜짝 놀라 그만 뒤로 자빠질 뻔 했다.

친구야 그러든 말든, 이시연은 말했다.


"지금은 곽두팔이 사이비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영부야."


세 명의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황대근, 너한테 보냈다는 '오랜만이야'라고 적힌 쪽지도 그렇고 '살아있니?'라고 적힌 편지도 그렇고. 내 생각에 영부는 널 없애기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 같아."


천강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그럼 당장 죽이면 되지 왜 다른 인간들만 죽여?"


이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몰라. 방금 전 한 말도 확실하진 않아. 내 추측일 뿐이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영부가 정말 13년 전 범인이라고 해도 그건 우리의 추측일 뿐, 증거는 없다는 거야. 어쩌면.... 13년 전 범인이 죽어서 공소권 없음 처리가 된 것도 보면, 경찰에도 구영원 신도가 있어서인지도 몰라."


결국 토론의 결론을 내지 못한 4인방은 시내로 나가 출출한 배를 달래주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플 테니까 말이다.

천강우는 시내에 도넛대학이 생겼다면서, 자기는 나중에 도넛대학에 입학할 거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시연과 백경민이 최근 뱃살이 조금 튀어나온 그를 놀리며 따라가는 동안, 황대근은 풀린 신발끈을 묶느라 잠시 뒤쳐져 있었다.

그가 신발끈을 다 묶은 후 친구들 따라가려 굽혔던 무릎을 펴는 순간, 그의 머릿속이 딩- 하고 울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넌 이제 곧 내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다.'


소리는 사라졌고, 황대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들은 이미 저만치 가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조금 전 그 느낌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끔찍한 느낌이었다고.

누군가, 나의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대근건설 - ?)



한 남자가 침대 위에 누워있다. 서늘하고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아무래도 수술실 침대 같다.

침대는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방은 녹색과 흰색이 절묘하게 섞인 찬 공기가 가득한 방이다.

분명 대근건설 내에 위치한 것 같기는 한데, 이 방이 어디에 있는지는 추정하기가 어렵다.


침대에 누운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남자는 강도윤이다.

그는 기절한 것 마냥 의식을 잃고 누워 있다. 그의 팔과 다리는 침대에 단단히 고정되어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뇌파검사시 사용하는 기계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기계에 적힌 글자를 보니, 기계의 출처는 뇌파추적팀인 것 같다.


끼이익—


방의 서쪽에 있는 한 철문이 열린다. 차가운 공기에 맞물려, 철문에서는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을 닫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쉐도우다. 팔과 목 뒷부분에는 새로 갈았는지 아이보리색의 붕대가 감겨있었다.


쉐도우는 아무 말 없이 침대 주위를 돌며 강도윤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고 만다.... 으어ㄱ...?!"


작은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리던 쉐도우는 갑자기 비명을 내뱉더니 서둘러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너무 추운 까닭일까, 방의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 했던 것이다.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쉐도우는 강도윤이 깼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젠장...."


그는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붕대로 감싼 상처부위를 쓰다듬었다.


"젠장할.... 때린 곳을 또 때리면 어쩌자는 거야, 대체? 어차피 나나 그 새끼나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면서 이렇게 차별을 두느냐고? 하여간 이래서 육체를 가진 인간들은.... 정말 그지같다니까. 육신이 있다고 지들이 잘난 줄 안다니까. 지들 안에 나 같은 놈들이 고생하고 사는 줄은 모르고 말이야."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메모리아부서에는 황대근 뿐이었다.


컨트롤은 이미 퇴근한지 오래고, 메모리 역시 퇴근했다. 황대근은 릴리가 준 복사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자료에는 활성화된 뇌파사진의 일부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이 뇌파의 주인은 인간 황대근이다. 하지만 자료에 그려진 뇌파의 일부분은 엄밀히 따지자면 인간 황대근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자료에 따르면, 이 수상한 뇌파는 곽두팔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부터 나왔는데, 곽두팔이 죽은 후부터 뇌파의 파동이 심해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아주 미미해서 무시해도 될 정도였는데 말이다.


"우선 내 예상대로 흘러가긴 하는 군."


이 자료에 그려진 것은 강도윤을 의미한다.

인위적 자아라는 건 결국, 인간 황대근의 근원적인 자아가 아니다. 범인이 인간 황대근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한 거짓 된 자아일 뿐이다.


"일단 다행히 범인은 내가 활동하는 걸 몰라. 인간 황대근이 활동하는 줄 알고 있단 말이지. 진짜 드림워커는 난데 말이야."


일단 타이니랑 다른 동료들에게 큰소리치긴 했는데, 황대근은 걱정이 들었다.

황대근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흐름은 예상했으나, 흐름의 속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예상이라기보단 계획이라 해야 하겠지만.


아무튼, 범인은 꼭두각시가 된 강도윤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려는 걸까? 황대근은 알 수 없었다.


끼이익—


"어? 대근씨 퇴근 안 했어요?"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혜윰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무얼 잔뜩 사온 것인지, 배가 빵빵해진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어우, 주이사님은 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요? 얼굴은 멀쩡하게 생기신 분이, WBC매점에 쬐끄만 기생충 한마리 나타났다고 그 난리를 피우시니!"


그녀가 사온 각종 간식거리들을 개인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기생충 나타나기 전엔 바선생도 때려잡을 것 마냥 허세를 부리셨는데 말이죠. 이럴 때 보면 주이사님 몸 속에 또 다른 주이사님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니까요? 누가 막 주이사님 몸 속에서 조종하나?"


순간, 황대근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섬광이 번쩍 하고 지나갔다.

그는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마냥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내더니 혜윰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혜윰씨, 고맙습니다!"


황대근이 직원휴게실로 급히 달려 들어갔다.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혜윰은, 큰 두 눈을 그저 껌벅여 보일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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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1) 21.11.21 19 1 13쪽
145 선과 악은 한 끗 차이 21.11.20 20 1 13쪽
144 시연아빠 (2) 21.11.20 20 1 13쪽
143 시연아빠 (1) 21.11.19 17 1 13쪽
142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21.11.19 19 1 13쪽
141 당신 미쳤어? 21.11.18 21 2 12쪽
140 그 남자의 의심 21.11.18 19 1 12쪽
139 플렉스(Flex) 21.11.17 18 1 13쪽
138 바쿠(Baku) (4) 21.11.17 22 1 13쪽
137 바쿠(Baku) (3) 21.11.16 18 1 11쪽
136 바쿠(Baku) (2) 21.11.16 20 1 13쪽
135 바쿠(Baku) (1) 21.11.15 20 1 12쪽
134 악몽(The nightmare) (3) 21.11.15 18 1 12쪽
133 악몽(The nightmare) (2) 21.11.14 20 1 14쪽
132 악몽(The nightmare) (1) 21.11.14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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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황대근의 소화불량 (4) 21.11.13 20 1 12쪽
129 황대근의 소화불량 (3) 21.11.12 19 1 13쪽
128 황대근의 소화불량 (2) 21.11.12 20 1 13쪽
127 황대근의 소화불량 (1) 21.11.11 22 1 12쪽
126 통제불능(out of control) (5) 21.11.11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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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통제불능(out of control) (3) 21.11.10 18 1 12쪽
» 통제불능(out of control) (2) 21.11.09 22 1 12쪽
122 통제불능(out of control) (1) 21.11.09 18 1 13쪽
121 유령의 십자가 (5) 21.11.08 2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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