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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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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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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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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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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악몽(The nightmare) (1)

DUMMY

(대근건설 - 소화기부서 - 위장팀)



10월 24일 일요일, 인간 황대근은 행복했다.

며칠 동안 거의 굶다시피 했었는데, 오랜만에 식욕도 돌아오고 소화도 잘 되어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역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식욕이라는 본능을 너무 억제하고 살면 결국은 삶이 피폐해지고 만다.

적절한 식욕과 적절한 통제가 절묘하게 섞여야 삶은 더 행복하고 윤택해질 것이다.


"닭갈비 진짜 맛있네. 서비스로 나온 콩나물국도 맛있고."


황대근의 입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위장팀 직원들은 비명을 지른다.

너무 오랜만에 음식물들이 들어온 것일까, 직원들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대근이가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냐?"

"이러다 탈 나면 어떻게 하지?"

"저기 봐! 또 들어오네! 언제까지 먹을 셈이야?"


직원들은 대근이가 너무 많이 먹어 힘들게 한다며 툴툴거렸다.

허나 그들의 얼굴 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언제나 틱틱대고 무뚝뚝하고 다정함이라고는 플랑크톤 코딱지 만큼도 없는 피니시 팀장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처음보는 이들이 피니시를 보면 싸가지가 없는 것 같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위장팀 직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피니시가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위한다는 걸.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주일 점심 예배가 끝나고, 구영원에서 주최하는 어르신을 위한 부침개잔치가 시작되기 전, 영부는 영부실에 있었다.

그는 나무책상 위 벽에 달린, 선반에 올려진 성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텅 비어버린 첫 번째 성배 옆 두번째 성배를 집어들고 안을 내려다보았다.

성배 안에는 검은 액체가 들어있었는데, 작은 기포방울들이 수면 위로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끓고 있다. 아주 조금씩.... 얼마 남지 않았어...'


툭—


성배를 다시 원래 자리에 올려두고 그는 나무 책상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의자는 오래되었는지, 아니면 직접 만들어서 그런 것인지 불안하게 끼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성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군.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어. 이번에는 이성을 붙잡아 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자의 등받이에 불안하게 기댄 다음, 영부는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순식간에 얼마 전 완공된 피의 궁전으로 이동했다.


황대근에 의해 궁전이 파괴된 후 지금까지 조금씩 피의 궁전 재건 작업을 해 왔었다. 비록 예전만큼의 웅장한 규모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영부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궁전의 크기야 천천히 넓혀가면 되니까.

그리고 피의 궁전에 전시될 이들은 아주 많으니까.


'그 꿈을 어디에 보관해 뒀더라?'


영부는 최근에 새로 만든 꿈 하나를 피의 궁전에 보관했다.

그리고 얼마 전 영부가 꾸었던, 곽두팔과 재물산 사건의 피해 여성이 나왔던 꿈 역시 그곳에 보관했다.

그는 자신이 꾸었던 꿈을 이용해, 인간 황대근에게 선물할 새로운 꿈을 만들어냈다.


원혼(冤魂). 그 꿈에는 원혼이 들어있다. 한 맺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혼들이다.


'감히 날 공격하다니. 새천국에 보내줬으면 감사한 줄을 알아야지, 죽은 영혼이 산 인간을 괴롭히면 쓰나?'


영부는 자신을 괴롭히는 원혼들을 새롭게 재창조해낸 꿈과 절묘하게 결합시킨 후, 드림워킹을 사용해 인간 황대근에게 보낼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바로 오늘 밤부터 시작될 것이다.


"급할 건 없지... 천천히 천천히...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이 파멸로 이끄는 거다....''


피의 궁전에서 빠져나온 영부는, 영부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부침개를 먹어대는 늙은 노인들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영부가 가식적이지만 결코 티나지 않는 교묘한 미소로 신도들과 함께 부침개를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동안 쉐도우는 사장실에 있었다.

그는 기분이 나빴다. 피니시가 위장팀에서 멀쩡히 살아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그의 기분을 좋게 한 것은, 피니시의 얼굴이 피떡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실컷 패기라도 했으니 다행이로군. 그나마 억울하지는 않겠어."


아니, 그래도 쉐도우는 억울했다.


"대체 어떻게 탈출한 거지? 알 수가 없군."


헨리는 얼마 전의 고통에서 회복했는지 열심히 골프 스윙을 연습하고 있었다.


똑똑—


누군가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쉐도우는 들어오라고 말한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벌컥—


"쉐도우 비서님. 헨리 사장님."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주혁이었다.

주혁은 헨리와 쉐도우를 향해 형식적인 인사를 해 보이더니 쉐도우 앞에 있는 손님용 간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주이사님. 여긴 어쩐 일로?"


의자 앞 테이블에 놓인 적혈구맛 사탕을 집어먹으며 주혁이 말했다.


"피니시팀장이 돌아왔더군요."


단도직입적인 주혁의 말에 쉐도우의 얼굴은 잔뜩 구겨졌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만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렇습니다. 인간 황대근의 이성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게 된 사건이었죠."

"인간의 이성을 빼앗아서 무엇을 하시려 했습니까?"

"짐승처럼 만들까 고민하기도 했지요."

"짐승이요...?"

"그렇습니다 짐승.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인간 황대근이 서울의대에 합격한 후,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을 바로 그 무렵에 처리할 겁니다."


주혁이 적혈구맛 사탕 하나를 또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피니시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닙니까?"


쉐도우는 엄마 몰래 사탕을 훔쳐 먹은 아이 같은 표정을 잠시 지어보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하, 설마 벌써 죽이겠습니까?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하이라이트는 남겨 둬야죠."


주혁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하, 그렇죠. 당연히 그래야죠. 하이라이트를 위해서는 잠깐의 광고 정도는 참아줄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쉐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애초에 트래디션을 죽인 이유가 깔끔하고 조용히, 신속하게 처리하려던 거였는데... 인간 황대근이 제가 무의식 속에 숨겨놓은 것들을 찾아내고야 말았군요."


주혁이 물었다.


"그런데 왜 숨기신 겁니까?"

"놈이 범인을 찾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여러 이유가 더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이것 뿐이군요."

"범인이라, 그래서 진실을 무의식 속에 묻어둔 거로군요."

"그렇죠. 하지만 이젠 무의식이 깨어나 버렸으니 소용이 없지만."


둘은 한동안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강도윤의 퍼팅실력이 조금 떨어졌네, 조지용의 테니스 서브 실력이 조금 늘었네, WBC 옆에 있는 맥두날두의 햄버거가 며칠을 상온에 둬도 썩지를 않네 등등. 전부 하나마나 한 얘기들 뿐이었다.

그러다 주혁은 스윙 연습을 하는 헨리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꽤 복잡한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성으로서 자신의 추악한 면을 숨기기도 하고, 자신의 발톱을 숨기기도 하니까요."


주혁의 두 눈이 쉐도우를 응시했다.


"하지만 숨긴다고 모든 진실이 숨겨지면, 이 세상에 속일 수 없는 게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편, 메모리아부서에서는 한창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컨트롤이 출근하지 않은 틈을 타 파티를 연 것인데, 바로 피니시의 복귀를 축하하는 축하파티였다.


이곳에는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은 물론이고 피니시와 미르, 케어와 플루와 키, 그리고 마이크로가 모두 모여있었다.

황대근은 릴리도 초대했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현재 눈 코 뜰 새도 없이 매우 바쁘다고 한다.


"이거 WBC매점에서만 파는 거 아녀?"


메모리가 WBC대원들이 사온 음식을 보며 소리쳤다.

직원휴게실 한 가운데에 있는 탁자위에는 WBC매점과 소화기부서 내 카페 등등에서 사온 다양한 먹을 거리가 있었다.

이들은 음식들을 잔뜩 풀어놓고, 심장부서에서 파는 술인 ADH1B와 ALDH2을 마시며 파티를 즐겼다.


"아니, 뭐 하는 거예요!"


한편 심장모양 케이크를 혼자 절반이나 먹어버린 혜윰에게 키는 화를 냈다.


"저는 아직 한입도 못먹었다구요!"


황대근은 마이크로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로에게 타이니는 왜 안 왔느냐 물었다.


"강도윤이 멍청해진 후로는 돈벌이가 아주 쏠쏠한가봐. 작업실에서 나오려 하질 않어. 하긴, 우리 같은 놈들은 벌 때 벌어야지 안 그러면 돈 못 모아. 물 들어올 때 확실하게 노를 저어야지 않겄냐? 그나저나 헨리한테 좀 소식하라 그래라. 나랑 다른 미생물들 퇴근을 못한다!"






그날 새벽, 인간 황대근은 잠을 자고 있었다.

소화가 다시 잘 되어 삶의 희망을 되찾은 그의 잠든 표정은 제법 행복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는 잠에 깊은 빠져든 상태였고, 그의 온 정신은 꿈 속에 빠져버렸다.



인간 황대근은 꿈 속에 있다.

그는 검은 사막 한 가운데를 걷는다.

어쩌면 사막이 아닐지도 모른다. 낮은 높이의 검은산이 여기저기 즐비해 있었으니까.

하늘에는 태양이 떴다.

하지만 태양이 뜬 것 치고는 딱히 날이 밝지는 않다.


흐물거리고 흐린 구름들은 태양의 주위를 맴돈다.

그 탓일까, 태양은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한다.


"여기가 어디지...?"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풍경,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지겨운 배경에 황대근은 지쳐버린다.

여전히 이곳이 꿈 속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그가 다른 꿈 속으로 빨려들어가려 할 때 쯤, 그는 사람을 발견한다.


검은 사막 한 가운데에는 여성으로 추정되는 4명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 여성들은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르고, 검은 옷을 입고 아래에는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길이의 짧은 바지를 입고 있다.


그들은 두 손을 X자로 겹쳐 가슴에 올린 상태로, 고개를 뒤로 한 껏 젖힌 채 하늘을 향해 두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

두 다리는 곧게 앞으로 쭉 폈다.


"뭔... 저렇게 기묘하게 생겼지? 인간인가?"


황대근이 4명의 여성들을 관찰하는 사이 구름들은 태양을 집어 삼켜버린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태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일까, 검은 사막은 더욱 더 어두워진다.


"에이씨, 왜 말도 안하고 저러고만 있어?"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이렇게 무섭지는 않을 텐데.

여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고 판단한 황대근은, 여자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빨리 여길 벗어나자.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

"EC"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황대근은 뒤돌았던 몸을 돌려 여자들이 있는 곳을 쳐다본다.

가장 앞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황대근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다른 여자들은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EC"


한 단어를 내뱉는 여자의 얼굴은 기묘하다.

그녀의 눈은 아주 새까맣다. 동공과 흰자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그림자가 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슥—


말을 마친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후 고개를 쳐든다.

이번에는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CE"


그렇게 차례대로, 나머지 두 여자들 역시 순서대로 이렇게 말한다.


"HO"

"MO"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말을 듣게 된 황대근은 혼란스럽다.

여자들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을 뿐이다.

황대근은 이 기괴한 풍경에서 벗어나고 싶다.

차라리 처녀귀신이 낫지, 저렇게 심리적으로 괴롭게 만드는 괴물들은 마주하고 싶지 않다.


"헉헉...."


정체불명의 여자들로부터 벗어나 검은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던 황대근은 그만 넘어지고 만다.

얼만큼 달려 왔는지, 이곳에 동쪽인지 서쪽인지에 대한 방향 역시 알 수 없다.


"헉헉... 일어나... 다시 일어나서.... 어?"


쓰러졌던 몸을 일으키던 그는, 검은 모래 사막 바닥에 적혀있는 한 문구를 발견한다.

그 문구는 황대근이 아무리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문구는 이렇게 말한다.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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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시연아빠 (1) 21.11.19 1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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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그 남자의 의심 21.11.18 19 1 12쪽
139 플렉스(Flex) 21.11.17 19 1 13쪽
138 바쿠(Baku) (4) 21.11.17 23 1 13쪽
137 바쿠(Baku) (3) 21.11.16 18 1 11쪽
136 바쿠(Baku) (2) 21.11.16 20 1 13쪽
135 바쿠(Baku) (1) 21.11.15 20 1 12쪽
134 악몽(The nightmare) (3) 21.11.15 18 1 12쪽
133 악몽(The nightmare) (2) 21.11.14 20 1 14쪽
» 악몽(The nightmare) (1) 21.11.14 19 1 12쪽
131 황대근의 소화불량 (5) 21.11.13 21 1 13쪽
130 황대근의 소화불량 (4) 21.11.13 20 1 12쪽
129 황대근의 소화불량 (3) 21.11.12 19 1 13쪽
128 황대근의 소화불량 (2) 21.11.12 20 1 13쪽
127 황대근의 소화불량 (1) 21.11.11 22 1 12쪽
126 통제불능(out of control) (5) 21.11.11 21 1 13쪽
125 통제불능(out of control) (4) 21.11.10 21 1 13쪽
124 통제불능(out of control) (3) 21.11.10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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