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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91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18 18:40
조회
21
추천
2
글자
12쪽

당신 미쳤어?

DUMMY

위이잉—



청소기 특유의 소음이 들려온다.

녹색의 옷을 입은 한 여자가 검은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있다.

먼지들 중 하나가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의 표정은 없다.

그녀를 바라보던 먼지는, 힘없이 청소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쉐도우가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사장실 소파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 자세로 있던 탓에 저린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쉐도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헨리는 없었다.


똑똑똑—


누군가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뇌파추적팀의 리커버가 들어왔다.


"쉐도우 비서님.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쉐도우는 피곤했다. 딱히 중요하다고 여겨본 적 없는 리커버로부터 나올 말은 뻔했다.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이 너무 나댄다던가, 황대근이 지나치게 많은 연봉 받는다던가.


"급한 게 아니면 다음에 알려주시겠습니까? 지금은 좀 곤란하군요."

"급한 일입니다."


그러자 쉐도우는 잠시 입을 닫고 생각하더니 자기가 앉아있는 소파 앞의 간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앉으세요."


간이의자에 앉은 리커버는 한참을 우물쭈물대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저, 그러니까... 제가 얼마 전에 발견한 겁니다만...."

"뭔데 그러십니까?"

"제가 WBC에 갔을 때 주웠습니다. 이게 떨어져 있더군요."


리커버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검은 크레파스였다.

쉐도우의 반응은 싱거웠다.


"크레파스로군요. 이게 뭐요?"


리커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게 뭐라뇨? 비서님, 이건 부바와 키키사건때 네버랜드에 있던 크레파스가 아닙니까?"


순간, 쉐도우는 망치로 뒷통수를 한 대 거하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어쩌면 말입니다 비서님. 이번에 발현할 예정인 그... 두번째 자아 말이에요. 이 크레파스가 도움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누군가 우릴 방해한다면 크레파스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지금의 쉐도우에게 리커버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검은크레파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돌아가 보세요."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직원휴게실)




황대근은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메모리는 단 한 번도 정식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한 적이 없었다.

그는 최대한 출근을 늦게 할 수 있으면 늦게 하는, 그런 남자였다.


헌데, 지금 황대근의 눈 앞에 메모리가 있었던 것이다. 잠을 자지 못했는지 그의 눈가는 아주 까맸다.

아직 출근시간도 안 됐는데, 지금 저기서 혜윰하고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띵!


"하하! 이번에도 제가 이겼네요! 아무래도 우리 돈 걸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들은 할리갈리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혜윰이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것 같다.


"돈을 걸긴 뭘 걸어요! 혜윰씨한테 죄다 잃으면 나중에 피니시팀장님하고 할 돈이 없어지는데! 아~ 진짜! 힘은 분명 내가 더 센데, 혜윰씨는 왜 이렇게 잘하는 거죠?"

"할리갈리는 힘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스피드죠."


황대근의 등장에 메모리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이고, 대근씨! 저번에 치킨 아주 잘 먹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피니시팀장님한테서 돈 왕창 따면, 대근씨가 내준 병원비를 더블로 갚을게요! 아니 트리플, 아니 콰트로로!"


병원비 한 번 내주고 치킨과 피자를 쐈다고 해서 황대근의 재정상태에 금이 갈 일은 결코 없었다.

설령 억대 연봉을 받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그는 죽을 때까지 세금도 내지 않고 달마다 500만셀씩 받을 테니까.


"그거 그냥 안 갚아도 됩니다. 그보다 제 크레파스 못 봤습니까?"


메모리와 혜윰은 별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는 재차 물었다.


"크레파스요 크레파스. 검은 크레파스 있잖습니까."


혜윰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희는 못 봤는데요. 그런데 대근씨, 어차피 쉐도우는 기억을 잃었잖아요? 대근씨가 그동안 쉐도우를 방해했다는 건 아마 기억 못 할 거예요."


스피드 있게 진행되는 게임에 집중하며, 메모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혜윰씨는 어쩌다 망각의 노인의 제자가 된 겁니까?"


띵!


적혈구 다섯개가 그려진 카드가 나왔고, 혜윰이 종을 쳤다. 잔뜩 쌓인 카드는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혜윰은 잔뜩 울상을 지어 보이는 메모리에게 얄미운 미소를 날리며 대답했다.


"음~ 저도 그게 기억이 안 나요. 제자였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허!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혜윰은 몰래 카드 밑장빼기를 시도하는 메모리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암튼, 제자였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전의 일들은 영 기억이 안 나네요. 언제부터 내가 스승님한테 일을 배웠었지?"


황대근이 물었다.


"그럼 망각의 호수에는 언제 간 겁니까? 그 노인의 제자가 되려면 어쨌든 거길 가긴 했어야 하잖아요?"


그때 마침 백혈구 다섯개가 그려진 카드가 나왔고, 혜윰은 재빠르게 종을 쳤다.

메모리는 이제 거의 울 지경이다.


"바로 그게 문제예요 대근씨. 그곳을 대체 언제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죠. 왜 항상 뭐든지 처음을 기억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걸까요? 분명히 처음이라는 게 존재하긴 했을텐데 말이죠."







비슷한 시각, 이시연은 등교를 한 상태였고, 시연엄마와 시연아빠는 집에 있었다.

시연엄마는 방에서 울고 있었고, 시연아빠는 괴로운 듯 소파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새벽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라헬의 여종들이라고? 그게 뭔데? 당신 미쳤어?]

[아니.... 당신은 대체 그 개 같은 말을 믿어? 어?]

[검은책에 그렇게 적혀있든 말든! 어차피 인간이 쓴 문자잖아, 문자! 당신 지금 속고 있는 거야. 영부 그 새끼가 당신을 현혹 시키고 있는 거라고!]

[그래, 그 검은책이 얼마나 성스럽고 대단한 말씀이 적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세상의 모든 걸 검은책에 적힌 문자대로 살 수는 없는 거야.]


시연아빠는 머리가 아팠다.

새벽에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던 아내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여자 신도들은? 괜찮은 거야?]

[진짜 미치겠다. 대체 언제부터였는데? 언제부터 영부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한 거야?]

[.....뭐? 젠장... 돌아버리겠네. 그럼 지금까지 날 속인 거야? 말도 안 하고?]

[왜 모르는 거야? 영부가 당신 속이고 있는 거잖아. 그게 정말 종교 지도자가 할 만한 일이라 생각해? 그냥 지가 원하는 걸 갖겠다는 심보잖아?]

[...안 되겠어. 당장 내일부터 밖에 나가지 마. 구영원에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생각 하지마. 알겠어?!]


그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아내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미웠다.


위이잉—


청소기 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차린 시연아빠가 소파에서 내려오더니, 청소기로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했는지, 바닥 구석구석에 회색의 먼지덩어리들이 즐비했다.


'왜 내가 지금까지 이 더러운 것들을 발견 못한 거지?'


먼지들은 소파 밑에도 많이 쌓이는 법, 시연아빠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소파 밑으로 청소기를 들이밀었다.

많은 먼지들을 빨아들인 후 거실장이 있는 쪽으로 몸을 이동하려는데, 그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그는 소파 위에 올려진 녹색의 넥타이와 검은 양복을 보았다. 시연엄마의 옷들이다.


슥—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그 옷들을 손으로 집었다. 냄새가 난다. 낯선 남자의 냄새다.


"......"


찌질하게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순간 감정이 격해진 그는 들고 있던 옷들을 바닥을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즐거운 점심시간, 여느날과 다름없이 황대근과 친구들은 매점에서 과자를 잔뜩 산 후 운동장 벤치에서 먹고 있었다.

바나나깡과 버터깡, 그리고 이름이 조금 기묘한 닭대가리버거까지. 급식을 먹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들어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성장기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다르다.


"왜 이름이 하필이면 닭대가리버거냐? 먹기 싫게."


황대근의 투덜거림에, 백경민은 닭대가리버거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대답했다.


"진짜 닭대가리가 들어갔다는 말이 있어. 진짠지는 모르겠지만."


황대근과 백경민이 버거 안에 정말로 닭대가리가 들어가 있나 하며 살피는 동안, 이시연은 기다란 바나나깡을 하나 입에 쏙 넣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엄마 바람났나봐."


그녀의 폭탄 발언에 친구들은 그만 먹던 음식을 의도치 않게 뱉어내고 말았다.

세 명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황대근이 사래들린 목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뭐라고?!"


두 번째로 정신을 차린 천강우 역시,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누구랑 바람이 나셨길래 그래? 근데 솔직히 시연이네 어머니 그 나이 대에 비하면 미인이시기는 ㅎ....?!"


이시연이 두 손을 위협적으로 그의 구렛나루를 향해 뻗어오자, 천강우는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이시연은 버터깡 하나를 입에 털어 넣더니, 덤덤하지만 짜증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났다고 영부랑! 그 잘~난 영부랑! 그 늙은 아저씨랑!"


그녀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천강우가 물었다.


"근데.... 너희 어머니랑 영부랑 나이 차이 별로 안 나니까 괜찮지 않아?"


이시연은 그를 향해 두 눈을 부라렸다.


"지금 나이차이가 중요해?! 지금까지 엄마가 영부랑 계속 잤다는 거 아냐!"


땅바닥에 떨어진 절반 쯤 남은 닭대가리버거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며 백경민이 말했다.


"근데 왜.... 그 아저씨랑... 그런 거야? 뭐가 좋다고? 이해가 안 되네. 굳이 남편 두고 그럴 거면 좀 더 잘생긴 놈을 원하지 않나? 아닌가?"

"라헬의 여종들."


이시연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세 명의 친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해서 입을 닫은 게 아니다.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입을 닫은 것이다.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세 남학생들을 보며 이시연은 혀를 찼다.


"이 멍청이들아! 검은책에 라헬이랑 야곱나오는 거 모르냐? 이 무식이들."


백경민은 코를 한 번 훌쩍여 보이더니(꽃가루가 흩날렸다) 그녀에게 물었다.


"야곱이 뭔데? 야채곱창임? 난 곱창 싫어하는데."


이시연은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여간, 내가 들은 게 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 멍청이들이랑 같은 수준 될 뻔했네. 자, 검은책에 이런 말이 적혀있대. 라헬이 야곱의 아이를 낳지 못하자...."


"자신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기를, 아이를 갖지 못하면 죽겠습니다."



점심을 먹기 전, 신도들은 예배실에 빙 둘러앉아 영부의 신성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제 여종을 보십시오. 이름은 빌하입니다. 빌하에게 드십시오."

"빌하가 제 무릎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니, 그러면 나 역시 그녀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라헬은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빌하를 취하였다."


턱—


영부는 펼쳐 들고 있던 검은 책을 덮은 후 흰 천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말을 새겨들으며 기도 하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로써 우린, 큰하늘님의 창조사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될 겁니다."


그가 흰 천 위에 놓인 검은책 위에 오른손을 올렸다.


"형제자매여러분, 큰하늘님의 권능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큰하늘님께서 보내신....."


영부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구원자를 믿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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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5) 21.11.23 22 1 13쪽
149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4) 21.11.22 25 1 12쪽
148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3) 21.11.22 18 1 12쪽
147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2) 21.11.21 21 1 12쪽
146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1) 21.11.21 20 1 13쪽
145 선과 악은 한 끗 차이 21.11.20 20 1 13쪽
144 시연아빠 (2) 21.11.20 20 1 13쪽
143 시연아빠 (1) 21.11.19 17 1 13쪽
142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21.11.19 19 1 13쪽
» 당신 미쳤어? 21.11.18 22 2 12쪽
140 그 남자의 의심 21.11.18 20 1 12쪽
139 플렉스(Flex) 21.11.17 19 1 13쪽
138 바쿠(Baku) (4) 21.11.17 23 1 13쪽
137 바쿠(Baku) (3) 21.11.16 18 1 11쪽
136 바쿠(Baku) (2) 21.11.16 20 1 13쪽
135 바쿠(Baku) (1) 21.11.15 20 1 12쪽
134 악몽(The nightmare) (3) 21.11.15 19 1 12쪽
133 악몽(The nightmare) (2) 21.11.14 20 1 14쪽
132 악몽(The nightmare) (1) 21.11.14 19 1 12쪽
131 황대근의 소화불량 (5) 21.11.13 22 1 13쪽
130 황대근의 소화불량 (4) 21.11.13 20 1 12쪽
129 황대근의 소화불량 (3) 21.11.12 19 1 13쪽
128 황대근의 소화불량 (2) 21.11.12 20 1 13쪽
127 황대근의 소화불량 (1) 21.11.11 22 1 12쪽
126 통제불능(out of control) (5) 21.11.11 21 1 13쪽
125 통제불능(out of control) (4) 21.11.10 21 1 13쪽
124 통제불능(out of control) (3) 21.11.10 18 1 12쪽
123 통제불능(out of control) (2) 21.11.09 22 1 12쪽
122 통제불능(out of control) (1) 21.11.09 18 1 13쪽
121 유령의 십자가 (5) 21.11.08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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