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견마지로의 만려일작(萬慮一作)

낙조십일영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완결

견마지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8.29 10:35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51,319
추천수 :
2,441
글자수 :
749,279

작성
22.06.14 10:35
조회
420
추천
25
글자
12쪽

음력 사월 스무 나흘(3)

DUMMY

창령방의 대문에서 잠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자 밥을 받아들었던 척오조의 사내들도 일시에 고개를 들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어경순은 조용히 자신의 방패를 옆으로 끌어당겼고 유종기 역시 슬쩍 동개로 손을 돌리는 중이었다. 견태고가 밖으로 향하는 시비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소란스러운가?”

“추동의 작은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장천보를 위시한 척오조의 사내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추동 도련님이면 이방원을 말하는 거 아니오?”

왕운의 말에 이상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많은 사내 얼굴을 지금에서야 보는 거구먼.”

“달가를 없앤 이가 추동 영감 이방원 아니오? 우리 영감이 아니라?”

왕지균의 말에 견태고는 손을 들어 왕지균에게 입을 다물라는 시늉을 하였다. 견태고의 손짓 하나에 들썩이던 척오조는 일시에 조용해졌다.

“함부로 창령방 안에서 입을 열지 말게. 여기는 연복사가 아니다.”

견태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립과 청색 답호를 입은 청수한 사내가 척오조의 앞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만면에 잔잔한 웃음을 띠고 견태고에게 슬쩍 목례하니 견태고는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 이방원에게 예를 갖추었다.

견태고가 일어서자 다른 이들 역시 같이 일어나 이방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대들이 형님이 가려 뽑은 척오조로구먼. 다들 식사 마저하시게. 괜히 유난 떨 일 아닐세. 이 집은 내가 종종 들리는 곳이니 말이네.”

이방원은 말은 그리 하면서도 슬쩍 견태고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낮은 소리로 돌아가는 상황을 물었다.

“그래, 살수를 하나 더 잡았다지? 이번에는 생포했다는 게 사실인가?”

“큰돌이라는 화척으로, 자기를 적릉이라 자칭합니다.”

이방원의 눈썹이 위로 올라가더니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견태고와 그 옆에 서 이는 장천보, 이상겸을 보더니 이내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 자들이 비록 관원을 해했다 하지만 그 끝머리는 분명 우리 집안을 향하고 있을 터, 오전에는 내 형님이 고신을 했다하니 나도 한 번 자네들을 따라가 보고 싶구먼. 그래도 되겠는가?”

“유쾌한 광경이 아닌데 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더 불쾌한 일도 해 본적이 있다네.”

순간, 척오조의 모든 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이방원을 쳐다보았다. 이방원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는 듯 고개를 잠시 숙이더니만 이내 고개를 들고 눈동자를 반짝이며 견태고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내가 누구인지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알지 않나? 저 살수가 나를 노렸을 수도 있네. 나 아니면 형님이 표적일 것이고 나도 이 일의 시종(始終)에 책임이 있어. 형님대신 내가 봐도 무방한 것 아닌가.”

척오조의 사람들은 모두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잡티 하나 들어있지 않아 보이는 눈동자의 광채는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꺼낼 수 없게 하였다. 그 때,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견지유. 아우에게 고신하는 곳을 열어주게. 그 정도까지는 괜찮다 생각하네.”

이방과의 목소리에 견태고는 고개를 숙이고는 앞장서서 창고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상겸이 입맛을 다시더니 밥그릇을 내려놓고 뒤를 따르자 나머지 대원들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냥 백면서생 아니오?”

유종기가 부장 장천보에게 속삭이자 장천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용히 하게, 보기와는 다른 분이네.”

“······난 저 사람 옆에 안 가려네.”

홍일국이 강예구에게 중얼거리자 강예구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


“이 자가 큰돌이라는 자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적릉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방원은 우리 안에 있는 화척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견태고가 이상겸에게 눈짓하자 이상겸이 이방원에게 다가가 지금까지 고신한 내용을 조곤조곤 설명하였다. 이방원은 이상겸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피칠갑이 되어 있는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결론으로다가 말씀드리자면···.저 놈 뒤에 누군가가 있고 계속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겨우 거기까지 알아낸 것이로구먼?”

이상겸이 당혹스러운 듯 견태고를 바라보더니 말을 얼버무렸다.

“예···.저···저놈이 계속 자기 혼자 했다고 우기는지라···독종입니다요.”

“수고했네.”

이방원이 말을 끊자 이상겸은 뒤로 돌아가며 밥맛없다는 듯 이방원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는 견태고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리 판사사 영감님하고는 아예 다른 종잔데?”

견태고는 이방원을 보며 말했다.

“어찌 하시렵니까 밀직제학 영감. 이제 다시 고신을 시작할 것인데 계속 보시겠습니까?”

“잠시 내가 먼저 심문을 해도 되겠는가?”

견태고가 눈을 크게 뜨고 이방원을 바라보자 이방원은 예의 입으로만 미소를 지으며 번쩍이는 눈으로 큰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말하던 정보를 캐면 되는 것 아니겠나.”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럼 잠시 시간을 빌리도록 하겠네.”

견태고가 채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방원은 옥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갔다. 큰돌이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방원은 앉아있는 큰돌을 선 채로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모른다.”

“네 놈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이방원이 바로 나다.”

순간, 반쯤 감겨 있던 큰돌의 눈이 화들짝 커지며 이방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피가 고였던 사내의 입이 벌어지며 붉게 물든 이가 드러났다.

어느새 꽁꽁 묶인 팔뚝에 핏줄이 드러나고 양 어깨의 근육이 좍좍 갈라지는데 일순간 그를 구속한 밧줄을 끊어버리고 이방원의 몸을 덮쳐 발기발기 찢어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네놈이냐! 네놈이구나! 네놈이 달가대감을 죽인 놈이냐!”

“그래, 나다.”

“네 이놈! 죽일테다! 죽이고 말 테다!”

큰돌이 악을 쓰며 일어나며 두 발에 힘을 주었지만, 다행히도 큰돌을 묶어 둔 나무의자는 벽에 밧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이상겸이 그 모습을 보더니 견태고에게 중얼거렸다.

“저렇게 약을 올리는 게 별반 좋지 않을 거요. 대체 뭔 생각인 거요? 저 인간.”

“나도 모르겠네.”

이방원은 미동도 없이 광분하는 큰돌의 얼굴을 내려보며 나직하고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네 놈이 내게 살심을 품었다면 나에게 올 것이지 왜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순찰을 도는 별초에게까지 칼을 휘둘렀느냐?”

“네 얼굴을 몰랐기에 그랬던 것이다! 네놈이 튀어나올 줄 알았다면 기다렸을 것이다!”

“내 듣기로는 중승 이진헌의 얼굴도 그날 처음 봤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중승은 대체 왜 죽인 것이냐. 사람을 죽이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더냐? 사람 죽이는게 재미있더냐?”

이상겸과 견태고가 눈을 크게 뜨고 이방원을 바라보는데 큰돌은 이방원을 바라보며 있는대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죽인다! 네 놈을 죽이겠다!”

이방원이 큰돌의 고함을 듣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큰돌이 이를 부드득 갈면서 피를 뱉었다. 핏물이 이방원의 발치에 튀었지만 이방원은 신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적릉, 일형과 난천을 알고 있지?”

순간, 큰돌의 입이 갑자기 닫혔다. 장천보가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침묵하는 큰돌의 커다란 눈매는 소를 닮아 있었다. 말없이 눈을 깜박이는 큰돌을 보며 이방원이 다시 조용히 말하였다.

“그들과 너는 일면식이 있을 것이다. 없다 해도 이미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 그리고 너는 그들과 입을 맞춰서 죽일 사람들을 골라 가졌을 것이다. 소 한 마리를 잡고 동네 사람들이 고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야.”

순간, 큰돌의 부릅뜬 눈이 무섭게 이방원을 노려보며 입술이 달싹거렸다. 피투성이 사내는 이를 부드득 갈고 뭔가를 말하려 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다물었다. 이방원의 입이 열렸다.

“생사람 잡는 게 재미있더냐?”

“아니야! 아니라고! 네놈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그 놈들은 당연히 죽어도 될 놈들이었다고!”

“멱살 하나 쥘 힘도 없는 서생을 죽여놓고 할 말이냐?”

“난 그 놈이 한 일을 다 알아! 그 놈은 천인공노할 네놈의 계획에 동참한 놈 아니더냐!”

“호, 네놈은 이진헌을 모른다 해 놓고 이젠 안다 하는구나? 좋다. 네가 중승 이진헌을 언제부터 쫓았느냐? 역적 정몽주가 죽은 다음부터 쫓았느냐?”

큰돌은 이를 부드득 갈더니 소리를 질렀다.

“역적이라니! 달가대감은 충신이시다! 나는 네 놈과 네 도당이 그분을 해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 네놈들이 모여서 도당을 이룰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방원이 눈을 끔벅이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왜 너 같은 호걸이 힘없는 문신을 잡았느냐? 권세 있고 사람 많은 서정영 대감 같은 이를 노리지 않고?”

“내가 노린 것은 이진헌이었다!”

“그를 노리라고 누가 며칠 전에 시킨 게지?”

“뭐라고?”

이방원은 멍하니 되묻는 큰돌에게서 가차없이 몸을 돌렸다. 이방원은 그대로 옥에서 빠져나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견태고와 이상겸에게 다가갔다. 이방원은 웃고 있지 않았다.

“들었는가.”

“네. 영감.”

“네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네?”

“저들은 달가가 보낸 자가 아니야. 달가는 이 살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상겸이 눈을 크게 뜨고 이방원을 쳐다보았다. 견태고 역시 말이 없었지만 적잖이 놀란듯 이방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가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중승 이진헌은 나와 관계가 있고 이 곳 창령방과 어배동을 돌아다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관들의 감찰을 수시로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달가하고는 별다른 접점이 없다는 이야기야.”

이방원은 다른 이들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교묘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하고 있었다. 이상겸은 그 옆에 서서 견태오와 이방원이 나누는 이야기를 자신이 들어도 되는 것인지 확신없는 표정을 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달가를 치려고 형님과 상의하고 일을 꾸민 것은 채 이틀이 되지 않아. 그런데 저 녀석은 그 전부터 우리가 그런 음모를 꾸민다고 말하고 있었지. 이것은 저 놈의 실수지만 다르게 봐야 하는 것이다.”

“다른 방향이라 하시면······”

이방원은 뒤를 돌아보더니 여전히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고 밧줄을 끊으려 하는 큰돌을 보더니만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더니 다시 견태고를 바라보았다.

이방원은 이상겸과도 눈을 마주치더니 피식 웃음을 짓고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이상겸과 견태고, 이방원이 서로 같은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자 이방원은 그제야 다시 말문을 열었다.

“누군가 달가의 이름을 팔아서 이씨 가문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이방원의 눈초리가 빛을 발하였다.

“저 놈은 칼을 갈고 기다리던 자다. 그리고 청부를 받은 거야. 이건 산자와 죽은 자의 싸움이 아니라 산자와 산자의 싸움이네. 기보(碁譜)를 따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야. 이제부터 천변만화하는 계략의 싸움이 펼쳐진다고 봐야 할 것이네.”

이상겸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인 반면, 견태고는 표정이 굳은 채 이방원을 쳐다보았다. 이방원 역시 견태고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쪼록 몸을 사리게나.”

“칼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를 알아야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견태고의 말에 이방원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방원은 견태고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내의 말에 어깃장을 놓고 싶어하지도 않는 듯 보였다.

“같이 찾아보세. 지유는 아래를. 나는 위를.”

이방원의 눈이 번득였다.

“아무래도 내가 찾는 대상 중에 저 사냥개들의 주인이 있을 것 같긴 하네만 말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낙조십일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음력 사월 스무 닷새(1) +5 22.06.15 456 17 13쪽
» 음력 사월 스무 나흘(3) +4 22.06.14 421 25 12쪽
31 음력 사월 스무 나흘(2) +2 22.06.14 410 23 12쪽
30 음력 사월 스무 나흘(1) +4 22.06.13 426 25 12쪽
29 음력 사월 스무 사흘(5) +4 22.06.10 417 23 13쪽
28 음력 사월 스무 사흘 (4) +2 22.06.09 432 20 12쪽
27 음력 사월 스무 사흘(3) +2 22.06.08 435 18 13쪽
26 음력 사월 스무 사흘(2) +4 22.06.07 466 19 13쪽
25 음력 사월 스무 사흘(1) +3 22.06.06 486 19 12쪽
24 음력 사월 스무 이틀 +3 22.06.03 499 24 13쪽
23 음력 사월 스무 하루(3) +5 22.06.02 485 23 13쪽
22 음력 사월 스무 하루(2) +2 22.06.01 469 22 13쪽
21 음력 사월 스무 하루(1) +1 22.05.31 497 22 13쪽
20 음력 사월 스무날(2) +2 22.05.30 486 22 13쪽
19 음력 사월 스무날(1) +3 22.05.30 495 26 13쪽
18 음력 사월 열 아흐레(3) +2 22.05.27 525 23 12쪽
17 음력 사월 열 아흐레(2) +5 22.05.26 572 30 12쪽
16 음력 사월 열 아흐레(1) +7 22.05.25 580 34 12쪽
15 음력 사월 열 이레(2) +6 22.05.24 581 28 11쪽
14 음력 사월 열 이레(1) +5 22.05.23 599 28 12쪽
13 음력 사월 열 엿새 (3) 22.05.20 615 29 13쪽
12 음력 사월 열 엿새 (2) +1 22.05.19 687 31 12쪽
11 음력 사월 열 엿새 (1) +1 22.05.19 694 29 13쪽
10 음력 사월 열 닷새 (2) +2 22.05.18 718 31 12쪽
9 음력 사월 열 닷새 (1) +5 22.05.17 775 29 14쪽
8 음력 사월 열 나흘(3) +3 22.05.16 815 34 15쪽
7 음력 사월 열 나흘(2) +1 22.05.13 789 30 13쪽
6 음력 사월 열 나흘(1) +1 22.05.13 875 33 15쪽
5 음력 사월 열 사흘(2) +2 22.05.12 961 44 14쪽
4 음력 사월 열 사흘(1) +2 22.05.12 1,096 58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