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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의 만려일작(萬慮一作)

낙조십일영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완결

견마지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8.29 10:3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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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9,279

작성
22.06.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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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음력 사월 스무 나흘(1)

DUMMY

다음 날 아침 일찍 창령방으로 들어간 견태고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판밀직사사 이방과였다.

사내는 예의 입고 있던 관복은 어디론가 벗어던지고 묵빛 담령과 두건 하나를 걸치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일국의 재상이라기보다는 어디 두메산골에서 임직받아 지금 입경(入京)한 시골뜨기 무사 같은 형상이었다.

“오늘은 등청하지 않으십니까?”

“자네가 어젯밤에 보고한 내용을 죽 훑어봤지. 아무래도 네가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휴가를 내었다네.”

“그러실 것 까지야······”

이방과가 견태고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이 문제는 생각보다 중차대하네. 이게 해결되어야 다른 문제도 일사천리로 풀릴 것이야. 뒤의 적을 남겨두고 앞으로 전진한다는 것은 병법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이고.”

그때였다. 슬쩍 열린 중문으로 검은 첩리를 두른 사내들의 모습이 속속 나타났다. 연복사에서 건너온 이상겸과 척오조 대원들이었다. 사내들은 견태고와 이방과가 먼저 와 있는 것을 보자 낭패라는 듯 꾸벅 고개를 숙이고 겸연쩍어 하는 모습들이었다. 이방과가 그들을 보더니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어제 그리 힘든 싸움을 하고 왜들 이리 빨리 들어오나? 지유를 닮아가는건가? 이 사람들아, 좀 쉬엄쉬엄 일을 해야지. 그러다 탈난다네.”

“아, 아닙니다. 밀직사사 영감. 저희가 할 일이옵니다. 하, 왜 이렇게 빨리 오셨소. 지유.”

이상겸이 슬쩍 견태고를 보며 한쪽 눈을 꿈쩍하는데 그를 본 견태고가 덤덤하게 맞받았다.

“칼까지 맞은 사람이 밤이슬까지 맞았으면 그냥 있을 것이지 왜 왔는가.”

“아니, 고신을 해야 할 것 아니우.”

“이곳은 판사사영감과 내가 같이 일해도 충분하네. 어차피 자백만 받으면 될 일 아닌가.”

“아닙니다. 그걸 저희가 해야지 어찌 그런 일을 판사사 영감께서 보신단 말씀입니까? 별로 상서롭지 않은 일이니 영감께서는 나중에 전갈만 받으셔도···..”

“아니다.”

가만히 견태고와 이상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방과가 앞으로 나섰다. 이상겸은 그제야 이방과의 소매가 밖으로 뒤집혀 단단히 단령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겸이 눈을 크게 뜨고 이방과를 바라보는데 이방과는 행수가 할 말을 이미 짐작한 듯 싶었다.

“오늘 고신은 내가 직접 한다.”

“네?”

이상겸과 뒤에 서 있던 장천보를 위시한 척오조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데 이방과는 그들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차피 이 일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내 입에서 명이 나간 것이다. 내가 문초함이 당연히 옳지 않겠느냐?”

이방과의 말에 이상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어찌 그런 흉한 일을 직접 하려 하십니까?”

“판사사 영감께서 직접 하실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이상겸과 견태고의 말에도 이방과는 고개를 저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죽은 휴열이도 내 사람이었고 자네들도 내 사람이네. 내가 책임자니 다른 데서 말이 나올 것도 내가 먼저 하는 것이 낫지.”

사내는 불쑥 접힌 소매를 팔뚝 위로 걷어올리더니 성큼성큼 적릉을 가둬놓은 후원의 창고쪽으로 향하였다. 이방과의 거대한 덩치가 앞을 가로막고 움직이자 이상겸이 그 모습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니, 칼 맞은 분풀이는 내가 해야하는데 어째 영감님이 움직이신다오?”

견태고도 슬쩍 주름진 이마를 만져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대고는 뒤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별 수 있는가. 어찌 하실지는 지켜봐야 알겠지.”

사내들은 모두 이방과의 뒤를 따라 후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적릉, 큰돌은 다른 집의 안채만큼 커다란 창령방 창고 안 귀퉁이에 묶여 있었다. 창고라고는 하지만 이미 나무로 된 창살이 만들어져 있고, 안에 지푸라기까지 깔려있는 것을 봐서는 이미 예전부터 이곳은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큰돌은 양 어깨에 지혈을 하기 위한 붕대를 감고 허벅지에도 붉게 피가 배어나오는 흰 천을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묶여 있는 사내의 눈동자는 여전히 안광이 번쩍이고 기력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피가 많이 흘러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문초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니······”

노복(奴僕)의 변명에 이방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였다. 이제 가 보아라. 이곳은 우리가 맡을 것이니.”

큰돌을 묶어두었던 노복들이 일제히 나가자 창고 안에는 척오조와 큰돌, 이방과만이 남게 되었다.

이방과는 의자에 묶어놓은 큰돌 앞으로 다가가 우뚝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태산 같은 사내의 시선을 받은 큰돌 역시 고개를 쳐들고 이방과를 바라보았다.

큰돌 역시 건장하기로는 남다른 체구였지만 곰 같은 이방과에 비하면 약간 모자라는 덩치였다. 큰돌 역시 그런 이방과를 보며 잠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모르오.”

“나는 판밀직사사이자 화령백 대감의 아들인 이방과로다.”

“아아, 이장군이시구먼. 직접 뵈는 것은 처음이오.”

큰돌은 고려의 왕명을 주관하는 판밀직사사 앞에서도 꿀릴 게 없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이방과는 그런 사내의 태도가 맘에 든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네놈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나는 화척 큰돌이오. 원래 여진사람 아라홀구의 독자로 태어나 북방에서 자라다 개경에는 소년 시절부터 정착하였소.”

“여진이구나.”

큰돌이 이방과의 중얼댐을 듣더니만 표정을 바꾸며 곰 같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내 아비는 이지란 장군을 모시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소이다. 화령백 아래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분이오. 단지 군령(軍令)을 어기고 군에서 쫓겨난 후, 다시 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고려에서 죽었소이다. 나는 고려에서 태어나고 고려에서 자랐으니 분명 고려사람이외다.”

사내의 말투는 늘어지고 끊기는 것이 기묘했지만 발음은 또렷하였다. 그제야 견태고는 왜 큰돌의 말이 외인(外人)도 아니고 고려인도 아닌 기이한 말을 쓰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방과 역시 큰돌의 말에 슬쩍 미간을 좁혔다.

“네 아비가 지란 숙부의 군사였단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네가 우리 가문에 등을 지는 일을 하였단 말이냐?”

“내 아비는 고려의 군사로 남아 고려의 군법을 어기고 고려의 백성으로 죽었소. 지금 나도 고려의 백성인데 내가 고려를 위해 사는 것이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큰돌의 말을 듣던 이방과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지며 주름이 잡혔다.

“고려의 백성이라 우리 이씨에게 등을 진단 말이냐? 그래서 사람들 백주에 죽였단 말이렷다?”

“그대들 역시 정몽주 대감을 백주에 때려잡지 않았던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씨는 정씨를 때려잡아도 되는데 화척은 국적(國賊)들을 때려잡으면 죄가 되는가?”

이방과의 눈이 범처럼 커지며 이가 드러났다. 사내의 손이 재빨리 창살 옆에 세워져 있던 육척의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이상겸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견태고는 이방과의 옆에서서 큰돌의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번잡한 말은 필요없다. 큰돌이라 하였느냐? 네게 암살을 사주한 자가 누구냐? 증승 이진헌을 살해하라 명한 자가 누구냐? 왜 척오조에게 칼을 휘둘렀느냐?”

“내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없다. 스스로 판단하여 행했을 뿐이다.”

“거짓을 말하는구나. 그렇다며 누가 네게 적릉(寂陵)이라는 별호를 주었느냐? 그 또한 네가 스스로 지었다 말할 것이냐?”

“내가 스스로 붙인 별호로다.”

“괘씸한!”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이방과의 손에 쥐어진 몽둥이가 큰돌을 향해 날았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리 꽂히는 막대기는 큰돌의 어깨와 가슴 허벅지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묶어 놓은 상처에 얇은 기둥이나 진배없는 막대를 맞은 큰돌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사람을 때리는데 나무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내 묶어놓은 붕대 사이로 시뻘건 혈흔이 새어나왔다.

“네가 스스로 붙일 별호가 아니다. 어디서 거짓을 말하는가! 누가 수괴냐! 그 다음에 너희가 노리는 이는 누구란 말이냐!”

이방과의 손에서 몽둥이가 춤을 출 때마다 사내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를 보고 있던 이상겸이 눈살을 찡그리더니만 급하지만 차분한 어조로 말하였다.

“영감, 고신을 하셔야지 죄인을 초달하여 죽이시면 안됩니다! 그렇게 초장부터 심하게 매를 놓으시면······아이고, 저 놈이 어찌 되기라도 하면······”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견태고의 말에 있고 나서야 이방과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그 짧은 순간의 매질에 큰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뻘겋게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이상겸의 눈짓에 유종기가 화급하게 물을 들이부었다. 커어 하는 소리와 함께 큰돌의 입에서 숨이 터지며 핏물이 입에서 주르르 흘러나왔다.

예상외의 참혹한 광경에 사내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이방과는 입술을 굳게 닫고 그 모습을 보더니만 막대를 뒤에 두고 옥에서 걸어 나왔다.

“견 지유는 나 좀 보세.”

견태고가 이방과의 뒤를 따라 창고 안에서 사라졌다.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왕운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문을 보며 투덜거렸다.

“아니, 고신을 하겠다더니 일을 다 망쳐놓을 심산이신가?”

이상겸도 물끄러미 문을 쳐다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죄인을 문초하는 거지 사람을 다져 놓으면 어쩌라는 건가. 허, 저놈에게 칼맞은 내가 이런 걱정을 해야 하나?”


*----------*

“어떠한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고신의 방법에 대한 것을 여쭤보신다면 너무 과했다고 사료됩니다만.”

이방과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거대한 털투성이 장한의 표정은 다시 침착한 재상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으니, 조금 전 감옥에서 사람을 짓이겨버릴 것 같던 흉맹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뒤였다.

“그걸 물어보는 것이 아니네. 자네는 그 동안 자네 조원들의 표정을 보았는가?”

“이상겸과 왕지균, 어경순 정도는 보았습니다만.”

“그 중에 특이한 이들이 있던가?”

“무슨 말씀이신지 알기 힘듭니다.”

이방과는 슬쩍 걸음을 빨리 하더니 창고가 보이지 않는 섬돌 끝까지 돌아가서 견태고를 바라보았다. 숨을 고르는 이방과의 눈매는 들짐승과 같은 날카로움이 묻어나왔다.

덩치 큰 사내는 어울리지 않는 동작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그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 동안 벌어진 살겁의 내용과 자네들을 습격한 저 자를 통해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견태고는 말없이 이방과를 쳐다보았다. 판밀직사사는 견태고를 채근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전하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방과는 견태고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춰 말하였다.

“그동안 살겁들은 죽은 자들의 동선이 너무나도 빤히 드러나 있었네. 살수(殺手)들이 그들의 정체를 아는 것처럼 다가갔단 말이야. 그건 자네가 나한테 한 말이네. 알고 있지 않은가?”

견태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정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방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이었네. 하지만 어제 이행수를 저 적릉인지 큰돌인지가 습격한 다음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네.”

“네?”

“척오조의 운용와 동선을 보고 받는 이는 나 밖에 없네. 추동의 방원이도 거기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봐야 해. 자네들은 내가 직접 뽑고 내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별초일세. 안 그런가?”

순간 견태고의 등 뒤에 서늘하니 소름이 돋았다. 견태고는 이방과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이방과도 견태고의 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는 밖에서 누가 살수들에게 뿌리는 것이 아니야. 이 창령방 안에서 새고 있다고 봐야 하네.”

“영감.”

견태고의 대답을 무시하고 이방과는 눈을 번득이며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척오조 안에 세작이 있어. 그게 내 결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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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음력 사월 스무 나흘(2) +2 22.06.14 410 23 12쪽
» 음력 사월 스무 나흘(1) +4 22.06.13 426 25 12쪽
29 음력 사월 스무 사흘(5) +4 22.06.10 417 23 13쪽
28 음력 사월 스무 사흘 (4) +2 22.06.09 432 20 12쪽
27 음력 사월 스무 사흘(3) +2 22.06.08 435 18 13쪽
26 음력 사월 스무 사흘(2) +4 22.06.07 466 19 13쪽
25 음력 사월 스무 사흘(1) +3 22.06.06 486 19 12쪽
24 음력 사월 스무 이틀 +3 22.06.03 499 24 13쪽
23 음력 사월 스무 하루(3) +5 22.06.02 485 23 13쪽
22 음력 사월 스무 하루(2) +2 22.06.01 469 22 13쪽
21 음력 사월 스무 하루(1) +1 22.05.31 497 22 13쪽
20 음력 사월 스무날(2) +2 22.05.30 485 22 13쪽
19 음력 사월 스무날(1) +3 22.05.30 495 26 13쪽
18 음력 사월 열 아흐레(3) +2 22.05.27 525 23 12쪽
17 음력 사월 열 아흐레(2) +5 22.05.26 571 30 12쪽
16 음력 사월 열 아흐레(1) +7 22.05.25 580 34 12쪽
15 음력 사월 열 이레(2) +6 22.05.24 581 28 11쪽
14 음력 사월 열 이레(1) +5 22.05.23 599 28 12쪽
13 음력 사월 열 엿새 (3) 22.05.20 615 29 13쪽
12 음력 사월 열 엿새 (2) +1 22.05.19 686 31 12쪽
11 음력 사월 열 엿새 (1) +1 22.05.19 693 29 13쪽
10 음력 사월 열 닷새 (2) +2 22.05.18 718 31 12쪽
9 음력 사월 열 닷새 (1) +5 22.05.17 775 29 14쪽
8 음력 사월 열 나흘(3) +3 22.05.16 815 34 15쪽
7 음력 사월 열 나흘(2) +1 22.05.13 789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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