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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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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156

작성
20.12.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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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리나 (3)

DUMMY

차가움을 유지시킬 수 없다.

타오르는 악마를 얼려버리기 위해 준비해온 차가움은 무산되었다.

차가움이라는 심상은 유지가 되고 있지만, 결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차가움이 무산된 것쯤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되살릴 수 있다.


아카데미를 뛰쳐나가고, 리릴과 진혁과 거리를 두고, 나 홀로 방에 틀어박혀 차가움만 연습하면 복구가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이프는 고통 받고 있다. 이프는 고블린들에게 범해지고, 괴로워하며 새끼들을 낳고 있다.


이프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나 혼자 행복해져도 되는 걸까?


아니, 안 된다.

안 된다는 것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없었다.


이프를 만나기 전까지도 교만의 악마로서 오랜 세월을 살았었다.

교만의 악마였기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다. 교만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재물? 명예? 그것뿐이겠는가. 사랑을 빼앗을 수도 있었고 마을 하나 멸망시키는 것도 간단했다.


그런데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잔혹한 자에게 도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도, 이프와 함께 지낸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이프, 너는 알까?


우연히 만난 네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줬는지.

너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잔혹한 자를 필연적으로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교만을 저지르기로 했다는 것을.


그런데 그랬던 내가, 아니, 그랬었기 때문에 내가.


행복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아.


너는 힘들어 하는데 내가 행복해져도 되는 걸까?


누가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누가···


-


그 이후부터의 내용은 별 다를 게 없었다.

에리나가 계속해서 행복해도 되는지 고뇌할 뿐이었다.


그 고뇌 속에서 에리나가 무엇을 선택하려 했는지는 보이지만, 그 선택은 가엽고 딱하다. 진혁은 에리나가 불쌍해보였다.


‘역시 에리나를 직접 만나봐야 해.’


진혁은 스스로를 이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리나 또한 진혁을 이프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리나에게 진혁이 이프랑 마찬가지로 행복을 준다면, 그리고 진혁 자신도 에리나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귀찮지만 즐거움이 있었기에.


‘관계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


에리나는 자꾸만 진혁과 리릴 사이에 귀찮게 얽히려 드는 가시나무였다.

그래도 그 가시는 도깨비바늘처럼 귀찮게 달라붙는 수준이었지, 아프지는 않았다.

간혹 아프게 할 때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도깨비바늘이 실수해서 찌른 것일 뿐.


그 정도 상처쯤은 서로 주고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런가.’


친해지고 싶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 그 상처를 받아들이면 관계는 돈독해지는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계는 더욱 멀어진다.


상대가 찔러오는 가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도깨비바늘 수준에 불과한 가시를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


그에 따라 관계는 달라진다.


‘가시라는 심상이 뭔가 더 뚜렷해지는 기분이군.’


뭔가를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실한 깨달음에 다다르지는 않는다. 조금 더 차분한 상황에서 생각을 하면 깨달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차분하게 있을 수가 없다.


빨리 가야 한다.


“레이라.”


“네.”


“너도 악마가 되었다면, 포탈을 열 수 있겠지?”


“성능이 좋지는 않지만··· 가능은 해요.”


“그럼 에리나가 있는 곳으로 열어줘.”


“목적은요?”


한순간, 레이라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았다.


‘또, 가시···’


진혁은 그 가시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듯이 답했다.


“에리나와 직접 이야기를 해야겠어.”


“직접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모든 원흉일지도 모르는 교만에게 말입니까?”


“그래.”


“위험합니다. 저는 애초에 교만을 죽일 생각이었어요. 이 일기장조차 우리를 교만하기 위해 일부러 떨어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에리나가 교만의 악마라면, 철저히 모두를 교만하고 비웃기 위해서 일기장까지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진혁 앞에서 보인 나약한 모습들도 모두 거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프를 향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어.”


그리고 이프를 향한 사랑은, 행복하고 싶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또한, 진심이었다.”


“······”


레이라는 진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진혁은 레이라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다.

소중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 아니, 존경한다.


진혁이 없었다면 레이라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 했었을 테니까.


그 정도로 소중한 진혁이 에리나에게 죽어버린다면, 겨우 타인을 위한 분노로 안정된 악마화가 폭주할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분노에 집어삼켜져 레이파처럼 타락할 가능성이 크다.


진혁도 잃고, 자아도 잃는다면.


‘···그런 건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좋습니다, 진혁님.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


“네. 교만의 악마 에리나가 진짜 힘을 숨기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최강의 악마였던 만큼 저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테죠.”


“그 말은···”


진혁은 레이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카캉!


진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이라는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진혁도 이미 예측했기 때문에 검을 뽑아들어 막아냈다.


“기습 공격이 기가 막히는군.”


“교만의 악마라면 이 정도쯤은 했을 테니까요.”


레이라는 재빨리 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레이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만에 하나 에리나가 교만의 악마라면 공격을 할 테니,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이길 수 있다면 포탈을 열어 보내줄 것이고, 이길 수 없다면 포탈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인 진혁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가시다.’


진혁의 눈에, 레이라의 가시들이 보였다.

그 가시는 모두 날카롭게 진혁을 향해 있었다.

단 한 순간도 봐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상대를 위해서 가시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니.’


가시덤불이 무성하게 피어난 곳이 있다.

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던 나머지 가시덤불이 힘겹게 막아서도 베어버리고 넘어간다.


그런데 그 가시덤불 너머가 만약 절벽이라면.


‘상대와 친해지고 싶어서 달라붙는 도깨비바늘 가시, 상대를 위해서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가시덤불.’


가시라는 것은 상대를 상처 입히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상처를 입힌다는 목적 아래에서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


레이라의 가시는 레이라 자신을 찔러오고 있었다. 상대에게 가시를 들이댄다면, 자기 자신이 찔릴 각오도 되어있어야 한다.


이건 무의식의 영역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가시의 본질이었다.


‘레이라도 나를 위해서, 나와 싸우는 것은 원치 않겠지. 그럼에도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진혁 자신도 전력을 다하는 것이 맞다.


진혁에게 있어서 전력이라는 것은, 홀로 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 아가씨, 하자!”


진혁이 느낀 점들은 리릴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리릴은 진혁이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루는 사이, 별 다른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이 싸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도움이 되기는 할까?’


방해나 되지 말아야 할 텐데.


리릴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깨에 올라타 있던 라이미가 몸을 들썩거렸다.


“큐! 큐큐큐!”


“걱정할 시간에 싸우기나 하라고?”


“큐큐큐!”


“······”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 안 보태는 것보다는 낫다.


리릴은 라이미의 격려를 듣고, 지금 당장의 힘이라도 좋으니 진혁에게 지원해주고 싶었다.


더 이상 자신의 익스퍼트인 성진혁개론은 무의미하다. 진혁은 헌터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신체 능력 강화를 시키는 법은 안다. 고작 진혁에게 헌터의 힘을 사용시켜주려고, 이때까지 마력을 무작정 키워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리릴은 진혁에게 신체 능력 강화 주문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진혁은 끌어 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오랜만에 받아본 기운이라, 받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전의가 상승했다.


그런데 진혁을 마주한 레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생의 이프··· 구현하지 않으십니까?”


진혁은 지금 이프의 힘을 구현하지 않았다.

이프의 힘을 구현하면 가볍게 레이라를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그러지 않는 것일까?


그 물음에 진혁은 답했다.


“선은 확실히 그어야지. 나는 이프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에리나한테 말해줄 거야.”


“그러다가 진다면요?”


“안 져.”


“안 진다는 보장은요?”


“무조건이다.”


레이라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진혁은 자신의 마력을 모조리 다 풀었다.


“니들 마스터─가시의 규칙.”


캉!


레이라는 당황스러웠다.

진혁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어째서인지 자신의 검이 진혁에게 막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나?


아니, 그건 아니다.

공기가 잠잠했으니까.

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는데 공기가 잠잠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우연인가?


레이라는 다시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캉!


한 번 더.


카캉!


캉, 캉, 카카캉!


속임수를 섞어가며 검을 휘둘러도 똑같았다. 계속해서 막혔다.


심지어 그 검은 평범한 검도 아니었다. 슬픔의 힘과 분노의 힘을 아끼지 않고 분출했었다.


그럼에도 막혔다.


슬픔과 분노의 권능이 무력하다.


‘어떻게?’


막막해하는 레이라에게, 진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레이라, 벌써 잊었어? 마스터끼리에서의 승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더 강력한 깨달음이 이긴다···”


“네 깨달음은 강력해. 내 깨달음에 비해서. 하지만 적어도 1:1에서는 내가 이긴다.”


지금 진혁의 눈에는 레이라의 움직임이 모두 가시의 형태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진혁의 몸에서 뻗어 나온 가시가 레이라를 겨누고 있다.


가시의 규칙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가시가 서로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너의 가시를 내 가시로 붙잡기만 해도.”


상처를 주려는 마음, 즉, 가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아프다고 도망칠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상처 입고 말 것이냐.


모두 아니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어의 영역.


“가시를 붙잡는 것만으로도 방어가 되다니, 그게 무슨···”


“그런데 공격할 수도 있어.”


관계는 틀어지겠지만.

상대의 가시가 아프다는 이유로 덩달아 가시를 찌를 수도 있다.

반드시 관계가 틀어진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감수해야 하는 부분.


“그게 바로, 가시의 본질이란 거지.”


진혁은 레이라에게 가시를 꽂았다.

레이라가 보지 못한 가시를 꽂힌 것일 뿐인데도, 그 심상이 곧 현실로 전환되어 가시가 검으로 변했다.


레이라는 피를 토했다.


“대련이니까 죽이지는 않아. 하지만 에리나가 진짜 교만이라면 죽일 수도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진혁의 물음에, 레이라는 피를 머금고 웃었다.


“죽으면, 안 돼요. 알겠죠?”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라는 상처를 회복시키며 포탈을 열었다.


포탈에 들어가는 사람은 진혁과 리릴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끼면 진솔한 이야기가 안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다녀올게.”


돌아올 때는 꼭 에리나를 데리고 돌아올 것이다.


진혁은 그리 마음먹으며 포탈을 넘어갔다.


작가의말

에리나 구해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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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미래 +2 21.01.07 129 4 13쪽
102 이프 +2 21.01.07 130 4 13쪽
101 리릴 +2 21.01.06 140 4 13쪽
100 나태의 저주 (6) 21.01.06 127 4 12쪽
99 나태의 저주 (5) +2 21.01.05 124 4 12쪽
98 나태의 저주 (4) +2 21.01.04 110 4 12쪽
97 나태의 저주 (3) +3 21.01.01 127 4 12쪽
96 나태의 저주 (2) 21.01.01 103 4 12쪽
95 나태의 저주 (1) +2 20.12.31 128 4 13쪽
94 에리나 (5) +2 20.12.30 109 6 13쪽
93 에리나 (4) 20.12.29 89 5 13쪽
» 에리나 (3) +4 20.12.28 109 6 12쪽
91 에리나 (2) 20.12.25 114 6 12쪽
90 에리나 (1) 20.12.25 128 5 13쪽
89 모순 20.12.24 11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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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질투와 탐욕 20.12.22 126 5 12쪽
86 로스트(lost) +2 20.12.21 324 5 12쪽
85 분노의 악마 +4 20.12.18 120 5 12쪽
84 최유정 (5) 20.12.17 132 5 12쪽
83 최유정 (4) +2 20.12.16 140 5 12쪽
82 최유정 (3) 20.12.15 149 5 13쪽
81 최유정 (2) 20.12.14 12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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