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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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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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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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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에리나 (5)

DUMMY

혼돈의 소용돌이를 보았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부정한 기운이 소용돌이 치는 것으로만 보이겠지만, 진혁에게는 아니었다.

에리나가 잔혹한 자에게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죽이고 싶었던, 상반되면서도 모순된 감정.

그 감정 때문에 선택한 이프를, 어느 순간부터 사랑하게 되었음에도 자신의 손으로 죽였을 때 허탈한 감정.


그런 감정들이 섞이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들이 소용돌이 치는 것이다.

저 소용돌이는 아픔이다.


그래서 혼돈은 타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접근하려는 순간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되돌려버린다.


그래, 에리나는 지금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잔혹한 자에게 인정받지 못했었던 최초부터, 잔혹을 퍼트린 일, 이프를 죽인 일, 끝내 엔비아에게 실패작이라고 결국 욕해버린 지금까지.


어쩌면 에리나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부가 실패작이어서 없애버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흔적이 모두 담긴 이 세상까지도.


그러니 혼돈에 가시가 없을 수가 없다. 도리어 닿는 순간 갈려버릴 만큼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시들이 있다.


‘실패했으니까,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교만하게 굴어야 했어. 처음부터 실패작이라고 불렸으니까.’


어쩌면 그 감정은 진혁 또한 언젠가 느꼈을지도 모른다.

정점이 되었을 때, 이때까지 자신을 멸시해왔던 이들이 갑자기 우러러보며 떠받들려고 했지 않은가.

그때부터 진혁은 정점이 따분하다느니, 이 세상은 재미가 없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며 어찌 보면 교만한 감정을 표현했었다.


멸시받을 때의 실패작이었던 진혁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성공한 후에 받는 인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교만해졌다. 에리나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마냥 존경하기만 하는 엔비아와 같은 이들에게는 인정받아봤자 무의미하다.

대단하지 않다 생각하면서도 인정을 해주는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잔혹한 자에게 갈망했던 것도 그 때문.

잔혹한 자는 에리나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지막 순간에는 꽤 대단했구나, 라고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고.


이프의 인정을 뒤늦게 눈치챈 것도 그 때문.

이프는 자신을 언제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존재로 보인다면서도, 인정해줬다. 하지만 이프가 인정해준 이유는 단순히 에리나 자신이 강해서라고만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아프기만 했다.

아파온 인생이었다.


하지만 혼돈의 가시만큼 아픔이 명확하다면, 진혁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줄 수 없다.

아파하면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가시의 규칙 속에서 혼돈의 가시는 세상에서 제일 무력한 힘이 된다.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혼돈의 소용돌이가 진혁에게 닿으면 소멸된다.

소멸되면서 에리나의 감정이 진혁을 상처 입힌다.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하니 진혁 또한 몸에 생채기가 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에리나의 아픔만을 함께 느끼며 전진할 뿐.


“어, 어떻게···”


엔비아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혼돈의 소용돌이는 이프가 나타난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지 모를 만큼 위험한데.

에리나가 직접 잔혹한 자를 죽일 수 없었던 이유는, 결코 잔혹한 자보다 약해서가 아니라 계약이 걸려 있어서였으니까.


에리나의 힘 자체는 이프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그 힘을 진혁은 무력화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에리나, 많이 아팠구나.”


“저, 저리 가! 내 안에 들어오지 마!”


“왜 들어가면 안 되는데?”


“내, 내 안에 들어오면 죽을 거야. 내가 이프를 죽였듯이 너도 죽을 거야. 난 그런 교만의 악마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혼란스러우니 자기 마음도 모르나보네.”


인간이 제일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원만하게 흘러갈 것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잘 모르니까,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평범한 인간도 그런데, 애초부터 혼돈으로 만들어진 에리나라면 더욱 심한 게 당연하다.

그런 마음을 때로는 타인이 정확하게 짚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혼자 있으면 정답을 알 수 없고, 올바른 길을 알지 못한 채로 나락에 떨어지니까.


“넌, 사실 지금 누구보다 나를 원하고 있잖아.”


진혁의 말에 에리나는 표정이 굳었다.

이내 표정은 날카로워지며 소용돌이는 더욱 거칠어졌다.


“누가 너를 원해? 착각 작작해! 넌 그냥 리릴 옆에 붙어있는 애완동물일 뿐이잖아!”


“사실은 나랑 같이 있고 싶지? 같이 있고 싶은데 이프를 죽인 네가 행복해지면 안 되니까, 거리를 두고 싶은 거지?”


“아니야, 아니라고!”


거칠어진 소용돌이 또한 진혁에게 닿으면 무의미했다.

아니,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진혁은 소용돌이를 없앨 때마다 상처가 났기 때문에, 어느새 온 몸이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지만 결국 죽을 만큼의 피해는 입지 않았다. 서로 상처를 입히며 살아간다는 게 그런 거니까.


“더 이상,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


“그런 게··· 아니라고···”


에리나를 안았다.

진혁은 피범벅이 된 몸으로 에리나를 안았다.

따스한 몸이 따스한 피로 적셔져 더 따스하니, 에리나가 기껏 얼려놨던 마음이, 얼려놨던 혼돈이 녹아내린다.

마음이, 혼돈이 녹아내리면서 눈물이 되고, 에리나는 따스한 진혁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한없이 울었다.

차가움이 모두 녹아 눈물로 쏟아내자, 얼어붙은 탓에 갇혀있었던 본심이 드러났다.


“행복, 해지고 싶어.”


잔혹한 자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행복할 수 없었다.

이프가 인정해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결국 죽여버렸다. 행복할 수 없었다.

엔비아 같은 이들이 인정해주고 있었지만 그런 인정은 욕심이 많아 만족하지 못했다. 행복할 수 없었다.


그랬는데 행복한 순간이 생겨났다.


리릴, 진혁과 소소한 일상을 보낼 때, 그때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리릴이 이프를 닮아서, 진혁이 이프와 비슷하게 요리를 해서 좋아한 게 아니라.

어떤 일이 생겨도 서로 인정해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워서, 그 사이에 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도, 너랑, 리릴이랑, 같이 놀면서 행복해지고 싶어. 그런데, 그런데···”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가?


에리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이프조차 죽였다.


그런 자신이 행복해져도 되는가?

타인의 행복을 짓밟은 주제에?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자기가 없애버린 주제에?


“산다는 게 그런 거잖냐.”


살다 보면 남을 아프게 할 때도 있다.

언제나 남을 아프게 안 할 수는 없다.

남이 아픈지 안 아픈지, 그것만 신경 쓰다 보면 자신만 병들고 죽는다.


“죽으면 모든 구속에서 해방돼. 살면 모든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해. 그렇다면 네가 저지른 죄 또한 살아가면서 값을 치르면 된다. 삶이라는 지옥 속에서 해결하면 된다고.”


그 과정 속에서 잠깐 행복이라는 꽃을 구경하는 것 정도를 사치라고 할 수 없다. 죄라고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프를 죽인 건 역시 안 돼. 사랑하는 이프··· 그녀도 행복하고 싶었을 거란 말이야.”


“이프한테 허락이라도 받고 싶나? 행복해져도 되는지?”


에리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런 심정이었으니까.

이프한테 허락이라도 받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이프의 환생인 진혁에게라도 허락을 받으면···


“하지만 나는 이프가 아니야.”


“······”


“그리고 이프의 대답은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이프를 죽인 순간을 떠올려. 왜 죽였는지, 어떤 심정을 죽였는지.”


혼돈이 모두 녹은 지금의 너라면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심정···”


에리나는 차분하게 떠올렸다.

잡음이 낀 것만 같은 기억을 억지로 헤집으며 떠올린다.

그때의 상황을.


“아···”


에리나는 안개가 걷히듯이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리나, 나를 죽여줘.


이프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왜일까.


왜 이프는 죽여달라고 부탁하였을까.


이프의 모습을 본다. 이프는 아파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마주한 악령이나 악마들을 그냥 죽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잔혹한 기운이 쌓이고 또 쌓였다.


그 때문에 이프에게는 악한 인격이 생겨났고, 잔혹한 기운을 잘 활용하여 싸우면서도 언제 폭주하여 위험해질지 알 수 없었다.


잔혹한 자를 죽인 직후, 기뻐해야 할 순간인데도 이프는 폭주할 위기에 처했다.


─싫어··· 죽이고 싶지 않아.


에리나는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행복해질 수 있게 되었는데 죽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비극인가.

믿을 수 없어 도리질만 쳤지만, 이프의 의지는 확고했다.


─난 스스로 죽을 수 없어. 내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들어와있으니까. 이들 모두를 해방시켜주기 위해서는 네가 내 영혼을 조각내서 죽여줘야 해.


늦으면 이 세상을 위협할 존재가 다시 나타난다.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에리나뿐이다.


─에리나··· 모두를 품는다는 건 불가능해.


이프는 많은 이들을 품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갔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방식으로 죽이고 싶지 않았기에 품었는데, 병든 쪽은 자기 자신이었다.


상처를 줘야 할 때는 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였기에, 이런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나를 네가 품으려고 하면, 네가 망가질 거야. 죽여야 해.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지만, 진짜로, 죽여야 해.


에리나는 이프가 간절하게 부탁하고, 시간이 없었기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죽였다.

수많은 이들이 깃들어서 지나치게 시끄러운 영혼을 조각내서 없애버렸다.

죽어가면서 이프는 말했다.


─후회는 없어. 엄마의 복수는 했으니까. 엄마를 되살리는 건 못 했지만 괜찮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까 너도, 어쩔 수 없었으니 괴로워하지 마. 내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 알겠지?


“그 녀석은 바보야.”


기억을 다 떠올렸다.

입 안이 썼다.

쓴맛이 느껴져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어떻게 없는데 행복하게 살라고, 그런 말을 한 거야.”


에리나는 아까와 달리 오열하지는 않았다.

굵은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미안해, 고마워.”


에리나는 듣지 못할 그녀에게, 사과와 감사를 동시에 전한 뒤에 눈물을 그쳤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진혁을 봤다.


“너도 고마워, 축생.”


“뭐? 왜 축생이라고 부르는 거야?!”


“역시 난 너를 축생이라고 부를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


“미친 년 같으니···”


진혁은 괜히 도와줬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런 진혁을 놔두고 에리나는 리릴에게 호다닥 달려가서 와락 안겼다.


“그치~ 리릴짱!”


“어? 어어?!”


리릴은 가만히 상황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에리나가 갑자기 끌어안으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원래 이게 3명이 보내던 일상이었다.

현재였다.


‘행복한 현재···’


리릴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의 행복한 현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리릴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행복한 현재를 잃을지도 모른다.


불안했다.


‘빨리 강해져야 하는데···’


강해질 방법도 모르겠고, 강해질 틈도 없었다.


이미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카데미가 왜 소란스럽지.”


진혁은 고개를 돌려 바깥의 상황을 봤다.

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고, 헌터들 또한 같이 누워있었다.


‘설마.’


외부에서 침입이라도 해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레이라, 이시즈, 덴트, 베르단디도 데리고 아카데미로 돌아와 도와줘야 한다.


아카데미가 파괴되어서는 안 되니까.


“에리나, 빨리 포탈 열어!”


“이미 열었어. 뭐해? 들어가지 않고.”


에리나는 포탈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일행을 데리고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난 지금 일행을 보고 싶지 않아서. 이왕이면 다른 곳으로 포탈 열고 돌아와.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도와줄 테니까.”


추한 모습을 보이고 달아났다.

일행을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엔비아한테 사과도 해야 했고.


“알겠어. 위험한 짓은 하지 말고!”


그리고 진혁과 리릴은 포탈을 타고 넘어가 사라졌다.


아카데미를 구하기 위해서.


작가의말

진혁이 친구들~ 렛츠고 렛츠고

세상을 구하자~ 렛츠고 렛츠고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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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질투 21.01.08 221 4 13쪽
103 미래 +2 21.01.07 128 4 13쪽
102 이프 +2 21.01.07 130 4 13쪽
101 리릴 +2 21.01.06 139 4 13쪽
100 나태의 저주 (6) 21.01.06 127 4 12쪽
99 나태의 저주 (5) +2 21.01.05 124 4 12쪽
98 나태의 저주 (4) +2 21.01.04 110 4 12쪽
97 나태의 저주 (3) +3 21.01.01 126 4 12쪽
96 나태의 저주 (2) 21.01.01 102 4 12쪽
95 나태의 저주 (1) +2 20.12.31 128 4 13쪽
» 에리나 (5) +2 20.12.30 109 6 13쪽
93 에리나 (4) 20.12.29 89 5 13쪽
92 에리나 (3) +4 20.12.28 108 6 12쪽
91 에리나 (2) 20.12.25 112 6 12쪽
90 에리나 (1) 20.12.25 128 5 13쪽
89 모순 20.12.24 110 5 13쪽
88 가시의 책임 20.12.23 121 4 12쪽
87 질투와 탐욕 20.12.22 125 5 12쪽
86 로스트(lost) +2 20.12.21 322 5 12쪽
85 분노의 악마 +4 20.12.18 120 5 12쪽
84 최유정 (5) 20.12.17 132 5 12쪽
83 최유정 (4) +2 20.12.16 140 5 12쪽
82 최유정 (3) 20.12.15 149 5 13쪽
81 최유정 (2) 20.12.14 120 5 12쪽
80 최유정 (1) +2 20.12.11 12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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