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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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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156

작성
20.12.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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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나태의 저주 (1)

DUMMY

“엔비아.”


에리나는 엔비아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엔비아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에리나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네, 에리나님.”


“미안해.”


“아닙니다.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네가 노력할 일이 아닌데.

에리나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엔비아는 더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엔비아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실례였다.


“그렇지만··· 역시 실패작이라는 건 헛소리였어.”


에리나가 원하고자 하였던 작품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엔비아는 에리나의 반쪽으로서, 어찌 보면 자식으로서, 언제나 에리나를 위해서만 살아왔다.


그런 엔비아를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넌 실패작이 아니야. 실언해서 미안해.”


“···그렇다면 에리나님도 실패작이 아닌 겁니다. 저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래. 우리는 실패작이 아니야.”


마음이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할 것도 없다.

이프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서 살아가면 된다.

이프가 행복해지라고 했으니 행복해지면 된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카데미를 지켜야 한다.


“우리도 가볼까?”


에리나는 더 이상 냉기 마법을 쓰지 않았다.

서로 상처 입혀가면서도 사는 게 인생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질서를 발견했다.

혼돈의 마법도 아닌, 질서의 마법.


이제는 신화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에리나님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엔비아는 고개를 숙이면서 에리나를 뒤따랐다.

에리나가 만들고자 하는 인생의 질서를 좇고 싶었으니까.



* * *



진혁은 레이라의 포탈을 이용해서 아카데미 각 지역에 인원을 나눴다.


진혁과 리릴이 한 팀, 덴트와 베르단디가 한 팀, 그리고 레이라와 이시즈는 단독 행동으로 움직인다.


아카데미 전 지역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각자 흩어질 필요가 있었다.


진혁과 리릴이 도착한 곳에는 오로리와 스이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오로리와 스이만이 당하다니, 두 명이 힘을 합치면 리시아도 이길 수 있을 텐데 이해할 수 없었다.


“교관님!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진혁이 서둘러 오로리에게 다가갔다. 오로리는 상처가 극심해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웠다.


오로리와 함께 쓰러진 스이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치료가 시급했다. 응급조치를 하는 수준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헌터들이··· 침입했는데. 별 것도 아닌 녀석들인데, 갑자기, 네베가···”


“네베가요?”


그때였다.


“···그래, 내가 그랬어.”


뒤에서 네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네베가 대체 왜?

현실 부정이 섞인 시선으로 뒤를 돌아봤다.


온몸에 피를 묻힌 네베가 죽은 눈으로 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베··· 네가 왜?”


진혁의 물음에, 네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진혁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진혁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니다.


-


1. 죽인다

2. 죽인다

3. 죽인다


-


죽인다는 선택지밖에 없는 시스템 메시지.


선택지를 고르면 네베는 자의로 진혁을 죽이기 위해서 움직일 것이고, 불응한다면 의식을 잃은 채 진혁을 죽이려 할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죽는 것보단.’


알고 죽이는 것이 낫다.


그게 네베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이유는 없어.”


“이유가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서, 너는 가시의 본질을 알게 됐어?”


“뭐?”


“알게 됐다면 살 것이고, 모른다면 죽을 거야.”


네베의 능력은 밀어내는 힘, 부정하는 힘.


상대가 평범하게 마력을 이용해서 공격한다면 무력화되고 역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오로리가 정령왕을 모두 다루고, 스이만이 마력 탱크라고 불릴 정도로 힘이 넘쳐난다고 하여도.


네베 앞에서는 모두 흔해빠지고 무능한 인간이 될 뿐이다.


‘하지만, 가시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네베는 현실과의 단절을 택하는 바람에 능력이 이렇게 변했었다.

왜 현실과의 단절을 택하였는가.

선택지 때문에 친해진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시의 힘은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힘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상처 입히고, 그 과정에서 단절된 벽을 허물어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힘이다.


그 사실을 꿰뚫어봤기에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진혁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때 진혁? 나랑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왜 싸워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공격한다면 나도 맞받아칠 생각이다.”


진혁은 네베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잠깐 당황했었다.

네베와의 접점은 지나치게 없기 때문이었다.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말을 거의 주고받지 않았는데, 대체 어떤 점을 보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솔직히, 뜬금없었다.


네베와의 관계가 착실하게 쌓여갔다면 뜬금없다는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베와의 관계는 얼굴만 아는 수준이었고,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네베와 맞서 싸우는 것은 아무런 느낌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려면 각오를 어느 정도 해야 하겠지만, 네베는 아니다.


“···그렇구나.”


진혁의 대답에 네베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마음껏 공격하도록 할게.”


계획대로 되었다.

네베는 자신을 죽여줄 사람으로 진혁을 선택했을 때부터, 철저하게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진혁을 각성시키기 위해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며 관계를 비틀었다.

진혁이 네베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게끔 하려고.


‘그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죽게 생겼지만.’


네베는 공기에 흩어져있던 마력들을 이용해서 진혁을 공격해왔다.

진혁은 그 공격을 가시로 막아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 가시를 네베는 자신의 능력으로 비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시의 힘이 그 정도로 대단해서?

단절의 힘이 통하지 않을 만큼 강력해서?


아니, 아니다.


만약 네베가 아닌 다른 이에게 단절의 힘이 있었거나, 진혁이 아닌 다른 이에게 가시의 힘이 있었다면.


반드시 승리한 쪽은 단절이다.


마음에 쌓은 벽을 뚫으려고 가시가 아무리 노력해도, 뚫을 가능성보다는 막힐 가능성이 더 높았으니까.


하지만 네베는 이미 진혁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혁과의 관계를 비틀려고 한 것 또한 진혁을 좋아해서, 진혁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시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네베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사연, 슬픈 사연.’


네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진혁이 알면 배신도 이해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진혁이 지금 네베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을 테지만, 비틀린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끝은 모든 것의 파멸이다.


‘선택지의 저주가 있는 이상 나는 행복해질 수 없어.’


더 이상 남을 죽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그래서 진혁의 가시가 코앞까지 왔을 때, 네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가시가 네베를 찔러오지 않았다.


“너, 왜···”


진혁은 네베를 둘러싼 가시를 보고 이프를 떠올렸다.

남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상처입는 것으로 일을 끝내려고 하였던 이프.

네베는 지금 그 이프와 똑같은 가시를 주변에 두르고 있었다.


“너, 무슨 이유가 있는 거지?”


“······죽여.”


“이유가 있으면 말해.”


“···죽이라고.”


“스스로 상처 입고자 하는 녀석을 공격하기는 싫은데.”


“······”


어쩌면.

어쩌면 진혁이라면.

자신을 안 죽이고, 자신의 저주를 막아둔 채, 모든 일의 원흉인 저급한 그 분들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그마한 희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그 희망이 고뇌를 깨부수고 결정으로 이어지기 전에, 네베의 생명은 끝났다.


머리가 터지고, 머리를 잃은 네베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진혁은 거대한 마력에 짓눌려서 순간적으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옆에 있던 리릴은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너는···!”


진혁은 눈을 부릅떴다.

네베를 죽인 자는 스이만조차 한 수 물러나야 하고, 스테민이 모든 힘을 개방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마력을 소유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황제!”


무언가를 말하려고 망설이는 네베가 단숨에 죽었다.

황제가 네베의 머리에 주먹을 날려 터트렸으니까.


“왜, 왜 네베를 죽인 거냐! 네베는 네가 아끼는 학생이잖아!”


“아껴? 웃기는군. 아카데미를 이 꼴로 만든 범죄자다. 현장에서 처형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뭐, 뭐···?”


황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네베는 아카데미를 망가트린 범죄자다.

그 죄는 황제에게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


하지만 진혁은 네베의 가시를 봤다.

그런 가시를 가진 사람들은 틀림없이 가슴속에 큰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 또한 진혁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네베가 죽은 지금 시점에서는 모든 게 무의미하지만.


“아니면 짐이 네베를 죽인 것이 불만인가?”


“······”


불만이 없어야 맞다.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황제의 말에 잘못된 것은 없다.

불만이라고 말하면 반역자의 편을 든 것이다.

이 또한 중죄다.


‘그런데.’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난 원래부터 황제가 마음에 안 들었어.’


하도 수상한 기색을 많이 흘렸다.

잔혹한 자의 편이라고 의심도 했었다.

잔혹한 자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황제가 누구의 편을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요소라는 것은 확실.


“네베한테도 사연이 있을 수도 있었잖아.”


그래서 진혁은 선택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범죄자를 찾기가 더 힘들겠지. 사연 따위로 범죄자를 미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넌 왜 너 자신을 황제라며 미화하려고 하지?”


내질렀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진혁은 그저 자신의 감각만을 믿었다.

하지만 황제 또한 이미 ‘이번 게임’이 끝나 가는데, 구질구질하게 자신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감히 짐을 의심하는 건가? 무엄하군. 반역자로서 네 놈 또한 현장에서 사형시키도록 하지.”


황제의 마력이 끌어 오르며 기압이 높아졌다. 리릴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고, 진혁은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기세를 드높였다.


“난 다른 세상에서 정점이었어. 이 세상에서 정점은 너라고 하던데, 언젠가 붙어보고 싶었거든.”


“큭, 큭큭··· 그렇다고 해봐야 나태의 힘을 빌린 수준이 아니던가? 리시아보다도 약했던 주제에, 어디서 정점의 이름을 담는 것인지.”


황제는 더 이상 고고한 이미지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시스템 창 때문에 더욱 그랬다.


-


가시의 힘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일 때 더욱 강력해집니다.

하지만 분노에 가득 차서 오직 상처만 주려고 하면 약해집니다.

관계가 틀어지니까요.


그러니 어떻게든 진혁을 화나게 하세요!

당신에게 화난 진혁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가령··· 당신이 죽인 네베의 사연을 공개한다든가?


-


진혁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새롭게 얻은 가시의 힘은 골치 아프다.

특히 저렇게 진혁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가시의 힘은 황제를 죽일지도 모른다.


─라고, 시스템은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는 특수한 힘을 이용해 두꺼운 공책을 하나 소환시켰다. 그 공책은 네베가 매일 책상 앞에서 글을 적던 것이었다.


“것보다 싸우기 전에··· 네베의 사연이 궁금하지 않나?”


진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황제는 공책을 진혁의 앞에 던졌다.


“읽어봐라. 네베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진혁은 두꺼운 공책에 손을 댔다.

손을 댄 순간에 네베의 기억이 모두 전이되었다.


“······황제.”


툭, 투둑.


기억이 전이되고, 진혁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속이 끓어올랐다.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맙다. 누구를 죽여야 할지 확실하게 알려줘서.”


─그리고 첫 번째는 너다, 황제.


“이 꽉 물어라.”


작가의말

이 악물어라, 정점···

내 정점은 좀 아플 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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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질투 21.01.08 220 4 13쪽
103 미래 +2 21.01.07 128 4 13쪽
102 이프 +2 21.01.07 129 4 13쪽
101 리릴 +2 21.01.06 139 4 13쪽
100 나태의 저주 (6) 21.01.06 127 4 12쪽
99 나태의 저주 (5) +2 21.01.05 123 4 12쪽
98 나태의 저주 (4) +2 21.01.04 110 4 12쪽
97 나태의 저주 (3) +3 21.01.01 126 4 12쪽
96 나태의 저주 (2) 21.01.01 102 4 12쪽
» 나태의 저주 (1) +2 20.12.31 127 4 13쪽
94 에리나 (5) +2 20.12.30 108 6 13쪽
93 에리나 (4) 20.12.29 88 5 13쪽
92 에리나 (3) +4 20.12.28 108 6 12쪽
91 에리나 (2) 20.12.25 112 6 12쪽
90 에리나 (1) 20.12.25 128 5 13쪽
89 모순 20.12.24 110 5 13쪽
88 가시의 책임 20.12.23 120 4 12쪽
87 질투와 탐욕 20.12.22 125 5 12쪽
86 로스트(lost) +2 20.12.21 319 5 12쪽
85 분노의 악마 +4 20.12.18 120 5 12쪽
84 최유정 (5) 20.12.17 131 5 12쪽
83 최유정 (4) +2 20.12.16 139 5 12쪽
82 최유정 (3) 20.12.15 147 5 13쪽
81 최유정 (2) 20.12.14 119 5 12쪽
80 최유정 (1) +2 20.12.11 12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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