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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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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20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2.29 19:10
조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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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에리나 (4)

DUMMY

* * *



“에리나님!”


에리나가 도망쳤을 때, 엔비아도 다급히 뒤따랐었다.

도망친 곳은 아카데미였다.

아카데미는 외부의 침입을 받았는지 소란스러웠으나, 에리나에게는 그 상황이 중요하지 않았다.


엔비아 또한 중요한 것은 아카데미가 아니라 에리나였다.


“다, 기억이 났어.”


에리나가 중얼거렸다.

무엇이 기억났다는 말일까?

엔비아는 알 수 없었다.

엔비아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으니까.


“기억···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상황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불안하다.


에리나를 오랜 세월 옆에서 보좌해왔기에 알 수 있다. 지금 에리나의 표정은 무너지기 직전인 상황이다.


대체 무엇이 기억났기에 저런 모습인가.


“뭐긴, 내가 이프를 죽였다는 거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에리나님께서는 이프를 사랑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에리나님께서 이프를 죽이셨다니요.”


“아니, 진짜 죽였어. 내 손으로. 이프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절규하는데도.”


느낌이 좋지 않다.


이때까지 에리나가 쌓아왔던 차가움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프를 죽였다는 현실과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이 충돌했다.

마음속에서 냉기가 사라져가고 혼돈이 소용돌이친다.


엔비아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혼돈의 마법사 에리나님으로 돌아온다.’


혼돈 마법.

창세는 혼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여, 창세를 떠올리게끔 하는 최강의 마법.

엔비아가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을 이야기할 때, 에리나를 신화니 어쩌니 이야기 한 것은 혼돈 마법 때문이었다.


에리나 하면 혼돈 마법이 제일 먼저 떠올랐으니까.


‘문제는 혼돈의 방향이 뒤틀려졌다는 것.’


자신이 이프를 죽였다는 회의감에 빠져서, 혼돈은 선이 아닌 악으로 향한다.

선한 혼돈은 올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나아가지만, 악한 혼돈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파괴할 뿐이다.


‘혼돈이 깨어나기 전에 막아야 해.’


다른 차원에는 니알라토텝이라는 신이 있다.

그 신의 이명은 기어오는 혼돈.

에리나는 잔혹한 자가 니알라토텝과 같은 수준의 존재를 만들고 싶어서 탄생시켰다.


따라서 혼돈의 마법사 에리나는 니알라토텝의 힘에 버금간다.

니알라토텝처럼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는 아니지만, 힘 자체는 그 정도로 강력하기에 파괴 심리에 물들어버린다면 세상이 위험해진다.


서둘러 말려야 한다.


“에리나님,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뭐를···? 내가 이프를 죽였다는데. 네가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지?”


“에리나님께서는 지금 이프를 죽였을 것이라는 거짓 정보 때문에, 기억이 날조되어 떠오르는 겁니다. 실존하지 않는 기억이라고요!”


“그럼 이프는 누가 죽였는데?”


“그, 그건···”


엔비아도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아까부터 엔비아 또한 기억의 혼선을 느끼며, 에리나가 이프를 죽이는 장면이 어째서인지 떠올랐으니까.


“거봐, 너도 할 말 없지?”


“······”


“난 사랑하는 이프를 내 손으로 죽인 거야. 그런 주제에 새까맣게 잊었지. 리릴이나 진혁을 이프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면서 행복해지려고나 하고.”


“대용품이 아닙니다. 리릴이나 진혁이 진짜 이프의 환생일 가능성도···”


“없지.”


“어째서입니까?”


“나는 이프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서 영혼을 조각 내버렸으니까.”


에리나는 기억을 되짚었다.


이프를 왜 죽였는가?

그 이유까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이프를 죽이겠다는 의지만이 떠올랐고, 이프를 환생조차 시키지 않기 위해서 영혼까지 산산이 조각 냈었다.


그녀가 환생할 가능성?

있을 리가 없다.

영혼이 쪼개졌는데 어떻게 환생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나는 몹쓸 년이야. 교만의 악마이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혼돈···”


지금의 세상은 혼돈 에리나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잔혹한 자의 개입 없이도 악령이나 악마가 생겨나는 세상,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인재는 존재하지 않고 강한 이들은 자신만을 우선하고 있는 세상.


그 이유는 영웅의 귀감이 되었어야 할 이프를 죽였고, 뒷감당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로 잔혹한 자를 죽여서 아닌가?


그 중심에는 에리나 자신이 있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에리나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자신은 죽어야 마땅하다.


“안 됩니다! 에리나님께서 스스로 죽어야 마땅하다 생각하면, 이 세상 자체가 붕괴하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왜!”


“고작 그 정도로 무너질 세상이라면, 그리고 고작 세상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약한 인간이라면.”


무너지고 죽어도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에리나의 정신 상태는 온전하지 않았다. 혼돈의 소용돌이가 극한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에리나를 보며 엔비아는 화가 치밀었다.


“이딴··· 이딴 결말을 맞이하려고 저를 만드신 겁니까?”


“저를 만드신 이유가 뭡니까.”


“저 같은 것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괴물을 만드셨잖습니까!”


“크툴루, 크투가, 크틸라, 하스터······ 전부 에리나님께서 저를 만들려다가 실패해서 생겨난 괴물들입니다. 이성 없이 파괴만을 일삼는 괴물들!”


“그 괴물들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창조에 목을 맸던 이유가 뭡니까! 잘 아시잖습니까!”


에리나가 엔비아를 만들었던 결정적인 이유.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발을 담그고 싶었기에.

잔혹한 자가 니알라토텝을 만들고 싶어서 에리나를 만들었듯이, 에리나 또한 무언가를 만들어서 자신의 존재가 잔혹한 자에게 밀리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


에리나는 기억을 다시 한 번 되짚었다.


‘너는 실패작이다.’


잔혹한 자는 탄생한 에리나에게 그리 말했었다.

에리나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실패작이 존재했고, 에리나는 잔혹한 자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최초의 악마가 생겨났지만, 잔혹한 자는 에리나를 실패작이라고 여겼다.


‘난 니알라토텝을 만들고 싶었다. 너 같이 하찮은 유사 혼돈이 아니라.’


그때부터 잔혹한 자는 창조를 포기했다. 창조 대신 이미 신이라는 작자들이 만들어놓은 생명체들을 재창조시키기 시작했다.


그게 이후 악령과 악마를 만들던 시대였다.


‘실패작···’


에리나한테 잔혹한 자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하지만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잔혹한 자는 에리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에리나는 인정받고 싶어서 더욱 악랄하게 많은 존재들한테 고통을 줬고, 교만의 악마라는 이명까지 얻어냈다. 그럼에도 잔혹한 자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럼, 창조를 하면 인정해주지 않을까.

잔혹한 자가 포기한 창조를 자신이 해내면 인정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비록 다른 차원의 신을 창조할 수는 없겠지만, 위대한 존재들 정도는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생겨났다.


크툴루, 크투가, 하스터······?


아니, 그것들은 죄다 거짓부렁이들이다.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보며 에리나는 이를 갈았다.


이게 대체 어디를 봐서 크툴루냐?

어디를 봐서 크투가고 하스터냐?

이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쓰레기 같은 자식들.

너희는 죄다 실패작들이다.


실패작을 만들면 만들수록 잔혹한 자는 에리나를 더욱 멸시했다.

에리나는 계속되는 멸시에 점차 힘이 빠져나갔다. 무력감을 느꼈다.


무력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에리나는 잔혹한 자를 적으로 규정했다.

저 자는 끝없이 악행을 저지르기만 하는데, 저 자를 과연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존재로 떠받들 필요가 있는가?

저 자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가?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으면서, 인정받을 수 없으니 어느새 생각은 바뀌어있었다.


인정받지 못하니 죽여버리자.

저 자는 사악한 자니까 죽이는 게 세상에 이롭다.


하지만 그러려면, 더욱 더 창조를 증명해보여야 한다.

창조를 증명해서 잔혹한 자를 이길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이고 더 실패를 거듭한 끝에 엔비아를 만들 수 있었다.

엔비아는 다른 차원에서 질투를 상징하는 레비아탄이었고, 레비아탄은 곧 크툴루의 화신 중 하나였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현신한 크툴루.


그랬어야 했는데.


“넌, 모르는구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넌 실패작이다. 내가 만들려고 했던 건 크툴루지 불타오르는 질투가 아니야.”


무려 반쪽이다.

반쪽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크툴루를 만들었음에도 질투심이 선천적으로 강해 타오르기만 한다.

크툴루를 만들려고 했는데 질투의 악마가 태어났다.


실패작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결국 너를 실패했기 때문에, 나 또한 이프를 재창조한 거야.”


“검이 없는 세상에서 이프에게 검을 쥐어주려고 황제를 이용하고, 또 잔혹한 자의 힘을 이용시키려고 일부러 악령의 기운을 죄다 먹이고··· 그렇게 재창조했다고. 그런데, 그런데.”


······


“씨발! 뭔 말인지 알겠어? 결국 난 그 좆같은 새끼랑 같은 절차를 밟았다고!”


“그런데 그러면 뭐해? 뭐하는데! 결국 처뒤져가면서도 나를 멸시하기만 했는데! 왜 멸시했냐고? 당연하잖아! 재창조하는 개새끼를 재창조하는 개새끼가 죽인 것뿐이니까!”


에리나의 머릿속에서만 소용돌이치던 혼돈이 바깥으로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미세하게 에리나의 주변에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그래, 솔직하게 따져보자고. 널 만든 이유? 그 새끼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데 인정받지 못했어. 나를 인정해준 사람은 이때까지 이프 한 명밖에 없었어!”


“그런데! 그런데!”


“그 이프를 내가 죽였다고 씨발년아!”


엔비아는 멍했다.


“인정해준 사람이, 이프밖에, 없었단 말입니까···?”


눈물이 흘렀다.

멈출 수 없었다.


“제가 그토록 존경하고 인정했는데, 저는 에리나님의 반쪽이나 가져갔음에도 사람이 아닌 겁니까? 인간이 아닌 겁니까···?”


실패작이다.


에리나는 자신이 들었던 말 중,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었음에도 엔비아에게 내뱉었다.

엔비아는 자기가 존경하는 에리나라면 그러지 않으리라고 잘 안다. 지금은 악한 혼돈이 가득 차서 저렇게 되었을 뿐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생각이 섞여서 혼돈이 되지는 않는다.


에리나는 은연중에 엔비아를 실패작이라고 여겼다는 것.


“내가, 내가 실패작···”


그런데 엔비아는 에리나가 밉지 않았다.

미운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었다.

실패작밖에 되지 않는다는 무력함이 미웠고, 지금 에리나가 혼돈으로 폭주하며 괴로워하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웠다.


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에리나가 좋아하는 이프, 리릴, 진혁을 질투하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그 또한, 어쩌면.’


엔비아는 스스로를 실패작이라고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털썩, 다리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았다.

스스로 실패작임을 확신하고 나니 무력감이 온 몸을 지배했다.


이대로 에리나는 폭주하고 세상은 멸망한다.

피할 수 없는 결말이다.

주제도 모르게 레이라가 죽이니 마니 떠들었지만, 한낱 분노 따위가 혼돈을 이길 수는 없다.


‘끝이다.’


마침내 혼돈의 소용돌이가 거대해지고 빨라졌다. 그리고 소용돌이에서 튀어나오는 촉수들이 세상을 집어삼킨다.


혼돈에 집어삼켜진 세상은 무(無)로 되돌아간다. 없던 것이 되어간다.


그 사실조차 모르고 아카데미의 교관과 학생은 외부의 침입자와 맞서 싸운다.


‘조용한 종말이로구나.’


싫다.

엔비아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만, 이렇게 허무한 종말은 원하지 않았다.

실패작으로 만들어졌다지만, 실패작으로서만 끝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중에라면 모를까, 당장의 종말은 피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그 종말을 끝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촤아악!

그때 포탈이 열렸다.

포탈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혼돈의 촉수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촉수는 힘없이 흩어지며 소멸했다.


“많이 힘들었나보구나.”


포탈에서 진혁이 나왔다.

에리나의 혼란한 가시를 받아들여 상처를 입은 채로.


그리고,


“힘들었으면 나한테 다 쏟아내. 받아줄 테니까.”


아픈 미소를 지은 채로.


작가의말

현기증 나니까 빨리 구해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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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에필로그 +2 21.01.08 392 6 11쪽
104 질투 21.01.08 221 4 13쪽
103 미래 +2 21.01.07 128 4 13쪽
102 이프 +2 21.01.07 130 4 13쪽
101 리릴 +2 21.01.06 139 4 13쪽
100 나태의 저주 (6) 21.01.06 127 4 12쪽
99 나태의 저주 (5) +2 21.01.05 124 4 12쪽
98 나태의 저주 (4) +2 21.01.04 110 4 12쪽
97 나태의 저주 (3) +3 21.01.01 126 4 12쪽
96 나태의 저주 (2) 21.01.01 102 4 12쪽
95 나태의 저주 (1) +2 20.12.31 128 4 13쪽
94 에리나 (5) +2 20.12.30 108 6 13쪽
» 에리나 (4) 20.12.29 89 5 13쪽
92 에리나 (3) +4 20.12.28 108 6 12쪽
91 에리나 (2) 20.12.25 112 6 12쪽
90 에리나 (1) 20.12.25 128 5 13쪽
89 모순 20.12.24 110 5 13쪽
88 가시의 책임 20.12.23 121 4 12쪽
87 질투와 탐욕 20.12.22 125 5 12쪽
86 로스트(lost) +2 20.12.21 321 5 12쪽
85 분노의 악마 +4 20.12.18 120 5 12쪽
84 최유정 (5) 20.12.17 132 5 12쪽
83 최유정 (4) +2 20.12.16 140 5 12쪽
82 최유정 (3) 20.12.15 149 5 13쪽
81 최유정 (2) 20.12.14 119 5 12쪽
80 최유정 (1) +2 20.12.11 12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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