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57,626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2.24 19:10
조회
110
추천
5
글자
13쪽

모순

DUMMY

진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잔혹한 자를 이프가 죽이는 장면까지 보았고, 이프의 최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엔비아가 질투의 악마라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에리나가 교만의 악마라는 것도.


‘······’


그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진혁은 스스로를 이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에리나가 교만의 악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놀랐지만, 그 교만의 대상은 최고신 메리스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신에게 도전하는 교만함, 신은 곧 창조주··· 에리나 자신을 만들어낸 잔혹한 자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잔혹한 자와 악마 사이에 있는 벽은 넘을 수가 없다. 악마는 무슨 수를 써도 잔혹한 자를 상대로 이길 수 없으니까.


그 때문에 잔혹한 자는 최유정이라는 악마에게 검을 쥐어주기도 한 것이다. 악마라면 검을 사용해도 자신을 죽일 수 없을 테니.


그런데, 그럼에도 에리나는 교만했기에, 잔혹한 자가 생겨남과 동시에 만들어낸 분신이었기에.


자신을 만들어낸 잔혹한 자에게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도 창조를 했다. 그 창조된 존재가 엔비아였다. 그리고 이프라는 특별한 인간을 이용해서 잔혹한 자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래, 에리나는 신화를 만들고 싶었다.


결과만 따져보자면 에리나가 한 행동은 훌륭하다. 혼자 있었다면 이프는 평생 잔혹한 자를 물리치지 못했을 테지만, 에리나가 잘 이용하여 잔혹한 자를 세상에서 없앨 수 있었다.


그런데 과정을 따져보면, 결국 이프는 수단으로서 이용되었을 뿐이다. 아무리 관용적인 이프라고 해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화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에리나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아.’


에리나와 좋은 추억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에리나는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은 리릴과 진혁 자신을 귀찮게 했다. 방해꾼이었다.


하지만 에리나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프는 에리나에게 고블린 요리를 자주 해줬고, 그 요리를 만드는 방법은 진혁이 하는 것과 똑같았다.


리릴은 이프와 생김새가 똑같으니, 진혁과 리릴은 에리나에게 있어서 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였다.


‘이상한 점은 있어.’


리릴이 이프와 생김새가 똑같은 이유는 확실하다.

리릴이 사용하였던 ‘무기의 문─진(眞)’은 틀림없이 ‘최고신 메리스’의 무기 창고와 연결되고.


‘최고신 메리스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프와 생김새가 똑같았어.’


즉, 리릴은 최고신 메리스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정황상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해가 안 가는 게 상당히 많아진다.


첫 번째는 이프가 만든 고블린 요리법이다.


지구에서 고블린 요리법은 여러 요리사가 머리를 맞대서 만들었다고만 알려졌지, 한 명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요리법이 이프가 만든 것과 동일하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일단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임은 분명했다.


두 번째로는 어째서 최고신 메리스가 모든 힘을 잃고, 기억까지 잃은 채로 리릴이 되어있는가?


만약 리릴이 최고신 메리스가 아니라면, 최고신 메리스의 창고를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논리라면 진혁이 이프가 아닌 이상 이프의 힘을 쓸 수 없겠지만, 스스로 이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으니 넘겨두고.


리릴이 최고신 메리스가 맞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리릴의 부모님이 실존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일을 꾸미고 있는 상대는 초차원적인 힘을 사용한다. 리릴에게 부모님이 있었던 것처럼 조작하는 일은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상대는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단 말인가?


무엇이 목적이기에 이프의 최후만큼은 어떻게든 숨겨두려고 하고, 최고신 메리스를 리릴이라는 인간으로 유지시키려 하는가?


‘잔혹한 자가 살아있다면, 잔혹한 자라고 하면 되겠지만.’


잔혹한 자는 신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최고신 메리스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에리나의 계략으로 실패했었다.


‘잔혹한 자가 되살아나기라도 했나?’


그런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잔혹한 자가 되살아났다면, 아무런 힘도 없는 리릴을 살려두는 것보다는 죽였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야.’


어찌됐든,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어쩌면 자신이 이프가 맞고, 그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혁은 이프의 감정을 끌고 오고 싶지 않았다. 이프와 자신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성격이니까.


‘그러니까.’


진혁은 수복을 끝내고,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일을 말하는 거죠? 전혀 모르겠네요.”


“······그런가.”


엔비아는 순순히 물러났다.

자기가 직접 리시아를 죽이지는 못 했지만, 결국 리시아는 죽었다.

리시아에게 나태의 힘을 준 악마가 거슬리긴 해도 당장의 위협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당장의 위협은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악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교관님도 느끼셨죠? 레이라가 타락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서두르도록 하지.”


진혁과 엔비아는 레이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져갔다.


‘이 기운은··· 분노의 악마인가?’


하마터면 진혁과 리릴 둘 다 죽을 뻔했었다. 분노의 악마 레이파가 있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물론 레이파가 리시아보다 강하지는 않지만, 슬픔의 악마 레이라가 변수로서 작용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로스트의 기운도 느껴지지?’


의문이 생긴 순간, 로스트의 기운이 폭발하듯이 커졌다.

그렇게 커진 기운은, 진혁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프가 경험하였던 기운이었다.


‘최유정···?’


로스트의 기운이 커지자, 최유정의 기운으로 느껴진다.


진혁은 직감적으로 로스트가 최유정임을 알아냈다.


‘나를 속여 왔군.’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진혁이 이프의 행동 중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최유정을 끝까지 안 죽이고 식칼의 힘으로 품어주려 한 것이었다.


최유정이 누구인가?

불쌍한 스칼렛을 악령으로 만든 주범이고, 스칼렛의 복수를 하려던 루비아를 폐인으로 만든 인간이다.


그런 인간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려 한다고?


‘열 받지도 않아?’


스칼렛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프에게 루비아는 엄마가 죽은 이후로 생긴 안식처가 아니던가?


안식처를 망가트린 개새끼다. 그런 개새끼를 이해하려는 이프의 행동은 답답함을 넘어서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나는 이프가 아니야. 최유정을 용서해줄 생각은 없다.’


심지어 로스트로서 접근하여, 거짓된 이야기로 속이기까지 했다. 인벤토리 안에서 지켜보며 얼마나 비웃고 있었을까.


‘죽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슬픔의 악마와 분노의 악마가 합쳐졌다.


‘뭐지?’


그리고 점차 최유정의 기운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충돌인가?’


늦으면 안 된다.

최유정은 자기가 죽이고 싶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레이라가 최유정을 공격했다면, 죽이기 전에 도착해서 죽여야 한다.


“전생의 이프 50% 구현.”


지금 몸 상태로 구현하면 부담이 크다.

하지만 최유정을 죽일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먼저 갑니다.”


진혁은 엔비아를 추월했다.

엔비아는 따라가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저런 속도를 내다니, 엔비아는 역시 괴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왜일까.’


진혁은 달려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왜 내가 열 받는 걸까.’


진혁은 이프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이프가 아니라면 최유정에게 분노할 필요도 없다.

루비아는 이프의 안식처지, 진혁의 안식처가 아니었으니까.

진혁에게 안식처는 리릴이니까.


‘내가 열 받을 이유는 없는데.’


루비아가 끝까지 제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스칼렛만 중얼거리는 폐인이 되어서 괴로웠고.

루비아를 그렇게 만든 최유정을, 이해하려는 이프를 보며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이프가 아닌데, 왜 그렇게 열 받는 거냐고.’


이프가 아니라서 열 받는다.

그런데 이프가 아니면 열 받을 이유가 없다.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진혁은 마침내 최유정의 기운 앞에 도달했다.


로스트였던 것은 어느새 최유정의 모습으로 돌아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멀리서 레이라는 죽일 생각이 없는지 관망만 했고, 최유정은 괴로워하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이프, 이프···”


최유정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최유정이 어째서 로스트인지, 로스트로서 이프를 얼마나 원했는지.

그 절실한 감정이 다가왔지만, 진혁은 속에 깃든 가시가 꿈틀거리기만 했다.


역시 용서할 수 없다.


“유감이지만, 나는 이프가 아니야.”


이프였으면 이 상황에서 바보 같이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최유정도 악인이지만 불쌍한 면이 있으니까.

그 불쌍한 면에 상처를 입히고 후벼 파는 것보단,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한 획 더 긋고 참는 것이 나으니까.


‘그런 쉬운 길만 선택하니까, 이프 넌 평생 괴로워한 거야.’


그래서 선을 확실히 그었다.


“나는 성진혁이다.”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러 최유정의 머리를 날렸다.

최유정은 죽는 순간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단지 느꼈을 땐 이미 늦었을 뿐.


최유정은 평안한 안식이 아닌, 자신이 이때까지 저지른 죄악의 대가로 허무한 개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진혁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품고 있는 레이라가 어떤 존재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덤벼들면 공격해야 해.’


언제든지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더 이상 주작업화로 되돌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할 수 있을까?’


레이라와 이때까지 지내온 시간이 떠올랐다. 레이라를 죽인다는 것은 그 시간을 부수는 것과 다름없다.

시간을 부수면 파편이 되어 마음을 찌르겠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각오는 되어있는가?


‘···못 해. 하지만 해야 해.’


아직이다.

아직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각오는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레이라가 제정신이기를 간절하게 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라는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공격인가.

막아내고 베어야 한다.


진혁은 마음이 요동치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검을 들어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레이라가 검을 놓았다.


‘뭐?’


레이라가 검을 놓자 순간 흔들렸다.

레이라가 주먹으로 공격해올 수도 있는데, 어째서 흔들린 것일까.


‘늦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늦었다.

이미 레이라는 코앞이었다.

전력으로 공격한다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이어지는 것은 따스한 포옹이었다.


“진혁님···”


“으, 으응?”


평소의 레이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스한 레이라였기에 진혁은 당황하였다.


그런 진혁에게 레이라는 말했다.


“상처투성이군요···”


“아, 몸이 좀 상처투성이긴 하지.”


“아니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보이네요.”


진혁은 리릴과 계약언을 맺었었다.

가시의 힘을 쓰면 통증 피드백이 오는데, 그 피드백이 절대 리릴한테 가지 않게끔 계약했다.

좋아하는 리릴이 아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니 피드백은 진혁 자신에게 올 수밖에 없다.


“진혁님은 가시에 너무 많이 찔려 계세요.”


“그···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을 아프게 할 바엔, 자기 자신이 아픈 게 낫다.

이프와 다를 게 뭐냐는 스스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외면했다.


“그런데 너 괜찮냐? 악마가 된 것 같은데.”


“악마가 되어 악이 될 뻔했지만, 그 불안정한 순간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극복했어요. 제 목표는 딱 하나니까요.”


“그 목표가 뭔데?”


레이라는 진혁의 품에서 떨어지면서 말했다.


“모든 사건의 원흉, 교만의 악마 에리나를 죽이는 겁니다.”


“뭐···?”


되물은 사람은 진혁이 아닌, 엔비아였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기 21.01.08 269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 공지 20.12.05 74 0 -
공지 진짜 마지막 제목 수정 20.10.23 182 0 -
공지 연재시간 공지 20.09.29 346 0 -
105 에필로그 +2 21.01.08 393 6 11쪽
104 질투 21.01.08 221 4 13쪽
103 미래 +2 21.01.07 128 4 13쪽
102 이프 +2 21.01.07 130 4 13쪽
101 리릴 +2 21.01.06 139 4 13쪽
100 나태의 저주 (6) 21.01.06 127 4 12쪽
99 나태의 저주 (5) +2 21.01.05 124 4 12쪽
98 나태의 저주 (4) +2 21.01.04 110 4 12쪽
97 나태의 저주 (3) +3 21.01.01 127 4 12쪽
96 나태의 저주 (2) 21.01.01 102 4 12쪽
95 나태의 저주 (1) +2 20.12.31 128 4 13쪽
94 에리나 (5) +2 20.12.30 109 6 13쪽
93 에리나 (4) 20.12.29 89 5 13쪽
92 에리나 (3) +4 20.12.28 108 6 12쪽
91 에리나 (2) 20.12.25 112 6 12쪽
90 에리나 (1) 20.12.25 128 5 13쪽
» 모순 20.12.24 111 5 13쪽
88 가시의 책임 20.12.23 121 4 12쪽
87 질투와 탐욕 20.12.22 125 5 12쪽
86 로스트(lost) +2 20.12.21 322 5 12쪽
85 분노의 악마 +4 20.12.18 120 5 12쪽
84 최유정 (5) 20.12.17 132 5 12쪽
83 최유정 (4) +2 20.12.16 140 5 12쪽
82 최유정 (3) 20.12.15 149 5 13쪽
81 최유정 (2) 20.12.14 120 5 12쪽
80 최유정 (1) +2 20.12.11 128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