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HBF 님의 서재입니다.

무공으로 내 인생 만만세!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공모전참가작

HBF
작품등록일 :
2024.05.09 15:56
최근연재일 :
2024.07.04 15:5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30,229
추천수 :
4,838
글자수 :
271,887

작성
24.07.04 15:50
조회
2,229
추천
102
글자
19쪽

연쇄 작용

DUMMY

.




정말 그랬다.

하얀 접시 안에 놓인 것은 요리가 아니었다.

작품이었다.

자연 풍광을 그대로 표현해낸.

비옥한 흑갈색 토양이 보슬보슬 내려앉은 작은 텃밭이었다.

정성스레 갈아놓은 여러 개의 고랑과 두둑이 그러했고.

그 위로 포슬포슬 돋아난 아기자기한 잎사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마치 볕이 잘 드는 곳에 새싹을 심어놓은 것처럼 푸름이 물결쳤다.

자연스레 시선이 두둑 옆으로 향했다.


‘와!’


꽃이 피어 있다.

티토니아를 닮은 주황색 꽃이.

날개를 활짝 편 노랑나비 역시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팔랑이며 꽃 주변을 맴돈다.

한가로운 여름날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난 전경이 접시 안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리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두둑 위로 반쯤 뽑혀 나온 싱싱한 당근이었다.

정말 당근처럼 생겼다.

흙이 묻어난 질감이나 당근 특유의 주황색 표면, 그리고 꼭지에 달린 녹색 줄기와 잎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리아의 갈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게 돼지고기 요리라니!’


정말 경이로운 플레이팅 기법이었다.

솔직히 요리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이게 무슨 요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구독자들도 비슷한 심정인지 곳곳에서 경탄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어거 진짜 대박이다!”

“그치, 그치?”

“와, 후지살 선택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이런 플레이팅을 할 줄이야······.”

“난 조각할 때부터 감이 딱 오더라. 왠지 실력자 같았어.”

“사진 찍어야지!”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요리를 찍기 시작했다.

리아도 대세를 거르지 않고 폰을 꺼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서비스된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플레이팅에 감탄하고 사진 찍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확실히 임팩트가 엄청난 요리였다.

실내의 모두를 흥분하게 할 정도로.

리아는 몸이 달아오를 만큼 궁금해졌다.


‘무슨 맛일까?’


천천히 포크를 들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텃밭의 흙을 살며시 퍼먹어보았다.

바삭바삭한 식감 뒤로 살짝 달달, 짭짤,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오?’


단순히 누룽지 맛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미가 된 맛이었다.

약간 인절미 가루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시나몬 향이 추가된 그런 맛이랄까?

딱히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긴 하지만 상당히 맛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엔 당근이었다.

두둑을 파헤쳐 흙을 옆으로 치우자 당근 모양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쉽게도 완벽한 당근 모양은 아니었다.

중간을 반으로 뚝 잘라 평평한 면으로 반듯하게 세워놓은 모양새였다.

포크로 당근 표면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드르륵-


과자처럼 바삭하게 익은 표면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의외의 질감에 그녀가 나이프로 반을 갈라보았다.


써거걱- 써걱!


맛있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입안에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며 반으로 갈린 요리를 확인해보았다.

겉면과는 다르게 진회색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아, 이게 고기구나.’


작은 깨달음을 얻자마자 곧바로 의문을 느꼈다.

압력솥에 고기를 넣고 쪘던 영상이 떠올라서였다.

보쌈이나 족발을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변형된 요리가 나올 줄이야?

정말 상식을 깨는 요리가 아닐 수 없었다.

감탄한 그녀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반으로 자른 요리를 포크로 쿡 찍었다.


‘채소도 같이 먹어볼까?’


텃밭에 자라난 잎사귀를 몇 개 뜯어 위에 올렸다.

흙 같은 질감의 누룽지도 솔솔 뿌렸다.

그리고 한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바삭, 바삭!


기분 좋은 울림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향이 감돌았다.

숯불에 구운 듯한 탄향과 고급스러운 한식의 향취였다.

이어 돼지고기의 부드러움과 아삭한 채소의 탄력, 그리고 바삭한 누룽지의 식감까지 잘 어우러져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맛의 향연이 입안에서 펼쳐졌다.


‘우와!’


한없이 우아한 맛이었다.

딱 잡아 무슨 맛이라고 하기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맛있다!

엄청나게!

조림의 미학?

격이 다른 질감?

입안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진부할 정도로 속 내용물이 버터처럼 살살 녹아내렸다.

잡내 따윈 없었다.

오히려 기분 좋은 향만이 입안에서 감돌아 식욕을 불러일으켰다.

리아는 이 요리를 만든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천재적인 맛의 감각과 놀라운 조리 기술에.

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후지살을 이런 식으로도 조리가 가능하구나······.”


삶아 육질에 향을 입힌 뒤, 후지살 특유의 퍽퍽한 살을 으깨 부드러움을 더하고 다시 튀겨내 바삭한 식감까지 살려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으깬 살점에 굳힌 육수 기름을 넣어 생크림처럼 보드라운 식감과 풍성한 육즙마저 구현했다.

갑자기 중국 미슐랭 레스토랑에 방문했을 당시가 떠올랐다.

고기 요리가 나왔는데 지금처럼 식감이 비슷했다.

셰프를 불러 물었더니 이 부드러운 식감을 극대화하려면 일단 도톰하게 자른 돼지고기를 조린 다음, 한 번 튀기면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그 조리법을 한 번 더 비튼 요리였다.


당근 같은 색감을 내기 위해 바른 소스도 훌륭했다.

그 외의 맛은 두말할 것도 없고.

특히 향의 조합은 정말 미쳤다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시나몬 특유의 향과 불에 그슬린 듯한 탄향을 절묘하게 섞었다.

말 그대로 한방의 향을 닮은 듯한 고급스러움이 은은히 흘러나와 요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맛, 향, 플레이팅.

모든 게 완벽한 요리였다.

20살 요리사의 실력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맛이었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그녀는 남은 요리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으으으음!’


너무 맛있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



첫 번째 요리에 충격을 받은 요리 쿡쿡 한정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두 번째 요리를 접했다.


‘갈비살 스테이크.’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갈비살 세 개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쌓아올린 뒤, 폼 소스와 사이드 메뉴로 시각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감각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접시 플레이팅이었다.

마이아르 반응을 이끌어내려 오븐에 구운 색감도 무척이나 훌륭했다.

뼈 하나를 들고 먹어보았다.


‘음?’


상큼한 맛과 함께 각종 허브의 향이 살아 있는 듯 춤췄다.

바삭한 겉면 안으로 속살이 쫄깃하면서도 보드랍게 씹혔다.

마치 고깃결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된 것처럼.

보들보들했다.

한정호는 입을 오물거렸다.


‘확실히 달라.’


비슷한 고기 음식이라도 씹을 때의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근막이나 심줄 같이 질긴 부위의 손질과 칼집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의미였다.

각종 허브의 구성과 조합도 굉장히 좋았다.

기존 갈비 스테이크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린 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룡점정은 역시 소스였다.

홀스레디쉬 소스를 폼 형태로 가공한 뒤 새로운 맛으로 구현해냈다.

그만큼 공들인 맛이다.

적포도주에 졸인 사이드 메뉴도 갈빗살과 아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첫 번째 요리의 강렬한 맛에 비하면 약간 뒤처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적당한 평가를 내린 그가 포크를 내려놓고 차분한 눈으로 스크린을 주시했다.

이명철 교수가 두 번째 요리를 평가하는 중이었다.


-새롭게 구성된 홀스레디쉬 소스가 아주 좋군요. 마리네이드된 갈빗살과의 조합도 신선합니다.


생각은 거의 비슷했다.

객관적으로 요리를 분석하고 정확하게 평가를 내렸다.

교수로서의 예의도 잃지 않고 있었다.

한정호는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세 번째 팀에게 대상을 준거지?’


가장 의문이 되는 부분이었다.

편파적인 심사는커녕 공명정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평가였다.

설마 대회 때의 요리와 오늘 나온 대상 수상작의 퀼리티가 큰 차이를 보인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인분과 1인분의 조리과정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교수에 대한 편협해진 시각이 다소 누그러진 그가 손깍지를 끼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1분 정도가 흐르자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주방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에 통통한 요리사가 통돼지 앞으로 다가가더니 빠르게 발골하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빠른 칼질 솜씨에 주변이 술렁였다.


“우와!”

“손이 안보여!”

“엄청 잘하네······.”

“저거 진짜 어려운 건데, 저렇게 쉽게 하냐?”


구독자들의 말처럼 통통한 요리사는 순식간에 통돼지를 해체하는 쇼맨쉽을 보여주었다.

한정호는 감탄했다.


‘이야, 대단한데?’


놀랄 틈도 없이 돌연 다른 팀 요리사가 다가오더니 가장 좋은 부위를 대뜸 가져가버렸다.

통통한 참가자의 옆에 있던 요리사가 화를 냈지만 그는 내로남불 태도로 어이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듣고 있는 사람이 더 화가 날 정도로.


“미친 거 아니야?”

“인성 개쓰레기인데?”

“저 요리사가 대상 요리 만든 사람이지?”

“어. 진짜 최악이다.”


그에 반해 통통한 참가자는 대신 화를 내준 요리사에게 재료를 양보한 뒤에 가장 저렴한 후지살을 선택했다.

그제야 한정호는 왜 그가 후지살을 선택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저래서 그랬구나.’


그 감동적인 모습에 구독자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인성보소.”

“진짜 착하다. 나 같으면 씨팔좆팔 찾았을 건데.”

“난 바로 죽빵 날렸을 걸?”


인성도 인성이지만 한정호가 가장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타의적인 재료 선택이라는 부분에서 발생된 리스크였다.

다시 말해서 저 참가자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다시 신 메뉴 레시피를 보완했다는 의미였다.

한정호가 어이 없이 웃었다.


‘이제 보니 저 사람.’


천재였다.

한국 요식업계를 단숨에 뒤흔들 수 있는.

그 생각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왜 이제야 보여준 거지?’


처음부터 보여줬다면 후지살 요리를 만든 팀은 엄청난 환호 속에서 극찬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평가가 끝난 시점에서 이런 영상을 내보내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머릿속이 번뜩였다.


‘아! 설마?’


차상훈의 노림수는 최우수상 팀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대상 수상자를 확실하게 깎아내릴 생각 같았다.

더불어 안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은 후지살 요리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명암.

극대화되는 상황.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를 저 영상 하나로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의도였다.

한정호는 감탄했다.


‘하여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굴린다니까?’


아무래도 조회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



카메라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세 번째 요리를 품평하던 이명철은 갈등했다.


‘플레이팅은 괜찮지만.’


맛이 문제였다.

삼겹살과 등심 덧살, 항정살의 조화가 문제였다.

등심 덧살 스테이크와 삼겹살, 특제 소스의 조합은 매우 훌륭했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항정살 파테는 최악이었다.

등심 덧살 겉면에 돌돌 말은 삼겹살 위로 올린 항정살 파테의 맛이 두 부위의 맛을 모조리 잡아먹고 있었다.

이 최악의 선택 하나로 기껏 끌어올린 요리의 맛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이명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하점을 줄 수도 없고.’


대상 수상자 요리가 최고라고 지금까지 떠들었던 참이었다.

돈값은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커서.

이런 상황에서 신 메뉴의 맛을 깎아내린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모양세가 연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1등을 줄 수도 없었다.

첫 번째 요리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였다.

깔게 없었다.

놀라운 플레이팅이나 맛, 모든 면에서 완벽한 요리였다.

솔직히 이런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요리를 깎아내리고 세 번째 요리가 최고라고 말했다간 저 음흉한 크리에이터가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뻔했다.

주관적인 평가라고 빡빡 우기면 되기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대상 수상자를 도와줘봐야 남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뒤가 맞는 합리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므로 이명철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었다.


“상당히 괜찮은 느낌입니다.”

“죄송한데 정확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일단 플레이팅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음식을 만드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했어도 제대로 담기지 않은 음식은 맛없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이건 직관이 아니라 과학으로도 증명된 사실이죠. 같은 음식이라도 예쁘게 플레이팅됐을 때 30%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푸드 플레이팅 테크닉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적당히 밑밥을 깐 뒤에 본격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는 정찬에 속하므로 요리의 격에 맞게 심플한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클래식하되 우아한 느낌을 줘야 한다는 거죠.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요리 같은 경우에는 삼겹살을 두른 등심 덧살을 메인으로 사이드 메뉴로 디테일을 살리고 소스로써 섬세한 포인트까지 잘 살려냈습니다.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맛은 어떻습니까?”

“맛도 상당했습니다. 기발한 조리 과정을 통해 다양한 육질의 질감을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육즙을 살려 요리의 풍미를······.”


전문 용어를 사용하면서 긴 설명을 이어나갔다.

삼겹살과 등심 덧살, 소스와의 조합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맛을 저해하는 요소인 항정살 파테 부분은 최대한 간략하게 넘어가는 노련함도 보여주었다.

최대한 그럴싸하게 설명을 한 그가 평가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순위는 첫 번째가 요리가 1등, 세 번째 요리가 2등, 그리고 두 번째 요리가 3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관적인 판단이고 서로 근소한 차이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반박할 줄 알았던 차상훈도 따라 웃었다.


“교수님의 생각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볼까요?”

“예? 다른 분들이요?”


물음에 그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댔다.


“리아 님, 요리쿡쿡 님, 음식 평론가 이윤오 님께서는 2층으로 올라와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명철은 크게 당황했다.


“뭐, 뭡니까?”

“사실 게스트를 몇 분 더 초대를 했습니다. 3팀의 요리도 모두 시식한 상태고요.”


순간 화가 났지만 카메라 앞에서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에 꾹 참고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일부러 그랬네.’


이젠 확실하게 알겠다.

고령군 요리 대회에서 앙심을 품고 이 자리에 불렀다는 사실을.

그래봤자 겨우 3명이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말도 해놓은 상태였고.

게다가 고령군 대회 참가자가 출품한 요리를 그놈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이명철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두고 보자!’


이 모욕을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출입문이 열리더니 3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먹방과 요리, 평론가.

꽤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명철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명철입니다.”


그 뒤로 모두가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차상훈이 운을 띄웠다.


“밑에서 이명철 교수님의 심사평은 잘 들으셨지요?”


음식 평론가 이윤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대회 출품작과 신 메뉴를 모두 시식한 이윤오 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회 출품작이란 말에 이명철은 의아했다.


‘저게 뭔 소리야?’


의문이 들기 무섭게 이윤오가 똑바로 쳐다보았다.


“대상을 받은 아보카도 퓨레를 곁들인 장어 세비체에 높은 점수를 주신 이유로 독창성을 꼽으셨는데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독창성으로 따질 것 같으면 차라리 고령의 한상차림이나 수박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장어 오븐 구이와 지중해식 샐러드가 훨씬 더 낫습니다.”


정확한 지적에 이명철은 분통이 터졌지만 겉으론 전혀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이후로 팽팽한 설전이 오갔다.

대회 출품작과 신 메뉴의 맛, 플레이팅, 기법 등을 설명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주장했다.

당연히 합의점은 없었다.


“······심사는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총 5명의 심사위원을 초빙한 것이고요. 평론가이신 이윤오 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 말에 요리쿡쿡이 끼어들었다.


“주관적인 생각을 최대한 멀리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 바로 심사위원의 자세가 아닙니까?”

“본래 평가의 본질은 주관적인 겁니다.”

“교수님은 주관적이 아니라 자의적이겠지요.”


일정한 규칙을 무시하고 멋대로 판단했다는 발언에 이명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리아였다.


“60명 중에서 60명이 모두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객관적인 건가요, 아니면 자의적인 판단일까요?”


뭔 헛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돌연 실내에 설치된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 그대로 스크린에서는 지금 모습이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당황하자 리아가 입을 열었다.


“맛은 주관적일 수 있죠. 그런데 초대된 60명의 구독자분들께서 모두 교수님과 정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았다면 과연 누가 옳은 걸까요?”


60명의 구독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일련의 상황이 모두 이해된 이명철은 깨달았다.

차상훈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사실을.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별것도 아닌 새끼가!’


애써 억누르고 있던 인내심이 바닥나는 순간이었다.



*



학폭 관련 임시 기사를 작성한 사회부 기자 윤환이 부장의 말을 기다렸다.

기사를 읽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거 좋은데?”


저럴 줄 알았다.

범죄 사실이나 동기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불러올 파장이었다.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 그래야 기사가 돈이 되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제법 큰 이슈몰이가 될 것 같았다.


“준비하겠습니다.”

“최대한 자극적으로. 알겠지?”

“예, 걱정 마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공으로 내 인생 만만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연쇄 작용 +8 24.07.04 2,230 102 19쪽
43 게스트 초청(4) +6 24.07.01 2,758 100 13쪽
42 게스트 초청(3) +6 24.06.28 3,214 97 16쪽
41 게스트 초청(2) +6 24.06.26 3,330 97 13쪽
40 게스트 초청 +5 24.06.25 3,624 104 13쪽
39 과거의 악연(4) +4 24.06.22 3,979 110 15쪽
38 과거의 악연(3) +10 24.06.20 3,798 106 17쪽
37 과거의 악연(2) 수정 +9 24.06.13 4,232 107 14쪽
36 과거의 악연 +6 24.06.12 4,102 96 16쪽
35 서로에 대한 마음(3) +4 24.06.11 4,223 113 14쪽
34 서로에 대한 마음(2) +5 24.06.10 4,343 107 13쪽
33 서로에 대한 마음 +4 24.06.09 4,540 101 14쪽
32 요리대회(5) +9 24.06.08 4,527 105 14쪽
31 요리대회(4) +5 24.06.07 4,514 111 14쪽
30 요리대회(3) +6 24.06.06 4,592 103 14쪽
29 요리대회(2) +7 24.06.05 4,611 110 13쪽
28 요리대회 +6 24.06.04 4,829 96 14쪽
27 무공입문 +8 24.06.03 4,985 100 15쪽
26 작은 목표 +5 24.06.02 4,971 108 14쪽
25 변화된 시선들(4) +8 24.06.01 5,001 111 12쪽
24 변화된 시선들(3) +6 24.05.31 5,011 112 12쪽
23 변화된 시선들(2) +6 24.05.30 5,097 111 14쪽
22 변화된 시선들 +5 24.05.29 5,213 116 14쪽
21 체육관에서(3) +3 24.05.28 5,272 107 12쪽
20 체육관에서(2) +5 24.05.27 5,373 108 12쪽
19 체육관에서 +3 24.05.26 5,413 101 11쪽
18 취직(2) +6 24.05.25 5,468 101 13쪽
17 취직 +9 24.05.24 5,539 102 13쪽
16 테스트(2) +8 24.05.23 5,516 104 13쪽
15 테스트 +5 24.05.22 5,608 10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