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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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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5.26 21:53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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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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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105. 고난의 6연전 (4)

DUMMY

“오늘 경기 막바지에 잊지 못할 골을 넣으면서 팀을 구해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기분이요? 좋아요. 엄청 좋아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에요! 느낌부터 뭔가 달랐어요. 코너킥이 선언되었을 때부터요.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그런 거 있잖아요? 캐리가 볼을 올리고, 그 볼이 저한테 굴러오는 순간에도 좋은 예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발등에 얹혀 날아갈 때 이건 골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런 감각은 처음이었어요! 아, 물론 전 아직 선수 생활을 많이 안 해봤지만요. 다시 느껴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과연 제가 또 그런 골을 넣어 볼 수 있을까요?”


“어······. 글쎄요. 모르겠네요. 넣을 수 있기를 빌어줄게요. 하하······.”


딩월의 왕성한 활동량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이어져 나갔다. 셀틱전에 이어서 그리스 원정까지 풀타임을 소화했음에도 그는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인터뷰를 들어주던 기자 쪽에서 더 기진맥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패배할 수도 있던 시합에서 짜릿한 동점 골을 넣었다. 발칸 반도의 끝자락까지 비행기를 타고 따라온 극소수의 원정 팬들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잔뜩 흥이 난 상태인데 그 상황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오죽할까.


수만 명의 야유로 무섭게 진동하던 카라이스카키스 스타디움이 짧은 시간이지만 일순간 침묵에 잠겼던 광경은 다시 봐도 정말이지 대단한 장면이었다.


대략 30m 부근의 먼 거리에서 그런 어마어마한 골을 터뜨릴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플레이오프 예선전에 이어서 로스 카운티가 한 번 더 일을 내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다시금 냉정하게 현실로 돌아올 필요가 있었다.


로스 카운티 2 : 2 잘츠부르크

생테티엔 0 : 0 로스 카운티

올림피아코스 1 : 1 로스 카운티


이때까지 치른 세 경기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팀의 저조한 명성을 생각하면 이것도 나름 선전했다 볼 수도 있겠으나, 어쨌건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데에는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럽 대항전은 역시 만만치 않구나.’


동점 골의 열기가 식은 후에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 처음 발을 내디딘 로스 카운티가 이런 팀들을 상대로 호각을 다퉜다는 게 기특한 일이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잘했다면 제대로 사고를 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조 1위에 올라가 있는 생테티엔이 현재 5점으로 격차가 많이 벌어진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추첨 당시에는 죽음의 조로 편성된 탓에 절망까지 했었건만 오히려 다른 쪽도 치열하게 뒤엉켜 싸워준 덕에 그 수혜를 본 셈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전망이 어두운 건 여전하다. 설령 남은 경기마저 전부 비긴다 해도 승점 6점이며, 그 정도로는 32강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 그렇게 다시 한번 버텨낼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지만 말이다.


아예 손을 놓고 포기할 게 아니라면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처지인데, 문제는 상대도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 호락호락 당해줄 리 없다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추락을 겪어야 하며, 로스 카운티는 그 가능성이 유력한 팀으로 꼽히고 있었다.


세 팀 중에서 가장 애를 먹었던 잘츠부르크를 하필 원정에서 재회해야 하는 것도 현 상황을 암울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설상가상으로 리 월리스는 막판에 경고 한 장을 받으면서 누적 징계 처리로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사실 골머리를 앓을 일이 한둘이 아니다.


[로스 카운티는 극적으로 골을 넣으며 승점 1점을 가져왔지만, 아직 승리가 없기 때문에 좋은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딩월의 그 통쾌한 골이 위태롭던 로스 카운티에게 아주 잠깐 호흡기를 달아준 응급처치에 그쳐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들은 남은 경기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승리를 쟁취해야 할 겁니다.]


그 사실은 언론 쪽에서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


“발목 상태가 약간 좋지 않습니다.”


“예? 그렇다는 건······.”


“다행히 심각한 문제는 아니고, 피로가 누적된 상태예요.”


“아······. 피로······ 그렇군요.”


스튜어트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창 중요한 이 시기에 장기 부상자라도 나온다면 그건 정말로 위험한 일이다. 더군다나 알렉산더 캐리 같은 핵심 선수라면 더더욱.


본인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병원까지 끌고 온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근데 여기서 무리하면 악화할 우려가 있어서······.”


의사의 말이었다.


“다음 경기는 휴식하는 걸 권장해드리고 싶네요.”


“휴식이요?”


“일단 발목에 무리가 가해진 상태이니까요. 지금이야 문제가 없지만 자칫하다가는 큰 부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아······.”


사실 이렇게 된 게 이상할 일은 아니다.


캐리는 로스 카운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활동 영역이 무척 좁았고, 몸싸움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한 선수였다. 안 좋은 의미지만 궂은일을 마다하는 고결한 귀족처럼. 그렇게 수년간을 뛰어왔다.


그랬던 그가 지금의 감독을 만나 끊임없이 필드에서 움직이고, 상대 미드필더와 부딪치는 걸 피하지 않는다. 분명 좋은 변화이긴 하나, 그렇게 안 해오던 것들을 하다 보니 결국 무리가 온 모양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매번 후반 70분 즈음이 되면 대런 케틀웰이나 맷슨 클락으로 교체하면서 체력을 안배해주던 것도 나름의 캐리를 위한 특별 관리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올 시즌에는 유럽 대항전까지 겹치면서 빠듯한 일정을 치러야 했고, 올림피아코스 원정에서는 승리가 절실한 나머지 캐리를 계속 필드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코너킥이 딩월의 골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기어이는 그 여파가 찾아오고 만 것이다.


“진통제를 쓰면 어떻게 되죠? 문제가 되나요?”


“알렉스, 그건······.”


“다음이 하일랜드 더비잖아요.”


“······.”


의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뭐, 당장 큰일이 나진 않겠죠. 하지만 추천해 드리고 싶진 않네요.”


“닐, 전 뛸 수 있어요.”


캐리가 말했다.


“이번 경기가 중요한 건 닐도 알고 있잖아요. 별문제가 없다 하니 괜찮을 거예요.”


“······.”


무엇이 과연 이 선수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낸 걸까?


스튜어트는 아직도 캐리와의 첫 만남 당시를 기억한다. 시큰둥한 표정에 탁한 동공. 주변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의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던 게 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이 눈빛은 그 누구보다도 열의에 가득 차 있다.


뛰고 뛰어도 더 뛰고 싶어서 굶주린 이처럼.


“저는 의사로서 소견을 말씀드린 거고, 선택은 구단에서 할 일이겠죠.”


스튜어트로서도 지금 상황에서 캐리가 빠지는 게 달가운 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라이벌인 칼레 시슬이 개막전의 치욕을 씻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게 분명한데 핵심 미드필더가 빠지면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수가 뛰길 열망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번 고비만 넘기면 어느 정도는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스튜어트는 한 경기 정도는 살짝 더 무리해서 나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니, 난 반대야.”


돌아와서 들은 감독의 대답은 단호했다.


“하지만 감독님······. 이번 하일랜드 더비에 알렉스마저 빠지면 정말 치명적일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꾸했다.


“알렉스의 상태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저 문제가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는데, 그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물론 저도 진통제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번만 잘 넘기면 그래도 좀 형편이 많이 나아집니다. 다음이 리그 컵이라 주전에게 휴식도 줄 수 있고······.”


스튜어트는 이탈리안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알렉스도 나가길 희망하고 있고요.”


“그래, 자네들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감독이 말했다.


“다음 경기가 중요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


그리고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한동안 창문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로서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닐, 이게 마지막은 아니지 않은가?”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목적지까지 진군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어. 무리하게 강행군을 펼치다간 결국 지치고 말아. 그러면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무기를 들 힘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건······.”


“어지간해선 내 선수들에게 약을 투여하면서까지 전장으로 내보내고 싶지는 않네. 당장은 눈에 안 보이더라도 모르는 새 우리를 좀먹어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일이야.”


스튜어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쓰러져 버린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나.”


감독의 말에도 틀린 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스를······ 쉬게 하지.”


단지 이 결정의 한 마디가 곧장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걸 감수해야만 했다.


제임스 블랜차드의 부재만으로도 걱정투성이였던 시합에 알렉산더 캐리마저 제외해야 한다. 차, 포가 떨어져 나간 상황에서 독이 바짝 오른 그들을 잘 상대할 수 있을까?


스튜어트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


로스 카운티의 좋지 않은 소식은 원치 않는 적의 귀에까지 빠르게 들어갔다.


“알렉산더 캐리가 이번 경기에서 빠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가.”


“블랜차드에 캐리까지 나오지 못한다면 거의 전력의 반이 무너진 상태라고 봐도 되겠는데요. 우리 팀에게 제대로 상대가 될 수 있을지······.”


코치의 말에 스티브 클라크(Steve Clarke)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방심해선 안 돼. 그쪽의 실질적인 전력은 건재하니까. 그 이탈리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한 로스 카운티는 무시할 수 없는 팀이야.”


비록 뜻밖의 이른 퇴장으로 어그러져 버린 일이긴 했지만, 개막전에서 네 번이나 점수를 내주며 당했던 대패는 아직도 생생하리만큼 잊지 못할 굴욕이었다.


하이버니언을 지휘하던 당시엔 여러 번 로스 카운티를 괴롭히기도 하며 안토니오 델 레오네란 인물에게 상대 전적 우위를 지닌 유일한 인물로 몇몇 언론에서는 천적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아주었었는데.


그 개막전에서의 대패 이후 1승 3무 1패로 전적은 동률이 되었고, 띄워주던 언론은 침묵에 잠겼으며, 자신은 명예를 크게 실추하고 말았다.


이후 절치부심하여 좋은 성적을 거둬나간 끝에 현재는 셀틱과 로스 카운티의 뒤를 이은 3위까지 바짝 따라붙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위에 있는 로스 카운티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클라크에게는 이번 승리가 정말로 절실했다.


“약간은 수월해지기야 하겠지만, 좀 맥이 빠지는군.”


정말로 많은 준비를 해왔다.


자신의 팀이 라이벌에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집어 삼켜지는 걸 보고서 미드필더 강화가 필수적이라 생각했고, 이적 시장이 거의 끝나가는 막바지에 파틱 시슬과 계약되기 직전이었던 압둘 오스만(Abdul Osman)을 가로채는 데 성공했다.


잉글랜드 3부 리그의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뛰던 이 가나 출신 선수는 적극적인 몸싸움을 즐기며 중앙에서 볼 다툼을 하는데 특화되어 있는 하드 워커로, 클라크는 이를 중심 삼아 로스 카운티를 박살 낼 계획을 세워가던 중이었다.


그렇게 계속 벼르고 있었는데 그 상대가 부상으로 골골대고 있는 처지라니.


“그렇다고 사정 봐줄 필요는 없지.”


클라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가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전력을 다해 쳐부순다.”


*******


“알렉산더 캐리의 역할을 대신하여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리차드 브리튼, 맷슨 클락 정도입니다. 하지만 결국 브리튼과 케틀웰로 중앙을 구성하고 브리튼이 빌드 업을 주도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클락은 아직 큰 경기 경험이 적어서 상대 팀의 압둘 오스만에게 제압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대와 똑같이 4-4-2로 부딪치면서 에이든 딩월로 하여금 계속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만든 뒤 전진하는 방식으로 공략해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경기를 앞두고 진행되는 코치진 회의는 언제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곤 했지만, 오늘은 더욱더 열띤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브리튼은 캐리처럼 중장거리 패스를 원활하게 전달해주지 못합니다. 강하게 압박하면서 라인을 높이 끌어올려야 합니다. 다행히 상대 공격진 중에 부상으로 이탈해 있는 마크 맥널티를 제외하면 뒷공간을 위협할 정도로 빠른 발을 지닌 선수가 없습니다.”


“아론 도란이 최전방에 나온다면요?”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개막전 이후 그들은 도란을 쭉 라이트윙으로 기용해왔으니까요. 측면에서 잘하던 선수를 굳이 전방으로 옮기진 않을 겁니다. 아마 코너 페퍼와 크리스 둘란이 선발로 나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그리고 감독은 의자에 앉아 양 손가락을 맞대고 눈을 감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며 이 토론을 주도하였을 사람인데.


쉽지 않은 더비 매치에 핵심 선수들의 줄부상까지. 제아무리 그라도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네들은······.”


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임스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예?”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스튜어트를 비롯한 코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울프 키르스텐 코치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당연히······ 팀 내 최고 공격 포인트를 쌓고 있는 선수니까요. 그가 잘하고 있지 않는다면 누구도 잘한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 그렇지.”


감독이 말했다.


“근데 내 말은 그가 지금보다 좀 더 잘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얘기네.”


“······.”


이후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나가기 전만 해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블랜차드다. 그런데 갑자기 잘하고 있냐니······. 거기에 그는 아직 훈련 복귀조차 못 한 상태라 이번 하일랜드 더비에는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는데. 애당초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또 무언가의 생각에 잠겼구나.’


스튜어트는 감독이 또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이 이상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시금 눈을 감은 괴짜 이탈리안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한 가지 생각밖에 들어있지 않은 듯했다.


*******


< 14-15 Scottish Premiership 12 Round >

로스 카운티 : 인버네스 CT

2014년 10월 26일 (일) 15:0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138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잭 마틴

MF : 에드빈 데 루어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 소피앙 부팔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인버네스 CT / 4-3-3]

FW : 크리스 둘란

WF : 라이언 크리스티 / 아론 도란

MF : 압둘 오스만 / 제임스 빈센트

DM : 로스 드레이퍼

DF : 라이언 맥기븐 / 제이크 맥라렌 / 게리 워렌 / 매튜 쿠퍼

GK : 단 트워드지크



“뭐야. 미드필더가 세 명이라고?”


스튜어트는 예상 못 한 상대의 진형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았다.


인버네스 CT는 4-4-2를 주로 사용하는 팀이다. 그런데 중대한 더비 경기에서 나온다는 것은 무언가 노림수가 있다는 얘긴데.


“이건······. 상대가 중앙을 확실하게 잡아내겠다는 걸까요?”


“그런 의도로 내세운 건 분명해. 하지만 단순히 숫자 채우기 식으로 구성한 미드필더진은 아닌 것 같군.”


감독 역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번 시합, 상당히 힘들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스튜어트는 그 너머로 팔짱을 끼고 있는 클라크 감독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뭔가 느낌이 많이 안 좋은데.’


스튜어트는 살짝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


전반 15분.


와아아 -


분명 빅토리아 파크에서 펼쳐지는 홈경기였지만, 함성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건 원정 팬들이 있는 스탠드 쪽이었다.


‘공격을 제대로 해보질 못하고 있잖아.’


스튜어트의 속은 시간이 갈수록 타들어 가고 있었다.


브리튼과 케틀웰의 중앙은 상대에게 완벽히 장악되어 버렸고, 그 탓에 점차 라인이 밀려나면서 거의 반코트 수준에 가까운 경기로 진행되고 있다.


극 초반 부팔의 치고 달리는 돌파에 이은 크로스 공격 이후 로스 카운티는 거의 전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내건 패에 제대로 말려든 느낌이었다.


깡 -


제임스 빈센트의 중거리 슛이 골대를 강타했고, 스튜어트는 다시 한번 철렁이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거 너무 일방적으로 밀리는데요. 대체······.”


“지금 상대가 내세운 미드필더 세 명은 우리 선수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어.”


감독이 말했다.


“지금 상대도 우리가 하려던 것처럼 라인을 끌어올린 게 보이나?”


“예, 보입니다······.”


“높이 올린 라인을 바탕으로 빈센트와 오스만이 우리 중앙을 거침없이 압박해오고 있지. 특히 오스만은 리차드가 편하게 패스하지 못하도록 계속 붙어주고 있어. 본래대로라면 저 선수를 알렉스에게 붙여놓으려고 했던 모양이야.”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주요 패서를 견제하면 공격이 무뎌진다는 생각에서겠지. 그게 제대로 적중하고 있고. 안 그래도 알렉스의 부재로 전방으로의 공급이 잘 안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 찰거머리 덕분에 계속 무의미한 뒤쪽으로 패스가 돌고 있어.”


감독은 그렇게 말하더니 짧은 한숨과 함께 턱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상대는 그에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그물을 쳐놓았군.”


그는 손가락으로 딩월에게 붙어 있는 드레이퍼 쪽을 가리켰다.


“리차드 뿐만 아니라 에이든에게도 마크맨을 붙여 놓았어.”


“······.”


“다들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수비 가담에 뛰어난 공격수로 떠들썩하지만, 사실은 알렉스 다음으로 우리 팀에서 중요한 빌드 업을 맡은 선수라는 걸. 아래로 내려가서 받아주고, 넘겨주면서 상대의 압박을 풀어내고 전진하는 데 무척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에이든이야.”


수비진으로부터 딩월을 향해 길게 넘어간 공중볼이 드레이퍼의 머리에 끊기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차단된 것만 세 번째. 188cm 장신의 선수에게 딩월이 헤더를 따낼 재간은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겉으로 드러나는 어설픔만 보고서 등한시 해왔지. 그간 에이든은 표적을 물고 늘어지는 데 익숙해 왔었어. 그런데 이번엔 위치가 바뀌었군. 상대가 지금 저 녀석을 견제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으니 말이네.”


“확실히 리차드부터 에이든까지 전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상을 바꿔서 제대로 공략을 해냈어. 우리 팀의 빌드 업 시스템을 모조리 마비시키려고 작정한 거지.”


스튜어트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크 감독이 미소를 지었던 건 로스 카운티가 내세운 라인업을 보고서 승기를 잡을 거라 확신했던 거다.


그런 와중에도 로스 카운티는 여전히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와아아 -


브리튼의 패스가 오스만에게 차단되자마자 원정 팬들의 함성이 드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빈센트를 비롯한 네 명의 인버네스 선수가 일제히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수비! 집중해!”


스튜어트가 외쳤지만 이미 볼은 최전방의 둘란을 거쳐 얀손과 월리스의 틈새로 빠져나가며 아론 도란에게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역시 까다로운 상대야.”


감독은 결국 그물이 흔들리는 걸 보며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금씩이라도 속도를 올려서

더 많이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

제 글을 지지해주시는 분,

제 글을 걱정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로 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해주신 의견을 받아들여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잘 타협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247486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그리고 추천글을 써주신

백미천사 님과

댓글로 추천해주시고 좋은 말씀을 달아주신 모든 독자분들

늦은 연재에도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갑자기 선작이 확 올라서 무척 기뻤고

정말로 큰 도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연재 주기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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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 던디 쇼크 +7 19.04.21 3,669 133 21쪽
110 110. 역이용 +12 19.04.02 3,545 136 22쪽
109 109. 키포인트 +10 19.03.17 3,648 146 25쪽
108 108. 상관없어요 +16 19.03.01 3,824 143 21쪽
107 107. 고난의 6연전 (6) +11 19.02.17 3,773 142 24쪽
106 106. 고난의 6연전 (5) +10 19.02.02 3,827 121 22쪽
»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4,003 148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64 144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66 140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582 146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46 172 19쪽
100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45 181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4,998 172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085 180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165 202 26쪽
96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409 183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388 181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37 194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385 207 23쪽
92 92. 이끌리는 사람들 +19 18.08.10 5,475 19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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