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6.22 18:58
연재수 :
207 회
조회수 :
1,099,393
추천수 :
34,209
글자수 :
1,928,975

작성
17.12.15 20:01
조회
11,899
추천
315
글자
12쪽

10. 개막전

DUMMY

“역시 좋지 않아.”


베넷이 좌석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그가 마주한 반대편 스탠드에서는 어마어마한 군중이 녹색 파도 물결처럼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개막전이 셀틱, 그것도 원정길이라니.”


셀틱 파크(Celtic Park), 6만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에 빈 객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메운 사람들. 셀틱의 서포터들은 유럽을 통틀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열정으로 유명한 집단이었다.


신임 감독은 이런 열기 속에서 데뷔전을 치러야 한다.


그 외에도 로스 카운티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첫날에 벌인 연습 시합으로 인해 몇몇 선수들과 감독 사이에 묘한 기류가 일어난 상태였고, 프리시즌은 전 경기 무승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낳았다.


가장 심각한 건 주장인 리차드 브리튼이 작년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경고 누적 퇴장을 받은 바람에 그에 대한 징계로 이번 셀틱전에 출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그 이탈리안의 역량을 확인해볼 수 있겠군. 과연 말뿐이었는지 아닌지.”


“셀틱 원정길이라 이번엔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단장의 말에 베넷은 고개를 저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자가 셀틱을 이겨줄 거란 기대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소.”


그리고 거대한 녹색 물결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저 희망만, 한 톨의 희망 정도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군.”


*******


이 시각, 원정팀의 라커룸.


“질문 있나?”


감독이 팔짱을 낀 채 대답을 기다렸고 선수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정말로······셀틱의 2선을 경계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결국 옆에 있던 스튜어트가 보다 못해 나섰다.


감독의 주문은 초반에 라인을 높게 끌어올리고 셀틱의 후방을 강하게 압박하라는 것이었다. 2선을 포함한 공격진은 고작 네 명의 수비들에게 맡기고.


자신보다 몇 수 위의 전력을 보유한 상대를 만났을 경우 보통은 라인을 가라앉히고 역습을 노리는 게 기본이다. 기량이 출중한 셀틱의 공격진을 우리 팀의 수비수들만 가지고 막으라는 건 너무 무모한 생각 아닌가?


“중앙 2선에 선발로 나온 보르헤스는 이번에 셀틱이 영입한 선수다.”


감독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기보다 주변 팀원들과 연계를 통해 공격을 풀어나가는 걸 선호하지. 이런 타입은 상위 클래스가 아닌 이상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초반에 활약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적응기가 필요할 거야.”


그러면서 전술 보드에 붙여진 셀틱 진영 측의 자석 하나를 가리켰다.


“마찬가지로 최전방에 포진한 스톡스란 선수 역시 내려가서 볼을 받아주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지. 물론 본인의 발이 빠르지 못한 탓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엔 감독의 손가락이 셀틱의 양 측면 날개를 번갈아 가며 움직였다.


“그럼 셀틱이 추구하는 루트는 뭘까? 바로 여기 사마라스와 커먼스, 양쪽 측면의 두 선수가 침투하는 게 주요 패턴이 될 거다. 중앙에서 수적 우위로 볼을 돌리다가 방심한 틈에 파고 들어오는 거지. 이 두 명이 실질적인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게 될 거라는 얘기야.”


감독이 선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답은 나왔어. 상대의 중앙 2선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전방 공격수 또한 발이 느리다. 그렇다면 가장 위협적인 저 둘을 막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볼이 안 가게 만들면 돼. 그리고 측면으로 패스를 가장 주기 쉬운 포지션이 바로 후방 미드필더들이지.”


“저······이해는 했습니다만···라인을 올려서 압박하다가 틀어지면 단번에 위험한 상황을 내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손을 들며 의견을 낸 건 케틀웰이었다. 감독은 이에 혀를 세게 차며 대답했다.


“쯧! 여태까지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서 연습한 게 수비 조직력과 압박 전술이었어. 벌써부터 약한 소리를 하면 쓰나. 뚫리는 걸 겁먹고 웅크리는 게 바로 저들이 원하는 거야. 박스 안에 몰려서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고 싶다면 라인을 쭉 내려 봐.”


케틀웰은 손을 내리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날 연습 시합 때 후보 녀석들을 모아 놓고 이런 얘기를 했었지. 상대의 위상에 억눌려서 스스로 억제당하지 말라고. 이번에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군. 셀틱의 3선은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아. 특히 오늘 저쪽이 내세우신 라인업을 보면 더더욱 그렇지.”


선수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스튜어트 역시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이론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정말로 저게 실전에서 착착 들어맞을까?


셀틱의 선수들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대응책을 내놓은 것에 대한 놀라움보다 정말 맞는 말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더 앞서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필드 위로 나가서 뛰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부분이야.”


오직 이탈리안 감독만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사실대로 말하면 셀틱은 좀 더 나중에 만나는 게 좋았을 거란 생각도 했는데.”


그가 계속 말했다.


“참 최악의 타이밍이야. 첫 개막전이 그 대단한 클럽이라는 셀틱, 장소도 상대의 안방. 팀의 든든한 주장은 징계 때문에 결장하게 되었고, 우리는 프리시즌 때부터 어긋나면서 아직 어수선함조차 정리하지 못한 상태고.”


“······.”


“근데 한편으로는 정말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이런 악조건 속에서 자네들이 어떤 모습을 나에게 보여줄지 무척 궁금하거든.”


감독이 웃으며 선수들을 훑어보았다.


“과연 용맹한 전사들이 될지···겁쟁이들이 될지······정말 궁금해. 어디 한번 보자고.”


*******


< Scottish Premiership 1 Round >

셀틱 : 로스 카운티

2013년 8월 3일 (토) 15:00

셀틱 파크 (관중 수 : 42,868명)



Here we go again -

We're on the road again -

We're on the road again -

We're on our way to Paradise -


터널에서 선수들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의 응원가인 셀틱 심포니가 더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열기로 객석을 꽉 메운 녹색 군단과 달리 원정팀의 객석은 군데군데 휑하니 비어있었다.


딩월의 현명한 주민들은 그들의 지역팀이 처참히 박살나는 걸 관전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베넷은 살짝 고개를 빼 들고 피치 쪽으로 나오는 정장 차림의 이탈리안을 바라보았다.


우월한 전력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군중을 등에 업고 있는 스코티시 최고의 팀.


이미 승리를 확정 지은 듯 들떠있는 이 분위기 속에서 저 신임 감독의 로스 카운티가 제대로 된 플레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까?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삐익 -


경기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


그리고 4만 명가량이 운집해 있는 셀틱 파크가 일시적으로 침묵에 잠겼다.


시작하자마자 로스 카운티 선수들이 경주마처럼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수비진이 허겁지겁 걷어낸 것을 낚아채더니 빠르게 전개하여 중거리 슈팅까지 날렸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뒤로 물러서며 수비 대형부터 갖출 것이라 생각하던 로스 카운티 팬들도 당황하며 아무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군데에서 작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개막전, 셀틱을 상대로 로스 카운티가 첫 슈팅을 가져간 것이다.



전반 10분.


축구를 잘 모르는 이가 아마 이 경기를 보았다면 검푸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당연 이름만 들어보았던 그 셀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녹색 줄무늬가 그려진 팀 일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틱 -


데 루어가 올린 크로스를 이마에 맞춘 아르킨의 헤딩슛이 상단 크로스바를 살짝 스치며 뒤로 넘어갔다. 셀틱으로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로스 카운티가 몰아붙이고 있다니.


양 팀 서포터 모두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게 십분 내내 지속되고 있다. 셀틱은 슈팅 하나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로스 카운티의 매서운 공세를 견뎌내고 있었다.


‘이거 줄 데가 없잖아.’


셀틱의 골키퍼 프레이저 포스터(Fraser Forster)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골킥을 차 냈다.


하늘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솟아오른 볼을 향해 시선을 따라가며 로스 카운티의 객석이 잔뜩 신이 난 듯 들썩거렸다. 완벽하게 그들의 분위기였다.


그 기세를 이어나가려는 듯 힘차게 뛰어오른 수비가 먼저 머리를 맞췄고, 중앙으로 떨어진 볼은 셀틱의 미드필더 쪽으로 굴러갔다.


그 순간,


와아아 -


다시 한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뒤에서 한 명이 거칠게 달라붙더니 볼을 빼앗아내며 곧장 로스 카운티의 역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쪽으로!”


볼을 빼앗은 뒤 앞으로 내달리던 공격수가 손을 크게 흔들며 외쳤고, 후방에서 볼을 건네받은 데 루어는 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패스를 찔러주었다.


“에이든!”


“안 돼, 막아!”


포스터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셀틱의 수비들이 달려들어 그에게 태클을 시도했다.


에이든 딩월 역시 미끄러지듯 누워서 힘껏 다리를 뻗었다. 볼은 간발의 차로 그의 발에 먼저 닿으며 수비들 틈새로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빠져나간 볼은 수비수가 몰린 탓에 비어 있는 공간으로 굴러갔고, 그곳에 제일 먼저 아르킨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런, 젠······.”


포스터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신의 팔 밑으로 스쳐 지나가는 슈팅이 그대로 골대에 빨려 들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전반 35분.


셀틱의 미드필더로 출전한 스테판 요한센(Stefan Johansen)은 미칠 지경이었다.


볼이 자신에게 올 때마다 눈앞에서 달려드는 선수들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딩월인지 뭔지 하는 놈이 뒤에서 언제라도 살쾡이처럼 덤벼들 태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실점을 내준 것도 그가 볼을 빼앗긴 데에서 비롯되었다.


‘로스 카운티 감독 녀석, 완전 새내기던데? 우리가 혹독한 신고식 좀 치르게 해주자고.’


셀틱 선수들은 경기 전 농담조로 그렇게 떠들어댔으나 정작 그 신고식을 자신이 받고 있는 셈이다. 그 역시 이번에 새로 입단한 선수였다. 아직 필드에 적응도 못 하고 있건만 상대는 전혀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감독은 분명 로스 카운티를 가볍게 몸 푸는 정도의 상대로 여기라고 했었는데.


“스테판!”


팀원의 외침, 또 뒤에서 누군가 붙고 있다는 소리다.


요한센은 급하게 볼을 옆쪽으로 돌렸다. 아직 전반도 안 끝났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는 당장에라도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보다 좋은데요?”


스튜어트가 흥분하여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제골 이후 셀틱이 조금씩 주도권을 되찾고는 있지만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내주지 않고 있고 오늘 우리 선수들 집중력이 무척 좋은 것 같습니다.”


“아직 방심은 이르네, 닐.”


상대 팀이 얻어낸 코너킥 상황을 지켜보며 델 레오네가 말했다.


“셀틱은 많은 변수를 발휘할 수 있는 팀이야. 이 정도로 안심하면 안 되지. 이렇게 흐름이 좋을 때 한방 얻어맞기라도 한다면 단번에 무너져버릴 위험도 있어.”


스튜어트는 ‘하지만’이라는 말로 받아칠 생각에 입을 벙끗했다. 말 그대로 벙끗했을 뿐이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현장을 바라보자 볼이 골대 그물 속에서 구르고 있었다.


코너킥에서 셀틱이 동점을 만든 것이다. 골을 넣은 요르기오스 사마라스(Georgios Samaras)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그래.”


델 레오네는 스튜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상황 말이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32. 사람의 욕심이란 +25 18.01.16 9,309 285 13쪽
31 31. 로스 카운티의 문제점 +23 18.01.15 9,369 265 13쪽
30 30. 이상 기류 (5) +24 18.01.12 9,385 293 13쪽
29 29. 이상 기류 (4) +16 18.01.11 9,371 260 13쪽
28 28. 이상 기류 (3) +16 18.01.10 9,595 262 12쪽
27 27. 이상 기류 (2) +26 18.01.09 9,609 293 12쪽
26 26. 이상 기류 +25 18.01.08 9,742 306 12쪽
25 25. 뜻밖의 선언 +28 18.01.05 10,106 295 13쪽
24 24. 신뢰하다 (2) +14 18.01.04 9,867 263 13쪽
23 23. 신뢰하다 +16 18.01.03 9,891 277 13쪽
22 22. 발화점 (2) +20 18.01.02 9,985 270 15쪽
21 21. 발화점 +6 18.01.01 10,263 264 14쪽
20 20. 징조 +6 17.12.29 10,357 300 16쪽
19 19. 의지를 시험하다 (2) +4 17.12.28 10,429 277 14쪽
18 18. 의지를 시험하다 +9 17.12.27 10,422 300 16쪽
17 17. 그의 움직임을 봤지? +8 17.12.26 10,845 310 13쪽
16 16. 알렉산더 캐리 +9 17.12.25 11,151 305 16쪽
15 15.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5) +4 17.12.22 11,113 279 13쪽
14 14.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4) +10 17.12.21 11,768 305 14쪽
13 13.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3) +4 17.12.20 11,590 300 13쪽
12 12.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2) +5 17.12.19 11,791 330 13쪽
11 11.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8 17.12.18 11,799 339 12쪽
» 10. 개막전 +10 17.12.15 11,900 315 12쪽
9 9. 아서라는 이름의 청년 +9 17.12.14 11,848 319 14쪽
8 8. 프리시즌 (3) +10 17.12.13 11,929 289 13쪽
7 7. 프리시즌 (2) +14 17.12.12 11,844 302 11쪽
6 6. 프리시즌 +10 17.12.11 12,884 275 15쪽
5 5. 첫 기자회견 +6 17.12.08 13,172 312 12쪽
4 4. 연습 시합 (2) +8 17.12.07 13,736 315 16쪽
3 3. 연습 시합 +19 17.12.06 16,307 308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