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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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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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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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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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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첫 기자회견

DUMMY

다음 날.


안토니오 델 레오네의 공식 취임 기자회견장에는 적지 않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팀이든 간에 통솔자가 교체되면 기자들의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로스 카운티의 신임 감독은 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영연방 사람들만 득실거리던 스코티시 무대에 외국인, 그것도 수많은 명장을 배출해냈던 이탈리아 국적의 감독이 부임했다는 건 그들에게 참을 수 없는 흥밋거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승권과는 한참 거리가 먼 로스 카운티에 부임했다는 것. 감독 본인 역시 많은 게 밝혀지지 않은 무명 출신이라는 것. 궁금한 부분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혹시나 하는 얘기지만 자극적인 발언은 절대 안 됩니다.”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단장 대런 코너는 델 레오네를 붙잡아두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남자의 속은 도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회견장을 꽉 메우고 있는 인파가 적응되지 않는 코너였다. 평소의 로스 카운티는 기자들에게 선호되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클럽이었다. 유일하게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건 데렉 아담스가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을 때뿐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 사람들이 노리는 게 뭔지 모를 만큼 제가 멍청하진 않으니까요.”


처음 면접을 봤을 때처럼 검은 정장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탈리안은 넥타이를 고쳐 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며칠간 저 남자에게서 받은 느낌은 코너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정식으로 팀을 지휘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니던가? 그 말은 곧 기자회견 같은 공식 석상에 서는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 미숙한 인터뷰 스킬로 기자들에게 가여운 먹잇감이 되는 초짜 감독들을 숱하게 보아왔었다.


과연 이 남자가 영국의 교활한 집단들에게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른 대륙을 건너가 본 적은 없으나 영국 기자들만큼 얌체 같은 무리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건수를 잡는 즉시 하이에나처럼 사정없이 물어뜯고도 남을 족속들이니.


그렇다고 첫 기자회견, 그것도 감독의 취임식을 취소시킬 수는 없다. 아마 그렇게 하는 즉시 그들은 할 수 있는 상상력을 총동원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서 퍼뜨려 버릴 테니 말이다.


‘진퇴양난이로군.’


부디 함정에 휘말리지 않고 잘 넘어가길 바라는 코너였다.


*******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니 서로 맞추기라도 했는지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코너는 식은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내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질문을 받는 건 감독의 몫임에도 자신의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제발, 온전히 넘어갈 수 있길!’


감독이 자리에 앉고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맨 먼저 구석 자리에 있던 기자가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더 스코츠맨(The Scotsman)의 제이슨 맥렐렌드(Jason McLelland)라고 합니다. 우선 로스 카운티에 취임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단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맥렐렌드는 그의 푸짐한 덩치만큼이나 온화한 성격으로 유명한 기자였다. 전임자와도 항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으로 첫 질문이 그로부터 시작되는 건 정말이지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좋습니다. 로스 카운티는 멋진 클럽입니다. 이곳에 취임하게 된 것이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로스 카운티는 감독님의 공식적인 첫 커리어라고 알고 있는데요. 살짝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무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감독님이 어떻게 스코티시 상위 리그에 소속된 로스 카운티에 부임할 수 있었던 건가요?”


“제가 무명인 건 사실이죠. 실례되는 질문으로 생각되지는 않네요. 글쎄요, 비록 미천한 커리어를 지녔지만 제가 이 구단에 지니고 있던 열정과 의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했고 그게 구단주인 로이 베넷 씨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네요.”


“오, 어필을 어떻게 하셨기에 구단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건지 무척 궁금한데요. 혹시 그것도 알려줄 수 있나요?”


“그건 일급기밀이라 말씀드릴 수가 없겠네요. 미안합니다.”


“하하,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아무튼 다시 한번 진심으로 로스 카운티에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첫 장은 무난하게 넘겨냈다. 이런 페이스로만 간다면 큰 문제 없이 마칠 수 있을 텐데.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마이클 길버트(Michael Gilbert)입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맥렐렌드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난 사내는 길게 기른 콧수염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코너는 이제야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전임 감독인 데렉 아담스는 로스 카운티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뛰어난 공적을 세운 인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지역, 딩월의 서포터들 대부분은 이렇다 할 성적이 없는 당신의 부임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더군요.”


시작부터 상당히 무례한 발언.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저 남자는 분명 여론을 철저히 조사하고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는 거겠지.


길버트는 매서운 눈빛으로 계속 감독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를 살짝 도발해보려는 의도 또한 갖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첫 커리어를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입장인 것 같은데요. 전임자의 그 짙은 그림자를 벗어나서 당신이 그의 업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코너는 조심스럽게 델 레오네의 얼굴을 살폈다. 꽤 자극적인 질문이었으나 다행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탈리안 감독은 아무렇지 않은 마냥 느긋한 표정이었다.


다만 눈빛은 길버트를 꿰뚫어 볼 듯이 주시하고 있었다.


“데렉 아담스는 훌륭한 인물입니다. 로스 카운티에게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며 모두 그가 쌓은 업적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델 레오네는 길버트와 눈싸움을 하듯 여전히 응시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제 그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어받았죠. 그의 그림자를 벗어나느냐 못하느냐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저 자신과 팀을 믿고 꿋꿋하게 나아갈 생각입니다. 그러면 훗날 세월이 평가해주겠죠.”


그러고 나서 짧게 웃어 보였다.


데렉은 로스 카운티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고 있으며 그의 지지층은 무척 단단하다. 그런 그를 치켜세워주고 나서 소신 있는 발언으로 마무리. 소심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코너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내기치고는 첫 공격을 괜찮게 방어해 낸 셈이다.


“상당히 자신 넘쳐 보이는군요?”


길버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응수했다.


“전임 감독은 팀을 승격시킨 이후 세밀한 운영을 통해 5위로 리그를 마감한 위업까지 달성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 전력의 이탈과 그 영웅마저 떠난 상황에서 로스 카운티의 전망은 강등권 탈출 정도로 평가되고 있죠. 델 레오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전망대로 팀을 생존시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입니까? 아니면 혹시 좀 더 계획 중인 목표가 있는지요?”


“글쎄요. 당장은 대답하지 못하겠네요. 아직 팀을 알아가는 단계가 우선이니까요.”


“팀을 파악한 뒤에는?”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아직 시즌은 개막도 하지 않았습니다.”


길버트는 짧게 신음을 뱉으며 그대로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가 원하는 답변을 유도해낼 심산이었으나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좋아, 이런 식으로 하면 돼.’


코너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자들의 유도 질문과 도발에 휘말려서 말실수라도 할까 조마조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침착하고 평범한 멘트로 잘 받아쳐 내고 있었다.


‘로스 카운티를 셀틱에 대적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길 원합니다.’


면접 때 했던 발언을 여기서라도 했다간 해외 토픽감으로 전 세계에 퍼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코너는 위험한 발언을 삼가달라고 미리 당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왜 이탈리아에서 스코틀랜드로 왔는가? 어떤 포지션을 중점으로 보강할 계획인가? 리차드 브리튼을 이적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등등 여러 질문이 날아왔지만 델 레오네는 모두 무난한 답변으로 넘겨내었다.


“안녕하세요. 포포투(FourFourTwo)의 존 프리먼(John Freeman)이라고 합니다.”


순서가 한 차례 지나간 뒤 마지막으로 한 기자가 안경을 쓰면서 일어났다.


“저는 좀 이제껏 질문과 다른 부분을 짚어보고 싶은데요. 어제 로스 카운티는 평소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로 구성된 팀과 후보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의 정식 시합을 열었습니다.”


프리먼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2 대 4, 주전팀의 패배였죠. 그리고 후보팀에는 감독님이 관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회견장이 일부분 술렁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기자들도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신임 감독의 허점을 파고들 생각뿐이었지 로스 카운티 따위의 팀을 진심으로 관찰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당연했다.


프리먼은 그런 무리들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였는데요. 그냥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낀 감상은 그런 단순한 연습 경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가 오른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개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


그 질문에 델 레오네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왼손으로 턱을 받친 채 오른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여러 번 두드리며 프리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떼며 대답했다.


“우리는 프리시즌 매치조차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며 모두에게 충분한 기회를 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의 답은 할 수가 없겠군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리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으나 감독의 답변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던 그 침묵 속에 무언가가 분명 숨겨져 있을 것이다.


*******


“제기랄, 완전 공쳤어. 특종거리가 나올 거라 생각해서 온 건데 아무것도 얻은 게 없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셀틱이나 하츠 쪽을 취재하는 게 나았지. 내일 출근하면 온종일 동기 놈들의 놀림감이 되겠어.”


“가서 편집장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좀 더 직설적인 질문을 준비할 걸 그랬나?”


회견이 끝나고 주변에서 들리는 기자들의 푸념에 프리먼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기자이자 칼럼니스트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는 자극적인 특종에만 목을 매는 어중이떠중이들을 질색했다. 그런 것들이 기자란 직책을 욕 먹이는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얻어낸 게 없다고? 그냥 눈이 멀어서 못 보는 거겠지.’


자신이 기막힌 힌트를 던져줬음에도 보지 못하는 멍청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즉석에서 떠오른 첫 문구를 잊어버릴세라 노트북에 적어내었다.


[ 로스 카운티에는 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


사실 그 역시 처음엔 편집장의 강제적인 지시로 마지못해 취재하는 입장이었지만 한 번 맡은 일은 책임을 완수하려는 성격 탓에 철저한 조사를 하러 빅토리아 파크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어제 그곳에서 두 눈으로 지켜봤던 연습 경기 이후 진심으로 흥미가 생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시합의 결과는 더더욱 재미있는 소재거리였다.


그리고 오늘 기자회견에서 노련하게 질문들을 받아쳐 낸 신임 감독.


‘이 팀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프리먼은 한 줄의 문구를 더 적어내었다.


[ 그 여파가 역풍이 될지 스코티시 전역을 휩쓸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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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이상 기류 (4) +16 18.01.11 9,371 260 13쪽
28 28. 이상 기류 (3) +16 18.01.10 9,595 262 12쪽
27 27. 이상 기류 (2) +26 18.01.09 9,609 293 12쪽
26 26. 이상 기류 +25 18.01.08 9,742 306 12쪽
25 25. 뜻밖의 선언 +28 18.01.05 10,106 295 13쪽
24 24. 신뢰하다 (2) +14 18.01.04 9,867 263 13쪽
23 23. 신뢰하다 +16 18.01.03 9,891 277 13쪽
22 22. 발화점 (2) +20 18.01.02 9,985 270 15쪽
21 21. 발화점 +6 18.01.01 10,263 264 14쪽
20 20. 징조 +6 17.12.29 10,357 300 16쪽
19 19. 의지를 시험하다 (2) +4 17.12.28 10,429 277 14쪽
18 18. 의지를 시험하다 +9 17.12.27 10,422 300 16쪽
17 17. 그의 움직임을 봤지? +8 17.12.26 10,845 310 13쪽
16 16. 알렉산더 캐리 +9 17.12.25 11,151 305 16쪽
15 15.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5) +4 17.12.22 11,113 279 13쪽
14 14.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4) +10 17.12.21 11,768 305 14쪽
13 13.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3) +4 17.12.20 11,590 300 13쪽
12 12.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2) +5 17.12.19 11,791 330 13쪽
11 11.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8 17.12.18 11,799 339 12쪽
10 10. 개막전 +10 17.12.15 11,899 315 12쪽
9 9. 아서라는 이름의 청년 +9 17.12.14 11,848 319 14쪽
8 8. 프리시즌 (3) +10 17.12.13 11,929 289 13쪽
7 7. 프리시즌 (2) +14 17.12.12 11,844 302 11쪽
6 6. 프리시즌 +10 17.12.11 12,884 275 15쪽
» 5. 첫 기자회견 +6 17.12.08 13,172 312 12쪽
4 4. 연습 시합 (2) +8 17.12.07 13,736 315 16쪽
3 3. 연습 시합 +19 17.12.06 16,307 30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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