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을 넘어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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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영역을 넘어서다 (2)
㈜다공화학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서 드디어 준공무원을 공략할 때가 왔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 17%를 매입하고, 국민연금공단만 내편으로 끌어들이면··· 승산이 있겠어···’
박예찬은 장준호 삼진그룹 비서실장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YC 바이오’ 주식 1%와 산업은행 이 보유한 주식 17%를 맞딜하는데 성공했다.
‘㈜YC 바이오’는 앞으로도 크게 성장하는 회사였기에 주식가치가 높았고, 미국 나스닥에 상장을 앞두고 있었기에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었다. 그에 반해 ㈜다공화학의 주식은 자칫하면 휴지조각이 될 처지였다.
물론 ㈜다공화학이 가지고 있는 미사일 배터리라든가 특허가 있어 그대로 망하지는 않겠지만 이 상태라면 다른 회사에 헐값에 넘어가는 것은 명약관화하다는 것이 산업은행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산업은행에서는 이러한 맞딜에 앓던 이를 뺀 것과 같은 기분이었고, 더불어 잔칫집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산업은행 간부는 자신에게 뇌물을 주면 좀 더 싸게 넘기겠다고 제안한 것을 장준호 상무가 막았다. 좀 더 비싸게 치르더라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더욱이 방산기업은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었다.
물론 방산기업이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잘못하다가는 정치권에 의해서 한방에 훅 갈수 있었기에 장준호 상무는 철저하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차단했다. 하지만 산업은행 블록 딜을 한 후에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다공화학의 주가가 점차 오르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국민연금을 공략할 차례였다.
국민연금의 판단은 단순했다. ‘정권에 문제가 없는가?’ 아니면 ‘자기들이 투자한 원금에 7%의 이익을 붙일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공무원이었기에 투자원금에 7%의 수익율이 있어야 담당자와 그 윗선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주식은 현금화해야 결과가 드러나는 법이다. 팔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올라도 그것은 일단 숫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결과가 아니라 투자한 주식의 현재가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국민연금이 ㈜다공화학의 주식을 매입한 것은 말그대로 꼭지에서 들어갔다. 거기에서 7% 수익을 붙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국민연금 측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국민연금 담당자는 ‘㈜YC 바이오’가 산업은행 주식을 받았다는 것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이야기는 망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은 다르다고 했던가··· 국민연금은 배짱을 튕기고 있었다.
국민의 돈으로 투자를 하니 손해를 보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고, 국민연금이라는 거대한 투자자가 꼭지에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정치권 영향이라는 지독한 구린내가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그들은 ㈜다공화학이 똥값이 되든 말든 자기 임기만 넘어가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평가는 다소 나쁘게 나오더라도 임기만 넘기면 그 문제는 후임의 문제가 되었다. 소위 말하는 폭탄 돌리기였고 공무원식 폭탄 돌리기였다.
그러한 고자세의 고위 공무원은 삼진전자 장준호 비서실장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삼진전자에서 나서서 대주주들로부터 블록 딜을 한 끝에 드디어 경영권을 확보할 만큼의 주식을 모았다.
그렇게 작업을 한 끝에 ㈜다공화학의 주주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박예찬 개인 15%, ㈜YC바이오 17%, 장준호 개인 4%, 삼진전자 10%, 국민연금 우호지분 5% 이 모두를 합하면 51%가 넘었다.
㈜다공화학은 꾸준히 공시를 통해서 대주주 주식변동을 알렸고, 주가는 최고가의 절반정도로 복구되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계속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국민연금도 좋아했고 소신을 가지고 버틴 개미들도 좋아했지만 손 털고 나간 개미들은 땅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박예찬은 일단 현재 경영진들을 유임시키고 자신은 연구개발실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장준호 삼진전자 비서실장은 감사로 임명되었다.
㈜다공화학의 주주구성은 대폭 바뀌었지만 회사 경영 방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박예찬은 조용히 연구개발실장에 취임을 했다. 회사에서는 경영권이 바뀐다는 소문이 무성해서 조직원들이 불안에 휩싸였지만 이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연구개발실장에 취임한 그는 조용히 그간 연구 결과물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실패한 연구들도 모두 가져오세요.”
“그건 이미 연구소 판정위원회에서 실패로 결정지은 것들입니다.”
“그 판단 기준은 뭐죠?”
“그건 내부 판정과 방위사업청에서 결론 내린 것들입니다.”
“음··· 뭐든 좋으니 일단 가져와보세요.”
박예찬은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연구원들은 그가 최대주주로서 점령군 행세를 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박예찬은 조용히 파악을 하자 내부직원들은 ‘폭풍전야의 고요’라고 생각들 하고 있었다.
박예찬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일주일째 두문불출하고 있었고, 이따금씩 연구 실무자를 불러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간의 연구결과들이 박예찬 머리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것이 성공한 연구이든, 실패한 연구이든···
“어? 이거 괜찮은데···”
많은 실패한 연구 중에서 유독 박예찬의 눈에 띄는 연구가 있었다.
미사일 전지를 개선하는 연구였는데, 기존 미사일 전지의 동일한 사이즈에 총용량은 10배인 전지가 개발되었다. 하지만 출력이 불균일해서 실패작으로 판명된 전지였다.
스위치를 켜면 초기 30초간 충분히 전류가 흘렀지만 그 이후 30초는 출력의 10%로 다운되는 현상이 발생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30초간 일정한 파형을 그리면서 출력이 오르내렸다.
미사일 전지는 일정한 출력이 필수였는데 그러한 일정한 출력을 보장하지 못하니 용량이 커져도 실패판정으로 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동일 사이즈에 용량이 10배로 늘어난 것은 분명히 획기적인 연구결과임은 분명했다.
“하하하! 이거다!”
박예찬의 머리에서 뭔가 확 떠올랐다.
“Post-it 효과!”
3M이라는 회사는 다국적 제조기업으로 스카치테이프부터 수세미, 장갑 등 55,000개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그 중에 Post-it과 스카치 테이프로 가장 많이 알려진 회사였다.
원래 Post-it은 실패한 제품으로 판정되었으나 사용처를 달리함으로써 빅히트친 사례로 유명했다. 즉, 단단히 붙이는 것이 아니라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할 수 있는 기능 재정의로 실패작에서 성공작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제품이었다.
유연한 사고로 보는 관점을 달리 함으로써 혁신제품을 만든 것이었다.
박예찬이 연구결과들을 검토한 결과 ㈜다공화학 연구진들은 두 가지 함정에 빠져 있었다. 최첨단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사고를 가졌고 집중과 선택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연구진들은 미국 군사무기의 최첨단을 쫓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있었고 이는 제한된 연구개발비로 분산 투자를 하고 있었다. 또한 미사일 배터리 개발 성공으로 과도한 자신감을 가진 경영진들은 이것저것 많은 연구를 벌였다.
박예찬은 경영진과 연구진들에게 유연한 사고와 집중과 선택이라는 구호를 내걸어봐야 그들의 사고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시적인 뭔가를 내놔야 그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가능했다.
박예찬은 미사일 배터리를 개발한 연구진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회의실로 들어선 연구진들은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맥이 없었고 눈빛마저 흐렸다. 그들의 뇌파에서는 자포자기, 패배의식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런 느낌을 읽은 박예찬은 그들이 잠시 진정할 때까지 시간을 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연구원들은 이내 정좌를 하고 연구개발실장을 쳐다보았다.
“아니! 획기적인 배터리를 개발하고도 왜 그리 힘이 빠져 있나요?”
박예찬의 일성에 다들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 배터리는 이미 실패로 판정되었는데요?”
책임 연구원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하하하, 그건 미사일용 배터리에서 그렇지요···”
박예찬은 미리 준비한 Post-it을 연구원들 앞에 내 밀었다. 연구원들은 Post-it에 뭔가를 쓰라고 지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Post-it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
연구원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또 다시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하!”
연구원들 중 누군가 감탄사를 내 놓았다.
“Post-it은 처음 개발당시에 실패한 제품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사고의 전환으로 세계적으로 빅히트 친 제품입니다.”
“빙고!”
박예찬은 정답을 맞힌 연구원을 향해서 엄지척을 했고 이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아직도 연구원들의 표정은 냉랭했다.
박예찬은 드론 하나를 꺼내 테이블위에 올렸다.
“이건 시중에서 130만원짜리 흔한 드론입니다. 이 드론에 X-230 미사일 배터리를 탑재할 경우, 예상비행시간과 항속거리, 이륙중량을 대해 조사해서 보고해 주세요.”
연구진들은 실패한 미사일 배터리를 X-230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연구개발실장님! 우리 배터리는 일회용입니다. 드론용 배터리는 충전방식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이틀 후 이 시간에 결과를 가지고 다시 회의를 합시다.”
연구원들은 이제 놀라다 못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속 회의실에 계실 겁니까? 그럼 제가 나가지요. 부탁합니다.”
“아··· 과제가 뭐 그리 힘들지 않으니까. 이걸로 오늘 저녁 회식이나 좀 하십시오···”
박예찬은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책임연구원에게 내밀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아··· 잊은 것이 있습니다. ‘㈜ YC 바이오’에서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연구원들에게 어떤 인센티브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세요. 우리 회사도 똑 같이 적용할 예정입니다.”
회의실을 나간 그는 다시 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 채 말을 했다.
회의에 참석한 연구원들은 무슨 선문답 같은 박예찬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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