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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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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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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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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미래 발굴 (2)

DUMMY

회장의 회원증에 능력을 사용하기 전.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측정실에 들러 회원증을 갱신했다.


능력의 완성도가 오른 건 사실이지만, 이를 인공지능 쪽에서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뇌파 측정을 거쳐서 갱신된 회원증을 받았을 때, 나는 별의 색깔 이외에도 달라진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잠재능력 부분이 갱신되었다는 점이었다.


[#8 남하진]

[코드명: Reminiscence]

[회원 등급: 퍼플(★★☆☆)]

[각성 능력: 기억 회상 및 전이]

[권장 포지션: 서포터]


[기술 일람]


[#3. 무아몽중]

[-기억을 회상해 몰입합니다.]

[-몰입한 대상의 능력을 모방합니다.]

[-이해도가 높을수록 효율이 상승합니다.]


무아몽중.


비어있어야 할 잠재능력 부분을 꼼꼼히 살펴본 끝에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기록하는 것에 보수적이다.


녀석의 분석능력이라면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능력의 활용법에 대한 힌트를 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는 대신 내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만을 기록했고,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여 능력의 분석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맡겼다.


놈은 기계로서 인간을 억압하는 것을 병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


별의 색깔 변화. 이른바 승급은 개인의 정신적인 각성에 영향을 받는다.


회원들이 처음 능력을 얻을 때 초현실적인 무언가에 눈을 뜬 것처럼, 능력의 성장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노력도, 기술도, 연구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경지를 찾아내서 이에 눈을 뜨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엔 결정적인 승급 방법이었다.


세 번째.


잠재능력을 얻는 시점은 회원마다 다르다.


이는 다른 회원들이 아직 잠재능력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갱신을 해봤다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새로운 능력에 눈을 뜬 시점에서 이를 모를 수가 없으니, 일부러 능력을 숨긴 게 아닌 이상 잠재능력을 개발한 건 내가 최초일 것이다.


물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가 받은 건 능력 개척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여자를 울려가면서 능력 개발을 한 쓰레기라는 경멸 어린 시선이었지만 이는 일단 묻어 두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네 번째.


내 능력을 쓰는 대상에 대한 정의가 없다는 점이 그나마 성장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나는 사람도 사물도 아닌 것에도 능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상체.


혹은 이상체가 만들어낸 부산물들.


물론 이는 사람이 아닌 것의 기억을 탐하는 일인 만큼 함부로 시도했다간 동료들이 죽이려 들 것이니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어야 했다.


최악의 경우엔 내 정신이 이상체의 것으로 변질되어 동료를 해칠 수도 있으니 나 역시 지금 당장 이를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이 필요한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에게 능력을 쓰지 않는 선택지가 하나 생긴 것은 반길만한 일이었다.


적어도 이상체에게 능력을 쓰는 경우는 동반자살이 아니었으니까.


세츠나 역시 3일간 혼수상태였다는 것을 안 이상 앞으로도 사람에게는 능력을 쓰고 싶지 않았다.


“준비되셨어요?”


노크 소리와 함께 체리가 들어왔다.


그녀를 부른 이유는 회장의 회원증에 능력을 쓰기 위해서였다.


아티펙트에 능력을 쓰는 건 아니니 큰 문제야 없겠지만, 회귀자의 기억을 뒤지는 일인 만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쁠 건 없었다.


“준비는 진작에 끝났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티펙트를 꺼냈다.


과도 크기 정도의 단검이 내 손에 쥐어졌고, 나는 칼을 칼집에서 뽑으며 말을 이었다.


“뒷일은 부탁할게요.”


“잘 해봐요. 머리 다쳐서 오지 말고.”


나는 격려 아닌 격려를 받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정신을 집중해 회장의 회원증을 향해 아티펙트를 찔러넣었다.


지금까진 볼 수 없었던 기억을 보기 위해.


이번 생의 단편적인 기억이 아닌, 더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기억을 발굴하기 위해.


나비의 환영과 함께 칼날이 먹빛으로 흩어졌다.


머릿속에서 기억이 한 획씩 그어졌고, 나는 곧이어 나를 버린 채 기억의 밑바닥을 향해 의식을 집중했다.


파고든다.


물건의 주인이 지닌 강렬한 소망을 찾아 심연을 향해 가라앉는다.


지하로 향하는 몸짓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곧이어 전 회장이 머리에 총을 쏘기 직전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기억에 집중해 나를 지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에리두의 첫 번째 각성자.


아르고 클럽의 회장.


내가 자살하려는 이유를 떠올린다.


나는 무엇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가.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멈춘 기억 속에서 나는 이유를 찾는다.


완벽하게.


완벽한 시작과 끝을 갈망했기에 나는 뱀주인자리를 얻었다.


뱀주인자리.


그래, 뱀주인자리. 그런 이름이었다.


이곳이 아르고호라면, 나는 뱀주인자리의 주인인 아스클레피오스가 되고 싶었다.


그의 운명이 아닌 그의 능력을 갈망했다.


체리. 보리스. 엘리자베스. 캐시.


‘노아’로 무리하게 달려온 끝에 잃어버린 동료들을 떠올린다.


앞장서서 길을 뚫다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보리스를 떠올린다.


여섯 탄환을 모두 발사한 끝에 대가를 치른 엘리자베스를 떠올린다.


노아의 문을 열고 돌아오지 못한 캐시의 마지막 무전이 떠오른다.


능력을 모두 끌어쓴 끝에 낙원이 되어버린 체리의 말로가 떠올랐다.


물론 이 여정으로 오는 길이 희생만 있던 것은 아니다.


한 명이 죽으면 아홉 명이 나아가는 여정이었고, 끝까지 살아남은 각성자의 숫자가 절대다수였다. 저 넷의 희생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도 오늘날의 번영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아를 되찾아 불을 지핀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구해낸 각성자들이 인류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제물로 바쳐서 얻은 인류의 미래를 보고 있을 때면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게 최선이었나.


나는 무리한 게 아니었나.


그들을 정말 살리면서 오는 방법은 없었나.


지금이라도 그들을 되살릴 방법은 없는가.


나는 끊임없이 능력에 관해 연구하며 고뇌했다.


내 능력의 근원인 별과 성운석을 바라보며 원하고 또 갈망했다.


바라고 또 바라니.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만 같았다.


[당신은 정말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별을 바라던 끝에 나비가 날아와 내게 물었다.


별에서 내려온 푸른 나비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키득였다.


[궁금하네. 당신은 그와 다를지.]


나비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마법을 걸었다.


뱀주인자리.


꿈에 그린 것처럼 이상적인 능력.


이 능력의 진실을 확인한 나는 나비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는 달랐다.


[당신은 그와 다르길 바랄게. 부탁이야.]


나비와 눈을 마주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녀가 말한 ‘당신’과 ‘그’는 누구인가.


아니.


애초에 내 이름은 뭐였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방아쇠가 당겨졌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




“정신이 좀 들어요?”


체리의 말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빌어먹을 능력 같으니.


또 정신력을 모조리 끌어쓴 탓에 탈진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지났어요?”


“10분 정도? 많이 성장하긴 했나 보네요. 회복력이 좋아진 건가?”


나는 의사다운 견해를 늘어놓는 체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당장은 감정을 추스를 필요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리 씨.”


“왜요?”


“우리 그냥 소꿉놀이나 하면서 살까요?”


뜬금없는 말에 체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에요 그거? 프러포즈? 지금 제정신이에요?”


“아빠 역할은 그쪽 줄게요. 전 애기 역할이나 하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응애응애 거리는 시늉을 했다.


체리는 진심으로 흉물스럽다는 듯이 나를 노려봤다.


“이건 좀, 많이 기분 나쁘네요.”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덕분에 지난 생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미소가 흐릿해졌다.


“1회차 때 기억인 거 같아요. 방금 본 거.”


“1회차라면... 중요한 기억이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노아라는 곳으로 갔어요. 무리한 여정 끝에 큰 희생을 치러서, 겨우 노아를 되찾았죠. 그 결과 인류는 다시 번영했고요.”


“노아라...”


체리는 그렇게 말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힘든 여정이었겠네요.”


“노아에 대해 좀 아는 게 있어요?”


“뉴욕에 있는 방주도시에요. 인류 최대 규모의 요새이자 연구시설이었죠.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거기에 진짜 뭔가 있긴 한가 보네요.”


“뉴욕...”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뉴욕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길이 멀쩡하면 자동차로 42시간 정도 걸려요. 길이 멀쩡할 리가 없어서 문제죠. 바다로 가려고 해도 파나마 운하가 망가져 있으니 사실상 불가능하고, 비행기로 가는 건 격추당할 리스크가 너무 커요. 캘리포니아까진 괜찮겠지만, 레이더 기록을 보면 아직도 비행추구형 이상체들이 활보하고 있으니까요.”


“알죠. 가끔 하늘에서 보이니까.”


비행추구형.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곧 이상인 이상체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초롱부름처럼 놈들을 현혹해 싸움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공중전이 불가능한 이상 비행기를 타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제공권이 없는 게 아깝네요.”


“헬기로 짧게 짧게 가는 건 할 수 있어요. 그럴 경우엔 보급이 문제겠지만요. 어느 쪽이든 안전하게 가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체리의 말에 나는 고민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약 3000마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약 4800킬로미터에 해당한다.


북미 대륙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을 횡단하는 일이니, 이 여정이 얼마나 험난할진 회상 능력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억에는 인상적이지 않아 생략되었지만, 체리를 비롯한 네 명 말고도 적지 않은 각성자가 죽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우리 일곱 명끼리 연락이 끊긴 방주도시인 노아를 되찾겠다는 건 솔직히 말하면 자살행위일 것이다.


아니면 전 회장처럼 네 명을 제물로 바치거나.


“아깝네요.”


“뭐가요?”


체리의 의문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른 척할 걸 그랬나 봐요. 그랬으면 다 같이 오순도순 괴물 사냥이나 하면서 지냈을 텐데.”


체리 역시 내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약한 소리 그만 해요.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요? 22세기 의사는 독심술도 배우나 봐요?”


“뻔하잖아요, 흐름이. 그리고 애초에 숨길 거였으면 저보고 일단 나가달라고 했겠죠. 그러고 난 다음에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우릴 구워삶았을 거고요. 내 말 틀려요?”


결국 또 업보구나.


그녀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말들을 살짝 후회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방주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 것 역시 조금만 후회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의 첫날을 거짓말로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솔직하게 살려고 한 것 역시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체리 씨, 부탁이 있어요.”


“말해 봐요.”


무슨 표정으로 말하는 게 좋을지 잘 몰랐기에.


나는 그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일 회의를 할 거예요. 노아로 가는 걸 어떻게 할지에 대한 회의요. 그때 나를 좀 말려줘요.”


웃는 얼굴에는 침을 못 뱉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밉살스럽게 웃었고, 체리는 나를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일부러 질 생각은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그 말에 체리는 키득거렸다.


“여전히 쓰레기 같으시네요.”


“극찬이죠?”


“마음대로 생각해요.”


그녀는 집무실을 떠나며 말을 이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할 거니까, 그쪽도 준비 잘 해놔요. 대충하면 어떻게 될지 알죠?”


“당연하죠.”


순전히 직감일 뿐이지만.


그녀 성격이라면 아마 내 방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을까 싶었다.


착한척하지만 알고 보면 봄이 아니라 불같은 여자니까.


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비서 로봇을 불렀다.


뉴욕까지 가는 사업계획서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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