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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SF

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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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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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4,793

작성
23.07.0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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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초롱부름 (3)

DUMMY

정적과 함께 등불이 흔들린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다.


나는 흔들거리는 초롱불 너머를 응시했다.


저 너머에 있을 도시의 중추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들려오지 않는 대답과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고요 속에서 나는 놈의 망설임을 느꼈다.


잘 풀릴까.


괜한 허세를 부린 건 아닐까.


이상체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괴물.


미식을 위해서라면 세상 만물을 요리하여 맛을 보고, 비명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육신마저 기꺼이 고문의 대상으로 삼으며, 낙원을 위해서라면 세계 각지의 석학을 모아 혀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논쟁을 벌이게 한다.


초롱부름 또한 마찬가지.


이를 위해 놈은 인간을 납치하고, 납치한 인간이 죽지 않도록 먹여 살렸으며, 초롱지기를 부려 더 신선한 꿈을 꾸도록 인간을 사육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의 괴물.


내가 인간이고, 놈이 괴물인 이상, 언제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걸 전부 예측하는 게 가능했다면 인류가 멸망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허락하마.]


주인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가 들고 있던 초롱불의 불빛이 꺼졌다.


초롱부름의 전승대로였다.


단 한 번.


손님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놈은 자신이 선물로 준 초롱불을 거둬간다.


이 알량한 자비 덕에 초롱부름에 불려간 사람 중 운이 좋은 몇몇이 돌아올 수 있었고, 그들이 귀환 후유증으로 미쳐가면서 남긴 기록 덕에 나는 이곳에 올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길을 밝혀주마. 몸 조심히 오렴.]


자애롭기까지 한 음색이었다.


사람의 정신을 빨아먹고 사는 역겨운 괴물 주제에 자상한 척이라니.


나는 비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누르며 초롱지기가 만드는 길을 바라봤다.


놈들은 우릴 손님으로 인정했는지 배 속의 이빨을 거뒀고, 지상에서 행렬을 이뤘을 때처럼 길을 따라 정갈하게 정렬했다.


중추로 이어지는 경로가 가로등 길처럼 환히 밝혀졌다.


저 길의 끝에 있는 마천루.


이 도시의 주인이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란 예감은 이제 확신으로 변했다.


나는 긴장한 메이를 향해 말했다.


“이제 말해도 돼.”


세츠나 역시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메이는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창을 꽉 쥐고 있었다.


창이 부러지거나, 손이 터지거나.


어느 쪽이든 위태로워 보이는 모양새였다.


“정신 차리고 숨부터 쉬어. 지금 당장은 귀빈 대접해주는 것 같으니까. 잠깐 숨 정도는 고르고 가도 돼.”


그 말에 메이는 창대를 땅에 꽂아 몸을 지탱했다. 호흡을 고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부담감이 심했겠지.


하마터면 계획을 망치는 걸 넘어서 전멸할 수도 있었으니까.


“뭐에 놀란 거야?”


화를 내려면 낼 수도 있었다.


책임을 물어서 몰아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메이는 약속을 썩 잘 지켜주고 있었다.


먼저 나서서 이상체를 공격하지도 않았고, 숨소리와 발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내며 움직였다.


그런 그녀가 왜 갑자기 소리를 냈는지.


무엇이 그녀의 침착함을 깨트렸는지는 짚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에 맞는 일이었다.


“아빠.”


호흡이 진정되자 메이는 입을 열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신경질적인 기세였다.


“아빠를 봤어. 옛날에 입었던 옷 그대로. 사진으로 계속 본 차림이라 틀림없을 거야. 비쩍 말랐는데도 어떻게 알아볼 순 있겠더라. 웃긴 일이지...”


그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가족이라.


처음 에리두에서 깨어났을 때가 생각났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인연이 끊긴 시대에 눈을 떴다.


이런 시대에서 만약 가족이나 지인을 만난다면.


심지어 괴물에게 납치당해 사육당하고 있다면.


나는 과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분을 이기지 못해 미쳐 날뛰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정을 알고 나니 조금 전까지 용케 참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메이.”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일단은 일에 집중해. 복수는 언제든 다시 하러 올 수 있으니까.”


그녀는 아직 어리다.


어린 만큼 힘을 기를 시간은 더 많이 주어질 것이고, 먼 훗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다.


목표와 집념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나는 우리 중 가장 필사적으로 단련한 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노력파였다.


“수신호 잘 보고. 지금처럼만 하면 돼. 넌 잘하고 있어.”


잘 하고 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특수부대가 아니고, 제대로 된 훈련 따위는 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인내심을 발휘했다는 건 칭찬할 만한 부분이었다.


만약 긴장 상태를 참지 못하고 초롱지기를 공격했다면 돌이킬 수 없었을 테니까.


저들은 자신을 먼저 공격한 이들을 용서할 정도로 자비롭진 않았다.


“진심이야. 너도, 세츠나 씨도. 둘 다 잘 참고 있어. 이대로만 하면 돼.”


메이는 그 말이 정말인지 알기 위해 세츠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내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제야 메이는 부담감을 좀 덜어낸 모양이었다.


“미안해.”


나는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정산은 나중에. 아직 일 안 끝났어.”


마천루로 향하는 불빛이 일렁거렸다.


길에 늘어선 초롱불이 어서 오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담판을 지으러 가야 하니까. 자잘한 건 끝나고 처리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마천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녀에게 책임을 묻든. 놈들의 예민함을 저주하든. 가족의 복수를 하든. 훗날을 위해 칼을 갈든.


전부 살아남아야 의미 있는 일이다.


이는 여기가 놈의 심장부인 이상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직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가까이. 더 가까이 오렴.]


마천루가 아가리를 벌리며 우리를 기다렸다.


건물의 입구는 터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고 어두컴컴했고, 그 너머에서 들리는 괴물의 목소리는 초롱불로 먹이를 유혹하는 아귀의 것처럼 음산했다.


[얼굴을. 눈빛을 보여다오.]


다정함 너머로 느껴지는 허기에 소름이 돋았다.


[생기 넘치는 색채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침내 마천루의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오자 놈의 형상이 보였다.


내부에는 곳곳에 걸린 등불 아래에서 까마득한 흑연의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거대한 지네.


혹은 뱀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무수한 등불을 온몸에 단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둠과 연기. 초롱부름의 주인.


어림잡아 몸의 길이가 100m는 되어 보이는 저 괴물은, 몸에 달린 수천 개의 등불을 눈알처럼 깜빡거리며 말했다.


[소원을 말해 보렴.]


괴물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등가교환을 청했다.


[너희의 소원을 들어줄 테니, 너희는 내게 꿈을 다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너희에게 한 아름 안겨줄 수 있단다.]


괴물의 몸에 달린 등불들이 빛을 발했다.


등불 하나에 황금의 바다가.


등불 하나에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유혹하는 여인들의 숲.


잃어버린 가족의 추억이.


사탕 내음을 풍기는 초롱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세츠나.”


나는 그녀를 불러서 단말기를 보였다.


그 속에는 지금 청해야 하는 소원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청합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초롱부름의 전승대로.


세츠나가 단말기에 적힌 소원의 내용을 읽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출발점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 저희 셋 모두를 지상으로 보내주시길 청합니다.”


소원은 정확하게.


혹여나 의도가 곡해되지 않도록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예의를 갖춰 청할 것.


초롱부름에서 돌아온 광인들이 그러했듯, 경의와 존중을 담아 소원을 청했다.


[곤란하구나.]


대답이 돌아왔다.


싸늘하게 정적이 일었다.


잠깐 사이에 머리가 핑핑 돌며 계산을 시작했다.


죽여야 하나?


놈의 약점은 어디일까.


약점을 꿰뚫을 화력은 충분한가.


재생하는가. 반격하는가. 자폭하는가.


아니면 환영으로 몸을 숨기고 도망가는가.


초롱부름의 중추에 관한 정보는 애초에 부족했기에 지금부터는 임기응변으로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놈과 나의 시선이 정적 속에서 교차했고, 놈은 곧이어 거절의 이유를 우리게 밝혔다.


[식상한 식사로 너무 오래 버텼어. 너희를 보니 군침이 돌아 참기 힘들구나.]


꿈을 먹고, 꿈을 이루어주는 괴물.


놈이 말한 ‘식상함’이라는 말에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흘릴 뻔했다.


“후회하시지요?”


마침내 고객님의 니즈가 파악됐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말을 이었다.


“조금만 더 아껴먹을 걸 하고. 목장이라도 차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망가진 인간은 돌이킬 수 없죠.”


기록에 따르면 이상체는 대게 서로를 적대했다.


이른바 동족혐오.


혹은 이념전쟁.


마치 사람에게서 비롯된 괴물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괴물을 쫓아내거나 살해했다고 한다.


그러니 도시의 주인은 괴물로서는 분명 일류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정도 세력을 유지할 순 없었을 테니까.


놈은 무려 500년 동안이나 유랑도시를 이끈 괴물 중의 괴물이다.


“이해합니다. 안타까우시겠지요.”


그럼에도 내게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객의 수요만 알고 있다면 남극에서도 냉장고를 팔 수 있는 법이니까.


나는 놈의 갈망을 알고 있고, 무엇을 팔 수 있을지 역시 알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인간이란 인간은 씨가 말랐으니까요. 참담한 일이지요.”


나는 놈의 겹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맹세합니다.”


공손하고, 부드럽게.


“저희를 보내주시면 인간의 무리를 수백 수천으로 늘리겠다고. 당신이 보지 못한 꿈을 빚어 바치겠다고, 제 모든 걸 걸고 맹세하죠.”


나는 인류의 미래를 담보로 걸었다.


인류를 번성시키겠노라고. 그리하여 당신이 수확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놈의 침묵과 함께 정적이 흘렀다.


불빛이 깜빡거리던 것도 멈췄으며, 온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거겠지.


나는 친근한 표정으로 괴물을 바라봤다.


그래, 줄타기해라. 저울질해라.


한껏 고민해라.


어차피 네가 고를 선택지는 결국 하나밖에 없을 테니까.


찰나의 별미와 끝없는 미식의 나날.


놈이 진정한 미식가라면 후자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설령 이것이 상환 기한이 없는 담보일지라도, 비슷비슷한 음식을 수백 년 동안 먹는 것의 괴로움이라면 이미 뼈저리게 알 테니까.


수백 년 동안 생존해온 요물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루어주마.]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세츠나가 들고 있던 초롱불이 꺼지고, 괴물의 머리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눈빛을 보여다오.]


얼핏 보기에도 10m는 넘어 보이는 머리 크기가 위압적이었다.


놈의 머리는 용을 닮았으나 입은 지네의 것처럼 흉측했다.


무엇보다 수십 개의 초롱이 박힌 두 개의 겹눈이 기이한 혐오감을 자아내었다.


괴물이 세츠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쓸쓸하구나. 유원지에 홀로 남은 아이야, 고독을 덜어내려면 여기 남아도 좋단다.]


그 말에 세츠나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나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나는 놈이 유혹해온 사람의 숫자를 몰랐다.


“거절합니다.”


세츠나는 미안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선약이 있어서, 배신은 곤란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녀의 손은 칼집을 쓰다듬고 있었다.


칼집에는 한자로 ‘사생결단’이라 적혀있었다.


무섭다.


[아쉽구나.]


괴물이 말을 하는 것과 함께 세츠나의 몸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네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


괴물은 내게 권유조차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차별이라니, 너무하네.


나의 몸은 곧이어 연기가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자 옆에는 세츠나가 하늘 위의 도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까요?”


“...괜찮아야죠.”


괴물에겐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었다.


유랑도시에서 챙겨온 짐도, 몸의 상태도 모두 무사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녀석이 메이에게 무슨 말을 할지는 나 역시 짐작할 수 없다.


세츠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시에 남으라 유혹할 수도 있고, 가족을 되찾아주겠다고 속삭일 수도 있었다.


마지막 초롱불이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았으니까.


나는 세츠나와 마찬가지로 유랑도시를 바라봤다.


부디 우리 막내가 무사하기를.


텅 빈 등불을 든 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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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미래 발굴 (1) +9 23.07.09 1,146 71 14쪽
20 찰나 (2) +11 23.07.08 1,201 77 14쪽
19 찰나 (1) +4 23.07.08 1,139 63 13쪽
18 도약 (4) +3 23.07.07 1,226 62 13쪽
17 도약 (3) +5 23.07.06 1,226 63 13쪽
16 도약 (2) +6 23.07.06 1,295 66 13쪽
15 도약 (1) +7 23.07.05 1,414 69 14쪽
14 초롱부름 (5) +6 23.07.04 1,462 74 14쪽
13 초롱부름 (4) +6 23.07.03 1,500 67 12쪽
» 초롱부름 (3) +6 23.07.02 1,516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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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튜토리얼? (1) +6 23.06.22 5,811 1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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