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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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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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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793

작성
23.07.0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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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도약 (3)

DUMMY

옛날에 동반자살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다.


생활고를 못 이겨 아이와 함께 자살한 부모.


연이은 슬럼프로 인해 애인과 함께 자살한 예술가.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인터넷으로 사람을 모아 동반자살을 시도한 학생까지.


이해 못 할 사람들이 이해 못 할 방식으로 죽으려는 것을 나는 한심스레 바라봤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다른 사람까지 물귀신처럼 끌고 가려는 거지?


자기가 빚이 많으면 파산신청을 하든 도피를 하든 할 것이지 왜 자기 자식들을 죽이는 거지?


차라리 애인과 함께 죽으려고 하는 예술병 환자나,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사람을 모은 쪽은 그러려니 했다.


예술가야 다 큰 성인끼리 자기가 죽고 싶어서 죽겠다는 거고, 집단따돌림을 당한 학생들끼리 죽겠다는 것은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겠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자식이랑 같이 죽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잘 먹고 잘살던 집안 도련님인 내가 가난을 이해할 수 있겠냐 마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될 기회마저 빼앗는 부모의 이기심은 차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체리의 설교를 들은 이후, 나는 그들과 내가 뭐가 다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생각은 윤리에 대한 고민일 수도, 명분을 앞세운 합리화일 수도, 욕심을 숨기기 위한 자기기만일 수도 있었다.


다만, 나는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결론을 내려야 했다.


후회나 미련 없는 삶을 사는 것.


그게 내가 이 시대에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다짐한 맹세였으니까.


그리고 방탕하게 살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맹세는, 이제 내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





“아이달은 성운석에서 추출한 물질이고, 성운석은 이상체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반쯤은 이상체나 다름없는 거죠. 하진 씨 병이 나은 것도 마찬가지예요. 테세우스의 배처럼, 아이달을 사용해서 신체를 재구성해서 그런 거니까요.”


체리는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이었다.


이어지는 설명은, 아티펙트에 능력을 쓰는 게 왜 동반자살에 가까운 건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상체가 정신력을 모아서 이상현상을 일으키거나, 이상현상의 중추가 정신력을 모아 이상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각성자의 아티펙트도 정신력이 모인 결정체에요. 그런 결정체에 능력끼리 충돌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예상했던 말이다.


사실 나도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것도 혈액형을 가려가면서 하고, 장기를 이식하는 것도 거부반응이 없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한 물건에서 기억을 추출하는 것으로도 기절하는 내가 아티펙트에 능력을 쓴다면, 이후에 부작용이 얼마나 있을진 아무도 모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의 정신력은 무한한 게 아니에요.”


체리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자아를 유지하는 정신력이 무너지면, 그 이후의 부작용은 그대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거예요. 소위 말하는 다중인격,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생길 수도 있어요. 아니면 자아 자체가 무너져서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고요. 하진 씨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능력의 대상이 된 사람까지요.”


인간의 정신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하고, 이를 함부로 다룬 대가는 나 혼자서만 치러야 하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며 나는 일단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개인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어 몸을 씻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텅 빈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만에 하나.


내가 강해지기 위해 동료를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러고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린 끝에 결론을 내렸다.


식인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식인과 다를 게 없다.


생명이 생명을 잡아먹는 일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이 틀렸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사람을 잡아먹은 자는 그 사람의 몫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른 사람의 아티펙트에 능력을 쓰려는 마음이 한풀 꺾였다.


나는 나 한 사람의 무게만으로도 벅찼으니까.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니.


내게는 너무 과분한 사명이다.


이는 초롱부름에 다녀왔을 때와는 맥락이 달랐다.


그때는 적어도 철저히 조사한 끝에 자신감을 얻었고, 내 기준으로는 언젠가 마주할 이상체의 대규모 습격에 비하면 리스크가 적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그때와 달리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성공률을 모른다.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을 모른다. 후유증이 일어날 확률도 모른다.


다만 최악의 경우 두 사람의 정신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만이 선명하게 존재감을 발할 뿐.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다.


단 한마디의 결론이 내 가슴에 묵직하게 꽂혔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몇 번이고 실패해도 상관없는 인생이었으니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처럼,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상류층이 지닌 특권이었다.


내가 보아온 예시만 해도 다음과 같았다.


창업하다가 실패해도 용돈을 날린 수준이 되고,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도 자기 몸만 성하다면 마음껏 합의금을 뿌리는 걸로 해결할 수 있고, 심지어 평생을 허송세월로 보내도 끼니 걱정은커녕 같이 놀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하는 것.


이게 내가 보아온 상류층 망나니들의 삶이었다.


나 역시 저 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실패할 걱정 없이 인생을 대충 살아왔다는 점에서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하게 된 실패의 무게를 보게 되니, 솔직히 겁이 났다.


그렇기에 나는 더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뒤 눈을 감고 도피했다.


그러면 적어도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으니까.


적어도 내 탓으로 누가 죽진 않을 테니까.


눈을 감고 지친 정신을 쉬게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 머릿속엔 저울이 나타났다.





*****





그날 이후 나는 아티펙트에 능력을 쓰려는 생각을 접어두었다.


대신 다른 회원들이 주력으로 쓰는 장비에서 다시 기억을 추출했고, 그중에서 그나마 노력으로 습득할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능력을 골랐다.


내가 고른 것은 메이의 능력이었다.


[#6 메이 첸]

[코드명: Lancer]

[회원 등급: 블루(★★☆)]

[각성 능력: 신체 강화]

[권장 포지션: 스트라이커]


[기술 일람]

[#1. 낙천]

[-정신력을 소모해 신체를 강화합니다.]

[-정신력에 비례해 위력이 강해집니다.]


[#2. 일심]

[-정신을 집중해 힘을 한 점으로 모읍니다.]

[-집중한 정도에 비례해 위력이 강해집니다.]


[#3. 잠재능력: 미각성 능력입니다.]


정신력으로 신체와 무기를 강화하는 능력.


이런 능력이라면 나도 흉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강해지는 능력이라면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될 것 같았으니까.


정신력이 무한한 것은 아닐지라도, 정신을 흉내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정을 내린 이후, 나는 3일간 메이와 함께 창술을 수련했다.


메이와 똑같은 자세, 똑같은 방식으로 창을 내질렀고, 그녀에게서 거울을 보는 것 같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구현도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3일간 그녀의 창술을 배우면서 깨우친 사실은,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그녀의 기술이지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녀의 창술인 ‘도룡기’는 무공이나 무술이라기보단 공부에 가까운 것이었고, 무협지의 내공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순 없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창을 휘둘러야 하고, 기본기를 가다듬고, 이를 응용해서 적을 쓰러트려야 하는지.


심신을 수양하기에는 분명 좋은 수련법일지 몰랐지만, 이를 배운다고 그녀처럼 30cm 강철 격벽을 창으로 꿰뚫는 건 불가능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정신력이 만능이고, 무술이 무적이라면, 인류는 왜 멸망했고 총과 대포는 왜 만들어졌겠는가.


고양이가 사자의 사냥법을 배운다고 해도 체급 자체가 다른 이상 발휘할 수 있는 파괴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그녀의 창술을 모방한다 하더라도 내가 낼 수 있는 파괴력은 내 신체 능력을 넘어설 수는 없다.


게다가 내 신체 능력은 체리와 더불어 각성자 중 최약체로 손꼽힌다.


옛 인류보다야 좀 더 나은 수준이지만, 초인이나 다름없는 다른 각성자에 비하면 이게 각성자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 상태로도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개인화기로 죽일 수 있는 이상체도 있고, 폭발물을 활용해 이상체를 상대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뮬레이션 훈련 시스템이 완성되고, 처음으로 단체 훈련을 하면서 깨달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나는 같이 있는 쪽이 방해된다.


기동성도 최악인 뚜벅이. 전투력도 자기 몸이나 겨우 지키는 수준. 그러다가 포위당하면 곧바로 지키러 가야 하는 경호 대상.


체스로 비유하면 킹.


딱히 싸우지 못하는 기물은 아니지만, 킹의 존재는 모든 기물의 활동을 제약한다.


체스 최강의 기물인 퀸일지라도 킹이 위험하면 자기 목숨을 바쳐야 하니까.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이 있어도, 체크를 당한 시점에 움직일 수 있는 경로는 한 길로 수렴하니까.


이는 우리 중에서 퀸에 가까운, 세츠나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팀원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일 때 그녀는 도약을 보다 공격적으로 사용해 적의 진형을 무너뜨리거나, 적진에 파고들어 위험한 목표를 제거한 뒤 빠져나오는 식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시뮬레이션 훈련에서는 움직임이 달라졌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도약할 체력을 아껴두는 게 눈에 보였고, 내 쪽으로 적이 몰려오는 것 같으면 곧바로 도약을 사용해 적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이는 사실 세츠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전열에 서는 보리스나 메이는 그렇다 쳐도 저격 포지션을 잡은 엘리자베스나 드론을 조종하는 캐시는 항상 내 쪽에 시선을 주었다.


물론 보호를 받는 것은 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의무병이고, 여기에 더해 식물을 키워내 적을 방해하거나 바리케이드를 칠 수도 있었다.


[#2 체리 메이빌]

[코드명: Arcadia]

[회원 등급: 퍼플(★★☆☆)]

[각성 능력: 특이 식물 생장 및 조작]

[권장 포지션: 서포터]


[기술 일람]

[#1. 개화]

[-가까운 대상에게 특수한 꽃을 피워냅니다.]

[-꽃이 핀 동안 상처가 회복됩니다.]


[#2. 생장]

[-지정한 지역에 뿌리를 소환합니다.]

[-정신력으로 뿌리를 키울 수 있습니다.]

[-능력을 해제하면 뿌리는 사라집니다.]


[#3. 잠재능력: 미각성 능력입니다.]

[-확인 시 등록 및 기록 바랍니다.]


공격력은 나와 마찬가지로 전혀 없는 수준이지만, 그녀는 나 같은 정보 담당 서포터와는 달리 능력으로 전투에 직접 기여할 수 있었다.


이는 초롱부름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상체와의 교전을 전제로 한 시뮬레이션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가상의 적을 상대하는 훈련이라곤 하지만 실전이라고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설령 훈련보다 더 약한 상대를 만난다 해도 내가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훈련 이상으로 강한 상대를 만나게 되면, 우리 팀은 나 한 명으로 인해 전멸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훈련 도중에 세츠나가 전투 불능이 되는 걸 봤고, 이를 시작으로 전황이 무너지는 결과 역시 나왔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전략의 실수일 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고, 이후에 전략을 수정한 다음부턴 그런 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츠나가 리타이어되는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훈련과 실전은 다르다는 것.


실전에서는 어떤 변수가 나올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상황이 최악일수록, 구멍은 더 크게 드러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느새 묻어두었을 터였던 저울이 나타나 내게 물었다.


선택하시오.


당신에겐 누군가와 동반자살을 하게 되는 것.


혹은 당신으로 인해 모두가 전사하게 되는 것.


당신에겐 어느 쪽이 더 최악의 미래입니까.


스스로 떠오른 저울을 곱씹으며 나는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는 저울이자 거울이었기에, 차마 이를 응시하고 싶지 않아 나온 몸부림이었다.


에리두에 유독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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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찰나 (1) +4 23.07.08 1,139 63 13쪽
18 도약 (4) +3 23.07.07 1,226 62 13쪽
» 도약 (3) +5 23.07.06 1,227 63 13쪽
16 도약 (2) +6 23.07.06 1,295 66 13쪽
15 도약 (1) +7 23.07.05 1,414 69 14쪽
14 초롱부름 (5) +6 23.07.04 1,462 74 14쪽
13 초롱부름 (4) +6 23.07.03 1,500 67 12쪽
12 초롱부름 (3) +6 23.07.02 1,516 71 13쪽
11 초롱부름 (2) +3 23.07.01 1,647 74 13쪽
10 초롱부름 (1) +6 23.06.30 1,895 78 13쪽
9 방주도시 (2) +7 23.06.29 2,149 93 13쪽
8 방주도시 (1) +4 23.06.28 2,316 110 13쪽
7 투표 (2) +5 23.06.27 2,710 111 13쪽
6 투표 (1) +8 23.06.26 2,919 1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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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튜토리얼? (3) +4 23.06.24 3,578 139 15쪽
3 튜토리얼? (2) +6 23.06.23 3,901 144 12쪽
2 튜토리얼? (1) +6 23.06.22 5,811 150 14쪽
1 리세마라 +12 23.06.22 6,540 20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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