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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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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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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4,793

작성
23.06.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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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튜토리얼? (2)

DUMMY

“반갑습니다, 여러분. 체리 메이빌이예요. 의무 담당이었었어요......”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 이바노프. 전직 소방관이었습니다. 보리스라고 불러주십시오.”


“캐시. 캐시 해서웨이. 그냥 캐시라고 불러.”


“엘리자베스 그레이엄.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부르는 건 편하게 불러주시길.”


선임 회원들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뒤 자리에 앉았고, 대기실에 있던 우리 역시 자기소개에 간단한 인사를 덧붙였다.


회원증에 적힌 번호순으로 이어진 자기소개였다.


“저희가 여기 온 이유는.......”


자신을 체리 메이빌이라 소개한 분홍 머리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묘하게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화관이 씌워져 있었는데, 주변의 분위기로 보아 패션으로 쓰고 다니는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저희가 여기 온 건....”


체리는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하자 메이는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회장은? 같이 안 온 거야?”


메이가 체리를 향해 말했고, 그 말에 먼저 각성한 회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긴 했구나.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자신을 엘리자베스라고 소개한 은발의 여성이 대답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의 머리 위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회장님은 머리에 스스로 권총을 쏘셨습니다. 직후에 회장님의 몸에서 나비로 보이는 이상체가 다수 나타났고, 회장님의 신체가 나비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후 회장님과는 연락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차갑게 식은 말투로 이어지는 보고와 함께 대기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약관을 대충 읽은 나 역시 회장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었다.


회장은 이 도시의 수장이자 도시 운영의 결정권을 지닌 직위인 만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멸망한 세계의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인물을 눈앞에서 허무하게 잃은 만큼 저들이 침울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까짓거 그냥 새로 뽑으면 되는 거 아닌가?”


침울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메이는 보란 듯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며 그들에게 물었다.


나 역시 저들의 침울함을 깊게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저들이 회장과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진 모르겠지만, 대기실에 있던 우리에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남이다.


더군다나 회장이 대체 불가능한 직위인 것도 아니었다.


약관에 따르면 회장이라는 직위 자체는 회원들의 합의와 투표로 얼마든지 다시 뽑거나 끌어내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회장이 죽었다면 다른 인물이 회장이 되면 그만일 테지만, 선발대 회원들의 분위기는 여전히 침울했다.


“회장님은 저희랑 달랐어요.”


체리의 말을 시작으로 보리스가 거들었다.


“전투. 지휘. 능력. 모든 게 차원이 다른 분이셨습니다.”


“음... 달랐지. 압권이었고. 싸움이든 오더든.”


캐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의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회장 직위는 대체할 수 있지만, 회장이란 사람 자체를 대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분이 각성한 능력은... 인류의 희망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회장의 회원증을 보여주었다.


[#1 ■■]

[코드명: Starseeker]

[회원 등급: 골드(★★★★★)]

[각성 능력: 별바라기]

[권장 포지션: 서포터]


[기술 일람]

[#1. 물병자리]

[-피를 뽑아 성운석을 소환합니다.]

[-성운석에서 아이달 채취가 가능합니다.]

[-아이달은 각성자 시술의 원료입니다.]


[#2. 뱀자리]

[-두 가지 효과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아이달을 통해 회원의 부상을 치유합니다.]

[-아이달을 통해 회원의 능력을 강화합니다.]


[#3. ■■■■■]

[-■■■■■ ■■■■■.]

[-■■■ ■■■ ■■■■■.]

[-■■■■■ ■■■ ■■■■■.]


“이건.......”

“이게 뭐야?”


먼저 회원증을 돌려 본 세츠나와 메이는 할 말을 잃은 듯했고, 뒤이어 이를 확인한 나 역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기네요, 확실히.”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인력 충원 및 인력 강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이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달’을 생산한다는 부분이었다.


약관의 정보에 따르면 아이달이란 자원 자체가 성운석이라는 외계물질에서 채취한 물건인 만큼 극도로 희귀했고, 이는 각성자를 양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애초에 각성자를 양산하는 게 가능했더라면 인류는 방주에서 가사상태로 연명하는 대신 방주도시를 성벽 삼아 인구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회장이 저 능력을 얼마나 자주 쓸 수 있을진 모르지만, 저런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멸종 직전인 인류의 입장에선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만약 인류가 그의 능력 덕에 구원받는다면, 그는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로 칭송받았으리라.


이제는 의미 없는 이야기였지만.


“회장님의 손실은 인류 차원의 비극입니다. 남은 아이달로는 여러분을 각성시키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따라서 여기 있는 분들이 현재 확인된 인구 총원입니다. 어쩌면 남은 인류의 전부일지도 모르고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체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남은 아이달을 전부 사용하라는 건 회장님의 지시셨어요. 회장 권한과 능력의 특이성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와... 그럼 좆됐네?”


메이가 말했다.


순간 번역이 잘 못 된 줄 알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다만 그녀의 욕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정보에 따르면 다른 방주도시는 연락이 끊기거나 멸망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 인력 충원이 불가능하다는데, ‘좆됐다’는 말 정도면 오히려 점잖은 표현에 가까웠다.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그래서 저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대책 회의 및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입니다.”


“재발 방지, 인가요...”


“네.”


엘리자베스는 불안해하는 세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의 손실은 이상체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내부자의 소행일 수도 있고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상체라는 괴물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세운 상황인 만큼 최악의 상황 역시 고려해 둬야 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회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대기실에 계셨던 여러분의 회원카드 확인과 알리바이 검증을 요청드립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의심이 담긴 시선이 대기실에 있던 세 명에게 꽂혔다.


“그래, 그래, 씨발. 검증 좋지.”


메이는 그 말에 헛웃음을 치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빛무리가 일더니 허공에서 창 한 자루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아티펙트.


각성자의 정신력으로 만들어진, 능력의 촉매이자 무기.


그녀는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여차하면 저 창을 휘두를 기세인 건 분명했다.


“이게 내 능력. 창 한 자루랑 신체 강화. 이게 끝. 겁나 심플하지?”


그녀는 선발대 4명을 훑어보며 살기를 드러냈다.


“근데 보니까 책임은 너희한테 있는 거 같은데, 왜 의심은 우리가 먼저 받을까? 좀 그러네?”


“단순한 확인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편이 결속에 도움 되지 않겠습니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메이를 노려봤다.


신경전이 일었다.


다행인 건 아티펙트로 살기를 드러낸 건 메이 첸 혼자라는 점 정도.


엘리자베스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은 아티펙트를 꺼내 위협하진 않았다.


여기서 다른 누군가가 아티펙트를 더 꺼내면 그대로 유혈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직감 때문이리라.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잠시 신경전을 벌였고, 그 정적을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회원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제 것도 확인하세요. 어차피 나중엔 서로 다 알게 될 텐데. 그냥 다 같이 돌려 보죠.”


순간 시선이 쏠렸으나, 괜히 주목받고 싶어서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알리바이라면 자신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기억을 다루는 능력을 숨기면 괜히 오해만 깊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각성 시간 같은 것도 나중에 조회할 수 있으면 증명되겠지만, 전 제일 늦게 깨어났어요. 회원 번호로 봐도 그렇고요.”


나는 아티펙트 역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직 써 본 적은 없지만, 능력은 이 칼로 뭘 찔러야 쓸 수 있을 거예요. 원거리 능력이었으면 총이나 활 모양이었을 테니까요.”


아티펙트는 정신력으로 형성된 능력의 촉매다.


각성 능력에 대해 모든 것이 밝혀진 건 아니었지만, 오리엔테이션 룸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각성자는 아티펙트를 통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내 능력은 근거리형일 가능성이 높았다.


“칼 형태라고 해서 근거리 능력인 건 아니에요. 제 능력은 원거리 치유 능력이지만, 아티펙트는 지팡이 형태거든요.”


체리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아티펙트에 적힌 글자를 번역기로 해석했다.


“호접몽. 나비의 꿈이란 뜻, 맞죠?”


그 말에 나는 회장의 최후를 떠올렸다.


권총 자살을 했다는 회장에게서 나비가 나왔다는 이야기.


기이한 최후인 만큼 억지로 트집을 잡으려면 못 할 것도 없는 소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반응을 확인해 보고자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래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요. 하진 씨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물증이니까요.”


체리는 침착했다. 처음의 그 쭈뼛거리는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본모습은 어느 쪽일까.


“메이 씨도, 아사히 씨도. 사실 알리바이는 여러분 모두 확실하니까요. 이제 막 각성한 여러분들이 회장님을 해치셨을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체리는 그렇게 운을 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보다 확실한 검증을 위해, 다들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한 번씩 보여주셨으면 해요. 그러는 편이 서로의 신뢰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다행히 체리는 나를 곧바로 범인으로 몰아가진 않았다.


미신이나 감성 같은 이유로 트집 잡는 게 아닌 이상, 마지막으로 각성한 내가 회장에게 무슨 수를 썼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굳이 이를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나에 대한 배려에 가까워 보였다.


회원카드에 기록된 내 능력은 기억 회상 및 전이.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능력은 타인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약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잠재능력인 세 번째 능력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위험하게 쓰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내 동료가 기억을 다루는 능력자라면 꺼림칙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 기억을 함부로 읽고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찝찝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으니까.


“좋아요. 연습도 할 겸, 한 번 해볼게요.”


나는 아티펙트를 다시 받은 뒤 회장의 회원증을 건네달라고 손짓했다.


도대체 회장이 어떤 식으로 사라진 건지.


그리고 회장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으니 이는 내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쉰 뒤 아티펙트의 칼집을 뽑았다.


그러자 식칼 크기 정도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꿈에서 보았던 대로.


각성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회장의 회원증을 향해 칼날을 꽂아 넣었다.


[#2. 기억 발굴]

[-아티팩트에 접촉한 대상의 기억을 읽어냅니다.]

[-인상적인 기억을 먼저 읽습니다.]


칼날이 회장의 회원증을 부드럽게 닿았고, 사로잡은 나비의 날개를 살살 찢어내는 듯한 아찔한 감각과 함께 칼날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칠해진다.


먹으로 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기억이 재생됐다.


떠오르는 것은 회장의 심상.


그는 텅 비어있었고, 그 자리엔 권태감만이 남아있었다.


적어도 오늘을 수백 번은 더 겪어본 사람처럼.


그의 시점으로 본 세상은 매일이 연옥이었다.


내가 본 것은, 그 끝나지 않는 나날 중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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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미래 발굴 (3) +4 23.07.11 951 53 14쪽
22 미래 발굴 (2) +10 23.07.10 1,063 58 13쪽
21 미래 발굴 (1) +9 23.07.09 1,146 71 14쪽
20 찰나 (2) +11 23.07.08 1,201 77 14쪽
19 찰나 (1) +4 23.07.08 1,139 63 13쪽
18 도약 (4) +3 23.07.07 1,226 62 13쪽
17 도약 (3) +5 23.07.06 1,227 63 13쪽
16 도약 (2) +6 23.07.06 1,295 66 13쪽
15 도약 (1) +7 23.07.05 1,414 69 14쪽
14 초롱부름 (5) +6 23.07.04 1,462 74 14쪽
13 초롱부름 (4) +6 23.07.03 1,500 67 12쪽
12 초롱부름 (3) +6 23.07.02 1,516 71 13쪽
11 초롱부름 (2) +3 23.07.01 1,647 74 13쪽
10 초롱부름 (1) +6 23.06.30 1,895 78 13쪽
9 방주도시 (2) +7 23.06.29 2,149 93 13쪽
8 방주도시 (1) +4 23.06.28 2,316 110 13쪽
7 투표 (2) +5 23.06.27 2,710 111 13쪽
6 투표 (1) +8 23.06.26 2,919 125 13쪽
5 튜토리얼? (4) +6 23.06.25 3,171 134 14쪽
4 튜토리얼? (3) +4 23.06.24 3,578 139 15쪽
» 튜토리얼? (2) +6 23.06.23 3,902 144 12쪽
2 튜토리얼? (1) +6 23.06.22 5,811 150 14쪽
1 리세마라 +12 23.06.22 6,540 20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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