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SF

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64,676
추천수 :
2,999
글자수 :
294,793

작성
23.07.07 22:30
조회
1,226
추천
62
글자
13쪽

도약 (4)

DUMMY

에리두에서 생활한 지 한 달째.


엘리자베스와 보리스를 시작으로 슬슬 실전을 시작하는 게 어떤지에 대한 얘기가 회의 시간에 나오고 있었다.


에리두 인근에 이상체 중 가장 약할 것으로 추정되는 놈들부터 차근차근 토벌하자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이상체라고 전부 유랑도시급으로 강한 것도 아니고, 드론이나 망원 카메라 관측 등을 이용해 사전 정찰을 충분히 해 두면 비교적 안전하게 실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전투가 아니라 사냥 수준이라면 지금 전력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전략 수립은 엘리자베스 씨에게 맡겨둘게요. 무인기기랑 전투형 로봇도 필요한 만큼 동원하셔도 돼요.”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요?”


“총력전이 필요한 작전은 아닐 것 같으니, 투입되는 전투력을 절약하는 건 어떨지에 대한 의견입니다. 인력이든 무인 기기든, 저희의 자원은 무한한 게 아니니까요. 몸과 마음도 쓰면 쓸수록 닳는 법이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생쥐를 잡으려고 대포를 동원하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더군다나 엘리자베스가 첫 실전 상대로 제안한 놈들은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들개 무리 수준의 개체였다.


숫자도 한 번에 열 마리 정도 무리 짓는 정도고, 호전성은 높은 편이지만 소총 수준의 화력으로도 토벌한 기록이 있을 정도였으니 보병급 전투 로봇 몇 대만 데려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작전지역까지의 거리마저도 에리두 성벽에서 10km 정도였고, 작전 기한도 일주일이 안 걸릴 것으로 추정되니 큰 변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사격 각도도 확보될 테니 여차하면 에리두 쪽에서 포탑으로 화력지원을 해줄 수도 있고, 지원군도 금방 보낼 수 있는 거리인 데다가,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자력으로 걸어서 후퇴할 수도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하죠. 분산투자 개념으로 봐도, 한 번에 몰려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총력전은 지양하는 쪽으로 전략을 짜주세요.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다 같이 참여하는 걸로 하고요.”


“의견 감사합니다. 그러면 참여 인력과 필요 물자 및 기기는 차후에 보고서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회의가 끝나자 회원들이 하나둘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평소처럼 상석에 앉아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회의가 끝나면 회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다.


“회장, 요즘 괜찮아?”


회의실을 나가려던 캐시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메이와 세츠나도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랑 똑같지. 항상 괜찮아.”


“아니... 그...”


캐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번에 내가 그 팁 준 거, 그거 때문에 그런 건가 싶어서 그렇지. 그날부터 당신 좀 초췌해지는 거 같고. 뭐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말을 흐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지 않을 리 없었다.


나 혼자만 별을 따서 강해지는 것과 나를 제외한 모두가 별을 얻는 것.


어느 쪽이 더 전력에 도움 되는지는 뻔한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세츠나처럼 고점으로는 전 회장과 비견될 거라 추정되는 예시도 있으니, 앞으로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계속 강해질 수 있다면 사실 내 성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전 회장의 기억을 더 캐내지 못하는 부분이 조금 석연찮을 뿐, 이를 제외하면 에리두의 상황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음... 괜찮다면 다행인데...”


캐시는 그렇게 말하며 출구를 흘끗 바라봤다. 이미 눈치채지 않았냐는 제스쳐였다.


“다들 알게 모르게 걱정하고 있으니까, 너무 자책하거나 혹사하진 마. 노력은 회장도 많이 하는 거 다들 알고 있고, 전투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적도 없으니까.”


노력을 알아주는 건 고마웠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훈련에서 내 실력도 제법 향상된 편이었으니까.


그 실력이라는 게 안전한 지형을 찾아서 체리를 호위하고, 가끔 소총이나 수류탄으로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정도라는 게 문제일 뿐.


이는 사실 보병 로봇도 대신할 수 있는 역할이었으니, 자율형 전투 로봇의 숫자 자체가 넉넉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이 정도 훈련은 다들 하는 거잖아. 언젠간 나도 별을 따겠지.”


“응... 뭐...”


나는 미소를 지었고, 캐시는 정말 괜찮은 건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화이팅 해. 술친구 필요하면 말하고. 우울할 땐 원래 술이나 마시면서 푸는 거야.”


“말이라도 고마워. 생각해 볼게.”


할 말을 끝낸 캐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혼자 있도록 배려해주려는 듯 바깥에서 기다리던 메이와 세츠나를 데리고 떠났다.


저 녀석도 알고 보면 속이 깊단 말이지.


마침내 혼자 남게 된 나는 상석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엘리자베스가 구상할 엔트리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상 적으면 3명. 아주 많이 잡아도 5명 정도를 데려갈 것이다.


언젠가 총력전을 하게 된다고 가정해도 각자 흩어져서 싸우는 연습은 해 둬야 했으니까.


한곳에 뭉쳐있다가 포위나 포격에 당하는 건 최악의 경우였고, 시가전을 상정할 경우라면 보리스, 세츠나, 메이를 제외하면 다들 흩어져서 건물을 엄폐물 삼는 편이 공격과 수비 양쪽으로 유리했다.


또한 동시에 두 개 이상의 거점을 공격해야 하는 경우나, 한쪽은 남아서 수비를 해야 하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인원을 반으로 나눠서 훈련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러니 만약 넉넉하게 4명이 출전해야 한다면, 엘리자베스는 아마 이렇게 네 명을 고를 것이다.


보리스. 엘리자베스. 메이. 체리.


이미 파악된 지형에서 전투하는 것이니 나와 캐시는 별로 할 일이 없을 것이고, 세츠나가 별동대로 빠진 상황을 가정하면 이 정도가 최선의 엔트리였다.


아껴두고 싶겠지.


체스에서 퀸은 가장 중요한 말이지만, 가장 신중히 써야 하는 말이니까.


그리고 퀸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초보자라는 걸, 엘리자베스는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며칠 뒤 엘리자베스가 내 예상대로 엔트리를 짜서 왔을 때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이를 승인했다.


작전의 기한 역시 내 예상대로 일주일.


그사이에 나는 지금까지 미뤄뒀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고 싶었다.


저울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선발대가 떠난 뒤, 방주도시에는 내 예상대로 세 명이 남았다.


나, 캐시, 세츠나.


우리 세 사람은 이번 기회에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다음 작전에는 이번 작전에서 쉰 사람들이 먼저 출전할 가능성이 높으니, 이참에 미리 쉬어두는 걸로 사전에 회의를 해 둔 덕분이었다.


이는 엘리자베스 쪽에서 먼저 제안한 의견이었기에 나 역시 사양하지 않고 한동안 쉬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달간 나는 휴일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고, 이는 정도는 다를지라도 다들 마찬가지였다.


언제 이상체가 올지 모른다.


언제 실전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이런 불안감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채찍질했고, 우리는 마치 인류의 노예라도 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정신력은 혹사만 한다고 성장하는 게 아니고, 몸과 마음을 연마하다 보면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이번 일주일만큼은 휴식에 집중하려 했고, 밀밭이나 과수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캐시와 세츠나랑 가볍게 술을 마시는 식으로 휴일을 보냈다.


피로를 지우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3일째.


그동안 묵은 피로가 사라지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세상은 먼 옛날보다도 고요하다.


덕분에, 나는 온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저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선택하시오.


당신에겐 누군가와 동반자살을 하게 되는 것.


혹은 당신으로 인해 모두가 전사하게 되는 것.


당신에겐 어느 쪽이 더 최악의 미래입니까.


저울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저것은 내가 만든 상상 속의 괴물이자 거울.


인생의 기로를 알려주는 지표이자 상징.


둘 중 어느 쪽을 골라도 내게 최악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전자는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위험이 크지만 모두가 죽지는 않는 선택지였고, 후자는 내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적지만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선택지였다.


애초에 후자의 경우는 사실 모두의 책임이니까.


만약 우리가 전멸한다면 그건 재해나 재난에 의한 것이지 개인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노력했고, 서로의 뒤통수를 칠 이유도 없는 처지였으니까.


그리고 설령 우리가 전멸한다고 해도 인류가 멸종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무리 연락이 끊긴 것이 이상체에게 점령당했다는 징후라지만, 세계 각지에는 아직도 방주도시가 남아있고 그들 역시 동면자를 품고 있었다.


게다가 강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나, 인간 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상체를 인간이라고 정의한다면 인류는 그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었다.


애초에 우리 역시 아이달로 개조된 초능력자이니, 이상체 역시 논란은 있을지라도 성운석으로 개조된 인간이라고 해석될 여지는 있었다.


이미 멸종 이전의 시대에는 이에 관한 논문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심지어 스스로의 의지로 이상체가 되기 위한 시도나 이상체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가 등장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체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키운 부모의 사례마저 존재했을 정도니, 이상체의 손에 구인류가 멸종하는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멸종하는 것과 사실 별다를 게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초롱부름은, 멸종위기종 보호에 앞장서는 신인류같은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뒤, 나는 밀밭을 내려다보며 키득거렸다.


설령 그렇다고 순순히 멸종할 순 없겠지.


놈들과 우린 별종이니까.


이는 성운석이 떨어진 이래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고, 덕분에 나는 저울에 추 하나를 올려놓을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지고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욕심이 많아서 손에 닿는 건 전부 가지려던 아이.


돈이나 이름값으로 살 수 없는 건 뒤에서 수를 써서라도 챙겨왔던 망나니.


속은 시커멓고. 거짓말에 거리낌 없고. 속임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치사하게도.


대부분이 자리를 비운 지금 가장 이용하기 쉬운 사람을 찾아 옥상을 내려갔다.


지금쯤이면 개인실에 있겠지.


어떤 표정을 짓는 게 좋을까.


축 늘어진 표정을 지어서 동정심을 살까.


아니면 반드시 안전할 거라고 사탕발림을 할까.


돈이나 사치품으로 유혹하는 건 역효과겠지.


그렇다면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개인실 앞에 도착한 나는 문 앞에서 멈춰섰다.


양심의 가책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설득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익이나 자기만족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니까.


내가 아티펙트를 상대로 능력을 쓰는 게 위험한 일이란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이를 숨긴 적이 없고, 내가 숨기고 다녔다면 체리 쪽에서 모두에게 말했을 테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내가 과연 상대에게 아티펙트를 내어줄지에 대한 거였다.


아무리 동료의식이 생겼다 해도 고작 한 달.


우리는 부모 자식 사이도 아니고, 부모 자식이나 연인 사이일지라도 목숨이 걸린 일은 오히려 더 강력하게 만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상대를 아끼니까.


상대가 위험하지 않길 바라니까.


상대를 도구로 보는 게 아닌 이상 이는 고민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의견이 갈리는 일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차마 상대를 도구로 취급할 정도의 쓰레기로 전락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이건, 자존심의 문제라고 봐야 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근처에서 세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모양인지 머리칼에 수분기가 남아있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그녀의 개인실을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만 내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올 걸 대비해 미리 각오라도 해 둔 건지.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세요. 차라도 한 잔 타드릴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미래 발굴 (4) +6 23.07.12 874 59 13쪽
23 미래 발굴 (3) +4 23.07.11 952 53 14쪽
22 미래 발굴 (2) +10 23.07.10 1,065 58 13쪽
21 미래 발굴 (1) +9 23.07.09 1,146 71 14쪽
20 찰나 (2) +11 23.07.08 1,201 77 14쪽
19 찰나 (1) +4 23.07.08 1,140 63 13쪽
» 도약 (4) +3 23.07.07 1,227 62 13쪽
17 도약 (3) +5 23.07.06 1,228 63 13쪽
16 도약 (2) +6 23.07.06 1,295 66 13쪽
15 도약 (1) +7 23.07.05 1,415 69 14쪽
14 초롱부름 (5) +6 23.07.04 1,462 74 14쪽
13 초롱부름 (4) +6 23.07.03 1,501 67 12쪽
12 초롱부름 (3) +6 23.07.02 1,517 71 13쪽
11 초롱부름 (2) +3 23.07.01 1,647 74 13쪽
10 초롱부름 (1) +6 23.06.30 1,896 78 13쪽
9 방주도시 (2) +7 23.06.29 2,149 93 13쪽
8 방주도시 (1) +4 23.06.28 2,317 110 13쪽
7 투표 (2) +5 23.06.27 2,710 111 13쪽
6 투표 (1) +8 23.06.26 2,920 125 13쪽
5 튜토리얼? (4) +6 23.06.25 3,171 134 14쪽
4 튜토리얼? (3) +4 23.06.24 3,579 139 15쪽
3 튜토리얼? (2) +6 23.06.23 3,902 144 12쪽
2 튜토리얼? (1) +6 23.06.22 5,813 150 14쪽
1 리세마라 +12 23.06.22 6,544 203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