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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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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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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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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화

DUMMY

#


”왜 그래,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질 거였다면 처음부터 나서지를 말았어야지.“

그림자들을 노니며 사내는 수민의 급소에 검을 박아넣고는 조롱하기 바빴다.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연격을 피해보려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움직임이 이전 같지 않았다.


움직여.

움직여라.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순 없어.


이미 꽉 막혔던 전신의 세맥들은 물꼬가 트였고 한 번의 계기만 있다면 상황을 뒤집는 건 일도 아니다.


수민이 눈물겹게 버티고 있는 사이 촌장이 헐레벌떡 기름진 남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뭐? 어처구니가 없군.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남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이 드러났다. 창고가 텅 빈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그렇다면 수민이 미끼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저놈은 내버려 두고 모두 상품들을 찾아 회수해. 여긴 살귀(殺鬼) 혼자서 충분해 보이니까.“

하지만 그런 남자의 명령이 무색하게 정후와 함께한 인원들이 속속들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상황이 반전되었다.


”아니, 찾을 필요 없어.“

장비를 되찾은 그녀는 맥없이 주저앉아 있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전장을 압도하는 기운을 풀어헤쳤다.

그저 자리에 나타난 것 만으로도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기운은 수민을 농락하던 살귀라 불리는 사내마저도 긴장케 하였다.


치천사(熾天使)

백합의 가브리엘

대천사로 이름 높은 초월적 존재의 권능이 마을의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딛고 있는 이곳이 바로 성역(聖域)이며,

나의 의지가 곧 아버지의 뜻이나니.“

그녀의 등 뒤에서 찬란한 빛을 조각한 듯한 날개가 펼쳐지고, 빛의 파동이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모두를 감쌌다.


그 빛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단번에 단전의 금제를 푸는 것을 넘어서 엉망진창이 된 수민의 몸을 치유한 것이다.


”···이게 무슨.“

당황함과 동시에 수민의 머리를 노리고 검을 내리그었지만, 내공을 되찾은 수민에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흐르는 물처럼 유유히 손끝으로 검을 흘러내리고는 반대 손을 뻗어 설화를 움켜쥔다. 차가운 창대의 촉감을 즐기며 그림자 속으로 도망치는 그의 심장에 창을 꽂아 넣는다.

공방 일체의 모습.

전사의 이상적인 모습, 그야말로 무장요새 그 자체와 같다.

그림자 검사의 죽음을 시작으로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이 벌어졌다.


”아슬아슬했잖아, 정말 끝인 줄 알았다고. 그래도 용케 시간을 맞췄네.“

전장의 한 가운데서 마주친 두 사람.


”그래서 하나뿐인 대천사의 깃털을 사용했는걸.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진심이야.“

그녀의 진심이 담긴 한 마디에 수민이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동료란 그런 거지.

나의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지?“

”저 돼지는 살려서 심문할 생각이야, 이 정도로 조직적인 놈들이라면 분명 엮여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니겠지. 알면서도, 해결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불의(不義)를 묵인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야.“

수민은 이 불온한 것들의 근원을 뿌리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래, 그래야 너답지. 조금 돌아가게 되겠지만 그래도 끝을 봐야지. 최소 도시 하나 정도는 뒤집어엎어야 하는데, 자신 있지?“

그녀가 수민의 옆구리를 손으로 쿡 찌르며 장난스럽게 묻자 수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짧게 한마디 하였다.


”물론.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들의 결심과는 별개로 마을은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고 있었다.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것과는 별개로, 납치당했던 사람들의 잔혹한 손속에 마을은 피칠갑을 한 상태로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불타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광기에 휩싸인 그들의 칼날이 기름진 남자에게까지 이르자 수민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만, 이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구해준 건 고맙지만 놈은―“

수민이 발을 구른다.


-쿠르릉


”불쌍해서 살려주는 게 아니야, 놈을 심문해 사회악이 확실한 버러지들을 추적해 정의를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그러니까 다들 진정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를 뿐이다. 사악(邪惡)을 단죄하는 건, 손을 더럽히는 건 내가 하도록 한다. 더 이상 그 손에 피를 묻히려 하지 마.

그러면 더는···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려···“

씁쓸한 미소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홀로 모든 걸 떠맡으려 하는 거요?“

”당연하잖아, 할 수 있으니까 할 뿐인 거야. 이런 세상이라지만 누군가는 정의의 편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것이 나의 속죄이니까···’


#


”고맙소,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노예가 되었겠지.“

남자가 정중한 태도로 감사의 예를 표했다.


”고마워할 필요도, 예를 차릴 필요도 없습니다. 나 역시 붙잡혀 왔을 뿐이니까. 이제 당신들은 당신들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가면 그만이니까.“

수민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갈 길을 가려 하자, 그들이 우물쭈물하며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시오.“

”······“

”··· 정수민.“


#


남자의 목에 밧줄을 메고 마을을 떠나는 수민. 그런 수민의 발걸을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남자의 몰골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갑시다.“


바닥에 온몸이 쓸리며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애걸복걸하자 정후가 그의 등판에 발을 내리찍으며 비웃었다.

”그 비루한 몸뚱이에 숨이 붙어 있는 걸 감사히 여겨야지.“


검집에서 검을 뽑아 단번에 남자의 손가락을 하나 날려버리는 그녀였다.

”선생님이라 불린다지?“


계속해서 그녀가 남자를 자극하며 자존심을 짓밟자 그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크악. 원하는 걸 말해! 말만 하면 뭐든지 들어주지. 금은보화? 절세의 무구? 말만 해, 다 들어―“

더는 들어줄 가치가 없다는 듯 손바닥에 검을 찔러넣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땅에 쥐어박는다. 그런 그의 앞으로 수민이 쪼그려 앉아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선생님. 아프지? 근데 선생님이 팔아넘긴 사람들은 더 아팠을걸?“

손톱으로 남자의 얼굴에 선을 지-익 긋는다. 이윽고 베어나오는 핏물. 수민의 손을 타고 검붉은 색의 핏물이 흐른다.


아, 이런 악인조차 우리와 같은 색의 피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사실 이들의 피는 타르 마냥 검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제 슬슬 진지한 얘기를 할 준비가 되었을까?“

수민은 남자의 면전에서 단검을 빙빙 돌리며 이마를 살짝 그었다.


”악! 다 말할게, 다 말할게요. 그만, 그만!“

”아직 덜 아픈가 봐, 계속 반말이라니 유감이네. 수민, 마저 썰어버릴까?“

남은 손가락을 붙잡으며 묻자 남자는 입에서 개거품을 물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그만해주세요···“

피와 먼지로 얼룩진 남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면 이제 진지하게 얘기를 시작해보자고. 사람들을 납치해서 어디로 납품하는 거지?“

”이 근방에 서울의 위성도시 ‘소돔’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전국의 노예상, 장물아비들 등이 모여서 경매장을 통해 곳곳으로 분출합니다.“

예상보다 더 큰 규모에 놀라는 것도 잠시 수민은 이를 갈았다. 세상에는 아직도 이토록 많은 악인들이 담담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말이다.


”그 다음은?“

”경매장은 초청을 받은 소위 상류층만이 출입하고 경매에 올라가지 못하는 상품들은 투기장의 검투사, 몸종, 실험체로 분류되어 소비됩니다.“

”아주 체계적이군. 과연 소돔이란 말이지. 소돔에 대해 말해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남자가 잘려나간 손가락이 쓰라린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가 아는 모든 것. 하나도 빠짐없이 다.“

차가운 분노가 모든 것을 앗아가는 폭풍이 되어 악을 불사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도시를 지배하는 왕과 3개의 대 상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말이군. 각자 독자적인 클랜들을 휘하에 두고 말이야. 노예상 주제에 웃기는군.“

수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자 남자는 그저 고개를 조아린 채 벌벌 떨기 바빴다.


”맞습니다. 아주 버러지 같은 놈들입죠. 다 죽어 마땅한 추악한 노괴들입니다.“

”너는? 죽어 마땅한 놈이 아닐까?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검사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너도 평범한 노예상은 아닐 것 같은데.“

그저 그런 노예상 따위가 랭커 수준의 검사를 데리고 있다는 건 그저 그런 노예상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헤헤, 저같이 평범한 상인이 어디 있겠― 으악!“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수민이 놈의 뺨을 후려쳤다.


한편 그동안 놈의 등에 올라타 손을 찔렀던 그녀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들어본 적 있어. 그래, 틀림없어. 돈왕(豚王). 흑시(黑市)의 지배자, 그의 후계자가 비대한 몸집에 선생님이라고도 불린다지?“

침묵은 잠시 그가 누군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모든 걸 알겠다는 표정으로 싱긋 웃음짓는 그녀와 달리 잔뜩 울상이 된 남자.


”소돈왕(小豚王), 맞지? 잘 부탁해.“


#


졸지에 소돔을 무너뜨릴 작은 불씨가 될 남자 소돈왕(小豚王)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이런 고민을 해봤자 자신의 목숨이 저당 잡힌 이상 별다른 선택지는 없지만 말이다.


우울한 그의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발끝에 걸리는 촉감.

돌이다.


몸은 이미 쓰러지고 있었고 진흙에 그의 몸 자국이 거하게 남았다.


”옘병.“

일단 소돔까지만 간다면 이 연놈들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아니 죽이지 않고 죽는 것보다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주마.


”정후야.“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민이 그녀를 불렀다.


”응, 필요한 거라도 있어?“

그녀는 후들거리는 놈의 다리를 걷어차며 되물었다.


”포션, 남는 게 있을까? 이 자식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야 우리가 조용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비루한 몰골, 손가락은 하나가 없고, 왼쪽 손은 검으로 후벼 파였으며 온몸은 진흙 범벅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돈왕 애미도 못 알아볼 판이다.


소돈왕의 입에 포션을 하나 물리고 손가락의 단면은 지혈을 위해 불로 지져버리는 정후. 이런 모습을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여전사 같단 말이지.


바닥에 고인 물들을 첨벙거리며 밟으며 나아간 곳은 잘 닦여진 길들의 교차로.

교통의 중심지, 그 어느 곳보다 적나라한 분지에 자리 잡은 도시 소돔.


도시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행렬이 이어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몰려든다. 도시를 지키는 병사들, 각양각색의 복장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


초대장을 가진 자들만이 두터운 가드를 뚫고 출입할 수 있다.

믿고 있는 것은 이 녀석 하나.


”자, 어디 네놈의 가치를 증명해봐. 살려둘 가치가 있는지 말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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