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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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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
글자수 :
409,945

작성
21.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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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화

DUMMY

#


도화만리(桃花萬里)

복숭아 꽃의 향기가 겨울을 뒤덮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괴수들의 진격은 한 사내의 슬픔과 함께 멈췄다.


한겨울의 차가운 분노는 격해진 수민의 마음과 함께 점차 뜨겁게 변했다.


태양이 내리쬔다.


증오는 열풍(熱風)이 되어 만천을 휩쓸었다.


산천초목이 메마르고


정적이 흐르며


세상에는 일순간 죽음이 찾아왔다.


”아.“


수민의 창이 질펀해졌다.


피를 머금은 탓일까. 어느샌가 수민의 몸은 괴물들의 피로 꽃을 피워냈다.


아무리 괴물들이 달려들어도 수민은 창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더 달라붙어 펼치는 초 근접전.


하아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창과 괴수의 송곳니가 맞물리며 만들어 내는 화음.


장중하면서도 격렬한 선율이 전장을 압도했다. 격해진 싸움. 파괴적인 수민의 행보 뒤로 혈로(血路)가 피어났다.


붉게 달아오른 눈에서 피가 흐르고, 창을 움켜쥔 수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에 호응하듯 하얗게 이글거리는 창신. 괴수들의 피로 이루어진 길에는 수민이 만들어 낸 수많은 혈화들로 가득했다.


수민의 슬픔의 찬가가 울려 퍼지며 마침내 두억시니를 향한 길이 트였다. 괴수의 바다를 넘어 도달한 그곳에서는 지옥의 야차가 죽음을 수확하고 있었다.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검붉은 피부. 몸에는 거대한 가시가 갑주와 같이 둘러싸고 있으며, 기다란 꼬리는 마치 용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작은 건물과도 같은 거대한 몸집에 달린 두 개의 뿔은 마왕과 같은 위용을 자랑하며 투박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마경(魔境).


대요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 무색할 만큼 그것은 인지를 초월하였다. 생명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현상과도 같은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들은 길가의 들꽃과도 같이 위태로울 뿐이었다.


‘내가 맞서고자 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던가.’


수민은 아득한 거악(巨惡)을 보며 입술을 일그러뜨린 채 웅얼거렸다.


으아아앙


두억시니를 마주한 후 망연자실한 수민의 앞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아이가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도움을 바라는 아이. 아이의 눈가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외면해서는 안돼.’


‘이런 곳에서 멈춰 있어선 안돼.’


‘멈추지 마. 나아가는 거야.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정수민.’


‘이미 한 번 죽었던 목숨, 두려워하지 마.


스승님이 나를 구했듯 이번에는 내가 너희들의 빛이 되어줄게.’


‘가자. 그게 바로 정의(正意)니까.’


아이를 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보다도 빠르게 수민의 몸은 아이를 향해 내달렸다.


이런 수민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억시니는 아이를 향해 검은 불꽃을 내뿜었다. 지면을 녹이며 밀려오는 초열의 해일.


불꽃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수민은 스스로가 거대한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치이이익


살갗이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화마에 휩쓸린 모습은 흡사 중세의 화형식과 같았다. 세상에 나온 이후 처음으로 지키기 위한 싸움.


비록 전신이 화상과 수포로 얼룩졌을지라도 자신을 구하였던 스승의 의지가 절망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한 줄기 희망을 꽃피워냈다.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마음.


첫눈처럼 차갑지만, 역설적이게도 따스한 빛이 설화로부터 밝게 빛났다.


이내 드러난 한 사람의 인영은 얼굴을 마주한 채 수민을 품에 안았다.

세상을 지키고자 했던 소녀와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수민의 만남.


거울과 같이 서로를 닮은 두 사람.


찬란한 빛과 함께 해변의 모래성같이 부서지던 수민의 몸이 수복되기 시작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한 수민의 결연한 의지는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였다. 의협(義俠). 마모되고 빛바랜 우리들의 오랜 마음이 시간을 초월하여 이 시대에 부활한 것이다.


화마에 휩싸인 와중에도 자신을 향한 한줄기 미소를 잃지 않는 수민을 바라보는 아이의 심장에도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간지럽기도 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가슴에 새겨졌다.


#


처연하게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불타오르는 수민.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라니···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그 순간 하늘이 갈라졌다. 창공을 가르며 나타난 것은 한줄기의 유성.


푸른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추락한 유성의 정체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주는 전신을 갑주로 무장한 여인이었다.


여인은 눈에서 시퍼런 귀기를 흘리며 두억시니를 칼로 내리찍었다. 마치 태양이 추락하는 듯한 그 경이로운 모습에 두억시니는 경시하지 못하고 몽둥이를 들어 맞섰다.


칼과 몽둥이가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신화 속 영웅들의 격돌이 이러할까. 여인의 일격 하나하나가 대지에 상흔을 남기며 두억시니를 도륙하기 시작했다.


펼쳐지는 검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검격에 두억시니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허공에서 내리꽂는 찰나의 순간 그녀는 검광을 터뜨리며 매서운 검격을 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듯 두억시니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두억시니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흐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며 뇌광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내 뒤따르는 뇌성.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천벌과 같은 공격에 여인 또한 뒤로 물러서 주위를 돌며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여인과 두억시니가 일전을 벌이는 동안 수민은 아이를 장벽 안쪽으로 옮겼다.


‘대도시의 저력이 고작 클랜 몇 개 무너졌다고 끝일 리가 없어. 지원군은 언제 오는거지?’

내가 싸우는 동안 나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자가 이끄는 서울이 아무리 대 요괴라 하지만 무기력할 수는 없어.

도대체 초인들은 무얼 하고 있는거지?


수민은 머릿속에 싹트는 의구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 서울을 감싸는 세 겹의 장벽 중 고작 첫 번째 장벽이 뚫렸을 뿐이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한가득. 이들을 다 포기할 셈인가.’

여러 가지 상념으로 고뇌한 채 수민은 남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돌려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 수민이 자리를 피한 사이, 상황은 좀 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두억시니의 몸에 난 상처들은 어느샌가 아물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이를 상대하는 여인의 온몸을 감싼 갑주는 찌그러지고 금이 간 채로 빛이 바랬다.

여인의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꾹 다문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여인이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굳어있을 때, 수민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꽈앙!


허공을 내리치는 두억시니. 수민은 품에 안은 여인을 내려놓은 채 말했다.


“혼자서는 놈을 막을 수 없습니다. 참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참 부끄럽네. 방심한 건 아닌데 말이야.”


익숙한 목소리. 그러고 보니 이 갑옷, 체형 그 사람과 묘하게 닮았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니 그제 서야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함께했던 그녀라는 것을.

그녀 또한 그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 모처럼의 평정이 깨지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케 그 불길에서 살아남았네, 정의로운 오빠?”

“어쩌다 보니. 분명 조금 전 까지는 당신이 압도하고 있던 것처럼 보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수민이 바라본 여인은 태산과 같은 기세로 두억시니를 압박하고 있었기에 잠깐 사이에 역전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놈의 뿔을 자르는 순간 피부가 검게 변하더니 급격히 강해졌어. 마침 내 능력도 잠시 한계에 달했었고.”


수민과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억시니는 사라진 그들을 찾지 못하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피부, 추악한 외뿔, 꿈틀대는 핏줄은 마왕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미쳐 날뛰는 괴물은 세상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기세로 도시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말려들 것이라 여긴 수민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 당신이 끝을 내줘. 내가 수비, 당신이 공격. 해내지 못하면 죽을 뿐이야”


수민은 어깨를 쫙 펴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시 전장으로 걸어갔다.


“알겠어, 역시 닮았단 말이지. 부디 살아남아 줘.”


피식


그녀는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이는 수민의 모습에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비로소 제 2막이 펼쳐진 것이다.


수민은 전력을 다하여 결전에 임했다. 지키기 위한 싸움.

패배란 용납되지 않는 전투.

수민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


“천년검로(千年劍路).”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


‘대가로 유년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잊는다’

기억을 소모하여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이는 것.


수민에게 계승된 천년무맥의 정수


열세가 자명한 상황에서 발휘한 수민은 능력은 스스로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기억을 소모하여 지속된다.


첫 번째 죽음.

괴물의 표피를 뚫지 못하고 밟혀 죽었다.


두 번째 죽음.

괴물의 손아귀에 창날이 잡힌 채 불에 타 죽었다.


세 번째 죽음.

그녀를 향해 휘두른 몽둥이를 대신 맞아 죽었다.


.

.

.


억겁의 시간 속에서 수민은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다시’

‘다시’

‘다시’

.

.

.

‘다시’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잘려나간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 어디쯤에서 수민은 단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 내기 위하여 들꽃처럼 스러져갔다.


반복되는 죽음의 고통 속에 수민의 정신은 해변가의 모래성처럼 수 없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진정한 불굴이란 이런 게 아닐까. 망가지고 부서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지가 절단되는 와중에도 일격을 꽂아 넣는다.


공기를 가르며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노을빛 수민의 창.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들. 파노라마 같은 장면들이 색 바랜 필름과 같이 사라져간다.


일백 마흔 일곱 번째 도전. 유년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 모두 잊혀질 무렵, 수민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불꽃의 바다를 지나 벼락의 파도를 넘어 마침내 도달한 수민의 창격은 두억시니의 눈을 베어낸 것이었다.


불굴의 정신이 만들어 낸 빈틈,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어뜯었다.


-쨍그랑


그녀가 부러뜨린 인연을 끝자락을 매개체로 하나의 신기(神器)를 소환한다,


현재의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 전력.


하늘에서 구름을 가르고 파사의 거검(巨劍)이 세상에 강림했다.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벽사의 기운을 지니며 삿된 것들을 불태우는 성유물(聖遺物)이 시대를 초월해 이 자리에 현현하였다.


거검(巨劍). 두억시니를 가뿐히 뛰어넘는 크기의 신비로운 검이 구름을 뚫고 하강한다.


이어지는 영창


『 하늘의 정기를 내리고 땅의 신령을 일으켜

해와 달의 상을 갖추고 산과 강의 형태를 이룬다.


천둥과 번개를 몰아치고 우주를 움직여

거대한 악을 물리치고 현묘하게 베어내어 바르게 하리라 』


그녀의 두 손은 핏줄이 곤두선 채 칼자루를 꽈악 움켜쥐고 있었다.


새벽녘을 밝히는 여명과도 같이

검을 휘감은 창염(蒼炎)이 천공을 가르며 두억시니를 강타했다.

하늘의 신장(神將)과도 같은 일격은 붉게 타오르는 도시를 정화하는 듯했다.


마왕의 육체에 남은 한줄기 선.

얇지만 날카로운 푸른색 선은 두억시니를 두 동강 내었다.

반으로 갈라진 육체는 피 분수를 뿜어내었고, 남은 것은 푸른 불꽃의 잔해 뿐이었다.


호풍환우를 불러일으켰던 원흉이 사라지자 흐린 먹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쳤다.


대요괴가 불러일으킨 절망이 지나가고, 서울에 봄이 찾아온 것이다.



이날 우리는


겨울을 베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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