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6,693
추천수 :
4
글자수 :
409,945

작성
21.03.02 12:00
조회
81
추천
0
글자
12쪽

11화

DUMMY

#


피로 물든 도시. 그녀와 수민이 그것을 상대하는 동안 너무나 많은, 누군가에겐 소중했을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먹구름은 어느덧 가셨고, 햇살이 세상을 비추었다.


수민이 바닥에 대자로 누워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그녀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움켜쥐고 수민의 곁으로 와 함께 누웠다. 우리의 시선은 하늘을 향했고, 방금전의 혈투가 무색하리만큼 하늘은 아름다웠다.


할 말이 있었던 것일까.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담백하게 말했다.


”고생했어. 김형 말고도 그 정도의 전사가 있다니, 솔직히 조금 많이 놀랐어.“


”정확히 말하자면 너처럼 누군가를 위해 칼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에 남아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달까.

그날 당신에게 충고하듯이 말한 거 늦었지만 사과할게. 당신은 정의를 관철할 자격이 충분하네.“


함께 등을 맞대고 의지한 탓인지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입장에서는 후련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

어설픈 이상주의자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인 것인지를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과는 무슨, 내가 도움 받았던 것도 있는데 신경쓰지마. 다만 누군가는 도와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나라면 도울 수 있으니까 도운 것 뿐이야.“

수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 어색함이 서로를 감쌌고 우리는 잠시 말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이번 싸움을 통해 느끼고 깨닫게 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수민은 승리의 기쁨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선택에 대한 책임, 생명의 무게, 행복.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을 직면한 순간 나약해진 스스로에 대하여 실망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통성명이나 하자. 그래도 서로 목숨을 구해준 사이인데 이름도 모르는 건 좀 그렇잖아?“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그녀는 코를 찡긋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도화곡의 정수민이라고 해. 용을 죽이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어. “

솔직하게 하지만 담백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민. 그런 수민의 말에 그녀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도화곡이라는 클랜에 소속되어 있는 거야?“

그녀는 가지고 싶은 물건을 쳐다보듯 수민에게 눈독을 들였다.


노골적으로 탐닉하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수민은 이렇게 또 한 명의 여성이 자신의 남자다움에 반했다는 착각을 하며 몸에 힘을 주어 근육을 어필했다.


”아니, 도화곡은 뭐랄까 스승님이 기거하는 공간인데··· 말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하네.“

”아차, 내 이름은 김정후. 연옥이라는 클랜 소속이야. 마녀(魔女)라고 말하면 익숙하려나?“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조금은 수민이 놀라기를 바랬지만, 마치 처음 들어본다는 듯 밋밋한 반응을 보이는 수민을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나를 모를 수가 있지?? 발푸르기스의 밤은? 대성전. 이베리아 혁명··· 아무것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거야?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녔길래.“


”그렇다면 전장의 아이돌은? 이것도 들어본 적이 없어?“

”화려한 이명(異名)들을 듣자 하니 굉장히 유명한 것 같은데 내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서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래도 당신이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알겠어.“

담담히 그녀를 인정하는 듯한 수민의 대답에 그녀는 내심 흡족해하는 표정을 자아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있어?“

”아니, 아직은 없지.“

”그렇다면 혹시 나와 같이 일해볼 생각은 없어? 네 정의로운 모습이 내겐 이상적이었거든, 그래서 호기심이 좀 생겼어.“

전장의 베테랑인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남자,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같이 일하고 싶기는 한데, 그 전에 알아봐야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어서 말이야···“

‘역시 단련된 근육을 보고도 반하지 않는 여자는 없지!’

수민이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되물었다.


”무슨 일인데?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게.“

이미 반쯤은 승낙의 태도라고 생각한 정후는,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이곳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와 돌보던 아이의 행방을 알아봐야 해.“

”그게 끝이야?“

”그리고 이 지경이 되어서도 나타나지 않는 서울의 초인들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어.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 면 놈들에게 벌을 주어야지.“

”간단하네, 내가 돕는다면 금방 끝낼 수 있겠어. 그러면 그것들을 해결하고 같이 떠나자.“

그쯤이야 금방이라며 그녀는 수민과 함께 서울을 수색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


서울의 지휘통제실


수민과 정후의 전투를 처음부터 지켜본 이들은 긴급히 회의를 열었다.


”계획대로 놈을 데려와야 합니다. 놈은 이미 지쳐있고, 곁에 마녀가 있다 한들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입니다!“

”어림없는 소리! 방금의 전투를 보고도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시오? 놈은 광견을 손쉽게 죽이고 대요괴 조차 상대한 초월경의 무인. 지금은 오히려 놈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야 할 판이오.“

예상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전투로 인해 이곳의 모두가 갑론을박을 계속하였다.


-쾅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김형이 자리에 참석했다. 방금의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지통실의 상석에 앉은 김형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애기들 계속하지, 윽박지르러 온 것이 아니니까 긴장들 푸시고.“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만이 고요한 이곳에 울려퍼진다.


”하라고 할 때 좋지 않을까?“

김형의 최후통첩과 함께 곳곳에서 다시금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픈 말은, 놈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큰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데 마녀까지 적으로 돌리면 거의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단 것이오. 쓸만한 칼 한 자루를 얻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필요가 있소?“

그는 논리 정연한 말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자 애를 썼다.


”저들이 두렵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지극히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거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효율성 효율성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불안한 것이겠지요. 혹여나 놈의 칼날이 이곳을 향할까! 아닙니까?“

그렇게 의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는 사이 수민을 감시하던 병사로부터 호출이 왔다.


”무슨일이지?“

”놈이 사라졌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놈은 만신창이라며, 그 몸으로 어떻게 사라져!“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마녀와 함께 픽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아직 얼마 가지 못했을 거다. 클랜들에 협조 구하고 지금 당장 서울 전체를 샅샅이 뒤져!“

‘딸깍’하고 전화가 끊기고 김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향해 걸어왔다.


-퍼억


그는 남자의 머리를 손아귀로 움켜쥐어 그 악력만으로 터뜨렸다.


”뭣들 하고 있어, 찾으러 안가나?“


우당탕탕탕


지통실의 모두가 황급히 자를 떠났고 김형은 이 상황을 어이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들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


한편 수민은 정후와 함께 지금껏 든 의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이 도시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야. 아무리 갑작스럽게 나타난 대요괴라지만 장벽이 너무 쉽게 무너졌어.

거기에 이 꼴이 되도록 도착하지 않는 지원군. 랭커들의 단체 부재. 그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야. 김형 그자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지?“

감추는 것이 많은 사람인 것 같긴 하지만 설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의혹이, 의혹은 의심이 되어 수민의 가슴속을 맴돌았다.


”나는 네 친구도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분명 뒤따라 오기로 했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전투를 몇 시간을 했는데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아무래도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지.“

그녀의 말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너는 네 친구를 찾아와. 나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해볼게.“

”그러면 방금 전의 전투로 무너진 장벽의 뒤편에서 내일, 동이 틀 때 만나는 것으로 하자.“

약속을 하고 둘은 서울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


수민은 정후와 헤어지고는 곧장 유진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와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수민은 그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는 거야 유진아. 설마 내가 생각한 그건 아니겠지?’

주섬주섬 집구석을 뒤지던 수민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역시 이 모든 상황은 김형을 찾아야만 설명이 가능해’

서울의 외곽에서 중심지로 진입하는 길은 이전과는 그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거리에는 전쟁을 준비하듯 무장을 한 초인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고 있던 것이다.


”분명 이 근방에 있을 거다, 샅샅이 뒤져!“

”예!“

다양한 클랜의 초인들이 누군가를 찾는 모습.


”죽이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누구든지 놈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분께서 직접 상을 내린다 했으니 기대해도 좋다!“

”와아아아아아!!“

”김형! 김형! 김형!“

모두들 광기에 휩싸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자 수민은 본능적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유진···’

사방에 가득한 추격대를 피해 수민은 이미 한번 갇혔던 적이 있는 건물을 향해 중심부로 나아갔다.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중심부로 가는 길목은 이미 초인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벌써 이곳까지 막혀있다니,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거냐 김형!’


”놈이다!“

지붕과 골목을 질주하는 수민의 앞을 초인들이 가로막았지만, 수민은 멈추지 않는다. 신경쓰지마 정수민, 가로막는다면 벨 뿐이다.


창을 뽑아들고 기사들의 차징처럼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는다.

적당히 할 여유는 없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허벅지가 지면을 깨부수며 나아가고, 상대는 거대한 방패를 세우며 막아선다.


-쾅


수민의 저돌적인 돌진에 방패는 공중으로 튕겨져나가고, 폭발음이 도시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삐이익!


수민의 행적을 따라 경고음이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인적이 드문 곳 위주로 이동하는 수민은 단 한 블록만을 앞두고 그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찾았나?“

김형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수민은 기척을 지우고 기둥 뒤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아뇨, 아직. 하지만 제가 여기 있는 한 어떻게든 그는 이곳에 저를 찾아올 겁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런 김형의 곁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유진이었다.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저 이용당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뭐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욱신


처음 겪어본 배신은 수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모두 기만이었던 거냐···’


충격적인 사실에 쓰린 가슴을 부여잡으며 외면하려는 순간.


”산 채로 데려올 수 없다면 죽여도 좋다. 정신을 오염시켜서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시체는 시체대로 써먹을 구석이 있으니까.“

그의 말에 그녀는 눈웃음을 쳤다.


”그건 그렇고 자기 ‘마녀’는 어쩔 생각이죠? 그년은 내가 갖고 싶은데. 전부터 찢어 죽이고 싶은 년이었어요. 쓸데없이 예쁘기만 해서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추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수민이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유진! 정말 처음부터 이럴 셈이었나···’

울부짖는 수민과 달리 김형은 그녀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을 위한 선물로 곱게 포장해서 주도록 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17화 21.03.05 52 0 12쪽
16 16화 21.03.04 72 0 10쪽
15 15화 21.03.04 70 0 12쪽
14 14화 21.03.03 59 0 12쪽
13 13화 21.03.03 60 0 9쪽
12 12화 21.03.02 78 0 12쪽
» 11화 21.03.02 82 0 12쪽
10 10화 21.03.01 100 0 12쪽
9 9화 21.03.01 79 0 11쪽
8 8화 21.02.26 83 0 12쪽
7 7화 21.02.26 78 0 12쪽
6 6화 21.02.25 95 0 11쪽
5 5화 21.02.25 146 0 13쪽
4 4화 21.02.24 190 2 12쪽
3 3화 21.02.24 223 1 13쪽
2 2화 21.02.23 429 0 17쪽
1 1화 +2 21.02.23 1,006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