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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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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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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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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


비오듯 쏟아지는 무수한 꽃잎의 향연.

몸은 이미 꽃잎들에 의해 수없이 베였고, 바닥은 그가 흘린 피가 웅덩이를 이루었다.


물론 광견 역시 악명 높은 1급 범죄자답게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쏟아져 내리는 꽃잎들을 조금씩 흘리며 반격을 펼친 것.

부착된 10개의 칼날과 팔꿈치까지 단단히 보호되는 건틀렛 덕분에 목숨만은 부지한 광견은 이내 기합을 내지르며 창날을 잡으려 했고, 수민은 신속하게 창을 회수하며 들어올렸다.


높게 치솟은 창, 이빨을 드러내는 수민. 다시 한번 찾아온 기회. 수민의 내려 베기가 번개처럼 작렬했다!


-콰앙!


그러나 막혔다.


두 개의 건틀렛을 교차해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이걸 막았다고?“

그리고는 광견의 칼날은 이내 창날을 타고 내려가 수민의 가슴팍에 옅은 상처를 입혔다.

구릿빛으로 반들거리는 강철같은 수민의 육체에 한 줄기 자상이 생겨난 것이다.


”단련된 근육을 뚫고 들어오다니··· 내 몸에 상처를 낸 것은 네놈이 처음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좀 더 진심으로 상대해주도록 하지.“


수민은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단순히 가슴근육에 힘을 줌으로써 지혈하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던져버리고 광견을 향해 포효했다.


반면 최선을 다한 자신의 공격이 찰과상에 불과한 것을 본 광견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검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한 수민의 육체는 도검불침침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검기를 머금은 칼날을 맞고 자상에 그치다니, 어떻게 되어 먹은 몸뚱이냐 놈!’


수민은 자신보다 하수라 여겼던 광견에게 상처를 입자 자신 또한 전장의 열기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가슴은 뜨겁게 정신은 차갑게.


‘우선은 다시 간격을 벌린다. 창의 장점은 간격. 절대 근접하게 놔두지 않겠다.’


재차 다가오는 광견을 보며 수민은 씨익 미소지었다.

광견의 주먹이 귓가를 스친다. 머리를 노린 모양이지만 그리 쉽게 맞출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주먹을 뻗는 틈을 노려 창신(槍身)으로 녀석을 후려친다. 무언가 맞은 감촉은 있다. 또다시 창격을 흘리는 광견의 모습에 수민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계속 흘린다면 흘릴 여유를 주지 않겠다.’


-채앵!


섬광과도 같은 수민의 찌르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연환격.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속도에 광견은 막기에 급급하며 조금씩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과다출혈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점점 궁지에 몰리는 광견.


마침내 벽까지 몰린 광견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방법을 행했다.


-푸욱


광견은 왼손을 희생하여 수민의 창을 받아내고 오른손으로 심장을 노렸다.

심장을 노린 광견의 최후의 일격.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쓰러진 것은 수민이 아닌 광견이었다.


수민의 창날이 광견의 손을 꿰뚫음과 동시에 그의 상체가 터져나간 것이었다.


”침투경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믿을 수 없군··· 하지만 즐거웠다 소년.“

짧은 단말마와 함께 광견은 반쯤 폐허가 된 연무장 구석에서 부서진 건틀렛과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털썩


전투가 끝나고 폭음이 잦아들자 사람들은 다시 몰려들었고 이 싸움을 옥좌에서 끝까지 지켜보던 김형은 옥좌에서 내려와 수민의 앞에 섰다. 기대 이상의 무력을 보여준 수민에게 김형은 찬사를 보내며 말했다.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무리 범죄자라지만 살인이다. 어째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거냐, 어째서. 처음 서울에 와서 느꼈던 묘한 기시감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나.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 도시는.


-짝짝짝


”기대 이상이었다네, 그 광견을 상대로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지. 참으로 멋진 시험이었네.

입으로 뱉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과 몸짓은 수민의 승리를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였다.


‘저 남자, 이 도시의 지배자. 이 계획의 주도자. 나를 파악하기 위해 사람 하나의 목숨을 가볍게 던지는 자. 무서운 자다. 흥분한 몸과 달리 머리는 차갑게 식어간다. 더이상은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랭커를 이겼으니 최소 랭커급이라고 해야겠군. 이거 자네를 점점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져 버렸어.“


김형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말했다. 불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이렇게 유명인사가 된 자네를 저기 저자들이 가만히 둘 것 같은가?

사람들은 자네와 같은 떠오르는 신성(新星)을 원한다네. 서울을 위해 같이 일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김형의 적극적인 영입제안에도 수민은 냉소를 지으며 차갑게 노려볼 뿐이었다.


”내가 이 시험을 본 이유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동안 함께한 유진 씨를 생각해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민은 김형의 제안을 매정하게 거절하고 몰려든 인파를 헤치며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기분 나쁜 하루다. 무척이나.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없어진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이 불쾌한 자리를 벗어나고픈 마음 뿐이다.


#


다음날 수민은 떠오르는 신성으로 서울 내에서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다.

유진의 집에 수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진의 집 앞은 수많은 스카우터들로 북적였다.


이렇게 시끄러워진 까닭은 서울은 이미 정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기존의 강자들은 이미 소속이 분명한데 비해 소속이 없는 데다 검증된 강자인 수민은 매력적인 상품인 것이다.


수민은 얼굴을 찌푸리며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자꾸 폐를 끼치게 되네요. 면목이 없습니다.“

”미안하면 우리 친구 할까요?“


그녀는 지금 상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밝게 미소를 지으며 수민에게 다가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사람 같아서요. 당신. 친구가 되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말을 놓는 그녀의 태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수민은 짧은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한 것은 며칠 남짓이지만 스승의 곁을 떠난 이후 처음 느껴보는 온기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며 수민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 명쯤은 마음을 놓을 사람이 있어도 되는 거겠지.


”그러자. 친구야.“

”말을 놓자고는 안했는데···“


#


들이닥치는 인파 탓에 수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유진의 도움으로 몇몇 클랜들을 추려낼 순 있었으나 정작 수민의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기 때문일까. 수민은 머리를 감싸 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클랜에서는―“

이 말을 몇 번을 들었을까. 수민은 이쯤 되면 김형이 사실은 가장 솔직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지난 일주일간 서울을 대표하는 클랜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 어느 곳도 자신의 이념과 상응하는 곳이 없었다. 수민의 생각과는 달리 클랜들은 기업과 같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민의 육감이 이 도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스카웃 제의를 듣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음습한 기운이 수민을 자극한 것이다.


”아 진짜 뭐가 문제야 도대체가!“

유진은 까탈스러운 수민의 태도를 지적하며 말했다.


”업계 최고 대우를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삐이익


경보. 경보.

도시 외각에 강대한 뒤틀림 발생. 대요괴 두억시니 및 다수의 괴수 침입.


그녀의 투정을 듣고 있을 무렵, 도시에 강렬한 경고음이 발생하였다. 이렇게나 큰 소리라니 분명 도시에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귓가를 파고드는 강렬한 사이렌 소리에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뿌옇게 흐려지는 하늘. 미묘한 긴장감이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


수민은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파에 손을 불끈 쥐었다. 이만한 거리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대. 거대한 살의에 피부가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수민의 모습에 그녀는 그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남자라는 생물, 아니 정수민이라는 남자를 이해하는 것은 그녀에겐 무리였다.



”정말인지 쉬운 게 없네. 먼저 가. 곧 뒤쫓아갈게, 아이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유진은 수민의 행동을 예측했다는 듯 담백하게 읊조렸다. 빨리 가라고 내젓는 그녀의 손짓에 수민은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


흐려진 하늘에선 어느샌가 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순백의 섬광이 사방에서 터지고, 사람들의 비명소리 와 파멸적인 포효가 울려 퍼졌다. 치열한 전장으로 나서는 수민을 그녀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급하게 연락을 시도했다.


전력으로 도시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수민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대피하는 시민들의 행렬이었다. 길게 늘어진 행렬은 금방이라도 화마에 집어 삼켜질 듯 불안한 모습이었다.


웅성웅성.


요 며칠간 지내왔던 서울이 불타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 혼란을 틈타 일어나는 범죄의 장. 수십 가지 상념들이 수민의 뇌리를 스쳤다. 하나뿐인 몸뚱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쓰린 가슴을 부여잡은 채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 상황은 과거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던 그 날의 상황과도 같았던 것이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수민은 더욱 더 빠르게 내달렸다.


수민의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점점 빠르게 뛰는 심장.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 수민은 입술을 앙다문 채로 마침내 전장에 도착했다.


무너진 건물들과 불타는 대지. 반파된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 수많은 시신들이 반쯤 파묻힌 채 널브러져 있었다. 시신들의 피가 강을 이루고, 비명소리가 사방에 가득하다.


인세에 도래한 연옥이 이러할까, 괴수들은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수민은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종결시키고자 하였다.


쿵.


울려퍼지는 발소리. 수민은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괴수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수민. 분노에 몸을 맏긴 채, 수민은 괴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다 죽여주마, 버러지 새끼들아.“


붉게 충혈된 눈을 치켜뜬 채 수민은 괴물들의 한복판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서 펼쳐진 천근추(千斤錘).


노을이 깃든 꽃잎들이 흩날린다.


”너희들이 먹어치운 이 사람들은“


누군가의 눈물이 흐른다.


수민이 휘두른 일격은 대지를 붉게 적셨고, 도시는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연인이란 말이다.“


우우웅


수민의 마음을 읽은 듯 설화 역시 눈물을 흘렸다.


겨울


눈이 내린다.


순백의 세상이 펼쳐지고, 눈꽃들이 시신을 감싼다.


붉게 물든 눈송이들이 끝없이 펼쳐진 세상에서.


수민은 창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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