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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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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
글자수 :
409,945

작성
21.03.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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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6화

DUMMY

#


또 다른 창고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자 끈적한 핑크빛 향이 코를 찌른다. 남자들의 창고와는 달리 이곳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드는 최면 향이 창고의 중앙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오, 좋아 좋아. 아-주 만족스럽군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인들을 추잡하게 매만지며 남자는 탐욕스러운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명 한명 훑으며 지나가다 보니, 구석에서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정후를 발견하였다.

잠을 자던 중 잡혀 왔기에 옷차림은 가벼웠고, 얇은 옷 사이로 비치는 새하얀 피부와 움푹 파인 쇄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극적이다.


”특···특상!“

정후를 보는 순간 이미 이런 반응은 예견된 것이 당연하다. 전장의 아이돌이라는 이명은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단순하게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들을 수 없는 칭호다. 아이돌이란 그런 의미니까.


”어떻습니까? 제가 자신하는 상품이라서 말이죠.“

촌장의 말에도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던 남성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부풀어 오른 아랫도리를 감추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요물이군. 어디서 저런 것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탐이 날 정도야. 이번에 자네가 보여준 친구들 모두 마차에 싣도록 하지.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반나절 내로 끝마치도록 하지요. 아랫것들이 준비하는 동안 저와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럴까? 대금은 늘 하던 방식으로 주도록 하지.“


#


수민을 위시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여자들이 갇혀있는 창고에 진입했다. 다행스럽게도 노예상과 촌장은 마을 어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일말의 무리들은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민이 재빠르게 창고 안으로 진입하자, 나머지 인원들은 경계를 서며 혹시나 있을 긴급 상황에 대비하였다.


수민이 창고 내부로 진입하자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것은 불쾌한 최면향이었다. 철창 속에는 여러 명의 여인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접근하여 일일이 얼굴을 확인하며 돌아다닌 끝에 구석에서 세상모르게 누워있는 익숙한 모습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창백하리만큼 새하얀 피부.

찰랑거리는 흑발.

결정적으로 어제와 그대로인 옷차림.

그녀가 확실하다.


누구는 심한 꼴이라도 당할까 봐 애타게 찾았는데 세상모르고 푹 자고 있는 모습이라니. 찾아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혼자만 속을 썩혔다는 억울함이 공존하였다.


”정후, 김정후.“

마치 불침번이 다음번 근무자를 깨우듯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들자 살며시 눈을 뜨는 그녀.


”무슨 일이야, 갑자기. 여자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건 신사답지 못해.“

눈을 부비며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수민은 짧고 굵게 현 상황을 요약해서 전달했다.


”우리가 잠든 건 우연이 아니었어. 이 마을, 노예상과 한통속이야. 움직일 수 있겠어?“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녀만이라도 구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는 수민이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氣)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까닭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장한 용병들 몇이나 상대할 수 있겠어?“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둘, 셋?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평균 이상이라면 맨몸으로는 그 이상은 무리야.“


예상보다 턱없이 적은 숫자에 수민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어째서지? 아무리 기맥이 막혔다지만 너 정도 경지라면 가뿐해야 할 텐데.“

”내가 아직 말해주지 않았었네. 난, 무투파가 아니야. 내 능력은 전적으로 빌려오는 것이니까 장비가 없다면···“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


밖은 어느덧 작업이 마무리되어 가는지 촌장과 두둑한 살집의 남자가 다시금 창고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계획을 수정한다. 내가 놈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동안 너희들은 무기고를 찾아, 그리고 남은 인원들을 이끌고 여자들을 구출해 은밀하게 마을 입구로 향하는 거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제때 장비를 되찾느냐, 혹은 수민이 무너지는 것이 먼저 인지.

빈말로라도 좋은 컨디션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몸 상태이지만 이런 상황, 이미 도화곡에서 수도 없이 많이 겪어본 몸이다.


해보자.

아니, 할 수 있다.


창고 벽을 주먹으로 박살을 내며 굉음과 함께 수민이 뛰쳐나가자 마을의 모든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가라!’


#


수민이 노예상을 향해 맨몸으로 부딪치는 사이 정후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구를 되찾기 위해서 마을 구석구석을 뒤졌다.


”여기에도 없어. 도대체 어디 숨겨놓은 거지?“

생각하자 김정후, 너라면 어디에 숨겼을까.

아니 어쩌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몰라.


지붕 위에서 날카롭게 마을을 쏘아보던 그녀의 눈에 촌장이 보였다.


촌장···촌장!


촌장의 집. 이들이 노예상의 하수인이라면 분명 돈이 될만한 것들은 자신이 챙겼겠지. 생각과 동시에 사람들을 이끌고 촌장의 집을 향해 달리는 그녀였다.


#


한편 수민은 오직 단련된 육체 하나만을 믿고, 선생님이라 불리는 돼지 같은 남자를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본래 이런 상황에선 지휘관의 목숨을 담보로 협상하는 것이 기본.


잔뜩 부풀어 오르는 근육을 과시하며 바람처럼 놈의 목을 움켜 잡으려는 순간, 놈의 그림자에서 빛이 번쩍이며 느닷없이 사람이 튀어나왔다.


”크윽“

빛의 정체는 검기(劍氣).

섬광과 같이 날아들어 수민을 밀쳐낸 것이다.


”검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고작 피 몇 방울에 그친다고? 그딴 인간은 들어본 적도 없다!“

남자의 그림자로부터 나타난 사내가 어이가 없어서 넋이 나간 틈을 타 수민은 호위대의 대열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일 합 뿐이지만 맨몸으로 상대하기에는 꺼림직한 상대임을 직감한 걸까, 돼지를 노리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호위대의 진열을 무너뜨리며 혼란을 야기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수민의 기습에 당황할 만도 하건만 남자는 화조차 내지 않으며 그저 냉철하게 손익을 계산하고는 그림자 검사에게 생포할 것을 명했다.



”특등품이다. 상품에 흠집을 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기절시켜서 데려와. 설마 무기도 없는 놈을 상대로 자신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저걸 생포하라고?

검기를 몸으로 견뎌내는 놈을?

생각이야 어쨌건 프로답게 물주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사내였다.

수민의 그림자 속에서 거미줄처럼 검을 길게 늘어뜨리며 기회를 노린다.


”거기까지다!“

단 한 번의 휘두름이 수십 갈래의 잔상을 남기며 기이한 각도로 수민의 급소를 노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파.

하지만 제압하기 위한 검은 그 예리함을 잃었고, 본디 실체를 파악할 수 없어야 하는 환검(幻劍)은 손쉽게 그 궤적을 읽혔다.


”화려하지만 그뿐, 천화령에 비할 바가 아니야.“

자신이 상대하던 호위대를 밀쳐내고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킨다.


”선풍각(旋風脚)“

수민의 발이 물결처럼 요동치며 날아오는 검의 잔상들을 지우개처럼 지워갔다. 그러자 드러나는 단 하나의 검로.


”검기를 베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을 보호하기 위해서 펼쳤어야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날아드는 검면을 정강이로 후려쳐버리자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사내의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당황한 나머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수민의 무릎이 사내의 복부에 닿는다.


”커억“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검기 사용자를 날려버린다. 하지만 큰 동작은 빈틈을 낳는 법.

옆구리에서 가드가 떨어지자 수민을 둘러싼 용병들의 무기가 빈틈을 파고들었다. 조금은 무리하여 그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는 수민.


이 정도면 충분히 관심을 끌었다.

무심한 듯 하지만 실상은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상처가 몸에 하나둘씩 새겨지고 있었다.


물리쳤다고 생각했던 검사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뽑아 들고 태세를 바꿔 천천히, 야금야금 수민을 좀먹어갔다.


”네놈 몸뚱이가 단단한 건 인정하지. 그런데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무리 애써보아도 흐트러지지 않는 차륜진. 수민을 둘러싸며 교대로 상대하는 사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내가 압축된 검기를 쏘아댔다.


‘무기만 있었어도···’

그저 태도를 바꾼 것 뿐이었지만 상대하는 수민의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농락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수민의 몸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촌장의 집에 도착한 그들은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온갖 장식품들로 치장되어 있었으며, 벽에는 전리품으로 보이는 화려한 무기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게 어딜 봐서 촌구석 촌장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들의 맨 앞에 우리의 것이라 여겨지는 무구들이 가지런히 도열되어 있었다.


”하루 이틀 이 짓거리를 해온 것 같지는 않네···“

자신의 무장을 살피며 그녀가 혀를 내둘렀다. 다행스럽게도 갑옷과 검 그리고 갑옷 안쪽의 주머니는 문제가 없었다.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네.


”내 검! 여기있었군.“

각자 자신의 잃어버린 무구들을 되찾으며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듯 흐릿한 미소를 보인다.


‘설화는 어디 있는 거지?’

단 하나뿐인 수민의 창은 투박한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무구와 달리 구석에 먼지 쌓인 곳에 놓여 있었다. 창신에 음각된 설화(雪花)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면 미처 찾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촌장의 집에는 귀물들이 가득했기에 정신이 팔릴 수도 있었지만, 다들 소중한 사람을 구하는 것 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 그녀의 말 한마디에 우르르 수민이 싸우고 있는 장소로 뛰어나갔다.

”가자.“


단순 명료한 한마디.

하지만 지금 이들의 마음을 가장 격동시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심정 역시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무기도 없이 단신으로 수십을 감당하는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 탓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멋있는 사람이니까.


기다려 정수민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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