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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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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9,945

작성
21.0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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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DUMMY

#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는 어떻게 보아도 완벽한 무인의 모습이로구나.”

그동안의 감회가 새로운 듯 말하는 형준을 바라보며 수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미숙합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악인들이 있지만, 저는 혼자이니까요.”

“그렇다면 동료를 모아라, 혼탁한 세상에서 밝게 빛나는 이들과 힘을 합치거라.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분명 정의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정의로운 세상···!”

“그리고 때마침 네게 전해줄 것이 있단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버지?”“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날 내가 말했었지, 어째서 내 몸에 네가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는지 말이야.”


“아···” 부끄럽던 과거의 기억이 수민의 머릿속에 잠시 떠올랐다.

“그 이유를 알려줄 때가 되었지, 내 손을 잡아보겠느냐?”


덥썩


형준의 거칠고 단단한 손바닥을 맞잡은 수민에게 처음으로 형준의 능력이 공개되었다.


파아앗


“···이건?!”

그 당시 자신의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는 형준은 수민을 바라보았다. 지금 수민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무수한 가능성 들이었다.

그 당시 수민이 할 수 있었던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형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군요, 아니 이 경우엔 싸움이라 표현하기조차 민망한데요.”

쓴웃음을 지으며 입맛을 다시는 수민에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수민의 표정을 바라보는 형준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확하게는 기억을 지우는 대가로 하루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지. 다만 하루는 무한하지만 우리의 정신과 기억은 유한하다는 것이 단점인 것이지.”


“그날 뒤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한 비밀이 이렇게 밝혀지는군요.”

“이 능력은 대대로 천화령의 후인들에게 계승되어온 것이지. 그리고 나는 이 능력을 네게 전하려고 한단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그 활용법이 무궁무진한 능력, 수민에게 이어졌을 때 어떻게 사용될지 기대가 컸다.


“감히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악을 멸하는, 그날까지 이 한 몸을 불사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요.”


“대대로 전승되어온 이것의 이름은 ‘천년검로(千年劍路)’라 한다. 초대께서 이 능력을 바탕으로 천년동안 무(武)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부디 험난한 너의 앞길에 도움이 되기를.”

형준의 가슴에서 밝게 빛나는 따스한 기운이 형준의 손을 타고 수민에게 이어진다.


으으음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떠는 수민. 이날 세상을 향한 수민의 준비는 완성되었다.


#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제 구실을 다하기까지 육 년.


수민은 협이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며, 보다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웠다.

스승의 품에서 사람이 되었고, 사랑을 깨달았으며, 의와 협을 동경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 순수(純粹)한 정의(正義)의 집행자가 되어 악을 멸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것이다.


스승의 등을 바라보며 보낸 세월. 들개는 사람의 길로 들어섰다.


#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준 스승의 모든 것을 계승한 수민의 도화곡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렀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 날의 악몽. 잊혀지지 않고 평생을 짊어져야 하는 그날의 사건은 낙인처럼 내 가슴 한켠에 스며들어 갔다.


노을빛으로 물드는 하늘. 따사로운 햇살도 어느덧 지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날이 벌써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 이상 날을 세지 않게 되었다.


스승님의 구원 덕분에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가 ‘각성’하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에게 스승님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 주었고, 자신의 모든 것들을 전수해 주었다.


“무엇을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냐?”


지난 세월 간 내게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그가 은은한 복숭아 향을 풍기며 어느덧 내 곁에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께서 주신 목숨을 은혜를 갚기도 전에 헛되이 버리게 될까 무서웠을 따름입니다. 당신께서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려 하다 보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형준은 한동안 제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그렇게 패기가 없어서야 쓰겠느냐. 수민아 나는 너를 내 아들이라 여겼다. 아버지가 해내지 못했다고 너조차 해낼 수 없다고 단정 짓지 말거라.

도화곡(桃花谷)의 정수가 네게 깃들어 있다.


그날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너라면 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악을 징치할 정의의 철퇴가 될 각오는 되었느냐?”


“예, 아버지.”


나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이곳 도화곡에서 보낸 모든 순간들을 상기하며 각오를 다졌다.

인외(人外)의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전신을 뼈를 부러뜨리고 재구성 했던 시술.

선악을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악인들을 베어내는 일상, 나약한 정신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세뇌당하듯 머릿속에 새겨넣은 광기 가득한 정의관.



살아남아 세상의 악을 징치 하겠다는 일념 하에 견뎌냈던 인내의 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이내 수민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다 큰 사내놈이 징그럽게 왜 우느냐. 이제 너의 길을 가거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그리고 하산하면 영영 안 볼 셈이냐, 울긴 왜 울어. 여기 있어 봐야 더 가르칠 것도 없고, 이제 남은 것은 실전 뿐이다.”

수민이 흘린 눈물이 뺨을 타고 턱 끝에 맺혀있자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듯 말이다.


“이 스승이 굳이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곳에서의 가르침을 부디 잊지 말고 내가 너를 구했듯이 너 또한 칠악에 눈이 멀어 사람들을 외면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형준은 떨리는 손으로 수민을 끌어안았다.

한동안 다시 볼 일은 없겠지.



너는 내가 세상에 뿌리는 씨앗, 세상을 지탱하는 거목이 될지 흔들리는 갈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혼탁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찰나의 시간이었다고 형준은 생각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짧은 행복은 황혼과 같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수민은 이내 스승을 살포시 밀어내며 그에게 대례를 올렸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주신 은혜는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은혜를 갚을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당신께 배운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수민은 아련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뒤로한 채 세상을 향해 다시금 한 걸음을 내딛었다.





#


L.C 이후의 6년.


세상은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마나라고 일컬어지는 기운이 대기에 만연했다.


넘쳐 흐르는 기운 속에 몇몇 사람들은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면 세계의 사람들이 양지로 나오면서 사람들은 서로의 비전을 공유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마나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익힐 수 있었다.


마수들은 현대 병기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 마나를 이용한 타격만이 유효했고, 총과 화약의 시대는 저물고 냉병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가는 붕괴되었고, 군대 역시 소멸했다. 군대의 빈자리는 신흥 무벌세력, 초인들의 집단이 대체하였다. 이들은 스스로를 클랜으로 명명했고 클랜의 등장과 함께 각각의 도시들이 요새화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도시들은 지저도시, 산악도시, 해저도시, 천공도시와 같이 각자의 특색에 맞게 재탄생하였다.


생존을 위해 초인들은 클랜을 만들었고, 이들은 각기 다른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때로는 대립하고 결속하며 격변의 시대에 적응해갔다.


#


휘이이잉


한겨울의 산은 추웠다. 길을 나서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폐부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 엄동설한에 산을 내려간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자살행위와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화곡에서의 끊임없는 단련을 통해 이룬 육체는 그야말로 강철과도 같아서, 차갑다고 느낄지언정 ‘버티지 못한다’라는 일말의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온 지 육 년. 지난 육 년간을 회상해 본다. 결코 녹록치 않았던 세월. 육 년 이라는 세월은 마기에 눈이 먼 청년이 변할 수 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거 수민의 모습이 슈트가 잘 어울리는 탄탄한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수민은 우람한 보디빌더.


외로이 살아온 청년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기 때문일까, 무력하게 쓰러졌던 청년은 강해졌다.


도화곡의 복숭아 꽃이 수없이 피고 지면서, 수민은 자신을 구원해준 스승을 닮아갔다. 살인의 쾌락으로 가득했던 그의 심장은 정의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어느덧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보는 첫눈인지.

콧등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눈꽃 덕분일까. 수민은 정신을 차리고 우선은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벗어나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폐허가 된 마을이었다. 매캐한 탄내와 비릿한 피 냄새가 풍기는 이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상이 이 꼴이 났다니, 정말인지 익숙해 지지가 않네.’


아무리 마수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이런 변두리 마을조차 폐허가 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서울까지의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겠어.’

수민은 이내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했다.





쏟아지는 눈과 매섭게 휘몰아치는 칼바람에 수민은 잠시 그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이거 아무래도 숲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겠는걸. 바람이 이렇게 불어서야 도저히 앞을 분간할 도리가 없으니.“

더군다나 겨울이라 빠르게 해가 지는 상황, 수민은 해가 지기 전에 하룻밤을 보낼 곳을 찾아야만 한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민은 저 멀리 작은 점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내며 정신없이 달렸다.


순백의 세상에 붓질을 하듯 흔적을 남기며 달려간 곳에는 작지만, 하룻밤을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오두막이 있었다.


똑똑똑


”계십니까?“

”······“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번의 노크와 물음에도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수민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을 증명하듯 문에서는 듣기 싫은 소음이 났다.


문을 닫고 들어와 보니 곳곳에 쌓인 먼지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에 확신을 더했다.


‘음음, 눈을 피할 수 있게된 것에 만족해야지.’

비록 침상 하나 없는 초라한 곳이지만 하룻밤을 지내는 것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저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세상에 정적이 찾아왔다. 밤은 마물들의 시간. 그중에서도 숲속에서의 밤은 사냥의 시간이다.



드르르르르


밤이 고요한 까닭에 지면이 떨리는 것이 고스라니 느껴진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오두막이 들썩이기 시작하고 수민은 살며시 눈을 떴다.

이제 갓 잠에 빠져들었던 수민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한 불청객은 없을 것이다.


”어느 눈치 없는 것이 야밤에 시끄럽게 하는 거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수민은 자신의 숙면을 방해하는 것은 용서치 않겠다며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문을 발로 쾅 하고 차며 밖으로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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