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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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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945

작성
21.0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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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3화

DUMMY

#

.

.

.


일흔 다섯 번째 조각이었을까. 세는 것을 포기한 수민은 작금의 상황을 그저 받아들였다.


‘정말··· 짐승 그 자체였군.’

수민은 광기에 젖어 피와 살인에 심취했던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거대한 악이었는지를 일흔다섯 번의 빙의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흐르는 눈물은 너무나도 많은 후회를 담고 있었다. 마기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싸늘하게 식어있던 수민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하고 온몸에 퍼져있는 선기는 마기를 씻어내렸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내가 세상의 종말을 앞당긴 셈인가.’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깊은 회한을 느끼며 수민은 눈을 감았다.


#


-촤아아악

수민이 겪은 모든 시간들을 지켜보던 남자는 수민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당겼다. 조용히 눈을 뜬 수민의 눈빛에서 더 이상 마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영혼 없는 동공만이 방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갱생시키려 하는 이유가 뭡니까?”

조금은 공손해진 어투로 수민은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내 마지막 후회. 너는 내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미련이다.”


“나는 더 일찍 세상에 나왔어야만 했다. 더 일찍 내 손으로 칠악을 막았어야 했어.

아니 어쩌면 내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등선 만을 꿈꾸며 나와 연관된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려고 했었지.

사람도. 사랑도. 의. 협. 오욕. 칠정. 이 모든 것들을 버리면 하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잊는 것이 답은 아니었던 거야. 내가 처음 칼을 잡았던 이유는 신선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어.

약자를 돕고 싶었고, 협객이 되고 싶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원했지.

모두를 사랑하고자 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것들을 외면해 버렸어. 어느 순간부터 반도 무맥의 유일한 전승자라는 직책이 나를 옭아맸던 거야. 내가 반드시 하늘 끝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만 같았지. 하늘 끝에 닿으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칠악이 다시 태동했음을 알면서도 방치했고, 삼청이 네 손에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친구들을 잃었고, 내게 남은 건 알량한 이름 뿐. 할 수 있었던 것을 외면할수록 오히려 멀어져간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거야.

신선의 길은 비인(非人)의 길이 아니었는데···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잃고서 어떻게 하늘에 오르겠다고 한 건지···”


“그래서 자네는 내 후회이고 미련인 것일세. 자네의 죄 만큼이나 나의 책임도 크다네.”


“그러니 부디 나의 후인이 되어주게. 자네가 죽인 사람들, 내가 외면한 것들이 다시 돌아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속죄해야지.”


“누군가는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포기하지 말아야지!

천륜, 도덕, 윤리가 바닥을 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그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


처음의 그 압도적인 위압감은 사라지고 수민의 앞에 있는 건 울고 있는 그저 한 어린아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새 백발이 되어버린 그 사람의 주름진 여린 손을 수민은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나 또한 당신 덕분에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 끊임없이 죽이고 물어뜯으며 끝내 상대의 심장을 파먹으며 조롱하던 날들.

천살성의 기운 때문이라는 건 변명거리조차 될 수 없지.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저앉는다면 그건 내 손에 죽은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겠지.

그래서 추악한 목숨이지만 남겨진 자들을 위해서 살아보려 해. 일흔 다섯 번의 빙의는 마기에 잠식되어 피에 목말랐던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새겨주는 것이었지.”


“내가 행한 것들. 나의 업보. 모두 내가 감당해야지. 그리고 이젠 나 같은 놈들로부터 내가 지켜내야지. 벌레만도 못한 삶이었지만 이렇게라도 기회를 준 당신에게 감사해.”


“당신이 짊어진 무게. 나의 죄. 모두 내가 업고 갈게.


고마워 내가 이렇게라도 속죄할 수 있도록 나를 일깨워줘서.”


어느새 무릎을 꿇은 채 사내의 손을 감싸 쥔 수민은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울음도 잠시 이내 정중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피를 토하는 각오로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의 의지, 내가 잇겠습니다.”

이날 후회로 점칠 된 두 남자는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며 밤새도록 죽어간 사람들을 기리며 위령제를 올렸다.


#


다음날


조금은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도 무맥의 마지막 전승자 박형준.”


“칠악의 견주였던 정수민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스승님.”

수민의 진심 어린 아홉 번의 절이 끝나자 둘은 마침내 사제지간이 되었다. 서로 아는 것은 이름과 출신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둘은 서로가 거울과도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는 분명 암살자로서는 완벽에 가까웠을테지. 전장의 한복판에서 삼청을 죽였으니, 이는 확실할 것이야.”


“하지만 무인으로서, 전사로서의 정수민은 부족하다. 지금까지 암살자로서 네가 쌓아온 것들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할 것이다. 분명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믿는다.”


다시금 시작된 수련.


“기본은 육체.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약한 몸뚱이부터 시작하자.”

“지금부터 네 모든 뼈를 부러뜨리고 다시 붙일 것이다.”


“기골은 더욱 강대해지고 뼈는 더욱 단단해지는 거지. 쇠를 두드리면 단단해지듯 사람도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악명높은 칠악의 견주로 알려진 그 얼굴을 갈아엎을 수 있지.”


흐읍


입에 재갈을 물리고 전신마취를 시킨 후 뼈를 정성스럽게 조객내기 시작한다.


우드득


몸은 마취가 되었지만, 정신은 마취를 할 수 없기에, 수민은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영혼까지 스며드는 고통.

강철과 같은 의지는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한다.


끄아아아아아악


영혼의 절규.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죽었을 고통을 수민은 피눈물을 흘리며 견뎌내었다. 그와는 별개로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수민의 죽음을 막기 위해 형준은 끊임없이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숨을 붙잡은 상태로 수민은 부목에 실려 시체처럼 숨만 쉬었다.


형준은 바닥에 드러누운 수민의 주위로 주술을 펼쳤다.


고속재생술

수민의 상처에서 빛이 머물기 시작하며 상처들이 빠르게 재생하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회복할 때까지 칠일. 그동안 네게 온갖 영약을 먹여 강제로 환골탈태를 시킬 거란다.”



“힘들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견디자. 칠주야 단 칠주야면 기초를 다질 수 있다.”

칠일. 짧지만 기나긴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고통으로 지새우는 시간.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을 수민은 단 하나의 의지로 견뎌내었다.


속죄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살아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그저 스스로를 고통 속에 던질 뿐이다,


쇠를 단련하듯 반복되는 고통 속에 수민의 육체는 강철과 같이 단련되어갔다.


일곱 번의 죽음을 넘어 완성된 육체는 영약의 섭취로 인한 환골탈태까지 함께하여 완전무결한 전사의 육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기존의 호리호리했던 몸은 사라지고, 강철의 육체가 탄생했다.

“고통이···많이 심했을 텐데 정말 잘 견뎌 주었구나···”

수민을 지켜보면서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그 모습이 형준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의 절규.


미안함, 죄책감, 고마움. 여러 가지 감정의 편린들이 형준의 가슴을 헤집었다.


“스승님.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정도 고통, 이미 충분히 각오했던 일입니다.”

슬픈 미소를 짓는 수민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


다음날


햇살이 커튼을 뚫고 밝게 비추는 아침.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창틈 사이로 스쳐지나 들어왔다. 콧등을 스치는 바람은 아침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듯 수민을 깨웠다.


근육이 지르는 비명을 느끼며 수민은 형준에게 문안 인사를 하였다.


“잠은 편히 주무셨는지요.”

쾡 한 얼굴로 수염이 잔뜩 낀 채 말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어색한 상황을 만들었다.


“잠은 네가 더 못 잔 것 같구나.”


“아침부터 해결하고 씻도록 하자꾸나.”

형준이 이불을 걷고 식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수민은 미리 차려놓은 음식을 선보였다.


흐트러진 계란말이, 산나물 무침, 설익은 밥. 초라한 반상이지만 형준은 진심으로 맛있다는 듯 밥을 비웠다.


“처음 해 본 밥 치고는 맛있더구나.”

맛이 있을 수가 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수민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해였다.


“부끄럽습니다.”

수민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고개를 떨궜다.


한바탕 씻은 후 그들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골짜기 깊은 곳에는 복숭아 꽃이 만발해 있었다. 흡사 서왕모의 도원향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


복숭아 꽃들을 헤쳐가며 도착한 중심의 텅 빈 공터. 그곳에 둘은 자리를 잡고 진지하게 수련에 임하였다.


“지금부터 내가 네게 전하는 것은 천년무맥 그 자체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은 무의 정수이다, 그리고 이를 잇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정의로운 마음이 중요하지.

비장한 형준의 모습 탓일까 흩날리는 꽃잎들도 일시적으로 허공에 멈추어졌다.


“천화령(天花靈).” 극에 이른다면 하늘 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해지지. 아직 나도 극에 이르렀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의 숙원을 이루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이다.


자부심 가득한 형준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민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접하는 정순한 무공.

“나를 믿고, 새로이 태어난 너를 믿거라. 그리하면 이 빌어먹을 세상에 다시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야.”

무수한 감정을 내비치는 형준의 눈동자. 수민은 그 눈빛을 담담히 마주하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악을 멸하는 정의의 집행자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하여 천화령(天花靈)을 기필고 대성할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수민은 굳은 결의를 가졌다. 진정한 수련이 시작된 것이다.


#


첩첩산중. 골짜기에 펼쳐진 결계는 수민의 수련을 돕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모든 상황, 모든 종류의 상대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


수민은 매 순간 가장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최강 최악의 적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곳에 펼쳐진 주술은 끊임없이 괴수들을 쏟아내며 수민을 압박하였고, 수민의 빈틈이 생기는 순간 가장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가 빈틈을 노린다.


가랑비에 젖듯 강철과 같은 수민의 육체에도 조금씩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민의 기감은 한없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오감의 확장. 육감의 개발.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흘려보낸다. 가벼운 공격은 단련된 육체를 믿고 무시한다.


천화령(天花靈).

열두 가지 꽃의 형.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무공.



수민은 물밀 듯 밀려드는 괴수의 파도 앞에서 피고 또 지며 열두 가지 형을 몸에 체득 시킨다.


“네게 가장 익숙한 무기가 창이라면, 마음껏 나를 꺾어보아라.”


최고의 수련은 대련.

괴수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공백이 스승과의 대결을 통해 채워진다.


어느덧 수민의 창에서 더 이상 기존의 살기 어린 잔혹함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극히 실용적이고 간결한 투로. 단순한 막고 찌르고 베는 동작의 반복일 뿐이었지만 휘두르는 동작 하나 하나에 꽃이 피고 진다.


눈을 뜨면 육체를 단련하고 영약을 섭취하며 대련을 한다. 정신없이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은 한 자루의 칼을 만드는 과정과 동일하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칠악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창술, 검술, 권각술··· 십팔반 병기에 구애받지 않도록 모든 무기술을 숙달한다.

제각기 다른 병기들을 달인의 경지까지 익히며 수민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였고

칠흑의 암살자, 죽음을 삼키는 짐승을 마침내 베어내며 수련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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