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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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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9,945

작성
21.03.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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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화

DUMMY

#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이미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냄새가 수민의 코를 자극했다. 이 녹진한 냄새, 스튜인가.


정말인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흐뭇하게 음식을 기다리자 간단한 빵과 스튜가 쟁반에 올려져 수민에게 전해졌다.


”제가 가지고 올라갈게요.“

아주머니에게서 쟁반을 받아 음식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가는 그의 눈에 소소한 행복이 깃들었다.


똑똑


”식사 가져왔어, 음식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난 간단한 소면 정도나 생각했는데 정성 가득한 고기 스튜가 나올 줄이야.“

”고기 스튜? 여기서 고기면 귀한 음식인데, 이 정도면 여행객이 아니라 중요한 손님 대하듯 하는걸. 물론 감사하지만 말이야.“


방문을 열고 그녀의 방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던 둘은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만난 지 얼마 안된 사이이다 보니 궁금한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그녀가 스튜에 빵을 찍어 먹으며 물었다.

”뭔데, 물어봐.“

”둘 중에 어느 모습이 진짜야? 정의에 환장한 모습과 지금처럼 멀쩡한 모습 중에서.“

”그걸 알아야 나도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아서. 어느 쪽이든 싫진 않지만.“

그동안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참고 있었던 듯 그녀는 의자를 끌고 가까이 다가와 눈을 크게 뜨고 수민과 눈을 마주쳤다.


맑다

유리처럼 투명한 눈이라고 생각했다.

혼탁한 나의 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눈이다.


수민은 그녀의 눈이 너무 밝아서 계속 마주하다가는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살짝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둘 다 내 모습이야. 정확하게는 악한 것을 좌시하지 못하는 탓에, 머릿속에서 스위치가 켜진다고 할까. 내 마음속에 스위치가 커지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 고동치고 악을 멸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거지.“

그런 수민의 모습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작은 미소를 구태여 숨기지 않고 수민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정말 틀에 박아 놓은 듯 똑같네.“

”나도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도대체 내가 누구를 닮았다는 거지? 그렇게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건 내가 아니야.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대입하는 건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수민의 말에 아차 싶었던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확실히 오해의 소지가 있던 것이 분명하기에 어쩔 수 없이 진실을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건 인정할게.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 내 아버지와 너의 그 정의에 대한 광적일 정도의 집착.

단순히 말로만 떠드는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리 몸소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그 모습이 겹쳐 보였던 거야. 좋아했거든 우리 아빠, 그놈의 정의 때문에 딸을 내팽개치고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지만 말야.“


자칫하면 무거울 수 있는 말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녀. 조금은 까탈스럽게 물어본 것이 후회가 되는 수민이었다. 하필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을 몰랐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겠네, 아버지와 닮아 보였다니. 까탈스럽게 물어서 미안. 그래도 좋게 봐 줘서 고마워.“

”그렇게 미안해할 만한 건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넌 당당한 모습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니까. 우린 동료니까 이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풀이 죽어있는 수민의 허리를 찰싹하고 가볍게 때리며 피식 웃는 그녀.


그래, 저 태연자약한 모습.

어떤 일이 있어도 당당한 여전사의 풍모. 문득 자신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좋아서 함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내면의 찬란한 아름다움.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조금은 어색했던 둘의 사이가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런 게 동료가 아닐까,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밤은 점점 깊어지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기 때문일까 조금씩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하는 수민과 정후였다.


”흐아아암.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닌데 피곤하네.“

눈을 비비며 피곤한 듯 연신 하품을 하는 그녀. 그리고 수민 또한 흐리멍텅한 눈빛을 보였다.

”서울에서 고생했기 때문이겠지,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피곤할 수밖에.“

”그런가, 하긴 수민이 너 구한다고 내가 고생하긴 했어.“

몰려드는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녀가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수민은 그녀를 안아 들고는 침상으로 데려갔다.

막상 옮겨놓고 보니 쌔근쌔근 자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자, 슬쩍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수민.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극도의 졸음이 몰려오며 정신을 잃고 픽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건―’


#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수민의 얼굴에 햇빛 한 줄기가 내리 앉았다. 조잡하게 엮인 통나무 사이로 비친 햇빛은 어지럽던 수민의 정신을 잠시나마 일깨우는 데 충분했다.


”으음···“


신음소리와 함께 깨어나 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어딘가의 창고로 짐작되는 먼지가 가득한 장소. 두 팔은 기둥 뒤에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기(氣)의 순환 역시 단전에서 요지부동이다.


‘이 마을, 무언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우라고 여기고 긴장을 풀었던 것이 문제였나.’

낯선 곳에서 의심 한 점 없이 긴장을 풀어놓은 스스로에 대해 자책을 하며 수민은 상황파악을 시작했다.


눈앞에는 철창이 가로막고 있었고, 주변에는 자신을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묶여서 제압당한 모습이다. 조용히 눈을 돌려 살펴보지만 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것은 전원 건장한 남성들 뿐이다.


‘단순한 쇠사슬 따위, 간단하게 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를 벗어난다고 해서 정후와 내 무장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아. 침작하자 정수민. 차분하게 분석을 마치고 행동하는 거야.’

우선은 그녀를 찾는 거야.


때마침 철창 밖에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자 정신을 잃은 척 다시 눈을 감는 수민.

덜컥 소리와 함께 창고의 문을 연 것은···

수민을 환대하던 촌장과 뱃살이 두둑한 돼지가 생각나는 민머리의 남성이었다.


”오오, 아주 싱싱하군. 이 정도라면 비싸게 넘길 수 있겠어, 역시 자네만 한 인재가 없단 말이지 끌끌끌.“

”껄껄껄, 매번 이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직접 한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전날에 음식에 약을 타서 놈들이 자랑하는 기(氣)는 꼼짝도 못합니다요.“


촌장의 말에 돼지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수민을 바라보았다.

세상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목구멍에 기름진 목소리만 들어보아도 느껴진다, 그 추악한 모습이.


”자네가 그렇게 자신한다면 직접 살펴보는 게 예의겠지, 몸에 흉이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 이런 투박한 몸을 좋아하는 손님분들도 계시니까 말이야. 정 안되면 투기장에 넣어도 상관없지.“


수민의 몸을 구석구석 더듬으며 살피는 그의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지만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였다.


”오호 이거 난 놈일세, 몸종보다는 투기장에 넣으면 아주 볼만하겠어. 요놈 몸이 아주 끝장나는구만. 특등품이야 특등품. 그래서 언제 인수받을 수 있는 거지? 당장이라도 데려가서 경매에 올리고 싶구만.“

”단전도 제거해야 하고, 인장도 새겨야 하지만··· 선생님이 흥분하신 걸 보니 특별히 오늘 중으로 처리해서 넘겨드리지요.“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한단 말이지,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 끌끌끌.“


단순한 인신매매를 넘어서는 규모에 수민은 조용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곱게 죽이진 않겠다 더러운 놈들.


”남자들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여자들을 보고 싶은데, 어때 물은 좀 괜찮은가?“

노골적으로 음탕한 시선을 보내는 남자의 눈길에 촌장은 경박한 몸짓으로 답했다.


”제가 언제 선생님을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요? 바로 옆 창고에 모아놓았으니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면 되겠습니다. 껄껄껄.“

비열한 웃음.

‘바로 옆 창고라··· 각오해라 버러지 새끼들.’

이곳에 갇힌 사람들과 정후 모두를 구하고 시궁창보다 못한 놈들을 심판하겠다는 마음으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문이 쾅 하고 닫히며 그들이 사라지자 수민은 몸에 힘을 주는 것 만으로 간단하게 단단히 묶인 쇠사슬을 끊어내었다. 저들의 잘못이라면 수민이 내공에만 의존하는 무인이라 착각한 것이겠지.


주위를 돌며 정신을 잃은 사람들의 뺨을 후려친다.

”정신이 듭니까?“


수민의 가벼운 손길에 사람들은 약 기운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당신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이곳에 잡혀있다는 것이지.“

”분명 밥을 먹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는 모르겠어.“

”움직일 수 있나?“자리에서 일어나 보지만 이내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아직은 무리요. 약 기운이 가시기 전까지는 힘들 것 같군, 아마 여기 모인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요.“

그의 말에 다들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같이 붙잡힌 동료를 구해야 한다. 무슨 짓을 당하고 있을지 몰라.“

다급한 수민의 말에 다들 웅성거리며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나도 내 아내를 되찾아야 하오.“

”내 동료를―“

”딸아이를 구해야 해!“

수민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다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수민이 말했다.


”나와 함께할 사람은 손을 들도록. 목표는 단둘. 붙잡힌 동료를 구하고 이 썩어빠진 마을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후죽순으로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말없이 침묵을 유지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민은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지금 이곳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와 한통속인 노예상들이 들어와 있다. 너희가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는 동안 놈들은 우리에 대한 품평회를 열었지.

우리 모두를 데려가려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꽤나 규모가 있는 놈들일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호위대의 규모도 대략 짐작이 가능하지.“

수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전에서 웅크리고 있는 기(氣)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두 팀으로 나눈다. 정찰조와 구출조.“

수민의 설명대로라면 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태로는 구출은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게 도망치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는 노릇.


”지금의 우리는 호위대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불확실하오만.“


계획은 좋다만 내공을 금제 당한 자신들의 한계가 명확하기에 자신 없는 모습을 내비치는 남자.

무인이 내공을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무력감과 상실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바라보며 대다수는 그저 폐인 같은 나날을 보낸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다수의 무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

수민은 그런 의미에서 이레귤러 그 자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정찰조를 내가 이끌 생각이다. 여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빼앗긴 무장을 되찾는다. 자신 없으면 빠져도 좋아, 강요하지 않는다.“

내공이 없다는 것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이들의 가슴속에 기이한 열기가 자리 잡았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한번 해 볼만하지 않을까 라는.


”한번 해보자고, 이대로 팔려가나 여기서 죽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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