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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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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409,945

작성
21.02.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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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화

DUMMY

6.

#


”제가 아는 가장 맛있는 식당이에요.“


그녀를 따라 도착한 식당은 번화가에서 벗어나 있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거리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드문드문하게 보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도시는 활기찼고, 인적이 드문 저녁 골목길임에도 불구하고 치안이 걱정되지 않았다.


”여기는 뭐가 가장 맛있습니까? 유진씨가 자신 있어 한다니 기대가 돼서요.“


사실 오랫동안 심문을 당했던 탓에 뱃속에선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꼬르륵


예상치 못한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다.


후훗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드레이크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일품이에요. 사실 주방장님이 한때 유명한 헌터 이시기도 했고요.“


그녀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나는 스테이크 2인분을 주문하였다.

”여기 드레이크 토마호크 스테이크 둘이요.“


주문을 마친 후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을 묻는 와중 입가에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이익.

쩔그럭 쩔그럭.


맛있게 익어가는 고기의 소리와 리듬감 넘치는 팬의 조화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같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춤추는 저 고기는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까.’


츄릅.


코끝을 자극하는 향신료의 향연에 나는 정신을 잃고 침을 흘리기 바빴다.


”주문하신 드레이크 토마호크 스테이크 2인분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음식을 내오자 나는 이성을 잃고 허겁지겁 입에 고기를 넣고 있었다. 혀끝에서 터지는 육즙.


나의 미각을 농락하는 음식 앞에서 나는 ‘항복’이라는 단어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맛의 향연임에 자명했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맛있어 보여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에요.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잘 데려왔다 싶네요.


그나저나 첫인상과는 많이 다르시네요 수민씨는. 처음에는 뭐랄까 상의 탈의하고 흉폭한 몸으로 초병을 맨손으로 쥐고 있는 모습에 무슨 사이코 변태가 사고를 친 건가 싶었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어요 저는.“


”아 그건 정말로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수민은 얼굴을 붉힌 채 당황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들의 대화 역시 깊어져 갔다. 편안한 분위기에 나른해진 탓일까 수민은 그녀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하여 대답을 하며 때로는 웃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형의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진 채 수민은 자신의 과거와 서울로 향한 계기에 대하여 조금씩 말을 이어갔다.


즐겁게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지나 달이 밝게 비추고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분위기에 취한 그들이 향한 곳은 유진의 집이었다.


넓직한 초록 대문이 인상적인 유진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꽤 나 큰 집이었다.

”들어와요. 멍하게 서 있지 말고. 수민씨는 이 방을 쓰면 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와요. 내 방은 바로 건너편이니까.“


그녀의 말을 끝으로 시끌벅적했던 서울에서의 첫날 밤이 지났다.


#


아침이 밝아오자 수민은 그녀와 함께 도시를 둘러보았다. 도화곡에서의 멈춰있던 시간과 달리 세상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빽빽하게 모인 건물들의 숲은 수민이 생각하는 서울이 맞는 것이라고 외치는 듯 하였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누구나 무기를 소지한 채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각양각색의 다양한 무기와 초인들을 보자 수민은 문득 생각했다.


‘이왕 평가를 받는 거라면 조금은 진심일 필요가 있겠지.’


”유진씨. 저도 무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을까요?“

수민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미안한 듯 주춤거렸다.


”하긴. 생각해보니 당신 무기가 없었네요. 무투 계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그러면 시간이 얼마 없으니 제작보다는 기성품을 사야겠고, 따라와요.“


#


번화가를 벗어나 구석진 골목길 사이를 배회하며 도착한 곳은 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 ‘도철’이라고 적혀 있는 덜렁거리는 현판만이 있는 곳이었다.


끼이익.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한 녹슨 철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수많은 무구들 이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그녀가 힘껏 소리를 지르자 안쪽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묶음 머리. 가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자상이 인상 깊은 거구의 외팔 남자가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등장한 것이다.

그는 가게의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공격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무슨 일이냐 기별도 없이, 그것도 못 보던 놈과 함께?“

도철이라 짐작되는 사내가 수민을 위아래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말하자면 좀 길어요. 우선은 이 사람이 무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왔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지만 사내는 수민만을 지긋이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극한으로 단련된 육체. 완성된 기도. 거기에 짙은 마나의 향기라, 이런 녀석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지?‘


강자가 즐비한 서울에서도 내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초인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떡 하니 벌어진 어깨, 숨길 수 없는 드넓은 광배근, 두근거리는 대흉근은 수민이 멋진 근육의 사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단순한 외관만으로도 일반인들을 압살하는 분위기. 수많은 강자들과 연이 있는 도철의 감은 이 자는 발톱을 감춘 호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도철은 이내 뒤를 돌아서 가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외쳤다.


“놈. 따라오너라.”


도철을 따라 들어간 곳은 방금과는 궤를 달리하는 곳이었다. 좁고 허름한 건물 안에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깊고 어두운 회랑의 끝은 놀랍게도 끝이 보이지 않는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황야에는 수많은 무구들이 각기 다른 비석 앞에 꽂혀 있었다. 그야말로 무구들의 무덤과도 같은 곳이었다.


“오오오~ 아저씨 여기는 저도 처음 보는 장소네요.”

유진은 처음 보는 광경에 몸을 가볍게 떨며 나지막이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는 주인을 잃은 무구들의 안식처.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길을 열어주는 곳이다. 너 정도의 기도를 가진 녀석이라면 이 녀석들도 만족하겠지.”

도철은 그 말을 끝으로 유진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과연 네 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는구나.‘


도철이 자리를 떠나자 수민은 비석들 사이를 걸었다.


각각의 무구들에는 각기 다른 사연들이 가득했고, 이중 분명 자신과 연이 닿는 무구가 있을 것이라 수민은 생각했다.


도산검림이 이러할까, 수많은 무구들 가운데 자신의 것을 찾기란 요원해 보이는 그 순간.

저 멀리 황야의 한 가운데, 비석조차 없는 곳에서 수민은 울고 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창백하리만큼 시려 보이는 순백의 피부와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 얼음같이 투명하면서도 아름다운 붉은 눈의 백발의 소녀.

어째서 이곳에 사람이 있는지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


수민은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의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기고는 멍하니 울먹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기다리고 있어요.”

“누구를?”

“······”

이어지는 침묵, 훌쩍이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세상을 구할 정의의 사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뜻밖에도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민의 예상을 벗어났다.


“이거 참 우연이구나, 오빠도 꿈이 정의의 사자가 되는 것인데 말이야.”

수민은 주저앉아 있는 소녀에게 자신의 손을 건네었다.


“정의의 사자 지망생으로는 안될까?”

“······”

한동안 수민을 바라보던 소녀는 말없이 수민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수민과 소녀를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지며 시야가 반전되었다.



#

파앗


소녀의 손을 잡는 순간 수민은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소녀의 기억에 휩쓸려 갔다.


기억의 밑바닥.


그곳에서 수민이 본 것은 홀로 외로이 싸우고 있는 소녀였다.


수많은 전장,


영겁의 시간 속에서 소녀는 세상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녀들의 시체가 산이 되고, 흘린 피가 강이 되었지만 결국,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는 없었다.


-뿌우우우우


최후의 나팔 소리와 함께 등장한 묵시록의 용.


그녀는 세상을 구하지도 스스로가 구원받을 수조차 없었다. 수민은 울고 있는 소녀에게 강한 인연을 느끼며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새하얀 빛과 함께 멈춰있던 소녀의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것은 한때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했던 소녀의 기록 』


『 무수히 많은 전장을 누비며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싶었던 소녀의 바램』


『 그대 정의의 사자를 자청하는 자여, 세상의 절망을 걷어내고 빛을 되찾을 각오는 충분한가 』


“각오라···


내게 각오를 묻는 다라···”

가슴을 울리는 장엄한 목소리에도 수민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게 외친다.


“각오가 충분하냐고? 충분하고 말고, 지난날의 잘못을 속죄하기로 결심한 삶이다. 묵시록의 용을 물리치고 세상에 광명을, 정의로운 세상을 되찾을 것이다!”

다시금 이 자리에서 스스로의 맹세를 시험하는 존재에게 수민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슬픔, 고통, 절망, 좌절. 이 모든 것들은 그 누구에게도 나누어 주지 않아.

나는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건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 나 홀로 감당하겠어.

그러니까 너의 슬픔도 내가 가져가마.”

수민은 소녀를 품에 안고 한참을 쓰다듬었다.

상처입은 영혼을 위로하듯.


#


다시금 세상이 반전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녀는 사라지고 수민의 손에는 순백의 아름다운 창 한 자루가 있을 뿐이었다.


새하얀 눈과 같은 소녀는 햇살에 녹아내리듯 사라졌지만, 수민의 가슴에 그녀의 의지는 전해졌다.

’한겨울의 꽃과 같았던 당신의 이름은 설화(雪花). 내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수민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한 채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밖으로 향했다.


#


달빛이 구름에 잠긴 밤. 서늘한 밤공기가 도시에 내려앉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텅 빈 밤하늘을 맴돌았다.


“예. 그는 이용가치가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아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그는 결국 서울의 검이 될 것입니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는 듯 하였다. 지붕 위, 모두가 잠든 시간 은밀하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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