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9,740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8.04 01:30
조회
226
추천
0
글자
11쪽

광풍이 몰아칠 때

DUMMY

“피니, 나 지금부터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베개 윗머리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잠들어있는 피니엘을 조심스럽게 흔들며 유리하는 말했다.


“나래네 동네에서 어떤 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대. 사념체의 소행일지 모르니까 가서 한 번 살펴보려고.”


이제 겨우 오전 5시 반이 되어가는 지금 시각은 평소 잠이 많은 리하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대이다. 하지만 나래가 보낸 메시지가 너무 충격적인 것이라, 원래 할 일 없으면 오전 10시, 11시까지 늘어지게 뒹구는 태평한 성격의 리하도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위험한 일이야?”


리하의 나지막한 속삭임에 피니엘도 부스스 눈을 떴다. 원래는 인간의 형태지만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휴식을 취할 땐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이 외계인 공주님은 눈을 뜨자마자 하품과 함께 크게 기지개를 켰다.


“위험할 수도 있어.”


나래가 전해준 사고가 사념체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면 일반인들로서는 뒷수습을 깔끔히 마치기 어렵다. 사고 현장은 경찰이나 구조대가 통상적으로 처리하겠지만 거기에 숨어서 에너지를 전송 중일 사념체의 흔적을 찾아내고 포획하는 건 리하와 같은 일족의 일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에너지를 다 전송한 사념체는 다시 씨앗의 형태로 숨어있다가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기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찾아내서 정화해야만 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럴 거야.”

“나도 같이 가서 도와주면······.”

“아니, 위험할지 모르니까 피니는 일단 집에 남아 있어. 거기만 살펴보고 나도 우선 집으로 돌아올 테니까.”


피니엘이 같이 나서려 하는 걸 리하는 단칼에 거절했다. 사념체를 상대하는 일에서 그녀가 도움이 된 적은 냉정히 말해 없었던 데다, 또 현장은 경찰과 구조대로 인해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을 텐데 거기서 피니엘 한 사람만을 신경 쓸 수가 없어서였다.

피니엘 본인도 그 점을 생각하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기다리고 있을게.”

“착한 아이라 마음에 드네.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좀 더 자.”


급히 옷을 갈아입은 리하는 피니엘을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빠도 일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기에, 평일이면 항상 불이 켜져 있던 거실과 주방도 오늘은 캄캄했다.

집을 나서기 전 리하는 잠시 안방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아빠, 어제 오언 씨가 다녀간 뒤로 오랫동안 말다툼을 벌였는데 둘 다 별 일 없으려나.

말다툼 이후 엄마 아빠 모두 기분이 상해있었던 게 생각나서 리하는 다녀오겠단 말없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로 시커먼 빗방울이 부슬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몹시 찝찝한 날씨였다.



* * *



동네 골목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여러 대의 구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현장 조사를 나온 경찰들, 시신을 수습하러 나온 구조대원들과 이 날벼락 같은 참상을 구경하기 위해 아침부터 우산 쓰고 부지런히 몰려나온 동네 사람들이었다.

경찰들은 몰려든 구경꾼들을 제지했지만 사람은 많고 길도 좁아서 잘 되지가 않았다. 작업을 할 만큼의 공간을 벌어놨지만 그뿐, 워낙 갑작스런 일인데다 또 오늘따라 여기저기에 사고가 많아서 처리하는 인원이 부족한 탓이었다.


“감식반은 아직 안 왔어요?”


몰려든 인파들 사이를 뚫고 형사 한 사람이 현장의 경찰들에게 신분증을 내밀어보였다. 강동경찰서 강력 1반 신진흥이라 되어 있는 경찰신분증에 젊은 순경 하나가 바로 길을 터주었다.


“보고는 했는데 지금 여기저기에 사건들이 많아서 늦을 것 같다고 합니다.”

“뭐 오늘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니까 이해는 하는데, 상황이 이래서야 현장보존이나 제대로 되려나 이거.”


궂은 날씨와 시체 보러 몰려나온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며 신진흥은 혀를 찼다. 마찬가지로 난감한 기분이던 순경도 쓴 표정이 되어가는 동안, 진흥은 바로 목격자가 누군지 물어보았다.


“최초 목격자가 누굽니까?”

“이 동네 사는 여고생입니다. 아침 일찍 운동 나가다가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순경이 가리키는 쪽을 보자 우산을 쓴 여학생 하나가 여경 하나와 무언가 말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목격자라는 그 여학생과 구조대원들이 수습 하고 있는 사건 현장을 번갈아 보던 진흥이 다시 순경에게 말했다.


“시신들 상태는 대충 어떤지 들었어요?”

“감식반이 와야 자세한 걸 알겠지만, 제가 여기 와서 처음 봤을 때도 장난이 아니었죠. 가장으로 보이는 사람만 사지 멀쩡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난자돼있고 토막까지 쳐져 있었거든요.”

“토막이요?”

“애 둘, 애 엄마, 합쳐 세 명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순경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지만 진흥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현장의 핏자국과 아직도 수습 중인 시체들 파편, 골목길에 낭자한 피바다와 정신 못 차리고 얼어 있는 최초 목격자를 유심히 살피며 우선적으로 가정을 해보았다. 한 집의 가장이 가족 전체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광경인데, 그 원인이 뭘까. 무슨 동기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신원 파악은 지금 한창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을 감식반이 해줄 몫이지만 진흥은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일가족이 자살, 주도는 가장, 하지만 자살이라기엔 너무 잔혹한 죽음의 방식.

예전에 이런 비슷한 걸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더라. 3년 전이었나 4년 전이었나.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시감에 진흥을 혀를 차면서 최초 목격자라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보았다. 어쨌든 현장 파악을 하려면 목격자의 진술도 들어야 하니까.


“어이, 학생. 잠깐 나 좀 봐봐.”



* * *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나래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 부스스한 머리와 거뭇거뭇한 수염을 기른, 빈말로라도 깔끔하다고는 말 못할 것 같은 후줄근한 외양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입고 있는 빛바랜 가죽점퍼만큼이나 추레하게 보였으나, 쏟아지는 눈빛은 초라한 몰골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굳건했다.


“나 강동서 강력반 신진흥이라고 하는데, 학생이 여기 최초 목격자라 하더라고.”


강력반 형사라 밝힌 진흥의 말투는 지나가는 것처럼 평온했다. 긴장하지 말라는 의도로 한 말이라, 마음의 평정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던 나래는 당황하지 않고 진흥의 말에 대답했다.


“예, 제가 처음 발견하서 신고했어요.”

“장한 일 했네. 듣자니 아침 운동하러 가다가 찾았다고?”

“오늘 친구랑 산에 올라가기로 했었거든요. 일찍 가서 기다리려고 하는데 길에서 이렇게······.”


애써 가라앉히려던 마음이 다시 흐트러졌다. 사람이 죽은 것을 직접적으로 본 것은 나래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목격자 신상이야 앞서서 이쪽 동네 식구들이 다 확인해뒀을 테고, 세세한 부분도 이것저것 물어봤을 테니 진흥이 할 말이라야 사실 얼마 없었다.


“신원확보야 다 됐을 테고, 필요한 진술도 다 들었으면 이만 돌려보내세요. 나중에 필요한 일 생기면 경찰서 방문해서 목격자 진술서 쓰라고 하고.”


나래와 얘기를 하고 있던 여경에게 그렇게 일러둔 진흥은 새로이 골목에 나타난 차들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 그리로 다가갔다.


“감식반이 생각보다 빨리 왔네, 되게 바쁘게 뛰어다닐 것 같더니.”


그런 진흥과 옆에서 살뜰하게 대해주는 여경, 몰려선 동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래는 어느새 도착했는지 모를 리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토록 빨리 온 것을 보면 마법을 써서 날아오기라도 한 것이겠지.

리하와 눈이 마주쳤고, 그 리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을 보자 나래는 어떤 불안함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진실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건 단순한 자살사건이 아니다. 이걸로 끝나기는커녕 아직 시작도 안 했을 수도 있다.


질문에 응해주느라 고생했고, 얼른 들어가 마음 추스르고 나중에 경찰서에 진술서 작성하러 꼭 방문해달라는 여경의 인사를 뒤로 하며 나래는 리하에게로 다가갔다.

리하도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나래를 마주했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은 다른 골목길로 들어가면서 나래는 급하게 달려와준 친구에게 말했다.


“사념체의 짓으로 보이지?”

“확실해. 마력의 흔적이 남아있었어.”

“정화시켰니?”

“못했어. 에너지를 전송하자마자 소멸해 버렸거든.”

“씨앗으로 변해서 다시 숨지 않은 거야?”

“그러는 대신 이번에는 정말 자폭하듯 소멸했어. 이거 뭔가가 심상치 않아.”


본 적 없는 사념체의 패턴과 그로 인한 참상에 질린 듯, 리하는 창백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오면서 봤는데, 비슷한 일이 두 번 더 있었어. 누군가가 자살했고, 그러면서 남을 끌어들였고, 그 현장에 지금처럼 경찰이랑 구조대원들이 잔뜩 몰려있는 거.”


그 말에 나래도 굳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것도 사념체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이야?”

“맞아. 그쪽도 흔적이 남아 있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루만에 이토록 여러 군데에서 사념체들이 폭주하기 시작한 거야?”

“모르겠어.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입술을 자그시 깨무는 리하의 표정에는 평소의 그녀라면 상상하기 힘들 만큼 무서워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모습을 거의 3년 만에 처음 보게 된 나래가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있어?”


그 말에 리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방에서 사념체들이 폭주하는 기운이 느껴져.”

“사방에서?”

“전부 다 막지 못할 것 같아. 너무 많아. 이대로 폭주가 계속되면 오늘 안으로······.”


리하가 차마 다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폭주한 사념체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을 방금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온 나래 또한 할 말을 잃었다.

역시 오늘 아침에 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리하가 있어도, 어머니가 나서도, 전부 다 막지 못할 정도의 대참사가 이제 곧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래의 어깨 역시 무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2부는 시작부터 피가 흥건하군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리하양, 나래양, 그리고 황녀님까지 정신줄 꼭 붙잡고 놓지 않으시길...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소녀 유리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2부 에필로그 16.12.28 220 0 31쪽
54 아픔을 넘어서 16.12.21 71 0 28쪽
53 아픔을 넘어서 16.12.14 119 0 26쪽
52 은하를 가르는 검 16.12.07 167 0 26쪽
51 은하를 가르는 검 16.11.30 122 0 16쪽
50 은하를 가르는 검 16.11.23 121 0 22쪽
49 은하를 가르는 검 16.11.16 94 0 34쪽
48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9 141 0 19쪽
47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3 149 0 16쪽
46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2 217 0 16쪽
45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0.27 229 0 16쪽
44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6 142 0 17쪽
43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0 216 0 19쪽
42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9 125 0 23쪽
41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3 142 0 21쪽
40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2 195 0 12쪽
39 악몽을 꾸다 16.09.29 137 0 14쪽
38 악몽을 꾸다 16.09.28 208 0 16쪽
37 악몽을 꾸다 16.09.22 160 0 19쪽
36 악몽을 꾸다 16.09.21 158 0 17쪽
35 악몽을 꾸다 16.09.15 271 0 20쪽
34 악몽을 꾸다 16.09.14 267 0 18쪽
33 악몽을 꾸다 16.09.08 152 0 14쪽
32 악몽을 꾸다 16.09.07 218 0 20쪽
31 어둠 속에서 16.09.01 214 0 18쪽
30 어둠 속에서 16.08.31 138 0 18쪽
29 어둠 속에서 16.08.24 150 0 19쪽
28 어둠 속에서 16.08.18 202 0 12쪽
27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7 273 0 17쪽
26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1 154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