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9,711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8.31 01:16
조회
135
추천
0
글자
18쪽

어둠 속에서

DUMMY

“실례합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제지하며 사고 현장 보존에 열심이던 진흥은 누군가가 자신을 정중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뭡니까?”


자신을 부른 사람은 아까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앉아 있던 백인 소녀였다. 바쁜데 불러대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치는데, 그 소녀의 몰골 또한 심상치가 않아 진흥은 저도 모르게 눈살부터 찌푸려보였다.


“아, 네. 저기······ 여쭤볼게 하나 있어서 그러는데요.”


사고가 있다며 신고하러 온 것치고는, 그 소녀는 정신이 매우 불안정해보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두서없이 떠드는 듯한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어째 약에 취한 것 같았다.


“사고 현장이라 바쁘니까, 용건만 우선 간단히 해주세요.”


그래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들어봐야 할 것 같아 진흥은 잠시 소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다소 망설이는 기색과 함께 말했다.


“외국인 신원조회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뭐라구요?”

“제가 아까 저쪽 빌딩 위에서 수상한 외국인을 하나 봤거든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사람인데 이름은 모민이고,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진흥은 한숨과 함께 소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성추행 관련이라면 서에 가서 정식으로 신고하세요.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아, 구조대 이것들은 연락 넣은지가 언젠데 왜 이렇게 안 와.”


딴소리와 함께 진흥이 몸을 돌리자 그 백인 소녀, 리하는 왠지 다급한 마음에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두서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범인으로 의심이 돼서 그런 거거든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러자 진흥은 진심으로 귀찮다는 표정이 되어 리하를 돌아보았다.


“이봐요, 아가씨. 지금 여기 바쁜 거 안 보여요?”

“혹시 그 사람 신원 같은 것 좀 알 수 없을까 해서요.”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사고 터지고 난리법석인데 범인은 무슨 뭐에 대한 범인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돌아가요,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로 끌려갈 수 있습니다.”

“오면서 제가 늑대인간을 봤거든요. 그게 사라진 자리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가 나중에 똑같이 사라졌······.”

“아이, 진짜 바빠 죽겠는데.”


이를 악문 소리와 함께 진흥이 리하를 향해 짜증스러운 시선을 내보냈다.


“약 먹었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 사람이 이 사태의 범인일 수도 있어요. 사념체를 부려서 사람의 마음을 잠식하고 그것을 폭주시켜서 자살에 이르게 하는······.”

“수갑 채워서 마약계로 넘기기 전에 조용히 가라. 아침부터 뭔 뻘소리야, 기집애가 돌았나.”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또라이들 엮이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진흥도 처음이었다. 여기저기서 별별 희한한 사고들이 연달아 터지는데 그 옆까지 찾아와서 늑대인간이니 어쩌니 내뱉는 헛소리에 폭발하지 않은 게 스스로도 희한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이 백인 소녀는 동양인 혼혈의 모습이 있고, 꽤나 예쁘장한 외모였다. 이제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데 나이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해 성인 여성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얼굴 반반한 거 믿고 쓸데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뻘짓하는 부류인 것 같은데, 흐트러진 모양새로 보면 아침부터 어딘가 골목 구석에 처박혀 약이라도 빨다가 외국인에게 성추행 당하고 그걸 신고라도 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헛것을 봤을 테고.

앞으로 남은 인생이 불쌍해질 것 같은 미성년자 약쟁이의 체포보다는 눈앞의 사고 수습이 더 급한 일인지라, 진흥은 더 이상 리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서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사게 된 리하 역시 자신이 얼마나 횡설수설했는지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보통 사람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을 어쩌자고 이렇게 떠벌려놓은 걸까.

리하는 그때 자기가 굉장히 동요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버스 사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고 마음이 불안한 느낌이었는데, 조금 전 비록 면박은 당했어도 제대로 된 사람과 대화를 하고 나자 조금은 안정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덕분에 약간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정화를 해도 소용없는 사념체의 폭주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늑대인간의 정체는 또 뭐고? 그 괴물이 사태의 범인일까? 그렇다면 이제 와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지금까지는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있었으면서.

데이비드 오언과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 관련이 되어있는 거지?

그리고, 겨우 하룻밤 만에 이토록 커다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정리하고 나니 하나같이 머리가 아파지는 것들뿐이었다. 이러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손봐야 하나. 예정대로 나래랑 같이 오언 파이낸셜의 뒤를 캐는 일을 해봐야하는 걸까. 하지만 거리가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어서야······.


가라고 했는데 가지 않고 사고현장 부근에서 얼쩡대는 리하가 신경에 거슬린 진흥 또한 골치 아픈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한 번 더 폭발 직전으로 몰아간 것은, 사고 현장 수습만으로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재촉하듯 걸려온 동료 형사 변지우의 전화였다.


[ 야, 진흥아. 두강 인력에서 사람 죽었다고 지금 막 신고 들어왔다. ]

“두강 인력?”

[ 그래. 거기 사무소에서 직원 하나가 칼로 사람 두 명 찌르고 자기도 직후에 목 찔러서 자살했다니까, 네가 가서 현장 좀 살펴봐. ]

“아이, 썅······. 깡패 새끼들이 지들끼리 싸우다 뒈졌을 수도 있는 걸 가지고 뭐 그리 난리 법석이야. 동네 근처 사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뭐 빠지는 기분이구만.”


이 다음부터는 변지우의 휴대폰을 바꿔 들었는지 동료 형사가 아닌 반장의 목소리가 호통으로 들려왔다.


[ 이 자식은 뭐 좀 시켰다 하면 불만부터 쏟아져 나와 이거. 빨리 안 가? ]

“아 그걸 왜 내가 가서 살펴요, 여기도 바빠 뒤지겠는데. 변 형사 보내세요, 신고도 걔가 받았다며.”

[ 바쁜 건 여기도 드럽게 바쁘고, 두강 인력 사무소에서는 지금 네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고, 너 거기 사장이랑 연도 닿아 있잖아. 잔말 말고 가서 현장 살펴봐. ]


안 반장의 일방적인 지시와 함께 전화가 끊기자 진흥은 휴대폰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오늘따라 일이 걸려도 뭐 이리 그지 같이 걸리나 모르겠네.


“에라, 썅. 까라면 까야지, 에휴······.”


휴대폰을 집어넣고 진흥은 차로 돌아왔다. 이쪽 현장은 제대로 처리가 안 됐지만 연락이라면 해뒀으니 곧 경찰과 구급대에서 나와 맡아줄 것이다. 사고는 자신이 직접 목격했으니 인과 조사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을 테고, 이제 새로 사고가 났다는 두강 인력 사무소를 가야 될 것 같은데······.


“진짜 무슨 날인가?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터지고, 나 원······.”


거기서는 또 뭔 일이 어떻게 벌어졌길래 사람 쑤신 놈이 지 목까지 같이 쑤셨다는 걸까. 두강 인력이라면 예전에 폭행사주와 살인미수 건으로 한 번 쥐 잡듯 잡아놓은 곳인데, 버릇 못 고치고 사고를 또 하나 벌였다 보기에는 그쪽 또한 오늘 벌어진 다른 사건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정황이라 하니 괜히 가기가 꺼림칙해지는 것이었다.


“안 가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진흥의 차가 현장을 떠나는 동안, 바로 근처에서 서성이던 리하 또한 본의 아니게 진흥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되었다. 시끄러운 주위 때문에 그가 휴대폰 볼륨소리를 크게 해놓은 덕분이었다. 살인이 일어났고, 가해자는 자살이라는 같은 패턴의 사건을 전해듣자 리하의 몸이 다시 움찔하고 떨렸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손을 써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만, 움직여봐야 뭔가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망설임만 더 커져 갔다.

하지만 가야 한다. 사념체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 해도,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갔는데, 역시 소용없으면 어떡하지? 사념체를 막을 수 없다면 아무 의미 없는 거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여전히 망설이는 동안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렸다. 리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그 와중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사념체를 막고 싶은 거라면, 전화 오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바로 뛰쳐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엄마한테 온 전화라 하더라도,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사람들을 구하러 지금 날아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리지, 엄마야. ]

“······.”

[ 사념체 패턴이 바뀌었어. 위험하니 우선 집에 돌아가렴. 엄마도 일 금방 끝내고 돌아갈 테니까. ]

“······.”

[ 듣고 있니, 리지? ]

“응······.”


엄마에게서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순간, 리하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확인했다. 무서우니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 그냥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다고.

전화 한 통에 안도감이 드는 걸 보면 자신의 결의란 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나 보다. 다시는 사념체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 주제에, 자기 능력이 안 통하는 걸 알자마자 포기하고 싶은 마음부터 들어버린다. 리하는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싫은 건, 그렇게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으면 이래서는 안 된다며 억지로라도 몸을 돌려야 하는데 그냥 어쩔 수 없지 하는 핑계와 함께 또 스스로를 속이려 드는 행동이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벗어나 집을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거리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차 브레이크 소리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들도 들려온다. 사념체의 폭주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리하는 귀를 틀어막았다. 무감정한 시선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내가 손댈 수 없는 일이야.


빗물 고인 물웅덩이가 핏빛으로 보였다. 그 안에서 죽은 두 선배가 나란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리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아래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귀를 막은 자세 그대로, 그녀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집을 처음 나왔을 때부터 느껴진 불쾌한 마력의 느낌 때문에, 궂은 날씨 때문에 아니더라도 캐시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한꺼번에 폭주를 시작한 사념체가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는 그녀조차 당장은 이유를 몰랐으나, 막아낼 방법이라면 알고 있었기에 우선은 사념체를 정화하는 일에 집중했다.


억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광화 상태로 몰아넣는 사념체의 폭주는, 안 그래도 질이 나쁜 사념체를 그보다 더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악질 중의 악질 행위다. 이것에 걸린 사람은 정상적으로 판단할 사고를 잃어버린다. 스스로가 지닌 내부의 피해의식과 망상을 극한까지 부풀려서 인과관계조차 엉망진창인 원한이나 원망의 마음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설령 피해의식이나 망상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사념체는 그것을 억지로 만들어내어 사람을 폭주상태로 밀어넣는다.

그 결과가 이미 시내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자살하는 사람들, 다른 누군가를 해치고 있는 사람들, 난장판이 되어버린 거리가 폭주하는 사념체의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광란의 현장을 느긋하게 지켜볼 이유가 없었기에, 캐시는 신속히 정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집 근처의 높은 빌딩으로 올라가 마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좋은 장소를 선점했다. 여기서라면 보다 효과적으로 마법을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위험한 사념체의 상태를 보니 우선 딸아이를 집에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니까.


“리지, 엄마야.”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니, 받기는 했는데 별 대답이 없었다. 역시나 사념체가 정화되지 않는 것 때문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사념체 패턴이 바뀌었어. 위험하니 우선 집에 돌아가렴. 엄마도 일 금방 끝내고 돌아갈 테니까.”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아이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다. 아직 예전 사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이런 일을 또 겪게 되면 애가 어떤 상태가 될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듣고 있니, 리지?”

[ 응······. ]


겨우겨우 들린 대답에 캐시는 안도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도 몰랐을 텐데 얼마나 놀랐을까. 집에 돌아가면 꼭 보듬어줘야 하겠지.


리지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니, 다음은 사념체의 숙주가 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폭주한 사념체는 사람의 정신에 깃든 것이 아니라 그 영혼으로 스며든 상태이기에, 통상적인 주문은 사념체의 껍데기만을 정화시킬 뿐이다. 완전히 떼어내려면 숙주의 영혼 단계에까지 주문을 밀어 넣어야했다.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일족 내에서도 공인된 능력을 지닌 캐시에게는 불가능하지 않았다.


“소울 레이드Soul Raid.”


숙주의 영혼에 파고 들어간 사념체를 끌어내려면 이쪽의 영혼을 미끼로 삼아 숙주를 급습해야 한다. 사념체는 보다 강한 마력을 지닌 영혼에 자석처럼 이끌리는 습성이 있으므로, 자신의 영혼에 마력을 담아 파편처럼 날리면 반드시 따라붙는다.

주문을 외운 캐시의 몸 주위로 반딧불이 같은 불빛이 수도 없이 피어났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수십, 아니 수백은 되어 보이는 진주색 불빛들이 생성되자 캐시는 지체없이 팔을 가볍게 휘저었고, 불빛들은 그 손짓에 맞춰 눈보라처럼 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불빛들은 폭주를 일으키고 있는 사념체의 숙주들을 찾아가 하나씩 그 몸에 스며들었다. 모든 불빛들이 알맞게 자리를 찾아 들어간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캐시가 한 번 더 손을 저었고, 밝은 빛을 내며 들어갔던 불빛들은 그 잠깐 새에 매연처럼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빠져나왔다. 모든 불빛을 한데 모아 뭉치자 그것은 아예 허공에 시커먼 구멍이라도 생긴 듯이 보였다.


“큐어Cure.”


캐시는 시커먼 불빛을 향해 정화의 주문을 외웠다. 허공에 마법진 하나가 생겨나더니 불빛을 빨아들였고, 마법진은 곧 칙칙한 빛깔을 지닌 주먹만한 크기의 보석을 뱉어내었다.

정화석을 받아든 캐시는 한 번 더 눈살을 찌푸렸다. 색의 농도는 정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탁한 데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빨아먹었는지 그 크기조차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사태에서 가장 범인으로 의심이 되는 남자가 그녀도 모르는 새에 이 빌딩 옥상 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일하기에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군요, 부인.”


데이비드 오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캐시는 날선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런 시간, 이런 상황에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셨군요.”


마치 이렇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냐. 캐시는 그리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데이비드는 비가 내리는 이 궂은 날에도 정장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다소 머쓱해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캐시는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급하게 전해드릴 게 하나 있어서요.”

“그런 거라면 전화로도 충분했을 텐데요.”

“사념체 폭주 때문에 전화 받으실 여유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온 건데, 역시 생각한 대로군요.”

“아는 걸 말해 봐요, 데이비드.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당신이 하려는 말이 있을 텐데요.”

“그랬죠. 제가 어제 직접 앞으로 사념체 정화 같은 건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드렸으니까요.”

“그 의미가 이건가요? 수많은 사념체가 한꺼번에 폭주를 시작할 테니,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다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겁니다.”


말하던 도중 갑자기 데이비드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캐시는 즉시 경계하는 기색을 띠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더 이상 일족에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죠.”


데이비드가 한 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틈도 없이, 캐시는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빌딩건물의 외벽에서 몸 크기가 4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늑대인간이 바로 코앞까지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말

늑대인간이 아무래도 데이비드와 한패였던 것 같습니다.
위기의 리하양과 어머님, 다음 화에서는 과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소녀 유리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2부 에필로그 16.12.28 219 0 31쪽
54 아픔을 넘어서 16.12.21 69 0 28쪽
53 아픔을 넘어서 16.12.14 119 0 26쪽
52 은하를 가르는 검 16.12.07 167 0 26쪽
51 은하를 가르는 검 16.11.30 122 0 16쪽
50 은하를 가르는 검 16.11.23 121 0 22쪽
49 은하를 가르는 검 16.11.16 93 0 34쪽
48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9 140 0 19쪽
47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3 146 0 16쪽
46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2 216 0 16쪽
45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0.27 229 0 16쪽
44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6 142 0 17쪽
43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0 216 0 19쪽
42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9 125 0 23쪽
41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3 140 0 21쪽
40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2 195 0 12쪽
39 악몽을 꾸다 16.09.29 135 0 14쪽
38 악몽을 꾸다 16.09.28 208 0 16쪽
37 악몽을 꾸다 16.09.22 159 0 19쪽
36 악몽을 꾸다 16.09.21 157 0 17쪽
35 악몽을 꾸다 16.09.15 269 0 20쪽
34 악몽을 꾸다 16.09.14 267 0 18쪽
33 악몽을 꾸다 16.09.08 152 0 14쪽
32 악몽을 꾸다 16.09.07 217 0 20쪽
31 어둠 속에서 16.09.01 213 0 18쪽
» 어둠 속에서 16.08.31 136 0 18쪽
29 어둠 속에서 16.08.24 149 0 19쪽
28 어둠 속에서 16.08.18 202 0 12쪽
27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7 272 0 17쪽
26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1 152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