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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9,708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11.23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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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은하를 가르는 검

DUMMY

그 이후부터는 아무 것도 없었다. 뭔가 생각나는 것도 없었고, 보이는 것도 없었고, 그냥 멍하니, 리하는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주위에서 누군가 떠들어대는 소리들이 들려왔고, 어딘지 익숙한 벨소리 같은 게 울려오는 것 같았다.

꽤 시끄럽고 난잡하지만 활기찬 느낌의 소리들. 그냥 듣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고 귀찮고 나른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 안도감, 그 모순을 느끼자 리하는 비로소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유리하, 일어나. 집에 가야지.”


누군가가 몸을 흔들었을 때, 리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하품을 크게 하고 보니, 각자 가방 메고 의자 집어넣고 일어나면서 집에 갈 준비로 부산한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리하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그런 얼빠진 소리를 내자, 그녀를 흔들어 깨웠던 누군가가 정신 차리라는 듯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다.


“너 어젯밤에 뭐했어?”

“밤에······?”

“뭘 했길래 오늘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엎어져서 잠만 잔거냐구.”


그 누군가는 매우 한심해하는 투가 되더니 이제 리하의 양 볼을 손으로 마구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벌써 수업 다 끝났어. 진짜 징하더라, 너. 어떻게 1교시부터 지금까지 눈 한 번 안 뜨고 내리 잠만 잘 수가 있니?”


리하는 그 손길을 가만히 뿌리쳤다. 그리고는 그 누군가를 끌어안으며 금세 울상을 지어 보였다.


“나래야!”


그리고 왈칵 눈물이 뿜어져 나온다. 교실을 나가던 다른 학생들이 엄마한테 매달린 유치원생 같은 모습이 된 리하를 보고 웃음을 흘렸고, 나래 또한 당황스러워 하며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다.


“갑자기 왜 그래?”

“나 꿈 꿨어. 꿈 꿨는데······.”

“꿈 꿨는데 왜, 내가 죽기라도 했어?”

“응응, 나래가 꿈속에서 죽었어. 나 진짜 너무 울었는데······.”

“내가 어떻게 죽었는데?”

“괴물들한테 끌려가서 그냥 막······.”


괴물들이란 단어에서부터 나래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어보였다.


“그래서 지금 우는 거야?”

“응, 너무 기뻐. 다 꿈이라는 게 너무 기쁘다, 야.”

“어린애도 아니고 뭐 슬픈 꿈 좀 꾼 거 가지고 이리 호들갑이니.”

“너무 진짜 같아서.”

“그냥 잊어. 봄꿈은 다 개꿈이야.”


그리고 리하는 개꿈이란 말에서부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다 개꿈이겠지. 세상에 그런 괴물들이 어디 있고 그런 초인들은 또 어디에 있어.

다 꿈이야. 그냥 꿈. 나래 말마따나 개꿈. 다아 개꿈.

여기는 지금 학교고, 수업도 다 끝나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교실의 정경도, 학생들의 모습도, 항상 보던 풍경이지만 리하는 그 익숙한 일상의 부분이 정말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마음의 진정이 된 리하가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엎어져 자는 동안 책상 위에 그득하게 흘린 침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티슈로 슥슥 닦아내고, 얼굴에 눌린 자국은 그냥 포기하 채 한 번 더 하품 찢어져라 하며 나래와 함께 교실을 나오니 언제나와 똑같은 오후 4시의 하굣길이었다.


“근데 오늘은 어쩌다가 그렇게 하루 종일 잠만 잔 거야?”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나래는 미리 챙겨온 우산을 펼쳤다. 리하는 그걸 보자 자기가 우산을 그냥 교실에 놓고 왔다는 걸 떠올렸지만, 다시 가지러 가기가 귀찮아서 그냥 나래의 옆에 슬그머니 끼어들며 대답했다.


“어제 새벽까지 사념체 정화하고 다니느라 바빴거든.”


그러면서 다시 하품 쩍. 나래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지랖도 황금이셔, 정말.”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이 도시를 지키는 마법소녀인 걸.”

“역할 놀이에 너무 심취해 있는 거 아니니. 마법소녀라는 건 네 자칭이잖아.”

“야, 꿈 많은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 그렇게 깔아뭉개도 되는 거야?”

“나이 열일곱에 꿈이 어디 있고 순수한 마음은 어디 있어. 장래, 진로 미리 생각하고 내신관리 빡세게 해도 모자랄 시기구만.”

“나한테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래 너도 자칭 탐정이잖아. 나처럼 순수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거 아냐?”

“탐정도 네가 붙여준 거지. 내 장래희망은 엄연히 검사고요, 그것을 위해 지금 열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만.”

“검사 되려면 나 따라서 사념체 정화하는 거 도와줄 시간에 공부나 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한테는 꼭 필요한 수사니까 돕고 있는 거잖아.”


잠시 아옹다옹하던 두 사람 중, 리하가 먼저 답답한 듯 웃어 보였다.


“난 장래희망이 뭘까.”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아?”

“그래야 하는데, 나는 딱히 커서 뭐가 되고 싶다는 그런 게 없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마음만 급해지는 거 있지.”


리하는 휴대폰을 꺼냈다. 방금 스스로 말한 것처럼 정말 마음이 급해지면서, 뭔가 꼭 확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로 꿈을 꿔서 지금 나래가 살아있는 거라면 엄마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다급히 전화를 해보니, 신호가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너무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리지, 웬일이니? 학교는 끝났어? ]


편안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다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리하는 애써 쾌활한 척 말했다.


“응, 지금 끝났어.”

[ 그럼 오늘은 다른 길로 새지 말고 일찍 돌아오렴. 오늘 저녁은 리지가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줄 테니까. ]

“고마워. 하지만 엄마 요리 솜씨는 별로 믿고 싶지 않은데.”


아주 엉망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맛을 믿느니 그냥 내가 만들어 먹는 게 훨씬 더 낫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는 리하에게 캐시는 점잖게 당부했다.


[ 그렇다고 어제처럼 늦게 들어오면 안 돼. 사념체 정화도 좋지만 몸도 생각해야지. ]

“하지만 엄마, 난 마법소녀로서 눈앞의 악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거잖아?”

[ 정화자로서의 일이라면 엄마 혼자서도 충분하단다.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무모하고 무리한 일을 할 필요는 없어. ]

“알았어,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 그리고······.”

[ 그리고, 뭐니? ]


인자한 물음에 리하는 다소 진지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나 장래희망을 뭘로 하면 좋을까?”


그리고 웃음 지은 듯 편안한 캐시의 대답이 들려왔다.


[ 진로 고민이라면 그 역시 집에 돌아와서 하는 게 어떻겠니? 저녁 같이 먹으면서. ]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장래에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 아직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찾지 못한 거니? ]

“그런가봐. 딱 이거다 하고 필이 꽂히는 그런 걸 못 찼겠네.”


나래가 옆에서 가볍게 웃는 것과, 어머니의 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리하 역시 배시시 따라 웃었다.

지금은 그냥 학교 다니면서 친구랑 같이 이렇게 어울려 노는 게 더 좋은데. 장래희망 같은 건 살아가면서 좀 더 천천히, 신중히 찾아봐도 되는 거 아닐까.


[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떻겠니? ]

“어떻게?”

[ 하고 싶은 일, 직업도 좋지만, 그 전에 리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고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

“내가 되고 싶은 사람?”

[ 리지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말 기억하니? ]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말이 무엇인지 리하는 바로 떠올렸다. 마법은 고사하고 알파벳과 숫자조차 다 외우지 못했던 다섯 살배기 유리하가, 사념체에게 잠식당한 동네 친구들을 구하려다 똑같은 위기에 빠진 뒤 어머니에게 구원 받으면서 들었던 그 말은 12년이 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좀 더 많은 꿈을 가지고, 해보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까지고 그것을 잊지 말고 마음속에 간직해둘 것.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소중함의 의미를 지켜나갈 것.


[ 그걸 기억한다면 엄마는 언제든 리지의 의사를 존중할 거야. ]

“고마워, 엄마.”

[ 엄마는 이만 전화 끊을게. 아빠 지금 들어왔어. 저녁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

“응, 알았어. 나도 빨리 들어가서······.”


태연하게 나오던 대답이, 아빠라는 말을 듣자마자 돌연 멈춰버렸다. 머리가 찌잉 하고 울리면서, 리하는 돌연 솟구쳐 올라오는 구토감에 손으로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빠, 아빠라고······.

왜 이러는 걸까. 왜 아빠에게, 아빠의 존재에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

무엇 때문에? 아빠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사랑한다, 리하야.”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다. 아빠의 목소리다.

나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기면서, 소름끼치는 미소와 함께 건넸던 그 목소리였다.


“하지 마······!”


온몸에 아빠의 손길이 닿는 것 같았다. 전신을 더듬어대는 감각에 리하는 몸을 움츠리고 덜덜 떨면서, 여기저기서 뻗어 오는 손들을 마구 뿌리쳤다. 그 사이에서 아빠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 마아아!!”


비명과 함께 주저앉으며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그 손길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해 리하를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무서웠다. 아빠가 이럴 리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잘못된 거라구. 누가 좀, 누군가가 좀 도와줬으면······.


“여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 뛰어!”


자꾸만 자기를 붙잡는 손아귀의 느낌, 그리고 목소리가 이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 또 한 번 놀라 눈을 뜨자, 리하는 자신의 손을 붙잡고 다급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진흥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형사님?”

“어쩌자고 혼자 나와서 이러고 있냐. 위험하니까 얼른 돌아가!”


얼떨결에 이끌려 가던 리하는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음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비가 오기는 해도 그냥 좀 어둡기만 할뿐이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사방에서 소름끼치는 괴성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조금 전까지 학교 앞이었던 거리는 어딘지 모를 동네 골목길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래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형사님, 나래 못 보셨어요? 방금 전까지 저랑 같이 있었는데······.”

“못 봤어. 나도 걱정되기는 하는데 지금 그럴 여유조차 없다.”

“잠깐만요, 놔주세요. 나래를 찾아야 해요.”


진흥의 손을 뿌리치며 리하는 골목길을 돌아 나가려 했다. 그러자 진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려와 다시 손목을 붙잡아 끌고 가려 했다.


“유리하, 미쳤어? 어딜 가려는 거야?!”

“나래랑 같이 가야 해요. 제 친구라구요. 어디로 갔는지 찾아야 해요.”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기나 해? 거기로 나가면 죽어!”


그 경고를 무시한 채 리하는 만년필과 정제석을 꺼내들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이라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쪽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웬만한 사태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넘길 자신이······.


“맙소사······.”


그러나 골목 밖에서부터 굉음과 함께 몰려온 것은 리하의 예상을 뛰어넘은 존재들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 거대한 벌레처럼 생긴 괴물들, 인간인지 파충류인지 알 수 없는 외양을 가진 괴물들의 혐오스러운 무리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막연히 사념체를 예상했던 리하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거기 있으면 죽는다니까!”


괴물들의 모습에 얼이 빠진 리하가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멍한 채로 있자, 진흥이 달려와 그녀를 밀쳐내었다. 그리고 괴물들의 무리를 몸으로 막으며 리하를 향해 외쳤다.


“집으로 가! 바깥은 위험해!”


리하는 그런 진흥을 다시 불러보지도 못했다. 괴물들 속으로 섞여 사라지는 것이 리하가 본 진흥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거기에 어떤 감상이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리하는 쫓아오는 괴물들의 무리를 피해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엄마!”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리하는 다급히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믿음과 기대를 가진 채 리하는 온 집안을 다 뒤지며 엄마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의 흔적은커녕, 그 누구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채 음침한 고요만이 감돌뿐이었다.


“엄마······.”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을 가린 리하는 한 번 더 집안을 돌아보았다. 2층의 자기 방에 한 번 들렀다가, 다시 내려와 거실로, 작은 방으로, 주방으로, 마지막으로 간절한 바람과 함께 안방의 문을 열어보자······.


“아아······.”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된 광경에 리하는 결국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방 한가운데에 예의 거대한 늑대인간이 으르렁거리며 서 있었다. 그 발 아래로는 엄마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늑대인간은 리하를 보자 사납게 포효했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집안의 창문들이 모두 깨지면서, 그곳을 통해 바깥의 괴물들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리하는 그 속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아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진흥의 모습도, 나래의 모습도, 동네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의 모습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괴물들과 함께 늑대인간이 리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의 공포보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남겨두고 이런 끔찍한 몰골이 되어 떠나버렸다는 것에 절망한 리하는 머리를 감싸 안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악!!”



* * *



다시 눈을 떴을 때 괴물들은 없었다. 늑대인간도,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도 없었다.

눈에 보인 것은 하얀 천장과 빛이 환한 형광등이었고, 들리는 것은 뭔가 물 같은 것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였다.


여기는 어디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은 리하는 자기가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침대 주위로는 병원 중환자실에서나 볼 것 같은 기계장치들이 늘어서있고, 그 기계장치와 연결된 주사나 링거가 팔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분명하게 생각이 났다. 피니엘이 구조 요청을 보낸 그 갤럭시 블레이드인가 하는 게 실제로 나타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던 와중에 정신을 잃었던 것을.

그 후 병원에 옮겨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난 건 일단 다행이지만, 뭐가 어떻게 돌아간 일인지를 모르니 안심보다는 불안함이 먼저 피어났다.


누운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이 뻐근하고 답답한 느낌이었으나 움직이는 데는 그런 대로 지장이 없었다.

1인 병실로 보이는 실내는 그리 넓지 않았다. 아담한 사이즈의 원룸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가 안에 왔다 간 것 같지도 않았다. 침대 옆 찬장이 휑하니 비어 있었으니까. 하긴 누군가 올 사람도 없긴 하지만······.

그보다 여기는 어디고 내 상태는 어떤지, 그걸 먼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몸을 좀 뒤척이다보니 머리맡에 간호사 호출 벨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고, 리하는 지체 없이 그걸 눌러 누군가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 벨을 누른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병실에 정말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아, 이제 정신을 차리셨군요.”


간호사나 뭐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무심코 돌아보았지만 병실로 들어온 그 사람은 의사나 간호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옷도 사복 차림인데다, 나이도 리하와 비슷해 보이는 또래였던 것이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어지럽다거나 토할 것 같다거나 하지는 않나요?”

“아뇨, 전혀······.”


여기가 어디고 이 소녀는 누군지, 아직 전혀 알지 못한 리하가 엉겁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 소녀는 리하에게 다가와 이마의 열을 재고, 동공을 살피고, 맥을 한차례 짚어보더니 금세 미소를 지어보였다.


“체온, 혈압, 맥박, 의식 모두 정상이네요. 가벼운 몸살기가 좀 있긴 하지만 조금만 쉬면 금방 회복될 거고요, 조금 있다가 허기가 느껴지면 내장기관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신호니까 바로 호출벨 눌러주세요. 식사가 들어갈 겁니다.”

“아, 네······.”


잘은 모르겠지만 리하는 일단 여기가 병원이고 눈앞의 소녀가 의사 내지 간호사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 것치고는 자기랑 별로 큰 차이 안 나는 나이대의 외모를 가졌지만 말이다. 곱슬진 오렌지 빛의 장발이나 비취색의 눈동자, 동글동글하고 순수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다부져 보이는 표정과,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몸매가 돋보이는 미소녀였다.


“그런데 저기······ 누구시죠?”


궁금증을 풀기 위해 리하가 조심스레 질문을 해보았다. 그러자 그 소녀는 다시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소피아 루이스라고 합니다. 유리하 씨의 치료와 회복을 담당하고 있어요.”

“네, 성함은 알았어요. 질문에 추가를 하자면 소피아 루이스 씨는 어떤 사람이고 여기는 또 어디인가 하는 게 되겠네요.”

“그 외에 더 묻고 싶으신 건요?”

“제 친구는 어디 있는지도 추가하고 싶네요. 괴물들한테 쫓겨 다니다가 같이 구조된 것 같은데······.”

“또 다른 건?”

“우선은 이게 다예요.”


말과는 달리 묻고 싶은 건 그보다 더 많이 있었다. 괴물들이 나타난 서울 시내는 지금쯤 어떻게 됐는지, 그 괴물들은 대체 어떻게 그리 빠른 시간 안에 도시 전체를 장악했는지,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온 건지 등등.

하지만 소피아 루이스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가 그걸 다 일일이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리하는 일단 대답부터 기다렸다.


“여기는 IAC 내부의 격리 회복실이에요.”

“IAC? 격리 회복실이요?”


IAC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리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하기는 한데 어디서 들었더라, 고민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름을 피니엘에게서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 생각났다. 국제 외계인 관리 사무소인가 뭔가 하는······.”

“네, 거기에요. 우주에서 또는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건강검진이나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 이곳의 격리 회복실에서 이루어지죠. 전염병 또는 감염에 대비해서요.”


소피아의 친절한 설명을 듣자 리하도 자신이 왜 이런 곳에 누워있게 된 건지는 대강 이해했다. 분명 많이 다쳤었고 또 프레네티코 감염 바이러스인가 하는 것에 걸린 상태였으니 치료가 필요했겠지.


그리고 프레네티코를 떠올리자마자 리하의 몸이 다시 떨려왔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이 흉측하게 변이해 움직이고, 그것들을 조종하는 듯 보이던 끔찍스런 외양의 괴물들이 하늘과 땅을 새카맣게 메운 채 달려오던 모습을 떠올리자 시야가 또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떨고 있는 리하의 손을 소피아가 가만히 잡으며 달래주었다.


“안심하세요, 프레네티코는 모두 따돌렸으니까.”

“정말인가요······?”

“여기는 안전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불안함 가득한 리하의 모습에, 소피아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유리하 씨는 이쪽 세계로 옮겨지면서 응급수술을 한 차례 받았고, 여기서 2차 수술을 받았어요. 외상 치료와 프레네티코 감염 인자 제거였죠. 시술 후 3일 동안 잠들어 있다가 오늘 의식을 차렸어요.”

“그랬나요······.”

“유리하 씨를 구출해온 갤럭시 블레이드 멤버들은 현재 모든 보고를 마치고 대기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희들 대장은 현재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고요.”


다른 호칭 놔두고 굳이 대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리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런 리하에게 마치 감사하듯, 소피아는 가볍게 목례하며 말했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소피아 루이스라고 합니다. 전투원은 아니지만 어엿한 갤럭시 블레이드의 대원이에요.”

“갤럭시 블레이드라면 당신도 피니의······.”

“서열상, 서류상으로는 부하죠. 피니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친구로만 대하지만요. 물론 저도 그렇고.”


갤럭시 블레이드, 그리고 피니엘의 이름이 나오자 리하는 자기도 모르게 꿈의 내용을 떠올렸다. 모두가 무너지고 죽어가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등장하지 않은, 그래서 더 걱정이 되는 친구가 바로 피니엘이었다.


“피니는 괜찮나요? 어디 다치거나 그런 거 아니죠?”

“몸은 건강합니다. 정신은 좀 불안정한 부분이 있지만요.”

“괜찮은 건가요? 지금 만날 수 있어요?”

“그러잖아도 피니엘은 유리하 씨가 회복되면 우리더러 당신과 꼭 얘기를 나누라고 부탁했어요.”

“피니가 지금 어떤 상태길래요?”

“돌아오고 난 후부터 우울증이 심해졌고, 꽤나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요. 별 것 아닌 일에 걸핏하면 화를 내고 금세 또 후회하고, 그런 상태죠.”


소피아가 전해준 피니엘의 증상을 들은 순간, 프레네티코와는 다른 종류의 공포로 인해 눈앞이 또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 리하였다.


작가의말

리하양... 편한 날이 없군요. 악몽에 시달리고, 프레네티코에게 시달리고, 그나마 이 괴물들한테서는 어떤 먼치킨들의 도움을 받아 벗어났나 싶더니 다시 문제를 원점으로 가져오는 사념체 징조까지...
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참 많이도 구르는 듯...

...그리고 어느샌가 은근슬쩍 수요일에만 연재가 되고 있군요(...)
...나태해진 걸까요... 자꾸 몸을 사리게 되네요;
그래도 얼마 안 남은 마지막까지는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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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2부 에필로그 16.12.28 218 0 31쪽
54 아픔을 넘어서 16.12.21 69 0 28쪽
53 아픔을 넘어서 16.12.14 119 0 26쪽
52 은하를 가르는 검 16.12.07 167 0 26쪽
51 은하를 가르는 검 16.11.30 122 0 16쪽
» 은하를 가르는 검 16.11.23 121 0 22쪽
49 은하를 가르는 검 16.11.16 93 0 34쪽
48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9 140 0 19쪽
47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3 145 0 16쪽
46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1.02 216 0 16쪽
45 손을 내밀어 준 것은 16.10.27 229 0 16쪽
44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6 142 0 17쪽
43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20 216 0 19쪽
42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9 125 0 23쪽
41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3 140 0 21쪽
40 무너지는 시간을 헤맬 때 16.10.12 195 0 12쪽
39 악몽을 꾸다 16.09.29 135 0 14쪽
38 악몽을 꾸다 16.09.28 208 0 16쪽
37 악몽을 꾸다 16.09.22 159 0 19쪽
36 악몽을 꾸다 16.09.21 157 0 17쪽
35 악몽을 꾸다 16.09.15 269 0 20쪽
34 악몽을 꾸다 16.09.14 267 0 18쪽
33 악몽을 꾸다 16.09.08 152 0 14쪽
32 악몽을 꾸다 16.09.07 217 0 20쪽
31 어둠 속에서 16.09.01 213 0 18쪽
30 어둠 속에서 16.08.31 135 0 18쪽
29 어둠 속에서 16.08.24 149 0 19쪽
28 어둠 속에서 16.08.18 202 0 12쪽
27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7 272 0 17쪽
26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1 15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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